18화

감독
일이나 사람이 잘못되지 않도록 살펴 단속하며, 때로는 그 일의 전체를 지휘하기도 하는 사람. 해당 단어는 이와 같은 뜻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팀이 잘못되지 않게 해야 하는, 스포츠에서의 감독도 당연히 팀에서 그에 걸맞게 많은 권한을 보유하고 있지.’
자신을 등판시켜달라는 부탁을 입 밖으로 내뱉은 가운데였다. 정수는 두 눈동자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며 계속해서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흠, 박정수 이병?”
“이병, 박정수!”
정수는 큰 목소리로 대대장의 부름에 답했는데. 정수는 공포에 새하얗게 질린 듯이, 새까만 눈동자를 한 곳에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을 부른 대대장의 목소리에는 짙은 살기가 실려 있었으니까.
“방금 했던 말, 다시 한번 해볼 수 있나?”
대대장은 기가 찬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으면서 정수에게 되물었다. 정수는 이에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그를 따라서 웃음을 지었다. 커피 원액처럼 쓰디쓴 웃음 말이다.
“그리 큰 것은 아닙니다. 대대장님. 그냥 다음 경기에서 한 이닝이라도 좋으니. 마운드 위에서 데뷔전을 치르고 싶습니다!”
공포에 질려 제대로 대대장의 눈빛도 마주 보지 못하던, 정수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면서 대대장의 물음에 답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잔꾀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데뷔전이라···. 박정수 이병.”
“이병 박정수?”
“혹시 야구부를 말하는 것이냐?”
대대장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정수를 째려보며 물었다. 정수는 그의 시선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흡사 추위가 온몸에 느껴지기라도 한 것처럼.
“이병 박정수, 그러합니다. 야구부에서의 데뷔전, 그러니까. 저는 다음 경기에서 1구라도 괜찮으니. 경기장 마운드 위에서 피칭을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정수는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진동처럼 떨림으로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도 거짓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진실한 어조로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게 맞을 거야. 휴가에 비하면 이 정도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한 부탁이니까.’
겉으로 정수는 내면과는 상반되게. 고심으로 가득하기만 한, 딱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호, 혹시나 설마 내 부탁이 주제를 넘기라도 했으려나?’
떨림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 직후, 내면의 정수는 양손에 깍지를 끼면서 걱정했다. 대대장은 다음 경기 선발 라인업을 정할 수 있는, 야구부의 감독직도 겸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 그래도 일단은 질렀으니. 제발 부디 좋은 결과가 나와야만 한다.’
정수는 속으로 깍지 낀 손의 머리를 갖다 대면서 간절하게 기도했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내지른 물음에 대대장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채로 말이다.
‘하아, 이거 완전히 미쳐버리겠구먼?’
정수가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을 때였다. 한편, 그런 정수의 맞은편에 있던 대대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흡사 해결하기 까다로운 문제를 직면한 것처럼.
‘그러니까 박정수 이병의 말은 이거잖아. 이제 막 야구부에 들어온 지 2일 차가 되는 녀석을, 아직 짬도 제대로 차지 않은 녀석을 마운드 위에 등판시키라는 거잖아.’
대대장은 한 손으로 이마를 부여잡으면서 골머리를 썩였다. 그와 함께 살기로 가득 찬 시선의 방향을 돌렸다. 멀뚱멀뚱 자리에 서 있던 6생활관의 최고참 이병장에게 말이다.
“흠, 이병장. 자네는 끝나고 나 좀 보도록 하지.”
대대장은 강하게 움켜쥔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이에 이병장은 풀려있던 눈꼬리에 힘을 주며 눈을 바로 떴다.
“병장 이성민. 알겠습니다.”
이병장은 오른손으로 대대장에게 경례하면서 대답했다. 그와 함께 왼손으로는 옆에 있는 6생활관 상병들에게 어깨를 툭툭, 쳤다.
“얘들아, 최대한 빨리, 시간이 나면 나는 대로 후임 교육 똑바로 하도록 한다. 알겠나?”
“아, 알겠습니다.”
정수에게까지 들리지 않게끔, 이병장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차일병을 비롯한 상병들은 이병장을 따라 두 눈을 부릅뜨면서 대답했다. 마치 잊고만 있던 기억을 하나 떠올리기라도 한 것처럼.
‘음··· 아무래도 이 야구부에는 무슨 규율이 존재하는 건가 보군.’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두 눈을 똑바로 뜬 채로 지켜보던, 정수는 지금 상황을 의심하기만 했다. 자신이 부탁을 말한 이후로, 주위에서는 의문 가득한 분위기가 들끓기 시작했으니까.
“··· 물론 맨입으로 부탁드리는 건, 아닙니다. 대대장님.”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지. 박정수 이병?”
“이병 박정수, 단순합니다. 만약 저의 불펜 피칭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때만큼은 제가 자진해서 이 부탁을 없던 일로 만들겠습니다.”
정수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똑바로 말했다. 조금 전에 떨림으로 가득했던 목소리를 냈던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을 정도였다.
“호오··· 그 말은 즉, 내게 실력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말로 알아들어도 되는 건가. 박정수 이병?”
대대장은 흥미롭다는 듯이 두 눈빛을 그윽하게 뜨면서 물었다. 정수는 이에 온몸을 떨었다. 날카로운 시선이 그윽한 시선으로 바뀌었다고, 눈빛에 잔뜩 서려 있던 그의 살기가 한 번에 사라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이병 박정수. 그렇습니다. 만약 불펜 피칭을 보고도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저를 경기에 투입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정수는 자신감이 있다는 것처럼 오른손으로 한쪽 가슴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단지,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단순하게 눈치가 보인다는 이유나, 위계질서와 같은 이유로 능력 있는 인재를 놓치지 말라는 말만 하고 싶을 뿐입니다. 대대장님.”
정수는 마음속에 품어뒀던 말을 입 밖으로 대대장에게 꺼냈다. 여전히 정수의 내면에서는 마음에 걸리는 게 있기라도 한 것같이 말이다.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대대장님께서도 이병장님처럼 특정 병사를 편애하거나 그런 증세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정수는 석고상처럼 딱딱하게 표정을 굳히면서, 대대장의 눈빛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대대장이 지금 자신이 내뱉은 말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으니까.
“능력 있는 인재를 놓친다라··· 고놈, 아주 재미있는 말이구나. 신병.”
정수의 말을 들은 대대장은 재미있다는 것처럼 꽤나 호쾌한 목소리로 웃어댔다. 정수는 그를 따라서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내가 인복 하나만큼은 정말 좋은가 보구나.’
대대장을 뚫어져라 지켜본 정수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대대장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보다는, 정의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박정수 이병. 그러면 내일 아침에 주시해 보도록 하겠네. 네 녀석이 과연 어떤 공을 던지길래, 이렇게까지 자신이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야.”
대대장은 정수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를 격려해 준 후, 천천히 정수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제법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정수를 흘겨보면서 말이다.
‘후우, 걱정하지 마십쇼. 대대장님, 제가 이래 봬도 살면서 제대로 배워온 거라고는 야구밖에 없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정수는 불꽃이 인 눈빛으로 대대장의 뒤통수를 쳐다보곤, 곧바로 펼쳐져 있는 왼손을 쳐다봤다.
‘다음 경기는 분명히 이번 주 주말에 있을 거야. 그렇다면 내게 남은 시간은 3일. 그 안에 어떻게든 공의 제구를 잡아보도록 하겠어!’
정수는 왼손에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면서 각오했다. 그 엄청난 구속을 뽐내는 공을, 자기 생각대로 제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로 말이다.
*
“오케이. 여기까지. 이상으로 오늘 새벽 러닝은 이만 끝낸다. 이제 별관 건물로 들어가, 각자 개인 훈련을 진행해 주길 바란다.”
땅거미가 진 어두운 하늘로 태양이 떠오르는 다소 이른 일출 시각, 운동장 한가운데에 있던 최일병은 군기가 바짝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어이, 이등병들 대답이 작습니다. 조금만 더 큰 목소리로 답하도록 합니다.”
“알겠습니다!”
정수를 포함한 이등병들은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이등병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동이 틀면 크게 울어대는 수탉의 울음소리를 연상시켰다.
“좋다. 그러면 모두 좌향좌!”
최일병은 확성기를 입에 단 채로 큰 소리로 외쳤다. 정수는 능숙하게 상체의 방향을 왼쪽으로 돌렸다.
“모두 앞으로 갔!”
“옙!”
최일병의 명령에 이등병들은 무슨 행진이라도 하는 것처럼, 별관 건물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지금, 저 별관 건물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정수, 오늘도 열심히 훈련해라.”
맞선임인 황이병은 정수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충성, 오늘도 최선을 다해서 훈련에 임하겠습니다. 황이병님!”
“그래. 그러면 열심히 하고 와라.”
정수가 경례하면서 대답하자, 황이병은 푸근한 미소를 얼굴에 띠면서 자리를 떴다. 그는 투수인 정수와는 다르게 배트를 휘두르고, 땅볼을 처리하는 야수였으니까.
“어이, 거기 이등병들 완전 굼뜨다. 얼른 각자 자리에 들어가서 오늘 피칭을 시작하지 못할까?”
이하사는 멍하니 자리에 서 있기만 한, 이등병들을 향해서 쩌렁쩌렁 크게 목소리를 냈다.
“허걱···.”
“죄송합니다!”
정수를 포함한 이등병들은 안색을 흐렸다. 동시에 허겁지겁 그물망과 마운드가 가득한 피칭 공간으로 달려갔다.
“흐읍!”
정수는 어금니를 꽉 깨문 채로 강하게 기합을 넣으면서 투구를 이어갔다. 찰랑, 하고 그물망에 공이 명중한 소리가 주위를 가득 채우며. 공은 제법 묵직하게 날아갔다. 하지만 정수의 표정은 밝기는커녕, 여전히 어두웠다.
‘구속은 제법 찍히는데 영점은 이상하리만치 제대로 잡히지가 않네···.’
정수는 답답하다는 듯이 천천히 말끝을 흐렸다. 하이 패스트볼을 생각하고 정수가 던진 공은 정수의 손끝을 떠나자, 아래로 날카롭게 꽂혔으니까.
‘이번에는 구속보다는 제구에 초점을 맞춰서 공을 던져보자.’
정수는 크게 숨을 고르면서 생각했다. 그러고는 오른쪽 다리를 높게 들었다가 내려놓으며. 육체의 반동을 줘서 왼손으로 투구를 이어갔다.
“우와아···.”
“이야···.”
정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고, 공이 그물망을 강타하자. 주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등병들은 죄다 입 밖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지금 정수가 던진 공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면서, 스트라이크 존이라고 설정해 둔 그물망의 밑동을 정확하게 강타했기 때문이었다.
“정수. 지금 던진 공, 궤적부터 구속까지 전부 다 대단한데?”
“그러니까. 이제 학생 때 전성기 폼으로 회복 끝낸 거야?”
주위에 있던 이등병들은 부러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물망 위에 구속을 알려주는 기계에는, 142km라는 제법 수준급 구속이 찍혀 있기도 했으니까.
‘됐다! 드디어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코스에 공을 던졌어.’
정수는 어둡기만 하던 표정을 밝혔다. 팔에 힘을 조금 빼고 투구를 이어가니, 드디어 자신이 원하던 코스에 공이 그대로 꽂힌 것이었다.
‘좋았어. 그러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서둘러 이 감각을 몸에 익혀야겠어.’
정수는 공을 강하게 움켜쥐면서 서둘러 다시 피칭을 이어갈 준비를 했다. 어서, 지금의 감각을 몸에 익힌다는 각오로.
‘이번에는 우타자 기준 몸쪽 상단이다.’
정수는 목표를 설정하고는 오른쪽 다리를 내리면서 왼팔을 거세게 내휘둘렀다. 공은 정수의 왼손 끝을 떠나,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면서 그물망을 향해서 날아갔다.
찰랑, 하고 그물망이 흩날리는 소리가 정수의 귓가에 들리자. 정수는 감겨있던 눈을 뜨면서 공이 제구된 위치를 확인했다.
‘몸쪽··· 상단과 하단, 그사이에 꽂혔군.’
정수는 글러브를 주먹으로 치면서 크게 아쉬워했다. 방금과 똑같은 감각이 왼손으로 느껴진 게, 그대로 공은 자신이 생각한 코스에 제구될 거로 생각해서였다.
‘근데 이것밖에 안 되다니. 아쉽네.’
정수는 부족하다는 듯이 눈썹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공의 구속을 확인했다.
‘151.3km라, 나도 모르게 팔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간 건가?’
정수는 자신의 왼손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정수의 왼팔은 제법 격양된 것처럼 핏줄이 솟구쳐 올라와 있고, 붉게 달아올라 있기도 했다.
- 작가의말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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