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충성!”
한창 마운드 위에서 투구를 이어가던 병사들은 하나둘씩, 죄다 오른손을 이마에 올리면서 대대장에게 경례했다. 그것도 하나도 빠짐없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말이다.
“부대 쉬어.”
“쉬엇!”
대대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병사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큰 목소리로 복창했다. 눈썹 끝을 향해서 가져다 댔던 오른팔을 내려놓으면서.
“무. 무슨 일로 이곳에 방문하셨습니까. 대대장님?”
정수의 옆에 있던 정이병은 살금살금 대대장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지금 이 투수 훈련장에서 투수 코치 역할을 맡고 있던 그였으니까.
“단순하게 확인할 게 하나 있어서 찾아왔다네. 이하사 얼굴도 보러 올 겸해서 찾아오기도 했고 말이야.”
대대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움푹, 솟구쳐 있는 마운드부터 투수들이 던진 공을 받아주는 그물망까지. 대대장은 세세하게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래서 이하사는 어디에 있지?”
“이, 이하사님이라고 함은 오늘은 일이 생겨서 제게 투수 코치로서 모든 권한을 제게 위임하셨습니다.”
“흠, 그러한가?”
대대장은 정이병을 새침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정이병은 그런 대대장의 시선이 거북하다는 듯이,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기만 했다.
“정이병, 그러면 하나만 묻도록 하겠네.”
“이병 정민수. 무엇입니까?”
“박정수 이병은··· 혹시 이 자리에 없나?”
대대장은 의미심장하고 음침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순간, 정수는 두 눈을 부릅뜨며 본의 아니게 몸을 떨었다. 순간적으로 정수의 머릿속에서는 어제의 일이 떠오른 것이었다.
‘아, 맞다. 어제 내가 증명해 낸다고 했지?’
정수는 어제 대대장과 있던 일을 떠올렸다. 불펜 피칭에서 자신의 제대로 가치, 친가를 보여줄 거라고.
‘근데 그러면 보통 3일 정도는 지나고 나서 오지 않나? 어떻게 하루 만에 그것도 단 하루 만에 오는 건데!’
정수는 정이병과 마찬가지로 식은땀을 흘리며 크게 긴장했다. 그가 하루 만에 이곳을 찾을지는 몰랐으니까.
“저, 저기에 있습니다.”
정수의 불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한편, 정이병은 곧바로 정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정수는 난처한 기색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아직 제구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는데···.’
정수는 불안함에 괜히 입술만 물어뜯었다. 대대장의 앞에서 피칭을 선보이기에는, 아직 정수 본인의 피칭은 형편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 며칠 동안 조금만 더 시간 주기를 바랬는데. 아무래도 그건 무리겠지?’
정수는 불안함에 검은 동공을 덜덜 떨었다. 그 사이, 대대장은 정이병이 가리킨 정수를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박정수 이병?”
“이병 박정수. 충성!”
긴장하고 있던 정수는 허겁지겁 대대장에게 경례를 올렸다.
“···쉬어.”
“쉬엇!”
정수는 군기 바짝 실린 목소리를 내며, 눈썹에 가져다가 댔던 손을 내렸다. 그와 함께 대대장을 향해서 비장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마치 자신이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어제 했던 말은 잘 들었다. 박정수 이병.”
“······.”
“그래서 말이다. 혹시 지금 내가 네 녀석의 피칭을 한번 확인해 볼 수 있을까?”
대대장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긴장한 정수에게 긴장을 풀라는 것처럼. 하지만 당사자인 정수는 입술을 부르르 떨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 최. 최선을 다해서 보, 보여드리겠습니다.”
정수는 오히려 더욱 긴장한 것처럼 더욱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전, 대대장이 긴장을 풀라고 내뱉은 말은 정수에게는 전혀 다른 뜻으로 다가왔으니까.
‘지금 바로 던져야 한다. 당장이라도 대대장님이 마음에 들어 하실 법한 투구를 말이야.’
정수는 자신의 왼손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정수의 왼손은 불안한 정수의 심리를 대변하듯이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과연···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정수는 크게 긴장한 채로 천천히 마운드 위로 걸음을 옮겼다.
“대. 대대장님, 더, 던지면 되겠습니까?”
마운드 위에 올라선 정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에 대대장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기를.
“그래. 한번 던져보거라.”
“아, 알겠습니다. 흐읍.”
정수는 안개처럼 자욱한 한숨을 내뱉은 후, 자연스레 오른발을 들며 와인드업을 취했다.
‘우선 초구는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공, 그중에서 가장 빠른 공을 보여주자.’
와인드업을 마치고 공을 투구하기 위해서 왼팔을 뻗은 순간, 정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만큼은 기어코 자신이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공을 던져낼 거라고 말이다.
“우와···.”
찰랑, 하고 공이 그물을 강타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대대장의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정이병은 크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지금, 정수가 던진 공은 표적인 그물망의 한가운데에 꽂혔으니까.
‘됐다. 됐어. 드디어 한 가운데에 공이 제구되었어!’
당사자인 정수는 환희에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애처럼 좋아했다. 그러면서 박스에서 다시 야구공을 꺼내 들었다. 지금의 감각을 온전히 왼팔에 익혀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 직구. 하나 더 던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하나만 더 던져보도록. 박정수 이병.”
대대장은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말했다. 마치 거대한 충격에 사로잡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흐읍!”
정수는 다시금 거세게 기합을 넣으면서 세차게 왼팔을 휘둘렀다. 그것도 미소로 가득 찬 밝은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
“오, 나이스 볼!”
정이병을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이번에도 정수가 던진 공은 그물망의 한가운데에 제구된 것이었다.
‘그래, 이 감각이야. 이 감각을 잘만 익혀서··· 구속을 끌어올릴 수 있을 만큼만 끌어올리면 될 거야.’
정수는 왼손에 주먹을 움켜쥐면서 열의를 다졌다.
“흠. 제구력은 제법 괜찮군. 구속은 뭐, 말할 것도 없는 것 같고.”
“가, 감사합니다. 대대장님.”
정수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허허, 벌써 너무 그러지 말게. 테스트는 지금부터 시작이니까.”
대대장은 정수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비장하게 말했다. 정수는 눈에 불을 켜면서 다시 허리를 세웠다. 영점이 잡힌 지금, 정수에게 두려울 것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자, 그러면 박정수 이병. 지금부터 한번 변화구를 던져보도록.”
“네에?”
정수는 맹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예상치 못한 질문을 들은 것처럼 말이다.
‘벼, 변화구? 아직 왼손으로는 직구밖에 안 던져봤는데?’
정수는 왼손을 꼼지락거리며 계속해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오른손이라면 몰라도, 아직 왼손으로는 그 어떤 변화구도 던져보지 않아서였다.
“제대로 못 들은 건가. 박정수 이병? 변.화.구. 직구는 잘 봤으니까. 이번에는 변화구를 던져보게.”
“아, 넵···.”
대대장이 큰 소리를 내면서 압박하자. 정수는 허겁지겁 노란 박스에서 야구공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초록색의 그물망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도저히 갈피를 못 잡겠다는 것 같이.
‘일단은 오른손으로 던질 때, 던졌던 변화구 그립이라도 한번 잡아보자.’
정수는 글러브 속에 있는 왼손을 꼼지락거리며, 계속 공을 어루만졌다. 제대로 된 변화구 그립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래, 일단 간단하게 커브부터. 한번 던져보자.’
정수는 재빠르게 손을 움직여 커브 그립을 잡고, 와인드업을 취했다.
“흐읍!”
다시금 정수는 기합을 넣으면서 공을 던졌다. 하지만 정수의 손끝에서 공이 떠난 순간, 당사자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조졌다. 실투다!’
정수는 황급히 놀란 듯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러고는 눈앞에 공이 날아가는 걸 두 눈으로 지켜보는데. 정수는 탄식을 내뱉었다.
커브랍시고, 던진 정수의 공은 그대로 그물망 뒤로 넘어간 것이었다. 그것도 제법 빠르게 말이다.
“흐음··· 지금 내가 본거지. 박정수 이병?”
이를 지켜본, 대대장은 당연히 살기가 실린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공은 스트라이크 존이라고 볼 수도 없는 곳으로 완벽히 벗어났으니까.
“죄, 죄송합니다.”
정수는 푹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인 채로 사죄했다. 지금의 실투는 감독인 대대장에게 있어서, 낙제점을 받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아서였다.
“고작 이 정도였다니. 하는 수 없군. 박정수 이병, 테스트는 이만 끝···.”
“대대장님, 너무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시는 거 아닙니까?”
대대장이 테스트를 끝내려는 순간이었다. 그의 옆에서 잠잠하게 있던 정이병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대대장의 말을 끊었다. 마치, 정수를 지키려는 것처럼.
“정민수 이병? 성급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이병 정민수, 그 제가 볼 때는 박정수 이병이 긴장을 거하게 한 것 같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변화구도 잘 던지던 녀석인데. 긴장한 탓에 실투가 나온 것 같습니다.”
정이병은 능숙하게 입을 놀리며 대대장에게 말했다. 대대장은 그런 정이병의 말이 따분하다는 듯이 표정을 구겼다. 정이병이 뭘 바라는지 알고 있다는 듯이.
“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정민수 이병?”
“그, 테스트를 지금 끝내기보다는··· 조금만 더 박이병의 공을 봐보는 게 어떻습니까?”
정이병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면서 화답했다. 대대장은 기가 찬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하,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정민수 이병?”
대대장은 헛웃음을 멈추고, 진중한 목소리로 정이병에게 물었다.
“그, 그게 말입니다. 박정수 이병. 저 녀석은 말이죠···.”
정이병은 다소 조심스럽게 말했다. 얼마나 조심스러웠는지 주위의 눈치를 살피던 정이병은, 나머지 뒷얘기는 대대장의 귀에다가 대고 작게 속삭일 정도였다.
“···흠, 그건 확실히 그렇긴 하네.”
“그러니 너무 성급하게 결단을 내리지 마시고, 한 5구 정도만 더 봐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정이병은 양손에 깍지를 낀 채로 간절하게 빌 듯이 말했다. 대대장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정이병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알았네. 정이병이 이렇게까지 빌고 빌어보니. 내 딱, 3구만 더 보도록 하겠다. 박정수 이병.”
“가, 감사합니다!”
정수는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다시 마운드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고민했다. 과연, 어떤 변화구를 던져야 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어디 방법이 없을까? 그냥 평범한 직구를 던지고 변화구라고 우겨나 볼까. 아니면 던지는 방식을 바꿔서 변화구처럼 던져볼까. 그것도 아니라면···.’
정수는 복잡하게 머리를 굴렸다. 완성도 높은 변화구를 던져야만 하는, 이 태스트에서 통과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 정도로 정수는 태스트를 통과하는 데에 있어서 절박했다. 어제 떠벌린 말이 있어서? 아니었다. 지금 정수가 필사적인 이유는 오직 다음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기 위해서. 그것뿐이었다.
‘근데 선발로 출전하려면 변화구를 하나 던져야 하고, 아직 나는 변화구 같은 건 연마도 못 했는데. 이를 대체 어떻게 해야지?’
정수는 두 눈썹을 찌푸리면서 계속 고민했다. 얼마나 고민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들였는지. 이를 지켜보던 대대장이 어서 던지라고 압박을 넣을 정도였다.
“박정수 이병, 얼른 안 던지냐?”
“죄, 죄송합니다.”
정수는 대답한 후, 다시 고민했다. 지금 자신이 왼손으로 던질 수 있는 변화구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해답은 꽤나 엉뚱한 곳에서 나왔으니.
“박정수 이병, 편하게 던져. 너, 변화구 조금 전에도 제법 잘 던졌잖아.”
정이병은 정수에게 두 주먹을 움켜쥐면서 힘내라는 듯이 말했다. 정수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내가 조금 전에 변화구를 던졌었다고? 분명히 내가 던진 건 직구 밖··· 어? 잠깐만!’
정이병의 말을 들은 정수는 이 고민의 마침표를 찍었다. 조금 전, 자신의 공이 휘었다는 말을 떠올렸으니까.
‘그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일단은 한번 던져보자. 분명히 정이병님의 눈에는 공이 꺾인다고 하셨으니까.’
정수는 다시 왼손으로 직구 그립을 잡았다. 그러고는 와인드업을 취한 후, 공을 던졌다. 지금, 정수가 던진 공이 미래에 결정구로 거듭날 거란 사실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 작가의말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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