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우와···.”
주위에서 흘깃흘깃 정수의 피칭을 지켜보던 이등병들은 한 입 모아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 이는 정이병도, 공을 던진 당사자 정수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에는 생각도 못 한 결과가 펼쳐져 있었으니까.
‘이, 이걸 내가 던졌다고?’
정수는 놀람으로 가득 찬 기색으로 자신의 손을 쳐다봤다. 손은 제법 힘들었다는 것처럼 덜덜 떨렸다. 거기에 손에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방금 던진 변화구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것처럼.
“흐음, 대단하군. 박정수 이병.”
정수가 그렇게 한참을 놀라고 있을 때, 잠잠하던 대대장은 박수를 치면서 감탄했다. 그는 정수가 어떤 공을 던진 지 정확하게 봤으니까.
“우타자 기준, 몸쪽으로 향하다가 피칭 터널을 거치자. 갑자기 바깥쪽으로 휘는 변화구. 투심 패스트볼은 아주 인상 깊게 봤다네.”
대대장은 그물망 바로 앞에 떨어져 있는 공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정수는 칭찬이 부끄럽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얹짢아했다.
‘지금 던진 투심 패스트볼은 내가 봐도 만족스러웠으니까.’
속으로 정수는 자신이 던진 공에 박수를 쳤다. 마치 자신이 던진 공이 자랑스럽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수는 속과 다르게 겉으로는 그러지 않았다.
‘겸손, 이 겸손을 잃은 순간, 그때부터 그 사람은 인간의 도리를 잃게 되니까.’
정수는 속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되새겼다. 그러고는 조금 전처럼 대대장을 향해서 허리를 조아렸다. 대대장이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는 채로.
“가, 감사합니다. 대대장님.”
“너무 그렇게까지 감사할 필요는 없네. 지금부터는 변화구에 대한 지적을 할 테니까.”
“지, 지적이라니. 잘못 들었습니다?”
정수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면서 대대장에게 되물었다. 정수는 지금 자신이 던진 공에 흠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박정수 이병, 자네가 알고 있는 그. 지적 맞네. 자네의 공에는 큰 문제가 총 두 가지나 있다네.”
“두, 두 가지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총 두 가지나 말이지.”
대대장은 심오한 목소리를 냈다. 얼마나 심각했는지, 대대장의 말투에서는 그 어떤 장난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첫 번째는 피칭할 때의 공을 놓는 점, 릴리스 포인트가 일정하지 않군.”
대대장은 마운드 위로 올라가, 정수의 왼팔의 위치를 조정해 주면서 말했다.
“그, 그렇습니까?”
“그래. 한번 비교해 주도록 하지. 자네 다시 한번 직구를 던져보게.”
대대장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면서 말했다. 동시에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아, 알겠습니다.”
정수는 다시금 기합을 넣으면서 왼손으로 피칭을 이어 갔다. 공은 그물망 상단에 꽂히는 날카로운 직구였다.
‘구속은··· 155km군. 일단, 이 구속은 유지가 되는 것 같아서 참 다행이네.’
정수는 그물망 위에 구속을 확인했다. 지금 던진 공은 손에 익은 감각이 느껴지는 게, 아무래도 제법 구속이 실린 듯해 보여서였다.
“오케이. 자, 그러면 이번에는 변화구를 던져보도록.”
“넵, 알겠습니다. 대대장님.”
폰을 가로로 들고 정수의 피칭 영상을 촬영하는 대대장이 명령을 내리자, 정수는 노란 박스 안에서 야구공을 꺼내둠과 동시에 다시 피칭을 이어 갔다.
“흐읍!”
정수는 습관처럼 계속 거세게 기합을 넣으며 공을 던졌다. 정수의 손끝을 떠난 공은 우타자 기준 몸쪽으로 향하다가, 바깥쪽으로 꺾이는 깔끔한 궤적을 선보였다.
“오케이 되었네. 이리 와보도록 하게.”
영상 촬영을 끝낸 대대장은 정수를 불렀다. 피칭을 끝낸 정수는 허겁지겁 대대장에게 다가갔고, 대대장은 휴대폰으로 찍은 영상을 정수에게 보여줬다.
“자, 이걸 보도록 하게. 직구를 던질 때가 변화구를 던질 때보다 팔의 위치가 더 높지 않나?”
“오, 정말 릴리스 포인트가 많이 다릅니다.”
대대장이 두 영상을 계속 보여주면서 비교하자. 정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인정했다. 대대장이 말한 대로 지금 정수의 릴리스 포인트, 쉬운 말로는 공을 놓는 지점이 확연히 달랐던 것이었다.
‘뭐, 근데 이런 건 신경 써서 공을 던지기만 하면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니까. 뭐··· 별문제는 없는데. 과연, 다른 문제는 무엇일까?’
정수는 턱에 손을 괴고 곰곰이 고민했다. 과연 자신의 피칭에 또, 무슨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대대장님, 혹시 다음 문제는 무엇입니까?”
짧은 고민 끝에 정수는 대대장에게 직접 물었다. 아무리 자신이 봤을 때, 자신의 피칭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음 문제? 내가 보기에는 역동적인 투구폼에서 나오는 디셉션이라고 생각하네.”
“디, 디셉션이라고 함은··· 투수가 공을 던질 때 공을 최대한 감추면서 던지는 걸 말하는 겁니까?”
정수는 글러브에 왼손을 넣고, 왼손을 빼면서 투구하는 동작을 선보이면서 물었다. 그러자 대대장은 정답이라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로 그것이라네. 내가 보기에 지금 박정수 이병의 디셉션은 그리 최악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네.”
대대장은 딱딱한 표정을 필두로 서리처럼 차가운 목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그래서인지, 만약 상대방 타자 입장에서는 공이 아직 존 안에 들어오지 않았음에도 쉽게 그 구종을 알아낼 수 있겠지.”
대대장은 맨손으로 스윙하는 제스처를 보이면서 설명을 이어 갔다. 정수는 얼굴색을 먹구름처럼 흐렸다. 그 정도로 투수에게 디셉션은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으니까.
‘다만, 그건 구위가 안 좋은 투수들 한정 아닌가?’
정수는 디셉션의 중요성에 대해서 의문을 표했다. 상대 타자가 내 구종을 알아낸다고 해도, 구위만 좋으면 그대로 공은 쉽게 범타로 처리될 게 확실해서였다.
“근데 디셉션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구위만 좋으면 아무 상관이 없는 부분 아닙니까. 대대장님?”
그래서 정수는 이 사실을 곧바로 대대장에게 물었다. 정수는 자신의 구위에 제법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상대방인 대대장에게서 돌아오는 답은 차갑기만 했으니.
“···박정수 이병. 야구를 언제부터 배웠다고 했지?”
“이병 박정수,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배웠습니다.”
“흠, 아무래도 초등학교 때부터 자네가 배워온 야구는 헛되었나 보군.”
대대장은 정수를 향해서 아쉽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찼다. 그것도 마치 어리석은 이를 쳐다보는 것처럼 말이다
“헛되었다니. 그게 무슨···.”
“박정수 이병, 자네는 파워 피처에게 디셉션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건가?”
대대장은 정수의 말을 끊으면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제법 화가 치밀어 오르기라도 한 것처럼.
“후, 잘 듣도록 하게. 박정수 이병. 자네 같이 구속과 구위로 삼진을 잡는 파워 피처는 말이야. 대부분 구위가 좋다는 이휴 하나만으로, 디셉션과 같은 기술은 거의 중요시하지 않지. 그야, 디셉션은 투구에 있어서 하나의 잔기술에 불과하니까.”
대대장은 정수를 향해서 열변을 토로했다. 정수는 죄지은 죄인마냥 벙찐 표정을 지은 채로 대대장의 말을 경청했다.
“대대장님,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조, 조금만 진정하십쇼.”
두 사람을 지켜보던 정이병은 대대장의 몸을 붙잡으면서 그를 말렸다. 그 정도로 대대장의 목소리는 격양되어 있어서였다.
“흠, 아무래도 내가 너무 흥분한 모양이군. 어쨌든 그 정도로 디셉션은 중요하다네. 박정수 이병. 그러니 투구를 할 때, 최대한 공이 타자의 입장에서 보이지 않도록, 투구폼을 조금만 수정해 보도록 하게. 그러면 자네는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좋은 투수가 될 수 있을 거야.”
대대장은 정수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그를 격려했다. 정수는 이에 미소를 띠었다. 대대장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색이 진정되면서, 그의 상냥한 면도 다시 돌아오고 있었으니까.
“그러면 오늘은 이만하도록 하지. 3일 후, 다시 올 거니까. 그때까지 내가 지적해 놓은 점들은 모두 개선해 놓도록 하게. 박정수 이병. 알겠나?”
“이병 박정수, 확인했습니다.”
정수는 오른손에 글러브를 벗어 던지고는, 곧바로 오른손 끝을 눈썹에 가져다 대면서 말했다.
“그래. 쉬어. 만약 이 두 가지를 완벽하게 개선해 낸다면 내, 그때는 약속했던 대로 네 녀석을 다음 경기에서 투입해 주마.”
“저, 정말입니까?”
정수는 두 눈을 부릅뜨면서 되물었다. 그것도 보상으로 휴가를 부여받았을 때보다, 더 신난 것처럼 말이다.
“물론이다. 다만, 노력하지 않고 게으른 면을 보인다면 그때는 음료수 셔틀 역할을 줄 거다. 알겠나?”
“아, 알겠습니다!”
정수는 애처럼 좋아하는 어조로 대답했다. 그 정도로 정수에게 있어서 선발 출전이 시사하는 바는 제법 컸기 때문이었다.
*
‘오늘은 날씨가 꿀꿀하구먼.’
오늘도 취사장에서 아침 식사를 끝낸 후, 정수는 조용이 정좌 자세로 침상 위에 앉아 있었다.
‘어제 일 때문에 제법 눈치가 보이니까.’
정수는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면서 주변을 갸웃거렸다. 정수의 주변에는 6생활관 선임들이 가득했다. 그것도 제법 날카롭게 노려보는 선임들 말이다.
“흠, 황태관 이병님. 오늘 오전 일과가 어떻게 됩니까?”
“음, 그건 말이지··· 알아서 확인하도록 해.”
황이병은 말하던 도중,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정수가 질문을 하자, 선임들의 살벌한 눈빛이 모두 정수를 향해서였다.
“아, 알겠습니다. 직접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정수는 형광색의 슬리퍼를 신으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오늘의 일과가 적혀 있는 게시판이 있는 곳으로 말이다.
‘오늘 오전 일과가 휴식···어라?’
게시판을 확인한 정수는 두 눈을 부릅뜨며 기겁했다. 눈앞에는 게시판에 있는 6생활관 생활표의 오전 일과에는 ‘휴식’이라는 두 글자의 단어가 적혀 있던 것이었다.
‘좋았어. 이 시간에 오늘 대대장님께서 피드백해 주신 피칭 교습이나 한번 해볼까?’
정수는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면서 열정을 다졌다. 그와 함께 생활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창문을 통해서 연병장을 쳐다보기도 했다. 연병장에는 그 누구도 서 있지 않았다. 마치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오, 잘하면 캐치볼도 가능하겠는데. 마침, 오늘 날씨도 굉장히 흐리니까?”
정수는 환희로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곧바로 다시 생활관에 발을 들이려고 했다. 잊고 있던 사실을 하나 떠올리기 전까지는.
‘맞다. 지금 우리 생활관에서 나를 죽이려는 듯이 견제하고 있지. 작전이라도 고안하고 들어가자.’
정수는 걸음의 속도를 최대한 느리게 늦췄다. 빨리 들어간다고 해서 좋을 게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는 정수에게 최고의 판단이 되었다.
“야, 얘들아. 신병이 아직 부대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이병장님?”
이병장과 차일병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었다. 정수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숨소리를 죽였다. 지금 저들이 하는 말을 엿들음으로써, 저들이 정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 작가의말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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