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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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혹시 담배 피우러 간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정수는 드높게 손을 들면서 말했다. 그러자 잘만 걸어가던 5생활관 병사들은 걸음을 멈춰 세웠다.
“왜? 너도 담배 피우냐?”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말할 게 있어서 말입니다.”
정수는 주위에 다 울려 퍼지게끔 쩌렁쩌렁 큰 목소리를 내 질러대면서 말했다.
“뭔데?”
“아, 그게 담배 피우러 가신다는 분들이 담배를 두고 가는 건, 조금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정수는 마냥 해맑게 웃으면서 밭 흙, 밑에 숨어있던 담뱃갑을 꺼내면서 말했다.
‘왜 담뱃갑을 흙 밑에 넣어둔대?’
정수는 담뱃갑에 묻은 흙을 털어내면서 의문을 표했다. 굳이, 담뱃갑을 흙 안에 넣어둘 이유가 없어서였다.
“5생활관 선임분들 이거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정수는 밭 속에서 꺼내들은 담뱃갑을 야구공처럼 던지면서 말했다. 다만, 문제가 있었으니. 최근에 공을 던지던 왼손이 아니라. 그 반대쪽 손인 오른손으로 담뱃갑을 던진 거였다.
“크아아아악!”
오른손으로 담뱃갑을 던진 순간, 정수는 곧바로 오른쪽 팔꿈치를 부여잡았다. 그러고는 바닥에 굼뱅이마냥 몸을 둥글게 만 채로 쓰러졌다. 팔꿈치에서는 말도 안 되는 고통이 느껴졌으니까.
‘조금 전에 괭이질할 때, 팔꿈치 근육을 너무 많이 썼나?’
팔굼치를 부여잡은 정수는 바닥에 엎드린 채로 생각했다. 그 정도로 팔꿈치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고도 남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정수가 오른쪽 팔꿈치를 통해서 느낀, 고통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그 사건의 시작은 바로 정수가 던진 담뱃갑에서 시작되었다.
‘어? 담뱃갑에서 저런 소리가 났나?’
정수는 두 눈을 부릅뜨면서 크게 의아했다. 오른손으로 던진 담뱃갑에서는 티디딕, 하고 흡사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정수는 머릿속에 일은 의문에 팔을 뻗었다.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담뱃갑을 향해서 팔을 뻗었다. 저 담뱃갑에 들은 물건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순간, 묵직한 선임의 발이 정수의 손을 내리 지르밟았다.
“아악!”
“어이쿠, 실수다. 쏘리 쏘리.”
정수의 손을 짓밟은 박상병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미안한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고는 허리를 숙여서 정수의 눈앞에 놓여있는 담뱃갑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미안하다. 신병, 내가 라이터 챙기는 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제일 중요한 담배를 못 챙겼네. 야, 이거 진짜 미안하다.”
박상병은 담뱃갑을 주워 들며 정수에게 미안하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정수는 분한듯이 강하게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지금 박상병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진심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저기 박상병님.”
“왜, 왜 그러냐. 신병?”
“사, 사과를 하셨으면 발 좀 치워주시길 바랍니다.”
정수는 손으로 자신을 짓밟은 박상병의 발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이에 박상병은 독기 어린 시선으로 정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어이. 신병, 너 지금 상병인 나한테 명령하는 거냐?”
“네. 네?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
“뭘, 기분 나쁘게 꼬나보냐고!”
박상병은 즈려밟고 있는 정수의 발을 더 강하게 짓밟으면서 말했다. 이에 정수는 거세게 비명을 질렀다.
“지,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박상병님?”
“뭐하긴 뭐하냐니. 저쪽에서 후임 관리 제대로 안 하는 것 같아서 내가 대신 후임 관리 좀 하려고 한다.”
박상병은 정수를 향해서 당당하게 말했다. 정수는 이에 의아한 눈빛을 보였다. 마치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처럼.
“그게 무슨 말··· 크악!”
“신병 이 자식, 개 빠졌네? 하늘 같은 선배한테 어딜 말대답이야.”
“죄, 죄송합니다. 박상병님. 그러니 이 발 좀···.”
“야, 재촉하지 마. 내가 풀 마음이 들려는 그때, 풀어줄 테니까.”
박상병은 정수의 손을 더 강하게 짓밟았다. 얼마나 강하게 짓밟았는지, 정수의 오른손에서는 주르륵, 하고 피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제발, 그만하시길 바랍니다!”
정수는 크게 소리쳤다. 얼른 이 고통에서 자신을 해방해달라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박상병은 여전히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손으로 귀만 후비고 있을 뿐이었다.
“아, 됐고. 너 이러고 한 10분 정도만 더 있자.”
“10, 10분 말입니까?”
“왜? 못 하겠어? 다시 힘줘서 밟아줄까?”
박상병은 발의 뒤꿈치를 들어, 신발 앞쪽으로 정수의 오른손을 더욱 강하게 짓밟았다. 정수는 계속 고통에 신음치기만 했다. 만약 여기에서, 저항했다가는 하극상이 될 테니까.
‘내게 남은 선택지라고는 그냥, 계속 죽어라 쓰러진 채로 있는 것밖에 없는 걸까?’
유진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강하게 얼굴을 붉힌 채로, 표정을 구겼다. 안 그래도 팔꿈치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의해서 아파 죽겠는데. 오른손까지 강하게 지르밟다니. 정수는 아주 미치다 못해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냥, 한번 눈 감고 날뛰어 봐?’
정수는 입속의 치아를 날카롭게 세웠다. 그러고는 그대로 몸을 움직여 눈앞에 있는 박상병의 두꺼운 발목을 물어뜯으려고 했다.
하지만 정수가 이를 날카롭게 세우려던 순간, 정수에게는 평생의 은인이 나타났으니. 바로, 여자들부터 더 하얀 피부를 지닌 김상병이었다.
“야, 인마. 우리 정수한테. 뭐 하는 거냐. 자식아!”
그렇다. 정수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밭일하던 김상병은, 해당 광경을 보기가 무섭게 괭이를 내려놓고 박상병에게 달려온 거였다. 자신의 후임이 눈 뜨고 코 베이는 꼴을 마냥 지켜볼 수는 없었으니까.
“커헉!”
제법 거대한 덩치의 박상병은 뒤로 밀쳐졌다. 김상병의 날렵한 주먹이 박상병의 뺨을 가격한 것이었다. 그것도 시뻘건 주먹 자국이 얼굴에 남을 정도로.
“야, 박정수. 손은 괜찮냐?”
“기, 김상병님.”
정수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김상병을 쳐다봤다. 지금껏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강한 고통이 느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런 궁지에 상황에서 자신을 위해서 밭일을 포기하고 달려온 김상병의 모습에 크게 감동해서였다.
“역시나, 김상병님밖에···.”
“야, 5생활관에 공지만 하고 밭일 도우러 온다며. 근데 왜 이렇게 안 오냐. 이 자식아!”
“어?”
정수의 감동은 한 순간에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감동 섞인 눈빛은 한 번에 의아한 눈빛으로 돌변했다.
‘밭일, 아무래도 김상병님이 나를 구하러 온, 이유는 다름 아니라 이거인 것 같았으니까.’
정수는 정색 섞인 눈빛으로 김상병을 쳐다봤다. 그러자 김상병은 불쾌함을 느끼기라도 한 것일까? 박상병을 후렸던, 오른손의 주먹을 다시 움켜쥐었다.
“뭐야, 그 표정. 정수? 혹시 너도 사랑의 매가 필요한 거야?”
흡사 드라큘라처럼 새하얀 피부를 한 김상병은, 정말 드라큘라를 연상시키는 살벌한 시선으로 정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단지 지금, 제가 눈앞에 보이는 게, 김상병님인지. 저를 구해주기 위해서 오신 용사님이신지 확인했을 뿐입니다.”
“호오···. 용사와 그냥 나 자신이라. 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이지 정수?”
김상병은 정수를 향해서 부담스럽게 얼굴을 들이밀면서 물었다. 이에 정수는 긴장한 것처럼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대답했다.
“언제나 제 마음속에 용사는 김상병님밖에 없었습니다.”
정수는 새하얀 건치를 보임과 함께 엄지를 치켜들면서 대답했다. 김상병은 움켜쥐고 있던 제법 매운 주먹을 폈다. 마치 기분이 풀리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에 들기라도 한 것같이 말이다.
“그러면 정수, 조금 있다가 내 밭부터 갈아줄 준비 해라. 나는 박상병이랑 결판을 조금 봐야 할 것 같으니까.”
“아, 넵.”
김상병이 제법 믿음직하게 말하자, 정수는 본의 아니게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미래의 정수가 땅을 치고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게 될 것도 모르는 채로.
“박상병. 그래서 뭐 때문에 우리 신병을 패고 있었냐?”
김상병을 투둑, 하고 손가락뼈를 부러뜨리는 듯한 으스스한 소리를 내면서 물었다. 주먹을 직격으로 뺨에 맞은 박상병은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애꿎은 입술만 뜯는 것뿐이었다.
“6생활관에 있는 황 이병이 신병 관리를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단순하게 제대로 교육을 해주려고만 했을 뿐입니다.”
박상병은 김상병에게 얻어맞은 주먹을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답했다. 남은 한 손으로는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담뱃갑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말이다.
“이봐 박상병, 각자의 생활관 신병은 각 생활관의 맞선임이 해주기로 약속했잖냐. 근데 왜 네가 일일히 따져가면서 왜 교육을 시켜!”
김상병은 크게 사자후를 내지르면서 말했다. 박상병은 이에 주머니에 넣으려던 담뱃갑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바닥으로는 티디딩, 하고 동전이 떨어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헉···.”
“흐음···. 김상병, 담뱃갑에 대체 뭘 넣어놨길래. 그런 소리가 나는 거지?”
김상병은 박상병에게 손을 내뻗으면서 말했다. 박상병은 이에 식겁하기라도 한 것처럼 두 동공을 가만히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그, 그게 말입니다···.”
김상병은 바닥에 떨어진 담뱃갑을 허겁지겁 주워 들면서 말했다. 반면에 김상병은 김상병을 향해서 한 걸음, 할 걸음씩 걸음을 옮겼다. 마치 망자를 향해서 찾아가는 사신처럼 말이다.
‘드디어 확인할 수 있는 건가?’
정수는 기대로 가득 찬 눈빛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박상병을 쳐다봤다. 어지간한 담뱃갑에서 저런 소리가 나기란, 절대로 흔한 것이 아니니까.
“어이, 이리 줘봐.”
“··· 싫, 싫습니다.”
“뭐가?”
김상병은 다시금 주먹을 움켜쥐면서 눈빛으로 살기를 드러냈다. 어지간한 병사들은 모두 공포에 떨게 할 정도로 짙은 살기였다. 하지만, 조상병 겁먹지 않았다.
“기, 김상병님. 또 자연스럽게 제 담뱃갑에서 담배 뜯어가시려는 거잖습니까!”
김상병은 목소리를 크게 내지르면서 말했다. 마치 자신의 처지가 불쌍하기라도 한 것처럼.
“챗, 이래서 눈치 빠른 애는 싫다니까?”
박상병이 목소리를 높이자. 김상병은 살기를 다시 거둬들이며, 손으로 코밑을 어루만졌다. 지금 자신의 처지가 멋쩍다는 것 같았다.
“에이, 박상병. 그렇게 계속 튕기지 말고. 그냥 한 대만 찔러달라니까? 나, 생각했던 것보다 꽤 오랫동안 참았다는 거, 누구보다 잘 알잖냐.”
김상병은 사기꾼처럼 양손에 깍지를 끼면서 말했다. 그와 함께 박상병과 김상병의 험악하기만 했던 분위기는 천천히 누그러들게 되었다.
“아, 안 됩니다. 김상병님. 전에 빌려가신 것도 아직 안 갚으셨지 말입니다.”
“야, 인마. 선임이 달라면 줘야 할 거 아니야?”
“안 됩니다. 그전에 빌려주신 것, 갚기 전까지는 못 빌려드립니다.”
김상병이 계속해서 담배를 달라고 제안했음에도, 박상병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거절했다. 그것도 제법 친근한 듯이, 둘 다 친숙한 목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두 분, 한탕 제대로 싸우시는 것, 아니셨습니까?”
정수는 이 광경이 믿기지 않는 것처럼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그도 그럴 게, 금방이라도 치고받고 싸울 줄만 알았던 두 사람이. 이렇게 화목한 시너지를 낼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 못 해서였다.
“···우리가 왜 싸우냐. 정수?”
“그, 그래. 나랑 김상병님이 얼마나 친한데 말이야!”
김상병과 조상병은 서로 어깨동무를 끼면서 말했다. 이에 정수는 허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의 갈등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은 몰랐다는 것처럼.
- 작가의말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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