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가 남는 삶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평일 아침.
“쿨럭. 쿨럭.”
나에게는 마지막일지 모르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쿨럭. 쿨럭.”
이제 막 잠에서 깬 나는 전등을 켜기 위해 몸을 일으켜 침대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치 않은 몸 상태 때문에 첫걸음마를 시작한 어린아이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불안하게 걸어갔다.
탁.
조용한 방안에 스위치 소리가 울리고.
전등이 켜지며 방안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대로 몸을 돌려 침대로 다시 돌아가려는데.
털썩.
중심을 잃고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빌어먹을 몸뚱어리가 또 이러네···.’
이를 악물고 일어나려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제 막 태어난 송아지처럼 아등바등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침대에 몸을 기댔다.
넘어지는 것도, 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도 이제는 익숙하다.
그래서 더 엿 같다.
이런 괴로움 적응해 짜증조차 내지 않고 있으니.
“쿨럭. 쿨럭.”
기침이 멈추질 않는다.
침대 옆 테이블에 손을 뻗어 텀블러를 가져왔다.
그리고는 말을 듣지 않는 턱을 억지로 비틀어 입을 벌렸다.
쪼르르르.
입안으로 물 한 모금을 힘겹게 흘려보내고서야 기침이 잦아든다.
탁. 탁.
전등이 깜빡거리며 방안을 어지럽게 비춘다.
‘며칠 전부터 말썽이더니 또 저러네.’
깜빡거리는 전등이 위태로운 내 생명을 조롱하듯 괜스레 기분이 나쁘다.
몸이 성한 상태면 당장이라도 교체했겠지만, 두 발로 서있는 것조차 힘든 몸뚱어리로 가능할 리 없었다.
‘차라리 켜지 말 걸 그랬네···.’
나는 침대 위에 있는 리모콘을 가져와 티비를 켰다.
밖을 나갈 수 없는 환경 안에서 티비는 적적함을 달래주는 유일한 유희 거리였다.
[권우진을 필두로 모인 초월자들이 S급 게이트 공략에 성공했습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에 드리운 멸망은 말끔하게 걷혔습니다.]
원인 모를 게이트.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마물이라 불리는 외계 존재.
그리고 하늘의 뜻을 받은 자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마물에 대적하기 시작했다.
인류의 희망이라 불리는 그들은 초월자라 불렸고 과도기의 중심이 되어갔다.
나 또한 초월자였다.
나는 게임에서 흔히 말하는 힐러였다.
남을 치유하고 보살피는 그런 힐러.
[권우진! 권우진!]
사람들은 게이트에서 나온 권우진을 보며 환호했다.
권우진은 그들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연예인이 따로 없네.'
멍하니 티비를 바라보다 괜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짜식, 나 아니었으면 죽었을 녀석이었는데. 치료해준 보람이 있네.’
권우진은 세계를 수호하는 일곱별이라 불리는 초월자 중 한 명.
대통령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허나, 내게는 코흘리개 시절 때부터 같이 자라온 소꿉친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안 그래도 어제 전화 왔던데 못 받아서 미안하네.’
나는 시한부다.
그것도 마지막 비행을 앞둔 하루살이처럼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한부.
그런 주제에 괜히 우진이 목소리를 들었다가 삶에 미련이 남을 것 같아 전화를 넘겨버렸다.
‘이렇게 얼굴 보게 될 줄 알았으면 전화 받을 걸 그랬나.’
게이트에 대한 뉴스가 끝나고,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한 사람이 뉴스 스튜디오에 모습을 드러냈다.
앵커는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화원 길드장님.]
[안녕하십니까. 화원 길드장 이재준입니다.]
이재준도 그에 맞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오늘 이재준씨를 모신 이유는 돌연 은퇴를 선언한 화원의 길드원, 오선우씨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인데요.]
앵커는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전설명을 간단히 하고 난 뒤, 본격적인 질문을 이재준에게 건넸다.
[오선우씨의 은퇴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고, 본인도 그 이유를 공개하는 걸 원치 않아서 뉴스를 시청하시는 분들께서도 상당히 궁금할 겁니다. 갑자기 은퇴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앵커의 질문에 이재준이 안타까운 어조로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에 선우의 집을 들렀었습니다. 그때 봤던 선우의 온몸이 마치 미라 같았죠.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앵커님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설마···, 마력 부작용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맞습니다. 마력 부작용 중에서도 말기인 상태죠.]
마력 부작용.
초월자에게 불현듯 찾아오는 치명적인 불치병.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자가면역질환에 걸린 것처럼 마력이 생체 세포와 조직을 비가역적으로 손상시켜 사멸까지 이른다.
현대의학을 비롯해 치유능력을 지닌 초월자조차도 손쓸 도리가 없는 병이었다.
사막처럼 쩍쩍 갈라진 입술.
생기를 잃어 동태눈깔이 된 눈동자.
썩어들어가는 살가죽.
기능을 잃어가는 오장육부.
내 몸은 마력 부작용으로 인해 송장이라 해도 믿을 만큼 무너져있었다.
앵커는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미간의 주름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그는 이내 표정을 다잡으며 한층 낮아진 어조로 말했다.
[모순적이네요. 생명을 주던 사람이 오히려 생명의 빛이 점점 꺼져 간다라···.]
앵커가 다음 질문을 위해 종이를 넘기며 말을 이었다.
[오선우씨가 새 삶을 준 사람이 대략 몇 명 정도나 될까요?]
이재준이 턱을 쓸어내리며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앵커의 물음에 답했다.
[대략 만 명 정도 될 겁니다. 제가 선우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자리에 온 것도 앞선 대답 때문이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구원한 자의 이름을 기억해달라는 의미로 나왔으니까요.]
이후에도 이재준과 앵커는 나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가 평범한 힐러였다면 매스컴에서 주제로 삼진 않았을 거다.
내게는 다른 초월자들이 지니지 못한 특별한 힘이 있다.
내상의 원인을 찾고 더 나아가 치유까지 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절단된 신체를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깔끔히 재생시키는 능력까지.
내 능력은 누군가에게는 은총이었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독이었다.
유일무이한 재능이 있으니 안위를 걱정해야 할 때가 많았다.
의사들의 반발과 협박을 받는 건 기본이고, 외국에서 고용된 용병들에게 납치될 뻔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 아버지와 우진이가 나를 건드는 놈들은 지구상에서 없애버리겠다고 선포한 뒤부터는 삶에 안정이 찾아오긴 했지만.
“쿨럭! 쿨럭! 쿨럭!”
멎었던 기침이 도리어 심해졌다.
‘길드장이 병원에서 지내라고 할 때 알았다고 할 걸 그랬나.’
남은 생이라도 조용히 집에서 지내고 싶었다.
일, 퇴근, 잠.
주말에는 봉사.
집에서 편히 쉬어본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쿨럭! 쿨럭! 쿨럭! 쿨럭!”
몸에 힘이 점점 빠져나간다.
시야도 점차 흐려져 사물과의 거리가 가늠되지 않는다.
‘최악이네···.’
시야가 급격히 나빠지는 건 죽음을 목전에 둔 마력 부작용자의 마지막 현상이라던데.
‘이대로 단명하는 건가···.’
기억의 편린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시골에서 태어나 동네 또래끼리 산에 가서 사슴벌레를 잡고, 개울가에서 손가락만 한 물고기도 잡았던 아련한 기억들이 가슴 한편을 따뜻하게 채운다.
‘사슴벌레한테 밥 준다고 문방구에서 젤리 산 것도 기억나네···.’
맨손으로 잠자리 잡다가 벌에 쏘이고, BB탄 총 사서 친구들한테 자랑도 해보고.
그리고 학원도······.
‘학원은 빼자.’
또래끼리 집 마당에서 물놀이도 하고, 다 같이 자전거 타고 먼 동네에 있는 친구 집도 가본 기억들.
‘나 때는 집 마당이 워터파크였는데···.’
참 아련하고 행복한 추억이다.
살고 싶다···.
살고 싶어진다.
하필 이럴 때 좋은 기억들이 떠오르는 거냐.
‘···근데 스무 살에 초월자가 된 이후로는 추억이 거의 없네.’
그야 서울에 올라와서 365일 내내 일한 기억밖에 없으니까.
‘······그지 같네.’
왜 그랬을까.
무엇을 위해 그토록 남을 위해 희생했을까.
의무감이었을까. 인류애였을까.
아마도 한 꼬마 아이의 편지가 시발점이었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 사고로 인해 오른팔을 잃은 장애아를 치료해준 적이 있다.
연신 눈물을 흘리는 꼬마의 부모님, 해맑은 얼굴로 새로 돋아난 오른팔을 이리저리 휘둘러보는 꼬마 아이.
며칠 뒤에 녀석이 보낸 편지를 받았는데, 삐뚤빼뚤한 글씨로 가득한 감사 인사가 적혀있었다.
가끔 외계어라 생각되는 단어들이 섞여 있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녀석이 나를 위해 정성을 썼다는 게 중요한 거지.
뿌듯하다. 가슴이 뭉클하다. 심금을 울린다.
이런 표현조차도 부족할 정도로 복잡미묘한 감정이 가슴 속을 후벼팠었다.
나는 꼬마에게 새 삶을 주었고, 녀석은 내게 삶의 원동력이 뭔지 깨닫게 해주었다.
‘그때부터였지. 주말에 봉사활동을 다닌 게.’
돌이켜보면 평일엔 의무감, 주말엔 인류애였을 것이다.
헌데 인류를 위해 희생만 한 결과가 이런 비참한 말로라니.
'참···, 신도 무심하시지.'
인생에 대한 후회 때문일까.
인제 와서 삶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조금만···, 조금만 나를 위해 살아볼 걸 그랬다.
초월자가 된 이후로 그 흔한 영화관 한 번 가지 않은 스스로가 한탄스럽다.
“커···, 컥······.”
이젠 목이 막혀 기침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호흡하는 것조차도 버겁다.
수많은 사람의 삶을 구원해줬지만, 정작 나는 내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해서 죽음을 맞이하는구나.
‘아버지께는 걱정 안 끼치려고 몸이 안 좋아서 당분간 쉰다고 했는데···.’
아버지께 시한부라고 말하기가 무서웠다.
사람들이 내게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해도 할 말이 없다.
내가 생각해도 이기적인 행동이니까.
사실을 말해야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지만, 막상 아버지 목소리를 들으니 말이 안 나오더라.
나 때문에 무너지는 아버지를 볼 자신이 없었으니까.
'부모보다 일찍 죽는 자식이라니. 불효자가 따로 없네.'
아···.
눈꺼풀이 힘없이 내려간다.
결국, 이 빌어먹을 병이 마지막 남은 옅은 숨결마저 빼앗아가는구나.
아마 저승사자가 존재한다면 내 앞에서 이름을 부르고 있겠지.
‘다음 생이 있다면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툭.
나는 눈을 감으며 그대로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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