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사람은 부지런해야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시골의 풍경도 마찬가지다.
농부들은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 작물을 확인하고 관리한다.
청년 농부인 성현이도 매한가지다.
새벽부터 하우스에서 일을 끝내고 온 녀석이 곧바로 집으로 찾아왔다.
아까 눈 뜨니까 옆에서 핸드폰 하고 있더라.
나도 꽤 부지런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부했었는데 성현이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내가 타준 스틱 커피를 홀짝이던 성현이가 물었다.
“뭐부터 하면 되냐?”
“작물 심게 밀림으로 변한 텃밭부터 정리해줘.”
“너 자고 있을 때 이미 했어.”
“······?”
“저건 천 평 넘는 하우스에서 일하는 거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지. 상추랑 부추 모종도 가져왔으니까 밥 먹고 같이 심자.”
오! 역시 내 친구다.
어떻게 이렇게 기특할 수가 있지?
흐뭇한 미소로 성현이를 바라보자, 녀석은 반대로 얼굴을 구기기 시작했다.
불끈 쥔 주먹은 덤이었다.
“그딴 오글거리는 얼굴로 보지 마. 농사로 다져진 근육을 용도 외로 쓰고 싶어지니까.”
내 딴에는 감사한 마음을 최대한 표정에 담아서 보여준 건데 녀석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네.
“아까 보니까 몇 년 동안 공가였는데도 전기랑 수도는 안 끊고 있었나 보더라?”
성현이가 환하게 빛나는 전등을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아버지가 한국에 일 있을 때마다 귀국해서 묵고 가시니까 그냥 뒀을 걸?”
녀석은 턱을 살짝 틀어 무언의 의문을 제시하더니 이내 마루를 손가락으로 스윽 훑어 내게 보여주었다.
“사람 사는 집이라기엔 너무 지저분한데?”
“1~2년에 한 번씩 오셔서 그래. 더군다나 하룻밤만 주무시니 따로 청소할 필요도 없으셨겠지. 이제는 내가 살 집이니까 깨끗이 청소해 놔야지. 자! 말 나온 김에 시작할까?”
* * *
장장 두 시간 넘는 청소가 끝났다.
방 세 개에 주방과 화장실이 하나씩.
생각보다 넓은 집안을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오래되고 안 쓰는 물건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것들은 곳간에 박아뒀다.
마지막으로 어제 마트에서 사 온 휴지와 샴푸, 수건 같은 생활용품을 정리하며 집안 정리를 끝마쳤다.
우리는 한숨 돌리기 위해 마루로 나와 휴식을 취했다.
대자로 누우니 이보다 편한 게 없다.
“근데 너, 차는 안 살 거냐? 마트 갈 때마다 내 차를 빌릴 순 없을 거 아냐.”
“안 그래도 어제 마트 갔다 오면서 느꼈어. 여기서 생활하려면 차는 무조건 있어야 해.”
어제 저녁, 마트에 갈 방법을 곰곰이 생각하다 성현이 차를 빌렸었다.
녀석은 집 앞에 찾아간 나를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더니.
“너 차 산적 없잖아. 그럼 장롱 면허 아니냐?”
라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해.
“나 주말마다 봉사활동 다녔잖아 그때마다 길드 업무용 차 운전했지.”
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사실 거짓말이다.
스무 살 때 면허 따놓고 장롱 속에서 꺼낸 적이 없다.
봉사활동도 길드에서 지원해준 차량과 기사 덕분에 운전할 일이 없었으니까.
장롱에서 오랜만에 꺼낸 면허는 치명적이었다.
20킬로로 운전하는데 어찌나 뒤에서 빵빵거리던지.
멀리서 보면 내 차가 경운기인 줄 알았을 거다.
갔다 오는 길에는 내 뒤로 차가 3대가 줄지어 따라오는데, 게이트에 처음 들어갈 때보다 더 떨리더라.
그나마 시골이어서 다행이었지, 도시였어 봐.
‘수많은 운전자의 역적이 됐겠지.’
어찌 됐든 어제부로 깨달은 게 있다.
‘역시 차 한 대는 있어야겠어.’
교통편이 좋으면 모를까, 여긴 버스 시간표가 2시간 간격으로 편성되어있다.
시간 맞춰서 버스를 탔다고 치자.
그럼 돌아올 때는?
반대 코스와 시간이 안 맞으면 한 시간이 넘게 기다려야 한다.
고작 마트 가면서 스트레스받고 싶은 사람이 어딨겠는가.
차 살 정도의 돈도 있겠다, 차라리 속 시원하게 차 한 대 사버리는 게 낫지.
“근데 무슨 차로 사지?”
“시골 살면서 뭘 고민해. 트럭이나 사. 요즘 트럭도 자동변속기로 나오잖아.”
성현이와 마루에 앉아 차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때, 활짝 열어놓은 대문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들어왔다.
“배달 왔습니다!”
청소 막바지에 시켜놨던 중국집 배달 오토바이였다.
마루 위에 철가방을 놓고 음식을 꺼내시는 할아버지를 보니 세월이 흐른 게 새삼 느껴진다.
하루 반점.
내가 중학생 때 중년 부부가 오픈했던 중국집인데.
아주머니가 주로 요리를 하고, 아저씨가 배달하러 다니셨다.
음식을 배달하는 곳이 여기밖에 없으니 집에서 자주 시켜먹곤 했었지.
‘그때는 머리숱이 풍성한 젊은 중년이셨는데 지금은 백발 중년이 되셨네.’
내가 카드를 꺼내 결제하는 동안 성현이는 식탁을 놔두고 마루에 신문지를 깔았다.
“맛있게 드세요.”
오토바이가 떠나고.
비닐을 뜯는 성현이에게 물었다.
“여기서 먹게?”
“바깥 경치 보면서 먹으면 낭만도 있고 좋잖아.”
일리가 있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답답한 집안에서 먹는 거보단 확 트인 바깥에서 먹는 게 낫긴 할 테니까.
나무젓가락을 분리해 노란 면에 검을 옷을 입혀주기 시작했다.
면을 비빌 때마다 질퍽거리는 소리가 쉴새 없이 들려온다.
‘듣는 것만으로도 침 고이네.’
나는 새까만 옷을 예쁘게 차려입은 면을, 한 젓가락 크게 들어 올려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곧바로 양파와 양배추, 고기도 집어서 입안에 넣었다.
짭조름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입속에서 향연을 펼치고, 양배추와 양파가 아삭한 식감을 더해줘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서민 음식의 대표주자인 짜장면.
역시 그 타이틀을 지닌 만큼 맛도 가격도 훌륭하다.
‘요즘 물가가 미친 듯이 상승하면서 가격이 좀 비싸지긴 했지···.’
그래도 맛이 훌륭한 건 변함이 없다.
‘왜 이 맛을 잊고 살았을까.’
짜장면 먹어본 지가 어언 1년이다.
마나 부작용으로 짜여진 식단만 먹다가 결국엔 미음으로 마무리했었으니까.
‘이러니까 어떤 음식을 먹던 처음 먹어본 것처럼 맛있을 수밖에.’
나는 젓가락을 잠시 내려놓고 함께 시킨 탕수육 소스를 그대로 탕수육 위에 뿌렸다.
그러자 성현이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그걸 왜 부어!”
“촌구석에만 살다 보니 잘 모르나 보네. 원래 탕수육은 부먹이 원조야. 찍먹은 배달 문화가 생기면서 눅눅해지지 않게 소스를 따로 주면서 파생된 방법일 뿐이고.”
망연자실한 녀석을 보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탕수육 잘하는 중국집에 직접 가서 먹어봐. 다 소스 부어서 나올걸?”
탕수육을 하나 집어 그대로 입안으로 가져갔다.
고기의 육즙과 소스의 달달함이 어우러져 완벽한 맛을 이뤄낸다.
“여긴 촌에 있는 중국집인데도 맛이 미쳤단 말이지.”
성현이가 입안 가득 음식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몰랐어? 하루 반점 사장님들 오성급 호텔 셰프로 일하다 온 부부잖아.”
오성급 호텔···?
내가 잘 못 들었나?
“그런 사람들이 왜 시골 촌구석에 와서 장사해?”
“난들 아냐. 다들 말 못 할 속사정이 있는 거지.”
오성급 호텔에서 일했으면 번화가에 작은 가게만 차려도 최소 중박은 칠 텐데···.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쪽 분야에서는 나보다 더 빠삭한 사람들이 이런 촌에 중국집을 차린 거면 뭔가 사연이 있을 테지.’
성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먹다 보니 웬 초등학생 고학년 남짓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가 대문 앞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아랫동네와 우리 동네까지 청년회장을 도맡아 하고 있는 성현이에게 물었다.
“쟤 누군지 알아?”
“장성댁 손자.”
장성댁이라면 우리 집 바로 옆에 있는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인데···.
‘가족끼리 시골에 놀러라도 온 건가?’
녀석은 마당까지 들어와서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적잖이 당황스럽다.
남의 집 마당에 거리낌 없이 밀고 들어올 줄이야.
“어··· 어, 안녕?”
대답 대신 탕수육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꼬마 녀석.
‘누가 봐도 뭘 원하는지 알겠네···.’
나는 탕수육 그릇을 녀석에게 건네며 물었다.
“몇 개 안 남았는데 너도 같이 먹을래?”
“네!”
당돌하게 대답한 녀석은 맨손으로 탕수육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급하게 나무젓가락을 뜯어서 녀석에게 건넸지만, 이미 탕수육을 햄스터처럼 입안에 가득 넣은 상태였다.
“좔 뭑었슙니다.”
꼬마는 입안 가득한 탕수육을 우물거리며 감사 인사를 건네고 그대로 유유히 대문 밖을 빠져나갔다.
나는 폭풍처럼 왔다 간 녀석을 보며 헛웃음을 쳤다.
“허, 거 참 이상한 놈이네.”
성현이는 꼬마가 대문 밖을 벗어난 걸 확인하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불쌍한 애니까 앞으로 잘 좀 봐줘.”
“왜 불쌍한데?”
“쟤 아빠가 보증 섰다가 집안 망해서 엄마는 도망가고 4살 때 할머니 손에 맡겨졌어.”
“근데 아직도 할머니 손에서 큰다는 말은···.”
성현이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빠도 도망갔대. 어디로 갔는지 연락도 전혀 안 되고. 근데 애는 몰라. 그냥 멀리 일하러 간 줄 알지.”
말문이 턱 막힌다.
홀로 남겨진 애랑 할머니는 무슨 죄인가.
왜 꼬마 녀석이 탕수육을 허겁지겁 먹었는지 그 이유에 대한 톱니바퀴가 맞물린다.
옆집 할머니는 조그만 밭에서 난 작물들을 시내까지 버스 타고 나가서 팔던 사람이다.
그렇게 생계 유지하던 집에 돈이 어딨겠는가.
‘왠지 흰옷이 누런색을 띠고 얼룩이 여기저기 많더라니···.’
성현이는 한숨을 푹 쉬더니 말을 이었다.
“에휴···. 가엾은 인생이지. 다음 주에 수학여행 간다는데 돈이 없어서 못 간다더라.”
수학여행 비용이 얼마나 한다고···.
고작 몇십만 원 없어서 평생 남게 될 추억을 포기한다고?
“성현아, 우리 초딩 때 처음으로 수학여행 갔던 날 기억나?”
“당연히 기억나지. 수학여행 간다고 신나서 가방에 과자랑 음료수도 넣어 가지고 갔잖아.”
“그치 우리 그때 처음으로 제주도도 가보고 저녁에 애들끼리 베개 싸움도 했잖아.”
성현이가 손뼉을 치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 말하니까 생각난다. 난 수학여행 전날에 설레서 잠도 제대로 못 잤었어.”
“그치, 그렇게 재밌는 여행에 못 간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속상할까?”
“근데 어쩌겠냐. 집안 형편이 저런 것을”
“내가 도와주면?”
그 말을 들은 성현이의 미간이 좁아진다.
“선우아, 잘 생각해. 한 번 도와주기 시작하면 끝까지 책임져야 해.”
“우리 어릴 때 옆집 할머니가 국수도 말아주고 파전도 해주셨던 거 기억나냐?”
“알지. 할머니 손맛이 좋으셔서 너랑 나랑 우진이까지 염치 불구하고 자주 얻어먹으러 갔었잖아. 먹고 나올 때는 할머니께서 꼭 과자랑 천원씩 손에 쥐여 주셨고.”
나는 품에서 지갑을 꺼내며 말했다.
“내 생각엔 그때 입은 은혜를 드디어 갚을 때가 온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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