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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하도록
작품등록일 :
2024.10.01 14:04
최근연재일 :
2024.10.16 23:55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14,130
추천수 :
472
글자수 :
78,514

작성
24.10.06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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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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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사람 살리던 습관은 여전하구나

DUMMY

지구를 침략하기 위해 게이트를 열어 놓고서, 뭐?


‘휴전을 요청한다고?’


어림없는 소리.

허나 내 의중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녀석들은 한데 모여 회의를 시작했다.


속닥속닥.


몇 번의 대화가 오가더니.

이내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을 표했다.


“콩콩 행성의 왕자로서 너에게 제안 하나를 하고 싶다콩!”


루반콩이라고 소개한 녀석이 다시 한번 내 앞에 나섰다.

협상해 달라고 빌빌대도 모자랄 판에 제안이라니.

뭐, 협상이든 제안이든 어찌 보면 현명하다.

무력으로는 호승심조차 들지 않는다는 것을 빠르게 판단한 거니까.


“푸하하!”


녀석의 당당한 태도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내가 너희들의 제안을 받아줘야 할 이유라도 있나?”

“이건 우리가 베푸는 자비이자 제안이다콩!”

“이게 어딜 봐서 자비라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낭낭콩의 무자비한 검술에 의해 너는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콩! 자비를 베풀어 줄 때 고맙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어콩?”


목숨을 잃는다고?

마나 장벽에 흠집조차도 못 뚫던 녀석이 무슨.


“너희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 한 거냐?”

“그건 그대에게 해당하는 말이다콩!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낭낭콩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이다콩!”


거만하고 오만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녀석의 숨통을 끊어버리고 싶지만.


‘궁금하다.’


겉보기에도 보잘것없는 녀석들이 어떤 달콤한 말로 나를 회유하려 들려는 걸까.


“제안이 뭐지? 한 번 들어나 보자.”

“우리와 공생해준다면 명예로운 제1기사단장의 자리를 그대에게 선사해 주겠다콩!”


제 1기사단장이라 하면···.

나는 대답 대신 시선을 천천히 돌렸다.

아까부터 흙밭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녀석이 눈동자에 들어온다.


‘저딴 녀석이 제1기사단장이라···.’


그 말인즉슨, 저 녀석이 이 세계에서 강자로 뽑힌다는 말 아니던가.

저런 허접스러운 녀석들을 필두로 지구를 침략할 생각을 하다니.

배짱도 두둑하구나.


아무튼.

사회적 신분으로 나를 회유하겠다는 의도인가?


‘어림도 없는 소리.’


더군다나 여유롭다는 듯 팔짱을 끼고 있는 저 태도.

내가 제안을 수락할 거라 착각하는군.

나는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지구를 침략하려는 놈들답게 뻔뻔하구나.”


애초부터 녀석들이 어떤 제안을 하더라도 받아줄 의향은 없었다.

그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을 뿐이니까.


장난은 끝이다.

침략자들을 없애고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손바닥에 마력을 끌어모은 뒤.

루반콩을 향해 내려찍으려는 순간.


“으아아악! 살려주라콩! 사실 우리는 침략하러 온 게 아니라 도망쳐 온거라콩!”


루반콩이 무릎을 꿇고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빌기 시작했다.


‘내가 잘 못 들었나?’


나는 겁에 질려 눈물 콧물 다 흘리고 있는 녀석에게 물었다.


“침략이 아니라 도망쳐 온 거라고?”

“그렇다코옹···. 사실 우리는 싸우고 싶지도 않고 싸울 줄도 모른다콩.”


게이트가 생기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이종족의 지구 침략.

인간이 전쟁을 통해 영토를 차지하고 그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 듯 이종족의 목적도 마찬가지였다.

게이트가 생겨난 이래, 끊임없이 인간에게 위협을 가해왔던 게 이종족이라는 족속이다.


이 녀석들도 다를 게 없었다.

지구를 침략하기 위해 게이트를 열었고.

나를 보자마자 위협을 가했다.


헌데 뭐?

침략하러 온 게 아니라고?


“그럼 여기에 온 목적이 뭐지?”


고개를 푹 숙이며 답하는 루반콩.


“그저 우리는 살아갈 곳을 찾으러 왔을 뿐이다코옹···.”


녀석은 이내 긴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루반콩이 말하길.

몇 달 전, 자신들이 살던 콩콩 행성에 거대한 게이트가 열렸고.

그곳에서 나온 끈적거리는 액체 괴물이 독기를 내뿜으며 생명을 앗아갔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액체 괴물은 생명이 자랄 수 없게 행선의 모든 대지를 황폐화해버렸다.


그 때문에 콩콩 행성은 빛을 잃었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녀석들은 목숨이라도 부지하기 위해 이곳에 게이트를 연 것이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는 루반콩에게 삿대질하며 호통쳤다.


“그렇게 간절한 녀석들이 부탁하지 못할망정 나한테 호미를 들이대!?”


녀석은 높아진 언성에 잔뜩 겁먹은 채로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으아악! 미안하다콩! 얕보이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랬다코옹···.”


아니, 이놈이고 저놈이고 왜 이렇게 겁이 많아?


‘누가 보면 내가 한껏 쥐어패기라도 한 줄 알겠다.’


녀석들을 보고 있으니 문득 떠오르는 궁금증 하나.


“너희들은 무기가 농기구뿐이야?”


녀석들이 살아갈 곳을 찾아 지구에 왔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시작은 침략이었다.

헌데 기본적인 방어구도 없을뿐더러 무기랍시고 들고 온 게 호미나 낫 같은 농기구뿐이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쳐.’


근데 왜 제국의 기사단장이라는 놈까지 왜 호미를 들고 있는 거지?

최소한 허리에 검이라도 차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루반콩은 말할 듯 말 듯 입을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망설였다.

그것도 잠시.

내가 손을 들어 올리자 녀석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끄악···! 살려주라콩! 낭낭콩은 사실 기사단장이 아니라 농민협회 단장이다콩!”


역시 협박은 좋은 대화 수단이라니까.

근데 이 자식, 나를 자꾸 나쁜 사람으로 만드네?


“농민협회면 기사가 아니라 농부라는 말인가?”

“그렇다콩!”


그래, 뭔가 이상하더라.

세상 어느 기사단장이 호미를 무기로 쓰겠는가.


검술이라면서 꼬맹이들 나무 작대기 휘두르는 것처럼 호미 가지고 힘없이 하늘에 휘적거릴 때 알아봤어야 했다.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 호칭만 바꾼 거네.


“그럼 검술이랍시고 휘적거리던 건···.”

“그만! 농민협회장인 낭낭콩의 품위를 지켜달라콩!”


사회적 지위가 있는 놈이라 자존심은 지켜주겠다는 거냐?


고개를 돌려 낭낭콩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직도 흙밭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걸 보니 제 1기사단장을 연기한 게 상당히 창피했던 모양.


‘그나저나 이것들을 어쩐다···. 딱히 악의를 가지고 지구로 넘어가려는 것 같진 않은데.’


녀석들을 죽이는 건 일도 아니지만, 살고 싶다고 도망쳐 온 자들에게 칼끝을 들이밀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일까.


‘하아···.’


한숨이 터져 나온다.

불우한 사람들을 살리던 습관.

그 때문에 몸에 배어버린 도덕심.

내가 아닌 다른 초월자였다면 저들은 진작 목숨을 잃었겠지.


‘어떻게 해야 할까.’


한참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


“내가 너희와 공생을 하게 되면 얻는 득이 뭐가 있지?”


그 물음에 루반콩이 힘차게 말했다.


“우리 콩콩 행성의 사람들은 한 살 때부터 농기구를 잡는 사람들이다콩! 작물 하나는 기가 막히게 키운다콩!”


그러더니 품에서 검정콩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이게 뭔데?”

“그건 우리 콩콩 행성에서 키우던 콩 중에 하나다콩!”


콩이라면 질색인데···.

그래도 맛은 궁금하다.

다른 행성의 콩은 과연 어떤 맛일까.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콩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오도독!


‘오오!?’


콩 주제에 맛이 풍부하다.

오독오독한 식감에 적당한 단맛.

먹는 내내 콧속에서는 달콤한 냄새가 맴돈다.

생긴 건 콩인데 맛은 약간 밤 같다랄까? 근데 맛은 훨씬 깊다.

어찌 됐든 내가 먹었던 여느 콩과 비교도 안 될 만큼 훌륭하다!


츄릅.


다시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입안에서 군침이 흘러나왔다.

내가 살다 살다 콩 때문에 군침을 흘릴 줄이야.


“하나 더 줘.”


루반콩이 새침하게 고개를 휙 돌린다.


“싫다콩. 우리를 받아주라콩. 그럼 이곳에서 키워서 실컷 먹게 해주겠다콩!”

“흠···.”


녀석은 내가 고민하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이내 자신이 가진 카드를 하나 더 꺼내 들었다.


“참고로 콩 종류도 많다콩. 맛도 다 다르다콩!”


종류가 많다고?

그럼 내가 먹은 검은콩이 끝이 아니란 말이야?

게다가 맛도 다양하다고?


잠시 생각해보자.


내가 이 녀석들을 받아준다면.

방금 먹었던 콩과 다른 종류의 콩까지 맘껏 먹을 수 있을 테고.

작물은 기가 막히게 키운다 했으니 모종이나 씨앗만 갖다 줘도 알아서 키워주려나?

난 그걸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고!?


문제는.


‘허튼짓 안 하겠지?’


만에 하나 녀석들이 나쁜 마음을 먹고 동네를 헤집는다면···.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들, 춘애 할머니까지 갈 필요도 없어.’


장담컨대 동네에 돌아다니는 개 한 마리도 상대 못 할 거다.


“좋아. 이곳을 너희들의 새로운 터전으로 만들어줄게.”

“진짜냐콩? 고맙다콩!”


루반콩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까지 기쁨을 표현하고 있었다.


“역시! 콩의 신은 우리를 저버리지 않았다콩!”

“새로운 흙과 새로운 터전이다콩!”


살생 대신 공생을 선택하긴 했다만.

2주 정도는 녀석들을 유심히 지켜볼 생각이다.

만약 악한 성향을 드러내거나 공생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그때는 뭐···, 내 손으로 제거하는 수밖에.’


어찌 됐든 녀석들을 품어주는 건 좋은데···.

문득 걱정되는 부분이 하나 있다.


빠른 반사신경, 탁월한 유연성,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지닌 무서운 야생동물!

길고양이랑 싸우면 이길 수 있으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백전백패.”이다.

신체조건이 비슷하다 해도 저렇게 겁 많은 녀석들이 길거리 싸움꾼인 길고양이들의 상대가 될 리가 없지.


‘아마 호랑이를 상대하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녀석들이 자웅을 겨룰 수 있는 건 그나마 사마귀 정도?

허나 사마귀의 필살 무술인 당랑권을 펼친다면 승패를 알 수 없을지도.


* * *


콩콩 행성의 사람들과 한 가족이 되었다.

나는 녀석들에게.


“앞으로 이 밭은 너희 담당이야. 잘 가꿔봐.”


라고 말하자마자 30분째 밭만 갈고 있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다.

성현이와 내가 일궈 놓은 농토를 뭐하러 다시 건들까.

왜 사서 고생을 하는 걸까.


나는 이내 생각을 포기했다.

애초에 녀석들은 게이트 너머에서 온 자들.

지구의 상식으로 이해하려 한 내 잘못이다.


“오오···, 태어날 때부터 농기구를 잡는다더니, 과언이 아니었나 보네?”


작물은 일절 건들지 않고 흙을 일구는 녀석들을 보며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저렇게 밭을 헤집는데도 불구하고 작물들이 에이스 침대 위에 있는 것처럼 일절 흔들림이 없다.


헌데···.

뭔가 이질감이 든다.

원래 흙이 저랬나? 뭔가 이상한데?


“너희들! 흙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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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살리던 습관은 여전하구나 +1 24.10.06 902 3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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