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반려동물은 인간과 평생을 함께하지 못 하는가
단언컨대 한국에서 나보다 치료 경험이 많은 힐러는 없을 거다.
타박상, 출혈, 염증과 같은 일반적인 상처를 수십만 번 치료해왔고.
마비, 절단, 화상, 수술 후유증과 같이 신체적, 정신적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도 새 삶을 안겨주었다.
그 과정에는 인간만 있었을까?
강아지, 고양이 같은 일반적인 포유류부터 시작해, 파충류와 설치류까지.
다양하고 수많은 동물의 치료까지 병행해왔다.
심지어는 동물원 투어까지 한 적 있었다.
그렇게 쌓인 경험으로 인해 얻게 된 능력들이 있다.
상대방의 몸에 내 마력을 흘려보내는 순간.
대상이 얼마나 강한 마력을 지녔는지, 또한 인간인지 동물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 동물이면 어떤 종류의 동물인지까지도.
헌데.
이 녀석이 가진 생명의 기운은 내가 알고 있는 강아지가 아니다.
더군다나 몸에 품고 있는 방대한 양의 마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애초에 동물은 마력을 지닐 수 없는 존재일 텐데···.’
이 녀석의 정체는 누군가의 소환수이거나.
혹은.
‘마물이거나···.’
만약 전자라면?
녀석에게서 느낀 마력이라면 최소 S급 소환수.
소환사 역시 S급 초월자일 터.
한국에 있는 S급 소환사는 서울을 본거지로 둔 한수진뿐.
그녀가 연고도 없는 이런 시골에 강력한 소환수를 데리고 왔다고?
더군다나 저렇게 상처 입은 채로 놔둘 사람인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정황 하나하나가 모여 답을 이룬다.
나는 윗니로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결국엔 마물인 건가···.’
확신을 가진 순간.
빠르게 물러서며 녀석과의 거리를 벌렸다.
어디서 온 놈일까.
저 상처는 초월자와 전투에서 입은 건가?
마물이 활보하고 다니는데 왜 아무런 조치가 없는 거지?
최소한 재난 문자라도 와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들이다.
쓸데없는 잡생각을 지우고, 저 녀석을 처리하는 것에만 몰두한다.
숨을 크게 한 번 고른 뒤.
주위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다들 회관에 가셨는지 다행히 목격자는 없어.’
빠르고, 간결하게 처리한 뒤.
뒤처리까지 깔끔하게 끝낸다.
나는 체외로 마력을 방출해 배리어를 만들고.
손바닥에도 마력을 끌어모았다.
탁!
바닥을 박차고 쇄도하는 순간!
“설마 나를 공격하려는 거냐멍? 인간은 친구인데 왜 그러는 거냐멍?”
녀석의 턱이 벌어지며 어린아이처럼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역겨운 꼼수를 부리는군.'
녀석이 하는 말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방심을 유도하려는 작전일 터.
“······!?”
허나.
나는 녀석의 코앞에서 공격을 멈춰 섰다.
녀석은 최소한의 방어조차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카운터를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만약 내 공격이 직격 했다면, 녀석은 지금쯤 생사를 다투는 몸이 됐을 터.
“역시 인간이다멍! 나랑 놀아주려는 거였냐멍! 방금 그거 재밌었다멍!”
그러더니 앞발과 앞가슴은 낮추고.
뒷발과 엉덩이는 높이 든다.
영락없이 놀아달라는 자세다.
“한 번 더 해달라멍!”
꼬리를 저리 흔드는 걸 보니 조만간 하늘로 날아가겠네.
‘후···.’
도대체 뭐 하는 놈일까.
나는 경계심 따위는 전혀 없어 보이는 녀석에게 물었다.
“정체가 뭐지? 마물인가?”
“모르겠다멍!”
“그럼 소환수인가?”
“모른다멍!”
“네가 따르는 주인이 없다는 말인 거냐?”
“주인 없다멍!”
“처음에는 왜 평범한 강아지인 척을 했던 거지?”
“그런 적 없다멍! 그냥 아픈 소리를 냈을 뿐이다멍!”
“이곳에 온 목적은 뭐지?”
“기억 나는 게 없다멍!”
“기억을 잃은 건가?”
즉답하던 녀석이 처음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음···, 그것도 모르겠다멍!”
허나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그럼 네가 아는 건 뭐지?”
“인간은 친구이자 내가 지켜야 할 존재다멍!”
많은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생산성은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결국, 제대로 된 기억이 없다는 거잖아?
“그럼 다리에 있는 그 상처는?”
“얼마 전에 인간을 해치는 나쁜 녀석들이랑 싸우다 그랬다멍! 그때 다쳤는데 아프다머엉···.”
“나쁜 녀석들이라 하면 누굴 말하는 거지?”
“게이트에서 나오는 험상궂게 생긴 녀석들이 있지 않냐멍! 다 물어뜯어 버렸다멍! 내가 이겨서 인간을 지켰다멍!”
게이트라면 마물들을 말하는 건가?
“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단전에서부터 깊은 한숨이 터져 나온다.
만약, 저 녀석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사실이라면?
“우선은 내가 임시로 데리고 있으면서 녀석의 근원을 알아봐야겠네.”
녀석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바닥을 타고 느껴지는 부드러운 털의 감촉.
보들보들한 게 마치 밍크털을 만지는 것 같다.
‘느낌 좋네.’
녀석도 기분이 좋은지 눈을 감은 채 따스한 손길을 받아드렸다.
자세가 점점 낮아지더니 이젠 누워서 배까지 까버리는 녀석.
이 정도면 강아지보다 더 강아지같다.
그나저나 다리에 난 저 상처.
상당히 거슬린다.
“가만있어 봐. 내가 치료해줄 테니까.”
차분한 목소리로 녀석을 진정시킨 뒤.
손바닥 위에 마력을 끌어모았다.
상처에 마력을 가져다 대자 살갗이 마력을 그대로 흡수하기 시작한다.
그 작용으로 상처는 천천히 수복되어 갔다.
5분 정도 지났을까.
길고 짧았던 치료가 드디어 끝났다.
“후우···.”
밀려오는 탈력감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일반적인 강아지였다면 몇 초 만에 끝났을 치료였겠지만, 이 녀석이 가진 마력과 신체는 S급 초월자와 동등한 수준이었다.
‘덕분에 옛 생각 좀 나네.’
초월자가 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던 시절.
내 능력을 일찌감치 알아본 S급 초월자, 천성진이 나를 전용 힐러로 데리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S급 초월자가 누구냐.
웬만해선 흠집도 나지 않는 자들이다.
‘헌데, 천성진 그 개새끼는 위험한 공격을 일부러 처맞은 뒤에 나보고 치료하라고 했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 사이코패스가 따로 없었다.
나는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자! 이제 안 아플 거야.”
녀석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신의 앞발을 내려다본다.
“어떻게 한 거냐멍! 이제 하나도 안 아프다멍!”
녀석은 발을 절뚝거리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이내 네 발로 걸어 다녔다.
그렇게 열 걸음 정도 지나서는 혀까지 내밀고 시골길을 질주했다.
흐뭇한 얼굴로 녀석을 지켜보고 있는 그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누구야! 우리 마을의 자랑, 선우 아니냐!? 여긴 무슨 일이냐?”
까무잡잡한 피부에 흑발과 백발이 섞인 머리카락.
이장 박봉현이 내게 악수를 건넸다.
“아! 이장님, 안녕하세요. 휴가라서 시골에 내려왔어요.”
내 은퇴 사실을 아는 건 단 네 명.
믿을만한 사람 외에는 일절 말하지 않았다.
모란 회장 이재진.
화원 길드장 이재준.
부랄 친구 이성현.
그리고 옆집 춘애 할머니까지.
저들에게 내가 은퇴했던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언급하지 말라고 누누이 부탁했다.
특히 화원 길드장에게는 장기 휴가를 떠났다고 둘러대라 했다.
내가 은퇴했다는 사실이 세간에 퍼지면 한국은 크게 한 번 뒤집힐 테니까.
언젠가 나에 대한 소식을 필연적으로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그저 여유를 즐기고 싶을 뿐이다.
이장님이 맞잡은 손을 거세게 흔들며 말했다.
“그래? 아무튼, 이게 몇 년 만이야. 오랜만에 얼굴 보니까 반갑네!”
“안 그래도 인사드리러 가고 있었는데 여기서 뵙네요.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마을회관에 밥 먹으러 가는 길이지. 근데 그 개, 네가 키우는 개였어?”
뒤돌아보니 내 등 뒤에 앉아, 꼬리를 세차게 흔들고 있는 녀석.
기척도 없이 언제 온 거야?
그 순간.
녀석의 입이 천천히 벌어진다.
직감적으로 느껴진다.
녀석의 입에서 나올 건 “멍!” 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가 나올 게 분명하다!
나는 녀석의 입을 급하게 틀어막았다.
“하하. 제가 키우는 강아지예요. 장기 휴가라서 같이 내려왔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이장님.
그리고는 자리를 급히 뜨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일단 늦어서 나 먼저 가볼게.”
“네, 식사 맛있게 하세요.”
“그래, 또 보자고.”
짧고 굵었던 이장님과 만남이 끝나고.
손으로 막고 있던 녀석의 입을 놓아줬다.
“푸하! 깜짝 놀랬다멍!”
“너, 내가 안 막았으면 사람 말 하려고 했지.”
“그렇다멍!”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만약 이 녀석이 인간의 언어를 했다 한들, 빙 둘러서 변명하면 될 일이긴 했다.
허나 그 과정에서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으니까.
‘문제는 생기기 전에 원천봉쇄 해버리는 게 최상의 방책이지.’
내 맘도 모르고 그저 똘망한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는 녀석.
지긋이 녀석을 바라보고 있으니 옛 생각이 난다.
어릴 적에 동네에서 개 없는 집이 없었다.
우리집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새끼 진돗개를 지인이 분양해줬다고 집에 데려왔었는데, 손바닥만 한 녀석이 꼬리를 흔들며 내 앞으로 뛰어오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이름은 딱히 정해주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백구가 되었다.
그냥 색깔에 맞춰 이름을 불러주는 것.
시골 강아지의 특징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던 녀석은 어느 순간부터 나와 산책도 자주하고.
나는 얼마 안 되는 용돈을 모아 간식도 사줬었다.
그래서인지 백구는 할아버지 할머니보다 나를 더 잘 따랐다.
하교하고 집에 오면 잊지 않고 백구와 놀아줬고.
주말이 되면 매번 둘이서 시골길을 거닐었다.
그렇게 우리는 주종 관계 아닌 친구처럼 동등한 관계에서 우정을 쌓아갔다.
허나,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유년기부터 나와 함께했던 백구는 결국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영원할 줄 알았던 관계의 끝은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순간에 무너지는 백구와의 추억.
몇 날 며칠동안 나를 괴롭혔던 이별의 슬픔.
그 날 이후로는 다시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후우···, 이 녀석을 집으로 들이려니까 왠지 반려동물을 데려오는 거 같네.”
나는 여전히 꼬리를 살랑거리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가자, 우리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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