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잃은 아저씨
처참하게 넘어진 오토바이.
쏟아진 철가방과 짬뽕 두 그릇.
그 옆에 쓰러진 남성.
헬멧을 써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여기까지 배달 오는 중국집은 한 곳뿐이니까.
‘하루 반점 아저씨···.’
나는 다급히 뛰어가 아저씨의 상태부터 살폈다.
“괜찮으세요!?”
몸을 흔들어봐도 반응이 없고.
아무리 말을 걸어봐도 대답이 없다.
‘정신을 잃은 건가?’
우선 헬멧부터 빠르게 벗기고.
아저씨의 몸에 마력을 흘려보내 상태를 확인했다.
‘······.’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심장에서 피가 퍼져나가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다.
죽었거나.
심정지 상태이거나.
‘정확하게 확인해보기 전까지는 아직 몰라.’
나는 뇌 손상이 일어났는지 확인하기 위해 마력을 뇌 쪽으로 흘려보냈다.
만약, 손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면 그때는···.
‘아무리 나라도 손쓸 수 없어.’
절단된 신체를 재생시키고.
심장병까지 고치는 나라도 범접할 수 없는 것이 치아와 뇌세포였다.
‘아닐 거야. 아니야 해. 제발, 제발, 제발···!’
간절함이 통한 걸까.
몇 번이나 확인해 본 결과 뇌 손상은 다행히 없다.
그렇다는 말은 아직 골든타임은 지나지 않았다는 말.
‘후우···.’
한시름 덜긴 했지만, 안도하긴 이르다.
‘고민할 시간도, 지체할 시간도 없어.’
나는 마력을 빠르게 심장으로 이동시킨 뒤.
심장에 강제로 압박을 가해 강제적으로 피를 순환시켰다.
스르르.
아저씨의 감겼던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간다.
“괜찮으세요?”
아저씨는 대답 대신 멍하니 앞을 바라보다가 이내 상황파악을 하려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댔다.
“분명 오토바이 배달하고 있었는데···. 정신을 또 잃었던 건가? ”
“아저씨! 괜찮으세요?”
이번엔 시원이가 물었다.
“옴메! 깜짝이야.”
독백을 읊조리시던 아저씨는 나와 시원이를 보더니 깜짝 놀라셨다.
“아, 너희들이 나를 살린 거구나.”
죽다 살아난 사람치고는 미지근한 반응.
아니, 오히려 실망스럽다는 어조였다.
아저씨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오토바이를 세운 뒤.
떨어진 철가방 안에 짬뽕 그릇을 대충 집어넣고 오토바이 안장 위에 앉았다.
‘잠깐, 저거 지금 오토바이 운전하시려는 건가?’
심정지 상태에서 살아났는데 곧바로 오토바이를 탈 생각을 한다고?
미치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이야?
나는 헬멧을 쓰려는 듯 구멍을 찾고 있는 아저씨에게 다급하게 다가가 물었다.
“아저씨, 어디 가시려고요?”
“어디 가긴. 마저 일하러 가야지.”
“······예?”
“젊은 놈이 귀가 안 좋나? 다시 일하러 간다고 했잖아.”
상식적으로 병원에 갈 생각부터 해야 하지 않나?
아니면 심정지 과정에서 미세한 뇌 손상이라도 온 건가?
‘그럴 리가 없어. 뇌 손상이 있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었으니까.’
그때.
“에휴···.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편했을 텐데···.”
응? 내가 잘 못 들었나?
귀에 스치듯 들려오는 목소리.
아마 시원이는 못 들었을 거다.
코앞에 있는 사람도 들리지 않게끔 낮게 읊조렸으니까.
내가 누구인가.
일반인의 신체 능력을 크게 상회하는 초월자 아니던가.
“아저씨, 뭐라고 하셨어요?”
“응? 그 말을 들은 게냐?”
아저씨가 적잖이 놀랬는지 쓰려던 헬멧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시원아, 형이랑 아저씨 이야기할 테니까 그만 가볼래?”
“네, 아저씨.”
그놈의 아저씨!
내 언젠가는 저놈 입에서 반드시 형 소리 나오게 할 거다.
시원이가 저 멀리 떠나고.
나는 아저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죽으려고 하시는데요?”
“왜 죽으려고 하냐고? 너처럼 젊은 놈은 한 사람을 10년 넘게 간호해 온 고통을 모를 거야. 그 때문에 꿈까지 포기해버린 고통은 더더욱.”
“10년 동안 간호해 주신 분이 누구신데요?”
“우리 어머니.”
아저씨는 한층 낮아진 어조로 말을 이었다.
“노인들이 다 그렇듯, 우리 어머님도 어느 날부터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지셨었지. 처음에는 일시적일 줄 알았는데, 회복할 기미가 안 보이더라고. 그래서 집사람이랑 직장도 포기하고 함께 이곳으로 내려온 거야.”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푹 내쉬는 아저씨.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불을 지핀다.
“서울에 있는 모란 호텔이라고 아나? 5성급 호텔인데.”
모를 리가 있나.
모란 대표이사 이재진 회장이 운영하는 대표적인 호텔 중 한 곳 아니던가.
VIP 이용권 준다는 걸 한사코 거절했던 기억이 있다.
“알고 있죠.”
“내가 한때는 그 호텔 총괄 셰프로 일했던 적이 있었어.”
탁. 탁.
아저씨는 담뱃재를 털어내며 착잡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내가 그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잠도 줄여가며 노력한 시간이 얼마인 줄 아나?”
“10년 정도···?”
대충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요리라면 아르바이트하면서 어설프게 배운 게 다인데 내가 어찌 요리사의 세계를 알겠는가.
“자그마치 20년이다. 헌데 그 기간이 어머니의 건강 때문에 무너져버린 거야. 그 심정을 어느 누가 헤아려 줄 수 있을까?”
아저씨는 반도 피지 않은 담배를 바닥에 버린 뒤.
발로 담뱃재 불을 껐다.
치이익.
“배달하다가 만난 젊은 청년한테 푸념이나 늘어놓다니. 나도 참 나이값을 못 하는구나.”
불이 꺼진 담배를 다시 주운 아저씨는 우리집 방향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였던가? 며칠 전에 친구랑 짜장면 시켜 먹었었지? 다음에 또 시키면 군만두 서비스 몇 개 더 넣어줄게.”
“감사해요. 근데 어머님은 좀 괜찮으신가요?”
의도가 가득한 질문이었다.
내가 누구인가.
대한민국의 유일무이한 힐러.
만약 어머님이 여전히 편찮으시다면 내가 도와드릴 수 있을 터!
허나.
아저씨는 대답 대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 죄송해요.”
“하하하. 일부로 그런 것도 아니잖아? 신경 쓰지 마.”
내가 멋쩍을까 봐 일부러 웃으면서 어깨를 툭툭 치는 아저씨.
나는 아저씨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꿈을 다시 이루고 싶진 않으세요? 이제는 이곳에 얽매이지 않으셔도 되니까요.”
“욕심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 근데 그게 맘대로 되는 게 아니야. 같이 일했던 사람들도 연락을 다 끊어서 부탁할 사람도 없어.”
부탁할 사람이라···.
모란 회장이 내게 입이 닳도록 했던 말이 있다.
[도와줄 일이 있으면 꼭 말하게. 대기업 회장으로서 빚지고 살기 싫거든.]
그 빚을 드디어 갚을 때가 왔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런 일로 직접 연락하기에는 너무 속보이고 철없는 행동으로 보일지도 모를 터.
‘어차피 검진차 직접 찾아온다고 했었지.’
이재진은 내게 2주마다 정기점검을 받았었다.
그 말인즉슨 조만간 여기까지 직접 행차하실 거라는 이야기.
나는 아저씨에게 은근슬쩍 물어봤다.
“기회가 있으면, 도전하실 거예요?”
“당연하고말고!”
대화했던 것 중에 가장 당차고 높은 어조다.
“조만간 제가 기회 정도는 만들어 드릴게요.”
아저씨는 기가 찼는지 헛웃음을 내뱉었다.
“허! 젊은 놈이 농담도 참 재밌게 하는구나.”
그때.
삐용! 삐용!
멀리서부터 구급차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시원이랑 뛰어오면서 미리 불렀던 구급차였다.
“네가 부른 거냐?”
아저씨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 갈 생각 없었는데, 이러면 어쩔 수 없겠구나. 아무튼, 이 늙은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웠다. 이젠 그만 가보거라.”
나는 구급대원에게 상황 설명을 해준 뒤.
곧바로 집에 돌아왔다.
쓰러졌던 아저씨를 보니 괜스레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나신다.
“우리 할아버지도 논에서 일하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시골 노인분들께 하루를 어떻게 보내냐고 여쭤보면.
열이면 열 논일과 밭일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할아버지들은 작업복 바지를, 할머니들은 몸빼 바지와 꽃무늬 썬캡을 쓰고 논이나 밭으로 향하신다.
태양을 많이 쬐다 보니 동나이대 노인들보다 주름이 많고.
숙이는 일이 많다 보니 허리가 굽어 있는 경우가 많다.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누구보다 힘들게 사시는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검진이나 제대로 받고 다니실까?
“그나마 몸이 찌뿌둥하다고 생각되시면 동네 병원 가서 물리치료 받거나 동네 한의원 가서 침 맞고 끝이겠지.”
동네에 계신 어르신들은 내가 어릴 적에 코 질질 흘리면서 길거리를 배회할 때면 떡이나 사탕을 쥐셨던 분들.
내게는 한 분 한 분이 친할아버지고 친할머니다.
할머니가 늘 하신 말씀이 있다.
베풂을 받았으면 배로 돌려줘라.
“나중에 이장님이랑 협의해서 마을 주민분들 오선우식 건강검진 한 번 해드려야겠는데?”
장소는 마을 회관이 딱 좋겠네.
* * *
다음 날 점심.
“아버지가 점심 쯤에 오신다고 했는데···.”
그때.
대문 밖에서 양손 가득히 물건을 들고 오는 사람이 보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이래서 말이 무섭다니까.”
나는 버선발로 나가 아버지를 반겼다.
“아버지!”
“아이고! 우리 아들 드디어 얼굴 한 번 보는구나.”
아버지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물건도 내려놓고 나를 얼싸안았다.
“끄억. 아버지, 힘 조절 좀···.”
얼마나 세게 안았는지 숨이 안 쉬어질 정도다.
“아이고, 미안하다. 너무 반가워서 그만. 아! 그리고 내가 말한 친구, 케빈”
“안녕하쒜요! 케빈입니다.”
대문 밖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인사를 건네는 외국인.
순간 외국인 울렁증이 올라왔다가, 익숙한 이목구비에 이마를 탁! 쳤다.
‘맙소사.’
데려온다는 친구가 저 사람이었어?
이런 촌구석에 저런 거물을 데려올 줄이야···.
이 정도면 나를 만나러 온 게 아니라 S급 게이트를 공략하러 왔다고 해도 믿겠는데?
반가움도 잠시.
아버지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
“아들, 저것들은 뭐냐?”
아버지의 눈동자가 향한 곳은 텃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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