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에는 인간으로 태어나렴

“호오···, 대장간에서 일하는 이종족은 봤어도 집에서 밭일하는 이종족이라니. 아들아, 재밌는 녀석들을 데리고 있구나.”
콩콩인들에게 시선을 떼지 못 하는 아버지.
다행히 살기가 아닌 궁금증이 가득한 눈동자였지만, 나는 혹시 모르니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위험한 애들 아니니까 위협하시면 안 돼요.”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텃밭으로 다가가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눈이 마주친 콩콩인들.
루반콩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넌 누구냐콩?”
“······내가 누구냐고?”
꿈틀거리는 아버지의 미간.
머리까지 긁적이는 걸 보니 심히 당황스러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가 어딜 가서 자신을 소개할 사람인가.
미국은 군인과 더불어 초월자에 대한 예우가 남다른 국가.
더군다나 아버지는 게이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을 넘나드는 초월자다.
물론 초월자 활동의 궁극적 목표는 돈과 명예겠지만, 어찌 됐든 국가의 안보와 귀결되어 있지 않은가.
메달 오브 아너.
미국의 최고 훈장인 명예 훈장을 수여 받은 아버지다.
본래 미국인, 더 나아가 미군 소속인 자가 현격한 공훈을 세웠을 때 받는 훈장이지만, 아버지가 다른 국가로 이탈하지 않기 위해 예외로 두고 수여했다.
‘대통령조차 먼저 경례를 건넬 정도의 위상인데 충격이 상당하시겠지.’
아버지는 끝내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일곱별 중···.”
“시끄럽고! 우리 텃밭에서 나가라콩! 얼마나 힘들게 일궈낸 흙인데 그걸 밟고 있냐콩!”
루반콩은 아버지의 말이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에 텃밭 밖으로 아버지를 밀어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케빈의 입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 미스터 오가 줘런 취급을 받다뉘. 완줜 웃기는 상황이야!”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급히 꺼내든 케빈.
“잠꽌만···, 이권 동영솽으로 남겨놔야궤써. 미스터 오! 다시 한붠 들워가봐! 나 이궈 잉스타에 뿌릴 꺼야!”
띠링!
빠르게 동영상 촬영을 시작한다.
“케빈, 핸드폰 부숴버리기 전에 내려놔라.”
“암 쏘리.”
아버지의 표독스러운 표정에 곧바로 꼬리를 내리는 케빈.
‘실제로는 처음 보는데 원래 저렇게 촐싹거리는 사람이었어?’
들리는 후문에 의하면 마물 앞에서는 감정 없는 사이코패스 같다던데···.
‘저 모습만 봐서는 전혀 예상이 가질 않네.’
뭐, 사이코패스든 뭐든 내가 알 바는 아니다.
어차피 아버지와 잠깐 있다가 가는 사람 신경 써서 뭐하겠는가.
‘설마 이런 촌구석에 또 올 일이 있겠어?’
아버지는 루반콩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텃밭에 발을 들이밀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어이없었을 터였다.
자기 집 마당에 낯선 이방인이 저러고 있으니까.
“들어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또 들어 오냐콩! 한 발자국만 더 들어오면 무력을 쓸 수밖에 없다콩! 그때는 각오해야 할 거다콩!”
터벅.
고민도 없이 당차게 내 걷는 아버지의 한 걸음.
“이 녀석! 결국, 선을 넘었다콩! 낭낭콩, 쿠쿠콩!”
후다닥!
루반콩의 부름에 재빠르게 뛰어와 아버지 앞을 막아서는 낭낭콩과 쿠쿠콩.
“너 혼자서 제1기사단장과 제2기사단장을 상대할 수 없을 거다콩!”
웃기고 있네.
너희 같은 놈들 만 명이 와도 아버지한테 상대도 안 될 텐데 무슨.
휘적. 휘적.
“보아라, 나의 호미술을!”
“후후···, 내 호미술도 만만치 않을 거다!”
그리고 이어지는 낭낭콩과 쿠쿠콩의 재롱잔치.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농기구를 저렇게 휘적거리는 행동이 상대방에게 진짜 위협이 될 거로 생각하는 걸까?
“마지막 경고다콩! 다치기 싫으면 나가라콩! 여기는 우리 콩콩인들과 이 밭의 주인인 저 녀석밖에 못 들어 온다콩!”
언성을 높이며 나를 가리키는 루반콩.
아버지도 동시에 나를 쳐다본다.
난감하다, 난감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잘 모르는 게 있는데, 그 밭 주인은 원래 내가 아니라 너희 앞에 있는 그 사람이야.”
“확실한 거냐콩!?”
“진짜냐콩?”
밝혀진 진실에 당황하는 콩콩인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텃밭뿐만 아니라 이 집 전체가 아버지 명의니까.
“그··· 그럼 들어와도 된다콩! 미안하다콩!”
아버지는 김이 팍 식어버렸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게 다가왔다.
“아들아, 재밌었는데 그냥 놔두지 그랬어. 그나저나 저것들이 왜 우리집에 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구나.”
나는 저 녀석들과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해줬다.
텃밭에 게이트를 연 것부터 어떻게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까지.
마지막으로 작물을 단번에 성장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도 말해주었다.
“그럼 저 상추랑 부추가 며칠 전에는 모종이었다는 거냐?”
순간 아버지의 눈이 마술을 보는 듯 휘둥그레졌으나,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흠···, 생각해보면 먹고 싶은 작물을 며칠 만에 키워 먹을 수 있다는 것 빼고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능력이구나. 아니면 저것들 이용해서 농작물이라도 팔지 그러냐.”
“음···.”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털어버렸다.
계약 따내려면 발품도 팔아야 하고.
계약처에 농작물을 꾸준히 납품해야 한다.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다.
좋아하는 일이 업으로 변해버리면 그때부터 싫어하는 일이 된다.
내가 이곳에 힐링하러 왔지 일하러 온 건 아니니까.
“좋은 생각이긴 한데 괜찮아요. 근데 두 분 다 점심 안 드시고 왔죠?”
“당연하지! 너랑 먹으려고 일부러 안 먹고 왔어.”
“그럼 제가 요리해 드릴게요!”
그 말에 아버지의 입이 쫙 벌어진다.
“오오! 우리 아들이 웬일이야! 그래서, 뭐 해줄 건데?”
“삼계탕이요.”
“삼계탕 좋지!”
“삼궤탕! 좋아요!”
어느새 다가온 케빈.
미국인은 삼계탕을 잘 모르지 않나?
“케빈, 삼계탕 알아요?”
“당욘하쥐! 예전에 미스터 오가 한 번 미쿡에서 사준 줙 있어! 베리 굿이었어!”
“그럼 두 분 다 방에 들어가서 쉬고 계세요. 금방 해드릴게요.”
“알겠다.”
나는 집안으로 들어와 손질된 생닭 두 마리와 마트에서 사 온 삼계탕 재료들을 주방 한곳에 모았다.
“흐흐흐. 너를 드디어 먹는구나.”
눈앞에 있는 이 닭.
아침마다 시끄럽게 울던 그 닭이다.
물론 몰래 잡아 온 건 아니다!
‘돈 주고 사 온 거지.’
아침에 춘애 할머니 댁에 반찬 받으러 가니까 할머니께서 그러시더라.
“선우야, 온 김에 달걀 좀 가져가그라.”
나는 닭장에 가는 도중, 할머니에게 스리슬쩍 물었었다.
“혹시 할머니가 키우시는 닭 중에 아침 6시면 울어대는 녀석 있지 않아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고.
“잉? 그 시끄러운 놈? 있는디 왜?”
나는 옳다구나! 했다.
“그럼 그 녀석하고 다른 한 마리 더해서 저한테 파시면 안 돼요?”
“팔아도 되긴 허는디 뭐 할라 그려? 키울라고?”
“아, 그게 아니라 집에 손님 오시기로 해서 삼계탕 해드리려고요.”
“그려? 그럼 돈은 됐고. 그냥 가져가.”
할머니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다.
그야말로 일거양득!
이 녀석한테 복수도 하고 아버지에게 정성스러운 요리도 대접해드리고!
그렇게 얻어온 닭 두 마리.
할머니가 손질까지 직접 해주셨다.
돈은 안 받으시려는 할머니의 주머니에 기어코 10만 원 넣어드리고 도망쳐왔다.
나는 다리에 실이 묶여 있는 생닭을 보고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에게 따로 부탁했었다.
목청 좋은 녀석 다리에 표시 하나 해달라고.
“너를 특히 맛있게 먹어 주마!”
불쌍한 녀석.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가수가 됐을지도 모르는데 하필 닭으로 태어나다니.
‘다음 생에는 인간으로 태어나렴.’
삼계탕 재료는 내 운전기사인 성현이랑 같이 식자재마트에 가서 사 왔다.
오늘은 진짜 귀찮다고 안 간다는 녀석에게 오선우 이용권 5회를 더 주고 억지로 갔다 왔다.
운전 연수를 받든가 해야지 원.
“그럼 시작해볼까.”
내가 준비한 요리는 바로 압력솥 삼계탕!
먼 길을 온 아버지와 케빈을 위한 요리였다.
우선 1시간 전에 불려놨던 찹쌀, 마늘, 대추, 밤을 닭 속에 채운 후에 실로 봉합하고.
압력솥에 닭과 한약재 티백, 전복, 인삼, 소금 1스푼, 마지막으로 물을 넣고 센 불로 끓인다.
이제 압력솥 추가 돌 때까지 자리만 지키면 끝!
*
20분 후.
칙. 칙. 칙. 칙.
압력솥 추가 춤추기 시작한다.
이제 약불로 줄이고.
김이 빠져나갈 때까지 뜸 들이면 삼계탕 완성!
“그동안 또 할 일이 있지.”
나는 따로 준비해 놓은 냄비에 부추를 넣은 후.
냄비에 물이 반 정도 잠길 때까지 넣고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삼계탕이 완성되면 거기에 넣어 먹을 생각이었다.
요리가 마무리되는 동안 식탁을 정리했다.
개인 접시와 소금.
그리고 할머니가 해주신 깍두기와 상추 겉절이까지!
어느새 조용해진 압력솥 추.
이제 준비는 끝났다.
압력솥을 식탁으로 가져와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며 춤을 춘다.
흐읍!
콧속을 휘젓는 담백한 냄새.
‘벌써 침 고이네.’
냄새만 맡았을 때는 100점짜리 요리다!
나는 데쳤던 부추를 삼계탕에 올리며 요리를 마무리했다.
“아버지! 케빈! 식사하세요!”
오랜 기다림 끝에 거실로 나온 아버지와 케빈.
아버지는 음식을 보기도 전에 내 어깨를 토닥여줬다.
“요리하느라 고생했다.”
케빈은 아버지 옆에서 삼계탕을 보더니.
“오! 마쉬써 보여요! 이거 기다리느라 목 빠쥐는 줄 알았쒀요!”
나를 보며 자기 머리를 양손으로 뽑는 시늉을 했다.
순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미국인이 저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걸까.
‘아버지의 영향이겠지 뭐.’
자리에 앉은 아버지와 케빈에게 먼저 다리 하나씩 챙겨 드리고.
나도 다른 녀석의 다리를 하나 뜯어 접시에 가져왔다.
실이 묶여 있는 그 녀석의 다리였다.
“잘 먹으마.”
“마쉬께 먹을궤요!”
아버지가 한 입 드시는 걸 확인한 후.
나도 다리 끝을 잡고 크게 베어 물었다.
‘오오!’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입안에서 녹아내린다.
게다가 살 안에 스며든 국물이 씹을 때마다 담백하게 터져 나와 입안을 촉촉하게 만들어 준다.
내가 한 거지만 진짜 맛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아버지와 케빈을 슬쩍 쳐다봤다.
“미스터 오가 사준 것보다 마시쒀요!”
“내 아들이라 그런 게 아니라 이 정도면 삼계탕집 하나 차려도 되겠는데?”
내가 한 요리를 맛있게 먹어 주는 사람들을 보니 뭔가 뭉클하다.
수많은 사람을 구원해왔지만, 이건 뭔가 다른 뿌듯함이었다.
“근데 아들아, 밖에 있는 저 개는 어디서 난 거냐? 그냥 강아지가 아닌 거 같던데 말이야.”
그래, 뿌듯했다.
저 말을 듣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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