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생각 없으세요?

천상 길드 건물 길드장실.
레이드를 끝내고 돌아온 권우진이 자신의 전투 장비들을 정리하며 짜증 섞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쯧···. 오늘처럼 일정 시간마다 구조가 뒤바뀌는 변이성 게이트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피로도가 너무 심하단 말이야.”
그는 게이트에서 나와 곧바로 길드장실로 복귀한 상태.
그와 같이 레이드에 투입됐던 인원들은 레이드가 끝난 직후 휴식을 취하러 갔지만, 권우진은 그럴 수 없었다.
며칠 동안 자리를 비운 탓에 처리할 업무가 쌓이기도 했고.
더군다나 오늘 저녁, 타 길드장들과 중요한 미팅도 있었으니까.
“미팅이라 해봤자 결국 친목이 목적인 자리지만.”
권우진은 길드장실에 있는 개인 샤워실에서 씻은 후.
깔끔한 정장으로 갈아입고 그대로 중역 의자에 몸을 맡겼다.
“크으. 역시 돈값 하는 의자네. 몇백이나 주고 산 보람이 있어.”
푹신한 쿠션이 전신을 기분 좋게 받쳐준다.
편안함을 넘어 쿠션이 피로감까지 흡수해가는 느낌이었다.
“하아···, 이것들을 언제 다 처리하지?”
권우진은 책상 위에 쌓인 결재서류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육체노동 끝나니까 이제는 정신노동이냐.”
결재서류를 하나하나 확인해보니 사업 추진 안건과 게이트 소유권 구매에 대한 안건들이었다.
“사업 안건은 볼 때마다 내가 마물을 상대하는 초월자인지 사람을 상대하는 사업가인지 모르겠다니까.”
천상 길드.
웬만한 연예인들보다 더 유명한 권우진이 길드장으로 있는 곳.
그 덕에 천상 길드는 굿즈 사업으로 쏠쏠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다.
“이제는 레이드에서 벌어들이는 돈보다 굿즈 사업으로 벌어오는 돈이 더 많으니 그만둘 수도 없고···.”
그도 그럴 것이 권우진은 시계를 수호하는 일곱별 중 한 명.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그였다.
그는 꼴 보기 싫은 결재서류들을 책상 한쪽으로 쭉 밀어냈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건들도 아니고 지금은 그저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내가 아무리 신체 능력이 좋은 초월자라 해도 지금은 일주일이나 게이트에 있다 와서 피로가 누적된 상태라고. 게다가 오후에는 회의 일정도 있고. 지금은 좀 쉬자.”
똑똑.
“들어오세요.”
길드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
총괄팀장 이성재였다.
“길드장님, 레이드 고생하셨습니다.”
“아, 네. 무슨 일이시죠?”
책상 한구석으로 향하는 이성재의 시선.
그의 목적을 알아챈 권우진이 손바닥을 양옆으로 흔들었다.
“저것들 때문에 온 거라면 포기하세요. 당장은 쉬고 싶으니까요.”
“그럼 언제쯤···?”
“내일까지 전부 확인할게요.”
이성재는 고개를 끄덕인 뒤, 공문 하나를 권우진에게 건넸다.
“그보다 길드장님, 협회에서 비상 상황 협조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갑자기 협조 공문을요?”
“네, 한 번 읽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공문을 읽던 권우진의 미간이 점점 좁아져 간다.
국가의 안전. 전쟁의 위기.
자극적인 단어가 공문에 즐비했지만, 결국 요점은 이러했다.
비상 상황 발생 시 모든 업무를 중지하고 고위공직자를 우선으로 지킬 것.
“하···, 협회 이 사랑당 꼭두각시 새끼들이.”
공문을 다 읽어본 권우진은 눈을 감은 채 숨을 크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었다.
단전부터 올라오는 분노를 다스리기 위함이었다.
“근데 상황 발생 시 무작정 협조해달라는 내용밖에 없고 정확한 이유는 없네요?”
“네. 저도 그것 때문에 협회 측에 따로 알아봤는데, 아직 알려줄 수 없다고 합니다.”
“협회 하는 짓이 그렇죠 뭐. 근데 이유는 대충 알 것 같네요.”
“역시 길드장님도 알고 계시군요.”
권우진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네. 스승님과 케빈. 그 두 명이 한국에 입국했다는 것만으로도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으니까요.”
“오영찬님이 케빈을 데리고 왔다는 건···.”
이성재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다음 나올 말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면 안 될 일이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복수일 가능성이 가장 크겠죠. 그것 때문에 협회에서 협조 공문을 보냈을 거고요.”
“길드장님, 만약 최악의 상황이 일어난다면 어느 편에 서실 겁니까?”
이성재가 답을 기다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방금 한 질문이 예의가 아닌 걸 알고 있었다.
허나 묻고 싶었다.
권우진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초월자.
주위 국가에서 위협을 해올 때마다 직접 나서서 해결했던 그였다.
허나 오영찬은 자신을 키워준 스승.
게다가 소꿉친구이자 생명의 은인인 오선우의 아버지.
쉽사리 결정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헌데.
“당연한 질문이네요. 저는 스승님 편에 설 겁니다.”
“예?”
고민도 없이 내뱉은 대답에 이성재는 심히 당황스러웠다.
반사적인, 그리고 확신을 가진 대답이었다.
즉답이 아니었다.
이전부터 고뇌했던 결과물이 분명했다.
“총괄팀장님, 저희도 협회 쪽에 공문 하나 보내주세요.”
“어떤 내용으로···.”
“스승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그때는···.”
으드득!
권우진이 손을 쥐자 길드장실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공간을 압축하고, 이를 개방하거나 왜곡하는 능력.
차원까지 자유로이 다루는 권우진의 능력이었다.
이성재는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자신 앞에서는 항상 웃는 모습만 보였기에 잊고 있었다.
이자는 세상에서 일곱 번째로 강한 자.
나 같은 존재는 벌레 죽이듯 죽일 수 있는 괴물이라는 걸.
“천상 길드와의 전쟁을 각오해야 할 거라고.”
“아··· 알겠습니다.”
권우진은 입술과 손끝을 덜덜 떠는 이성재의 상태를 뒤늦게 알아채고는 빠르게 살기를 누그러뜨렸다.
“아! 죄송합니다. 순간 흥분을 했네요.”
“괜··· 괜찮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그리고 팀장님, 전 오늘 저녁 길드장 미팅 일정 끝나고 내일까지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
“어디 가십니까?”
“스승님이 왔으면 인사드리는 게 제자의 도리 아니겠습니까.”
“그럼 결재는요?”
“총괄팀장님께 결재권 이임할 테니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권우진.
그리고 책상에 쌓인 결재서류를 내려다보는 이성재.
이성재는 길드장의 온화한 미소가 오늘따라 미워 보였다.
*
삼계탕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나는 아버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생각은 없으세요?”
아버지는 대답 대신 턱을 쓸어내리며 고민에 빠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케빈.
조심스럽게 운을 뗀다.
“미스터 오, 과끔 한쿡으로 돌아가고 슆다고 하쥐 않았어?”
“그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이 들긴 하지. 근데 사랑당이 했던 짓을 생각하면···.”
아버지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다.
점점 굳어가던 표정은 표독하다 못해 살기까지 서렸다.
“그래도 뭐가 됐든 아들이 부탁한다면 바로 돌아올 거야.”
나를 보며 싱긋 웃으시는 아버지.
‘아버지의 귀국이라···’
한국은 현재 권우진만으로도 큰 위상을 떨치고 있지만.
만약 아버지까지 한국으로 돌아온다면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힘을 갖게 될 터.
허나.
나는 그렇게 되길 원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한국을 떠났을 때.
언론과 국민 모두 이유를 막론하고 비판하던 게 이 나라다.
비판을 넘어 힐난까지 하던 곳이다.
그날 이후 다짐한 게 하나 있다.
언론과 국민.
그들이 먼저 나서서 사과하기 전까진, 아버지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어떻게든 뜯어말리겠다고.
아버지는 문득 궁금한 게 생겼는지 케빈을 보며 물었다.
“근데 케빈. 만약에 내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면 넌 어떡할래?”
“음···. 나 미스터 오도 좋고 한쿡도 좋아! 그래서 미스터 오 따롸서 한쿡 올 거야!”
케빈의 대답이 기특했는지 아버지는 케빈의 어깨를 툭툭 쳤다.
거기에 삼계탕 날개를 발라주는 건 덤이었다.
“오···!? 진짜 나 따라서 한국 올 거야?”
“당욘하쥐! 나 어차퓌 미쿡에 가족도 없쒀!”
“가족? 내가 케빈 가족 해준다고 했잖아.”
“아, 맞돠! 그럼 더욱 가족 따라숴 한쿡 와야지!”
와···.
잠깐만.
이건 예상 못 한 대답이다.
아버지와 케빈, 그리고 권우진까지.
세상을 수호하는 일곱별 중 3명이 한국 소속이라면···.
‘한국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될 테지.’
헌데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미국이 가만 놔둘까?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언론과 국민이 먼저 사과할 리도 없고.
케빈도 말만 저렇게 하지 진짜로 오진 않을 테니까.
아버지는 날개를 뜯다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내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근데 밖에 있는 저것들은 뭐 안 먹어도 되는 거야? 우리만 맛있는 거 먹고 있으니까 괜히 미안하네.”
“미스터 오! 참 못났쒀! 그런 뫌 할 거묜 진작 했어야쥐! 다 먹고 놔서 말하묜 어떡해!”
콩!
머리를 또 한 대 얻어맞은 케빈.
매를 번다 벌어.
방금까지 점수 잘 따놓고 왜 저러는 거야?
“콩콩인들은 자기들이 키우는 콩밖에 안 먹는데요.”
“그렇다기엔 밭에 콩이 없던데?”
“루반콩 말로는 오늘부터 콩을 심을 거라고 했어요. 지금까지는 갖고 있던 콩만 먹었구요.”
“그럼 저 개는?”
“황돌이는···.”
생각해보면 단 한 번도 음식을 먹은 걸 본 적이 없다.
애초에 뭘 줘도 안 먹었다.
상추? 부추? 개 사료? 개껌?
전부 입에도 안 댔다.
심지어는 시내에 나가서 소환수들이 환장한다는 마력이 가득 담긴 매직볼을 사서 준 적도 있었다.
그것조차도 안 먹었다.
그래서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물어봐도,
“신경 쓰지 말라멍! 난 알아서 잘 먹는다멍!”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도대체 뭘 먹고 사는 걸까.
먹긴 먹는 걸까?
그리고 그 답은 저녁이 돼서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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