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밤하늘은 별빛이 찬란하게 수놓는다
점심 식사를 마친 직후.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대 배를 통통 거리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맛있게 드셨어요?”
“덕분에 배부르게 잘 먹었다.”
“나도 좔 먹었어요!”
누가 봐도 만족한 한 끼 같았다.
식탁 위에 남은 거라고는 식기류와 닭뼈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혼자서 뒷정리를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식기류를 싱크대에 옮기기 시작했다.
케빈도 곧장 따라서 도와줬다.
“두 분 다 앉아 계세요. 뒷정리 정도는 금방 하니까요.”
“에이, 음식까지 했는데 치우는 것 정도야 도와줄 수 있어. 설거지는 케빈 시킬 테니까 좀 쉴래?”
그 말을 들은 케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스터 오, 설거쥐가 뭐야? 나 춰음 들어봐. 그거룰 왜 나한테 시켜?”
“이럴 때마다 한국말 모르는 척하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나 진촤 몰롸!”
아버지의 미간이 꿈틀거린다.
허나 아버지는 이런 상황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닌 듯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dish washing 네가 해.”
“아~ 나 미스터 오가 무슨뫌 하는쥐 하나도 모르궤써! 나는 이것뫈 옮길 거야!”
아버지의 손이 점점 주먹으로 변한다.
아랫 입술은 꽉 깨물고 시선은 케빈의 머리에 가 있는 걸 보니 또 딱밤을 때릴 모양이었다.
나는 케빈이 얻어맞기 전에 먼저 나서서 말했다.
“괜찮아요. 설거지가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게다가 멀리서 온 손님에게 일을 시키면 예의가 아니잖아요?”
설거짓거리를 싱크대에 다 옮기고.
나는 냉장고에서 배 하나를 꺼내와 깎으면서 말했다.
“오랜 비행으로 피곤할 테니 이거 드시고 방에 가서 좀 쉬세요.”
“오우! 그럴쑤 없쒀요! 나 미스터 오랑 목욕퇑 가야 해! 미스터 오랑 약속했돤 뫌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아버지.
콩!
“아야!”
결국, 케빈 머리에 직격한 아버지의 주먹.
내가 도와준 의미도 없이 한 대 또 얻어맞았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하루에 얼마나 얻어맞고 있는 걸까.
“미스터 오! 피곤해!? 솔쥑히 안 피곤하좒아!”
뭐, 그도 그럴 것이 저들은 인간의 신체 능력을 아득히 뛰어넘은 초월자 아니던가.
더더욱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들이었다.
‘하긴 레이드도 며칠 동안 강행하는 양반들이 고작 반나절 동안 비행기 탔다고 피곤해할 리 없지.’
케빈은 사슴 같은 눈망울로 아버지와 눈을 마주쳤다.
허나, 돌아오는 대답은 냉담할 뿐이었다.
“그렇게 가고 싶으면 너 혼자 갔다 와.”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은 케빈.
이번에는 아버지의 팔목까지 붙잡으며 애처롭게 말했다.
“미스터 오··· 내가 한쿡 올 일이 또 어딨게쒀···.”
“하아···, 알겠어. 그럼 아들이 깎아주는 배만 먹고 바로 가자.”
아버지는 예전부터 동정심에 약했다.
항상 약자를 보면 선뜻 나서서 도와주고.
모르는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면 고민도 하지 않고 손을 내미는 사람이다.
어느 날, 초월자가 됐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해고당한 사람이 아버지를 찾아와 하소연한 적이 있었다.
그가 회사에서 해고당한 이유는 단순했다.
초월자는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초월자라고 모두가 게이트를 넘나드는 건 아니다.
어느 누가 목숨을 걸어가며 싸우고 싶겠는가.
그 때문에 초월자가 됐더라도 평범한 일상을 이어나가고 싶은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아버지는 그날 이후, 초월자란 이유로 억압받는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게 협회를 설립하고 초월자들을 위해 힘 써왔다.
자그마한 동정심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다.
‘나 또한 그런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기에 전생에서 내 몸이 망가질 때까지 사람들을 구원해왔던 거겠지.’
헌데 그 빌어먹을 사랑당 새끼들이 협회를 자기들 손에 쥐려는 것도 모자라 아버지를 암살하려 했으니···.
뭐, 머지않아 사랑당은 우진이의 손에 의해 몰락할 거다.
‘그 녀석, 기특하게도 스승의 복수를 위해 오래전부터 계획해 온 게 있었으니까.’
케빈은 아버지의 확답에 신이 났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나, 너무 설뤠!”
아버지는 그런 케빈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너만 보면 아들이 둘인 것 같단 말이야.”
“미스터 오는 나랑 가족이뉘까, 내 아빠 맞는 고 아니야?”
“됐다, 너랑은 말을 말자.”
더이상 대화하기 싫다는 듯 케빈의 시선을 회피하는 아버지.
그러고는 나를 향해 싱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가짜 말고 진짜 아들아, 너도 같이 갈 거지?”
“당연하죠. 안 여쭤보면 서운할 뻔했어요.”
아버지와 목욕탕에 갈 생각에 어린 시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꼬꼬마 시절, 주말마다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을 갔던 기억.
목욕을 끝내고 나오면 건너편에 있는 중국집을 갔었던 기억.
그리고 집에 오기 전, 마트에 들려서 과자 하나와 음료수 하나를 사주셨던 추억까지.
괜스레 마음이 뭉클하다.
왜 인생의 어린 시절은 한 번 뿐일 걸까.
그때.
행복한 추억 회상을 깨뜨리는 아버지의 한 마디.
“근데 차는 있어?”
“없긴 한데 빌릴 사람은 있어요.”
“그게 누군데?”
“성현이요.”
“성현이면 여기 아랫동네에서 농사 크게 하는 그 친구?”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 성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성현아, 너 없으면 귀촌 생활 어떻게 했을까.’
매번 기름만 풀로 넣어줬는데, 나중에 비싸고 맛있는 거 한 번 사줘야겠네.
“대신 운전은 아버지가 하셔야 해요.”
“네가 안 하고?”
“제가 운전할 바엔 차라리 경운기 타고 가는 게 나을 걸요?”
그렇지 않으면 차 타고 이동하는 동안 경적을 수백 번 들을 테니까.
*
해가 하루 소명을 다하고.
어둠만이 가라앉은 저녁.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각자 돌아가며 샤워를 시작했다.
먼저 씻고 방으로 돌아온 케빈.
나를 보더니 씨익 웃어 보인다.
“왜 그렇게 보쉐요. 좔생겼어요?”
뜬금없는 말에 순간 당황했지만, 짜증 나게도 반박은 못 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눈썹까지 오는 금발.
거기에 매력을 한층 더해주는 청안까지.
전형적인 미국 미남이었으니까.
케빈의 나이는 한국 나이로 스물둘.
저 능력에 얼굴. 나이까지 어리다니.
'앞날이 창창하네.'
나는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있는 케빈에게 물었다.
“케빈, 오늘 재밌었어요?”
“재밌어쒀요!”
“뭐가 제일 재밌었어요?”
“음···, 오늘이 좡날? 이라서 길거뤼 음식 먹은 거!”
“네? 케빈 목욕탕에서 ‘이게 쥔줭한 목욕퇑이지!’하면서 행복해했잖아요.”
“목욕퇑도 좋긴 해쒀요. 근데 마뉘 해봤던 거롸서 큰 감흥이 없었을 뿐!”
하긴, 케빈이 오늘 먹은 음식 종류를 세려면 열 손가락으로도 부족하다.
길을 거닐다가 음식만 보이면 사달라고 졸랐으니까.
핫도그부터 시작해 번데기까지.
알차게도 먹었다.
근데 신기했던 건 외국인은 번데기 징그러워서 싫어한다던데 케빈은 환장하고 먹더라.
로션을 다 바르고 내 옆에 와 앉는 케빈.
나는 그대로 케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케빈, 이리 와서 하늘 좀 올려다 봐봐요.”
“오우! 별이 엄청 반쫙거려요.”
반짝거리는 수십 개의 별빛이 밤하늘을 아름답고 찬란하게 수놓는다.
이건 시골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도시는 도심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불빛, 즉 광해가 별빛을 가리는 데 반해.
시골은 광해가 없을 뿐더러, 대기권이 오염되지 않아 별빛의 산란까지 없어서 별이 선명하게 보인다.
케빈 역시 도시에서 살다 왔을 테니 이런 광경을 보지 못했을 터.
“오우! 이건 사쥔 찍어가야게쒀요!”
방에 들어가서 핸드폰을 챙겨온 케빈.
허나 핸드폰 화면에는 담기지 않는 별을 보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분명 눈에는 보이눈데 화면에눈 안 찍혀요.”
아랫입술을 삐죽 내민 케빈.
생각보다 훨씬 더 실망했나 보다.
그때.
마당에서 오묘한 이질감이 든다.
마당을 둘러보니 항상 있어야 할 황색의 생명체가 보이지 않는다.
“황돌이 어디 갔지?”
*
30분 전.
마당 한 곳에서 꽈리를 틀고 엎드려있던 황돌이.
탁. 탁. 탁.
타닥. 타닥.
쫑긋!
멀찍이서 들려오는 십수 개의 발소리에 황돌이의 귀가 반응했다.
황돌이는 익숙한 발소리인 듯 대문 밖으로 나가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몸을 향했다.
어둠이 드리운 시골길.
듬성듬성 세워진 가로등 아래.
다섯 마리의 강아지가 황돌이를 보고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흔들었다. 황돌이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시고르자브종이었지만, 크기도, 생김새도 전부 달랐다.
체구는 고양이 정도에 다리만 짧고 허리는 긴 검둥이.
황돌이와 체구는 똑같지만, 귀만 축 늘어진 백구.
그 외에도 전형적인 시골 강아지들이었다.
“오늘은 일찍 왔다멍!”
“왈왈!”
“근데 한 마리가 없다멍?”
“왈! 왈!”
“담장을 넘다가 주인한테 걸려서 못 왔다는 거냐멍?”
“멍!”
“어쩔 수 없다멍! 우리끼리 가자멍! 출발하자멍!”
황돌이의 일방적인 질문인 것 같았지만, 어찌 됐든 소통은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출발한 강아지 무리.
30분 정도 걸었을까?
맑은 물이 흐르는 1급수 개울가에 도착했다.
“오늘도 배부르게 먹어 보자멍!”
“왈왈!”
“멍멍!”
우선 황돌이가 개울가로 들어가고.
나머지 강아지들은 밖에서 대기했다.
한두 번이 아닌 듯한 합이었다.
“시작하겠다멍!”
번쩍!
칠흑 같은 어둠 속.
반딧불이처럼 어둠을 밝히기 시작하는 황돌이.
치직-
치지지직!
황돌이의 털에서 스파크가 일더니.
개울가 수면 위로 축 늘어진 물고기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제 들어오라멍! 매번 말하지만 조그마한 물고기만 먹어야 한다멍! 안 그러면 죽는다멍!”
“왈!”
“멍멍!”
황돌이의 신호에 맞춰 개울가에 들어온 강아지들.
물고기 포식을 시작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큰 건 먹으면 안 된다멍! 뼈 때문에 큰일 난다멍!”
그러면서 자기는 혼자 큰 물고기를 먹는 황돌이었다.
황돌이와 강아지들이 배를 한창 채우던 그때.
개울가 밖에서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와우! 여기가 한국의 바다입뉘까?”
“예? 바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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