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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롱뇽
작품등록일 :
2024.10.0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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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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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1. 신의 이름은 (3)

DUMMY

콘라드 추기경이 담담히 덧붙였다.

“저희 세계의 모든 사회 운영 원칙과 윤리·도덕은 교단의 교리에 기반한다는 뜻입니다. 누군가가 그 가르침에 의문을 품었다면 이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거스르게 되는 거지요. 그러니 대부분은 배교해서 파문당하기도 전에 범죄자가 되고, 교단의 잘못으로 자신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헛소리를 늘어놓습니다. 드물게 범죄자가 아닌 이단이 교리의 허점을 지적하는 경우는 있지만 사도님의 말씀처럼 구체적인 이론을 정립한 사람은 지금까지는 본 적이 없습니다.”

교리를 어기는 게 곧바로 반사회적인 행동이 된다는 뜻인가. 천 년··· 10세기에 가톨릭 교회가 뭘 하고 있었더라. 십자군 전쟁? 무슨무슨 공의회? 설마 마녀사냥인가? 그 부분도 기억이 영 흐릿했다. 좀 더 평화로운 시기였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카트리야는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는 건 제쳐 두자.

그러고 보니 종교재판을 피해 달아나면 무조건 파문이라고 했을 때 성기사들이 다들 질색했었다.

“파문당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파문당한 자는 성전 도시 및 전 대륙의 성전에서 추방당하며, 성전과 관련된 그 어떤 일자리도 가질 수 없고, 성전에서 행하는 그 어떤 의식에도 참여할 수 없습니다.”

루드비히는 기계적으로 빠르게 읊었다. 청회색 눈이 점차 차분함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사도님도 보셨다시피 이 세계의 마을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전과 관련된 일자리를 가질 수 없다면 합법적인 직업 대부분을 포기해야 합니다. 만약 파문당한 자가 사냥꾼이 되었다 치지요. 성전의 사제나 그들의 가족, 성전에 물건을 납품하는 각종 업자, 성전을 돌보는 건축가와 정원사, 그들에게 자재를 납품하는 사람, 성전을 청소하고 경비하는 사람, 성전 소유 토지에서 일하는 사람과 그 가족, 성전에서 구호품을 받는 사람, 그 누구도 파문당한 자의 사냥감을 사 주지 않을 겁니다. ‘성전과 관련된’이란 그 정도로 광범위합니다.”

카트리야는 자신이 들은 말을 곱씹어 보고는 조금 인상을 썼다.

“그럼 파문당한 사람은 생계를 어떻게 유지하죠?”

“작은 마을이라 성전이 어느 정도 자급자족을 하는 곳이라면 빈틈이 있긴 합니다. 파문당한 자를 부양해 줄 가족이 있는 경우도 있고요. 파문당한 사람들끼리 모여 만든 마을과 길드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전의 의식에 참여할 수 없으니 공식적으로 결혼할 수는 없고, 모든 아이는 사생아가 되며, 부모형제가 죽어도 장례식에 참석하는 건 물론 무덤에도 찾아갈 수 없습니다. 무덤이 성전에 있을 테니까요. 본인이 다쳤을 때 치유 사제를 부를 수도 없겠지요. 저희 세상에서 종교가 없다는 건 그런 의미입니다.”

콘라드 추기경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덧붙였다.

“‘교회 없이는 태어날 수도 죽을 수도 없다’로군요.”

카트리야는 낮게 중얼거렸다.

간결한 말은 상당히 정확하게 핵심을 파악하고 있었다. 눈치로 ‘교회’가 ‘성전’의 의미라는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카트리야는 질문을 조금 바꾸었다.

“혹시 파문을 취소해 주는 경우는···?”

“드물지만 있습니다. 추기경단에서 특별 사면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고, 그 외에 법황 즉위나 기적의 발현 같은 큰 경사가 생겼을 때 한 번씩 희사령을 내립니다. 파문 철회 신청을 받아 심사를 거쳐 파문을 취소해 주는 거지요. 이번에도 사도 강림 기념으로 조만간 희사령을 내릴 예정이었습니다. 이 직전의 희사령은 제 법황 즉위 때였고···. 그 전 희사령도 선법황 성하의 즉위 때였던가요?”

루드비히가 기억을 더듬었다. 다시 정신을 추스른 알베르토가 중얼거렸다.

“그렇습니다. 성하 즉위식이 거의 15년 만의 희사령이었지요. 파문당했던 전직 성기사와 사제들 여러 명이 언데드 대전에 용병대로 참전한 공을 인정받아 파문을 철회 받았습니다. 성하도 기억하시지요?”

“예, 은빛 늑대 용병단에게는 큰 신세를 졌습니다.”

“···정작 그 언데드 대전 때문에 파문당한 사람들은 희사령에서 제외되었지만요.”

“···이번 희사령에는 그 사람들도 대상이 되겠지요···.”

즉, 루드비히가 법황이 되기 전 전장으로 데려갔던 동료들, 대성전에서 자라났고 전쟁에 겁먹어 달아난 젊은이들이 한꺼번에 파문 철회를 요청하리라는 뜻이었다.

조금 미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루드비히는 어깨를 움츠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돌아오겠군요. 요정의 밤이 지나고 나면 성전도 떠들썩해지겠습니다. 어머니께서 자비를 베푸시기를.” 

그게 아마 반갑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카트리야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루드비히를 보았다. 그리고 루드비히는 시선을 피하듯 창밖을 돌아보았다.

“슬슬 티타임을 끝낼 시간이군요.”

루드비히가 무엇을 보고 그렇게 판단했는지 카트리야는 알 수 없었다. 설마 해의 높이인가, 하고 따라서 바깥을 쳐다보는데 루드비히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일단 사도님의··· 종교적인 입장은, 이해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차차 있을 테니 저 역시 비브리다 예하와 같은 일을 부탁드리지요. 사도님이 불신자라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카트리야는 살짝 인상을 썼다. 루드비히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교단의 체면 문제도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허나 사도님, 사도님은 이 세계에서 이단자가 가지는 위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계시지요? 신의 사도가 불신자라고 밝혔을 때 누구에게 어떻게 이용당할 수 있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본인에게 위험합니다.”

“···위험, 한가요?”

“언데드로 강림한 불신자가 신의 사도라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 것 같으십니까.”

와, 사도가 언데드로 강림했구나? 신을 안 믿는구나? 신기하네? 그런 거?

카트리야는 무심코 대답하려다가 멈칫했다. 종교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였지. 그럼. 이 세계에 기적을 일으키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만은 흔들림 없는 사실이라고 놓았을 때···?

“···신은 이제 인간보다 언데드를 총애하겠다는 선언이라거나, 교단이 신의 뜻을 어겨서 신께서 분노하셨노라, 모두가 언데드가 될 것이다, 같은···?”

딸그락.

모두가 흠칫 놀라 돌아보았다. 겨우 정신을 차리던 알베르토가 찻잔에 손을 내밀다가 얼어붙어 있었다. 달달달 떨리는 손끝이 찻잔을 흔들어서 난 소리였다.

알베르토는 떨리는 눈으로 카트리야를 바라보았다.

“어, 어떻게 그런 무서운, 무섭, 무서··· 불경한···.”

자자, 진정하고. 콘라드 추기경이 알베르토 사제의 손에서 찻잔을 치우고 대신 찬물을 따라 주었다. 법황에게 주지 않은 찬물은 알베르토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콘라드도 소리 없이 기도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카트리야는 뺨을 긁적이며 루드비히의 눈치를 보았다.

루드비히는 도로 가면 같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제가 불신자를 얕보았군요. 저는 그냥 신의 사도께서 대성전을 적대하시리라 짐작하는 자가 있으리라는 수준밖에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참신한 발상, 새겨 두겠습니다.”

그냥 잊어 줘.

“그런 사유로.”

루드비히는 알베르토를 도로 혼절시킨 말을 조용히 덮어두고 말을 이어갔다.

“대성전을 적대하고 세력 균형을 흔들려는 자들에게 사도님은 더없이 달콤한 미끼가 될 겁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귀족이겠지요. 저는, 그리고 성전의 모든 사제들은 일부 귀족들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 지금보다는 더 가혹한 세상이리라 여깁니다. ···부디 사도님께서 상황을 직접 이해하고 판단을 내릴 정도로 적응하실 때까지는, 저희 곁에 머물러 주실 수 없겠습니까.”

아. 카트리야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세계에서도 귀족과 종교가 대립하고 있는 거였다. 점심때 일부만 둘러본 대성전의 규모를 생각하면 놀랄 일은 아니었다.

엄청난 인구가 모인 도시 하나를 통째로 사용하는 교단, 더구나 언데드에 대적할 힘을 가진 전투 인원을 총지휘하는 세력이라면 아무래도 눈엣가시로 여기는 다른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남의 트집을 잡는 데 혈안이 된 사람들. 마치···.

그만.

전생의 불쾌한 기억을 또 떠올리려는 머리를 애써 멈추고, 카트리야는 지금의 화제에 집중했다.

이곳은 대성전이다. 신을 섬기는 곳에 불신자가 신세를 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신의 사도’라는 명함이 있는데 이곳을 떠난다면 그게 더 민폐다. 사도라는 걸 숨기고 혼자서 바깥에서 살아갈 상식도 능력도 재산도 없고···.

그리고.

카트리야는 눈을 감았다. 좀비로 이 세상에 나타나서 지금까지의 시간을 빠르게 되짚어 보았다.

교구 사제 워렌··· 은 좀 수상했고, 시체애호가 놈은 역겨웠지만, 지하실을 털어간 아이들에게는 분노가 생기지 않았다. 힘들게 살다 죽은 에다는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자신을 구해주었던 성기사들은 모두 친절하고 다정했다.

누군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그저 무작정 따라갈 정도로 의심 없는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늘 친절하고 다정했던, 그리고 자신을 이해하려고 가장 노력해 주었던 사람들의 말을 의심부터 할 이유는 없다. 그들을 의심하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따라갈 필요 따위는 더더욱 없었다. 가장 다정한 사람이라도 신념 앞에서는 비열해질 수도 있지만, 다정조차 하지 않은 사람이 비열해지는 것보다는 낫다.

배신당하더라도 잃을 것도 없었다.

카트리야는 눈을 뜨고 가볍게 웃었다.

“그렇네요. 향후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겠습니다.”

그 말에 신자들은 다 같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루드비히도 다시 제대로 웃으면서 비브리다 추기경에게 눈길을 돌렸다.

“감사드립니다. 그럼, 비브리다 예하, 향후로도 사도님의 교육은 예하께서 맡아 주시는 거지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성하, 기왕 뵌 김에 허락을 받고 싶습니다만, 사도님의 교육을 어린이집에서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또 어린이집인가?

루드비히는 더 설명해 보라는 눈으로 비브리다를 바라보았다.

비브리다가 웃으며 카트리야를 돌아보았다.

“사도님. 아까 도서관에서 신앙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제게 하신 질문, 혹시 기억나십니까?”

“···음. ···클레멘트 주교구의 주교는 이름이 클레멘트인가, 였나요?”

루드비히는 이 와중에도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에, 진짜 어린이집 애들하고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카트리야는 살짝 부루퉁해진 표정으로 루드비히를 가볍게 노려보았다.

“‘티르나일’ 같은 지명도 아니고 ‘클레멘트 주교구’라 왠지 사람 이름 같길래 확인한 것뿐이에요.”

“그럼 클레멘트 주교구의 주교좌에 게오르그 대주교가 부임해 있다는 건 들으셨다는 말씀이군요?”

“예. 하지만 비종교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주교를 배정했다면 주교구가 아니라 대주교구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을 교구가 모이면 주교구가 되고 주교구가 모이면 왕국 단위의 대교구가 될 뿐이다.

종교인들은 일제히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비종교인은 조금 울컥했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다.


작가의말

저는 오래 전에 \'가톨릭서울대교구\'를 \'가톨릭 서울대 교구\'로 이해해서 서울대 근처의 서울대 신자가 많은 곳이 \'서울대 교구\'이고 연세대 교구, 이대 교구 같은 것도 있는 줄 알았습니다... \'서울 대교구\'더군요. 어쩐지 뭐가 이상하더라니.... OTL

\'야 그럼 서울 대공원은 무슨 서울대에 있는 공원이냐\'던 친구의 일침이 여전히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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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12. 먼저 다녀간 사람 (1) +2 24.11.14 36 4 11쪽
38 11. 신의 이름은 (4) +2 24.11.13 39 4 11쪽
» 11. 신의 이름은 (3) +1 24.11.11 41 4 12쪽
36 11. 신의 이름은 (2) +2 24.11.10 36 4 12쪽
35 11. 신의 이름은 (1) +6 24.11.08 45 4 11쪽
34 10. 신규 캐릭터 생성 (3) +2 24.11.06 36 4 11쪽
33 10. 신규 캐릭터 생성 (2) +2 24.11.04 43 4 11쪽
32 10. 신규 캐릭터 생성 (1) +1 24.11.03 41 5 12쪽
31 9. 대성전의 새로운 주인 (3) +2 24.11.02 39 6 13쪽
30 9. 대성전의 새로운 주인 (2) +3 24.11.01 41 6 11쪽
29 9. 대성전의 새로운 주인 (1) +2 24.10.31 45 5 11쪽
28 8. 두 번째 밤 (2) +2 24.10.30 39 5 12쪽
27 8. 두번째 밤 (1) +1 24.10.29 35 5 11쪽
26 7. 폭풍 전야 (3) +2 24.10.28 46 5 12쪽
25 7. 폭풍 전야 (2) +3 24.10.27 44 5 11쪽
24 7. 폭풍 전야 (1) +1 24.10.27 40 5 11쪽
23 6. 야전 병원 (4) +2 24.10.26 49 5 11쪽
22 6. 야전 병원 (3) +2 24.10.25 47 5 11쪽
21 6. 야전 병원 (2) +4 24.10.24 58 6 11쪽
20 6. 야전 병원 (1) +3 24.10.23 54 5 11쪽
19 5. 신의 아이 (5) +2 24.10.22 51 5 11쪽
18 5. 신의 아이 (4) +2 24.10.21 50 5 11쪽
17 5. 신의 아이 (3) 24.10.20 53 7 11쪽
16 5. 신의 아이 (2) +1 24.10.20 56 6 11쪽
15 5. 신의 아이 (1) 24.10.19 54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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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4. 죽은 좀비도 다시 보자 (2) 24.10.18 57 6 11쪽
12 4. 죽은 좀비도 다시 보자 (1) +2 24.10.17 62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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