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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롱뇽
작품등록일 :
2024.10.0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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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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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3. 이루지 못한 꿈 (2)

DUMMY

“응접실에서 따로 보는 게 이야기가 편하실까 했는데, 역시 회의실이 나았을까요. 일어나 앉으시지요.”

루드비히가 권해도, 알베르토가 몇 번을 달래도, 게오르그가 일어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눈을 들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면서 게오르그는 낮게 속삭였다.

“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성하, 제가 잘못했으니··· 그러니 돌려보내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언데드와 싸우지 못합니다, 그들과 싸우는 기사들도 보고 싶지 않고, 저는, 저는 못 하겠습니다. 못하겠습니다, 제발··· 제 그릇이 부족합니다, 제발, 성하···.”

메마른 어깨. 흐느낌 섞인 목소리. 넋이 나가 중얼거리는 말투.

역시 그때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전투 사제단 지원을 말려야 했다.

루드비히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창가로 다가가서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어차피 한 번은 더 보게 될 친구의 무너진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싶지는 않았다.

“언데드 발생 보고를 중간에 자른다고 해서 있는 언데드가 없어지겠습니까. 차라리 수를 불려 보고해서 지원병이라도 요청하시지. 중앙에 대주교님의 상태를 보고하려고 했던 사제들을 연금하신 것도, 역시 좀 과했지요?”

“잘못했습니다, 성하···. 차라리 죽여 주십시오. 제발 돌아가는 것만은···”

루드비히는 애원하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조용히 선고했다.

“정식 선고는 공식적으로 다시 전달할 테지만 처벌의 윤곽은 정해졌습니다. 게오르그 대주교, 대주교위를 박탈하고 사제 서임을 취하합니다. 그간 본인이 저지른 죄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남은 평생 평수사로 봉사하십시오. 크레센트 수도원에 자리를 마련하도록 조처했습니다.”

크레센트 수도원. 그 말에 게오르그의 떨림이 멈췄다.

게오르그는 천천히 눈을 들어 루드비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크레··· 센트요···?”

“수도원의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5년간 입을 여는 것을 금지합니다. 침묵 속에서 본인의 잘못을 반성하십시오. 15년간은 수도원 담장 밖으로 나오는 일 역시 허락하지 않습니다.”

“제겐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이제 와서 어찌 감히···!”

게오르그는 비명을 질렀다. 크레센트 수도원은 전 대륙의 수도원에서 영구 보존하기로 결정한 서류와 서책들을 보관하는 고문헌 수장고였다. 사제들이 온종일 낡은 문헌을 분류하고 번역하고 필사하고 제본하는 곳. 어린 시절 게오르그가 일하고 싶어 했던 곳이었다. 사제 수련을 마치고 나면 짐을 싸서 찾아갈 거라고 지도를 펼치고 흥얼거리던 곳.

전쟁이 끝난 후에는 도저히 가겠다고 입을 뗄 수 없었다. 피 묻은 손으로 다시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어 낼 자신이 없었다. 루드비히 곁에 남아 달라는 선법황의 부탁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건 연금형이 아니었다. 사면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제님이 어머니께 바칠 가치 있는 것은 그 정도 아니겠습니까.”

비꼬는 듯이 들릴 수도 있는 말이 쓸데없이 무거웠다. 몇 번이고 배신하고 실망시킨 친구는 이번에도 또 그를 수렁에서 건지려고 손을 내밀어 주었다.

알베르토가 옆에서 덧붙였다.

“그간 가로챈 언데드 관련 보고서를 파기하지 않고 정리해 두신 덕에 감형된 겁니다. 상황 수습에 도움이 되어서요. 병력이나 물자 관리 부분은 어떻게 안 됐지만···. 대교구장과 여기 치유소장님이 적극 감싸 주신 덕에 파문도 아슬아슬하게 보류했습니다. 나중에 뵐 기회 있으면 감사 인사라도 드리십시오. 연금했던 사제들에게도 따로 사죄하시고요. 묵언령이 발효되기 전에 인사를 미리 끝내시라고 따로 불렀습니다.”

“선배, 제가···”

“언데드 대전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게오르그는 다시 얼어붙었다. 얼굴에서 단번에 핏기가 빠져나갔다.

알베르토는 게오르그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았다. 새파란 눈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번엔 뒤에 남으세요. 절대로 전장에 나오지 말고. 알겠습니까.”

“······제가, 자원한 게 잘못이었습니까···. 하지만 저 말고는 모두가 출전했고, 저만, 저만 비겁하게 혼자 남을 수는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전부 전쟁에 나가는데, 저만···.”

“그 친구들은 강하거나, 강하지 못하면 비열하기라도 했습니다. 후배님은 둘 다 아니었고요. 이제 아니란 걸 알았으니, 그만하십시다.”

알베르토가 게오르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게오르그는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죄송합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제가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알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데도 서류를 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워서··· 정신이 나갔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직도, 아직도 막사에 있는 꿈을 꿉니다. 몸이 찢겨나간 기사들이 어째서 자기를 구해주지 않냐고 비명을 질러 대서···. 깨고 나면 늘 제 팔을 찾습니다···. ···이 팔도, 성하가 붙여 주셨는데···.” 

아. 그랬었지.

루드비히는 잊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게오르그의 신성력이 고갈되어서 팔을 잃게 된 기사가 반쯤 미쳐서 게오르그의 팔을 잘라 버린 날. 뒤늦게 달려가서 간신히 게오르그의 팔을 붙이다가 루드비히도 기사의 주먹을 맞았다. 치사하게 사제들끼리 자기들 부상만 먼저 치료한다고, 기사들은 죽든 말든 신경도 안 쓴다고, 악을 쓰던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같이 소리를 질렀던가, 주먹을 날렸던가, 아니면 누가 대신 패 줬던가. 셋 다였는지도 모른다. 진짜로 치유 사제 없이 너네끼리 싸워 볼 거냐고, 어디서 사제를 공격하냐고 목에 핏대를 세웠던 게 언제였더라.

흐린 기억을 더듬는 사이에도 흐느낌과 사과는 질척거리며 달라붙었다.

“그런데, 성하가 뱀파이어 로드 지원병을 요청할 때까지, 잊고 있어서···. 이제야 겨우 은혜를 갚을 기회가 왔는데, 제가 부족해서, 모든 걸 망쳐 버렸습니다···.”

“당황해서 지원병을 보내야 한다고 뛰쳐나오셨던 건 기억합니다.”

알베르토가 게오르그의 등을 가볍게 다독여주었다. 그렇다고 몇 년을 방치한 지원병이 쓸만할 리 없다. 결국 알베르토는 혼자서 야전 병원을 찾아왔었다.

한동안 흐느끼던 게오르그가 문득 중얼거렸다.

“···오는 길에 엘피에라를 봤습니다. 정문 근처에서요.”

루드비히는 몸을 살짝 돌렸다.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리게 된다.

“파문당한, 엘피에라 전직 주교 말입니까?”

“헛것을 본 줄 알았습니다. 제가 잘못 보았나 하고···. ···아뇨, 분명히 엘피에라였습니다. 대성전으로 들어올 때 눈이 마주쳤는데··· 입 모양으로 머저리, 라고···. ···금발이었지만, 엘이 맞습니다.”

훌쩍. 게오르그는 눈물을 옷소매로 닦고 루드비히를 올려다보았다.

“죄인 주제에 감히 말씀드릴 자격이 없는 건 압니다. 하지만 엘이 혹시 파문 철회를 신청하지 않으면, 아니, 신청해도 보증인이 될 고위 사제를 찾지 못하면···. 아시잖습니까, 성하. 그 성격에 이번엔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할지 모릅니다. 정말, 정말 제가 부탁드릴 자격은 없지만··· 그 친구도 구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콘라드는 혀를 차면서 술을 따랐다.

“뭐, 그러라고 있는 법황이고 너희야 원래 그랬다만은. 무슨 일만 있으면 성하한테 달려가지, 하여튼.”

“죄송합니다, 스승님···.”

게오르그는 눈을 질끈 감고 술잔을 받았다.

영빈관 안뜰의 정자는 조용했다. 원래 이렇게 조용하면 안 되는 곳이었는데. 마지막으로 대성전이나 한 바퀴 둘러보려다가 치유소에서 콘라드를 만나 끌려 나온 참이었다.

“15년이랬나? 아주 깊이 반성해라. 못난 녀석. 교단법은 모범수 감형 없는 거 알지?”

“···예···.”

“옆에서 정상이 아니라고 말을 해 주면 당장 검사를 받았어야지, 그걸 연금씩이나···. 잘하는 짓이다, 진짜.”

“죄송합니다···.”

“뱀파이어 로드가 주교좌에 침략이라도 했으면 그 죄를 어찌 감당하려고···. 아니지, 지원 묵살당한 성기사 애들 위험해질 건 생각이 안 나더냐? 전쟁에서 몇 년을 굴러 놓고, 그 꼴을 네 주교구에서 보려고?”

“제가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쯧쯧쯧. 콘라드는 혀를 차고 술잔을 단숨에 넘겼다.

그리고 문득 시선을 움직였다. 안뜰 가장자리에 서 있는 여사제를 보고 게오르그는 급히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았다. 그 모습을 힐끗 보고 콘라드는 태연히 술병을 흔들어 보였다.

“한잔하시겠습니까, 사도님?”

···어?

게오르그는 여사제를 다시 돌아보았다. 달빛 아래로 걸어 나오는 여자는 보기 드문 검은 머리였다.

“사도님도 눈 감고 귀 막은 녀석의 관할지에 강림하셔서 고생 많으셨지요? 한잔 드시지요.”

“이 몸으로는 술을 마셔본 적이 없어서 주량을 모르겠으니 사양하겠습니다.”

낮게 웃으며 대답한 여자는 빈자리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게오르그를 훑어보았다.

“클레멘트 주교구 대주교님?”

“이제 평수사로 떨어져서 저~ 멀리 있는 수도원으로 유배 갈 겁니다. 15년 동안.”

“그러신가요. 길군요.”

원망도 위로도 없는 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게오르그는 용기를 내어 신의 사도를 바라보았다. 소문과는 달리 기품 있고 멀쩡한 여자였다. 이 모습을 보자 비로소 소문에 담긴 귀족들의 악의가 느껴졌다.

교단은 아직도 이렇게나 위태롭다. 그런데 자신은 언데드가 무섭다는 이유로 무슨 짓을 해 버렸는가.

콘라드는 술잔에 달을 비추어 보며 낮게 웃었다.

“이런 소심한 녀석도 무려 전쟁에 다녀왔습니다. 놀랍지요?”

“정말 교단의 모든 인적 자원을 아낌없이 쏟아부으셨군요. 성하가 신성력만 있으면 죄다 전장에 끌고 나가시기라도 한 모양입니다?”

농담조의 대답에 게오르그는 흠칫했다.

“아니, 아닙니다, 저는 늦게나마 자원했습니다. 제가··· 저희 동기들이, 다들 전쟁에 나가서··· 그래서···.”

게오르그는 고개를 숙였다. 혼자 겁쟁이로 비치고 싶지 않았다. 아는 사람 모두가 몇 번이고 만류했는데 괜찮다고 우겨서 기어이 전장에 나섰다.

사도는 콘라드에게 미소를 지었다.

“보세요, 예하. 어머니께서 진짜 자비로우시다면 이런 분까지 동원되기 전에 전쟁을 끝내주지 않았겠어요? 애초에 전쟁을 시작하지 않거나. 그렇게 자비로운 분은 아니라니깐요.”

콘라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게오르그는 다시 떨려오는 손으로 술잔을 잡았다.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전장에서 신을 얼마나 원망했었던가. 어째서 언데드를 이 땅에서 쓸어 버리지 않느냐고, 하다못해 어째서 우리 모두에게 루드비히만한 힘을 베풀지 않으셨냐고, 피눈물을 삼켰다.

하지만.

전장에서 겁에 질려 하얗게 지새운 시간과 종전 후 밤과 죽음의 그림자에 흠칫거리며 보낸 시간이 쌓여서 지금에야 이해가 되는 것도 있었다. 법황의 지원병 요청을 받고서야 뒤늦게 보인 답이 있었다.

약하기 때문에 찾을 수 있는 답이, 그동안 계속 눈앞에 있었는데.

“어머니는 자비로우십니다···.”

게오르그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분은··· 루드비히를 보내 저희의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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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67 성잔화
    작성일
    24.11.18 14:24
    No. 1

    그러고보니 종교 우스갯소리로 홍수가 나서 구조대가 왔는데 신이 구해주실거라고 구조대 무시하다가 죽은 종교인이 있는데 죽어서 신을 대면해서 항의하니까 구조대 보내줬잖아 라는 대꾸가 돌아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요.
    이 편 내용 보니까 갑자기 생각나네요.

    왜 개판 쳤나 했더니 전쟁 후유증 때문이었군...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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