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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롱뇽
작품등록일 :
2024.10.01 14:16
최근연재일 :
2025.02.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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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0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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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5. 첫인상의 중요성 (2)

DUMMY

“베일이 있으니까 끝날 때까지 기다릴게요.”

그리고 말인데요. 카트리야가 덧붙이는 말을 듣고 루드비히는 잠깐 입가에 주먹을 대고 고민했다. 그리고 나직이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짧게 고개를 끄덕이자 루드비히는 손짓해서 알베르토를 불러 지시를 속삭였다. 알베르토는 한순간 놀란 눈으로 카트리야를 보았다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카트리야는 베일 너머로 귀족 남자들이 있는 자리를 보았다. 조금 무섭기는 했다. 적을 만들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와 싸우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싸움을 피하느라 얕보이면 결국 절벽에서 떠밀려야 한다는 건 지난 생에서 배웠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아야 하는 때도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니 저항할 수 있는 수단과 기력 모두 있을 때는 조금은 저항해 놓도록 하자.


성가 합창이 끝나고 신에게 감사 예물을 바치고 기도를 올렸다. 이제 법황과 추기경들이 사제용 출입문으로 퇴장하면 끝이었다. 신도들이 예배 동안 내려놓았던 짐을 챙기느라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이로써 사도 강림 기념 특별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퇴장은 사도님부터 시작하겠사오니 잠시 자리에 머물러 주시겠습니까.”

평소와는 다른 인사말에 신도들이 동작을 멈추었다.

사제석에 앉아 있던 신의 사도가 몸을 일으켰다. 베일을 쓴 채로 사제석을 내려와서 법황이 내민 팔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법황은 제단에서 신도석으로 내려오는 계단을 밟았다.

법황과 나란히 신도석 중앙 통로로 들어서는 신의 사도를 보고 사람들은 한순간 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신의 사도께서 통로로 퇴장하실 건가 봐! 우리 앞으로 지나가신대! 법황 성하도 같이! 세상에, 이게 웬일이야!

기쁨 섞인 속삭임은 빠르게 대성전에 퍼져나갔다. 제단에 선 모습을 멀리서 볼 수밖에 없었던 뒷자리 사람들은 기대하지 않았던 행사에 흥분했다. 저도 모르게 통로로 몸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법황 친위대가 막아섰다.

옆 사람 밀치지 마십시오, 2층 난간에 기대지 마십시오. 여기저기서 경고가 오갔다.

신의 사도는 귀족석을 지나친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얼굴을 가리고 있던 베일을 다시 젖혔다.

평민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순간 싸늘해진 귀족석의 분위기를 덮을 만한 함성이었다. 법황과 사도의 뒤를 따르던 추기경들은 표정 관리에 실패하지 않았다.

카트리야는 돌아보지 않았다. 귀족들에게는 굳이 얼굴을 다시 보이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는 분명하게 전해졌을 것이다. 귀족들도 먼저 실수한 게 있으니 이 정도에서 완전히 돌아서지는 않기를. 만만해 보이지만 않을 수 있다면, 아까의 불편함과 분노를 장작 삼아 이 정도 기력은 낼 수 있었다.


탕, 탕, 탕.

본당 입장에는 실패했지만 떠나기도 아쉬워서 대성전 본당 바깥에 모여 있던 구경꾼들은 낯선 소리에 시선을 모았다. 거대한 정문 앞에 선 푸른 머리의 주교가 정문의 장식에 망치인가 뭔가를 부딪쳐서 둔탁한 소리를 낸 참이었다. 주교의 신호가 끝나자 정문이 천천히 열렸다.

예배가 끝났나 싶어 가까이 가던 사람들은 일제히 헉, 하고 숨을 삼켰다.

새하얀 예복을 입은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핏 보면 결혼식을 올린 부부 같은 모양새지만, 화려한 은발의 미남이 누구인지 못 알아볼 사람은 없었다. 그 남자가 정중하게 에스코트하고 추기경들이 줄을 서서 따라 나오는 여자가 누구일지 모를 사람도 없었다.

“사도님이다!”

“저 사람이 신의 사도인가 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본당으로 몰려갔다.

법황의 친위대가 열심히 길을 터주는 사이로 신의 사도는 차분하게 걸음을 옮겼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눈인사를 해 주는 모습이 제법 우아했다. 

“이야, 듣던 대로 미인이시네.”

대성전의 정문 옆 벽에 기대어 서 있던 금발의 여자 용병이 중얼거렸다. 저 법황 옆에 나란히 서 있는데도 크게 묻히지 않을 정도로는 미인이다. 선입견 때문인지 사람이 착해 보이기도 했다. 호구 잡히기 쉬운 인상이다.

“와, 불경한 거 보소. 신의 사도님인데 얼굴부터 평가?”

곁으로 다가오던 용병이 헛웃음을 지었다. 금발 여자는 낮게 웃었다.

“얼굴 말고 확인할 게 뭐가 남았다고. 아, 물론 이 미천한 평민들 앞에 직접 나타나 주실 정도로 배짱 있다는 정보는 못 들었지만?”

용병은 예식 때 벌어진 신경전을 빠르게 요약해 주었다. 여자의 얼굴에 조금 살벌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여간 귀족 새끼들···. 남의 잔치에 왔으면 닥치고 박수나 칠 것이지 매번 깝죽거려. 낄 데 빠질 데 구분을 못 하네.”

두 용병이 조용히 대화하는 사이에도 신의 사도는 차분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법황이 정문으로 퇴장할 때, 성전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경우에는 대성전 정문에서 방향을 틀어 접객소 건물로 들어가서 행렬을 끝낸다. 추기경 일행과 구름 같은 구경꾼을 달고 있는 이 행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금발 용병은 사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밝은 초록색의 눈에 살짝 황금빛이 섞이더니 혀를 내밀어 입술을 살짝 적셨다.

“그래··· 우리 사도님은 빡치면 행동력도 생기는 분이란 거지? 좋은데?”

“잠시만, 엘, 우리 지금 거리가···.”

사도 옆의 법황 친위대, 그 너머의 구경꾼들 때문에 시야가 좋지 않기는 하지만 행렬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서 불안해진 남자가 슬그머니 여자의 팔을 잡아끌었지만, 여자는 웃으면서 사도의 행렬만 바라보았다.

“신이 직접 빚은 몸이라더니··· 와, 나 좀 흥분되는 것 같아. 어쩌지? 저 살 한번만 만져 보면 안 되나?”

집요하게 핥는 듯한 눈길을 느꼈을까. 신의 사도가 문득 군중 너머로 그들 쪽을 돌아보았다.

경계를 품은 맑은 갈색 눈동자는 여자 용병을 발견하고는 의문으로 바뀌었다. 방금 매우 불순한 눈빛이 느껴졌는데 착각인가? 하고 말하는 듯한 표정에 용병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옆으로 시선을 미끄러뜨렸다. 법황은 눈을 의심하는 듯이 얼어붙어 있었다. 안녕, 하고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법황은 무심코 그들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딴 데를 보고 있던 사도의 머리가 법황의 가슴에 부딪혔다.

아이고! 저런!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법황이 급히 사도의 베일을 정리해 주었다.

그사이 용병은 여자를 붙잡고 대성전의 정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늦게라도 신의 사도를 보려고 모여드는 인파를 헤치고 으슥한 골목길로 숨어든 뒤에야 남자는 겨우 숨을 돌렸다.

“엘, 이 미친 인간아, 거기서 인사가 나오냐?! 파문당한 인간이 대성전에 와 있다고 아주 광고를 한다, 진짜!”

“에드윈 하는 꼴 보면 어차피 알고 있을 텐데, 뭐. 지금은 사도님한테 붙어 있느라 법황이든 친위대든 쫓아오진 못하지. 말했잖아, 오히려 오늘이 안전하다고.”

여자는 고양이처럼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며 웃었다. 남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진짜 이해가 안 가···. 성도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규칙은 무시하면서 본당에는 또 안 들어가시겠고, 그러면서 사도는 직접 보고 싶다니.”

“사도는 내 눈으로 확인을 해야 한다니깐. 좀비인지 인간인지. 와, 근데 좀비는 아니지만 인간도 아니네. 나 저런 거 처음 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신성력에 잠겨 있는 수준인데 바깥으로 튀는 건 아무것도 없어. 무슨 신성력 없는 사람처럼. 저 엄청난 걸 몸에서 소화하는 게 가능한가? 성기사도 저렇게까진 못하겠는데.”

“성하가 옆에 계신데 어련히 확인했겠지.”

“네가 몰라서 그래, 루드비히 쟨 좀비여도 눈감아 줄 수도 있다니깐. 게오르그 봐, 그거 결국 얌전히 수도원에 보냈잖아.”

“서임 취소에 5년 묵언령, 15년 연금형이면 충분히 중벌 같은데?”

“나 같으면 팔 하나 자르고 시작했다. 그 머저리 뭐가 귀엽다고 봐주고 앉았어. 루드비히 저 멍청이.”

남자는 사색이 되어 엘의 입을 틀어막았다.

“너, 너 제발, 입 좀 다물자, 응? 법황 모독죄로 잡혀갈 거면 혼자 가, 난 데려가지 말고!”

엘은 낮게 웃고 자기 입을 막은 남자의 손바닥을 혀로 끈적하게 핥았다. 남자의 얼굴이 대번에 붉게 달아올랐다. 엘의 손가락이 남자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내 비싼 입은 다른 걸로 막아 주면 좋겠어. 며칠 얌전히 숨어 있어야겠는데, 어떻게, 자기 집으로 갈까? 아니면 내 숙소로 올래?”

“···그럼, 우리 집···”

“앗, 아니다! 루디가 자기 얼굴 봤으니까 자기 집도 털리겠지? 우리 폴한테 신세 지자!”

“······뭐? 내가 털려?!”

엘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골목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색이 된 남자를 꼬리에 달고 성큼성큼 직공소를 걸어가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은 평화롭고 활기찼다. 여자한테 안절부절못하는 루드비히를 보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파문만 당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더 즐거웠을 텐데 아깝기도 하지.

그래도 어머니께서는 이런 재미를 놓치지 않게 안배해 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사람들 앞에 나섰던 긴장을 푸느라 카트리야는 방구석에 며칠 처박혀 있었다. 그게 걱정이 되었는지 루치아는 직공소를 구경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곧 ‘요정의 밤’이 다가와서 아기자기한 새 상품을 많이 만드는데 사람들은 도시 상점가로 나갈 때라 통행인이 적다고 했다.

대성전 후문의 어린이집을 넘어가면 직공소 거리, 공방 구역이었다. 대장간과 가죽 공방 정도는 빠르게 지나쳤지만 밀랍 공방, 염색 공방, 목공 공방처럼 작고 섬세한 물건을 만드는 곳이 나오기 시작하자 카트리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온갖 재료로 만든 요정 모양의 미완성 장식품이 사방팔방에 널려 있는 광경은 꽤 장관이었다.

대성전의 벽을 반쯤 돌았을 때 방직 공방이 나타났다.

헤이즐이 얇은 무지개색 천이 널린 마당을 헤치고 공방의 작업실 문을 열었다. 문 앞에서 졸고 있던 수습 아이가 재빨리 튕겨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찾으셨습니까, 기사님?”

자다 깬 것치고는 눈썰미가 좋았다.

카트리야는 채광에 신경은 썼지만 바깥보다는 조금 어두운 작업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아이를 향해 살짝 몸을 숙였다.

“안녕하세요. 이곳에서 만든 베일을 선물 받았는데, 비슷한 걸 또 만들 수 있나 해서 찾아왔어요. 혹시 베일을 만든 분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카트리야의 베일을 힐끗 본 수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는 급히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성호를 그으며 고개를 숙였다.

“신의 사도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왜 벌써 들켰지, 하고 당황하는데 아이가 급히 설명했다.

“그, 사도님의 베일은, 법황 성하께서 직접 주문해주신 거라, 저희 조합장님하고 수석 방직공께서 만드셨습니다! 보석공예 조합에서 보석을 받아서, 최고급 실크 합사하고 면사를 쓰고, 덥지 않으시게 리넨도 섞고, 성호도 넣었습니다!”

특수 주문제작품의 위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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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23. 울지 않는 아이 (5) +1 25.01.31 19 4 11쪽
88 23. 울지 않는 아이 (4) +2 25.01.30 19 4 11쪽
87 23. 울지 않는 아이 (3) +2 25.01.29 20 4 11쪽
86 23. 울지 않는 아이 (2) +2 25.01.27 18 4 11쪽
85 23. 울지 않는 아이 (1) +2 25.01.26 22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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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22. 밟으면 꿈틀하기를 (2) +2 25.01.20 24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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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21. 불행의 편지 (2) +2 25.01.15 25 4 11쪽
78 21. 불행의 편지 (1) +2 25.01.13 24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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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20.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3) +2 25.01.10 28 4 11쪽
75 20.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2) +2 25.01.08 2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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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19. 믿음은 시련으로 강해지는가 (3) +1 25.01.01 29 4 11쪽
70 19. 믿음은 시련으로 강해지는가 (2) +2 24.12.30 29 4 11쪽
69 19. 믿음은 시련으로 강해지는가 (1) +2 24.12.29 26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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