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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롱뇽
작품등록일 :
2024.10.01 14:16
최근연재일 :
2025.02.1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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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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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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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7. 요정의 밤 (3)

DUMMY

카트리야는 바구니 가득한 자신의 쿠키를 내려다보았다. 더 필요하면 언제든 오라던 요리사의 말도 떠올랐다.

바구니를 아이들에게 슬쩍 내밀자 아이들은 손가락을 입에 물고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카트리야는 손가락 하나를 세우고 쿠키를 가리켜 보였다. 옆에 있던 루치아가 해석해 주었다.

“예쁜 거 하나씩 가져가래.”

아이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진짜?”

“가져도 돼요?”

끄덕.

“고맙습니다!”

입을 모아 인사를 하고 아이들은 바구니에 머리를 처박았다. 한참 열심히 고민하다가 결국 둘 다 토끼를 골라잡았다.

담장 오르기와 술래잡기 사이의 무언가를 하던 다른 아이들도 좋겠다, 부럽다, 하고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쿠키 하나씩 가져가도 된다고 전해 주시겠어요?”

카트리야가 조그맣게 말하자 루치아가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전달해 주었다.

아이들은 재빨리 모여서 줄을 섰다. 난간에서 춤을 추던 올리버와 다른 아이들까지도 얌전히 줄에 합류한 덕분에 어린이집 사제들도 한숨을 돌렸다. 아이들이 한 차례 지나가자 쿠키는 딱 2개 남았다. 가장 어린 두 아이를 불러 하나씩 더 쥐여 주자 세상을 가진 것처럼 기뻐했다.

샐비어가 텅 빈 바구니를 보고 웃었다.

“저런, 주방에 들러서 한 번 더 받아와야겠네요?”

“지금 받아오면 또 애들이 욕심낼 테니까 내려가는 길에 받아 가죠. 사도님도 요정은 보셔야 하니까.”

헤이즐이 덧붙였다.

카트리야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에다의 집에서 잼을 훔쳐 갔던 자매를 떠올렸다. 이름이 메그와 베스였던가.

그 아이들도 지금 이 땅 어딘가에서 쿠키를 들고 요정을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 생전의 에다를 유일하게 사람 취급 해 준 게 그 아이들이었을 테니까. 그리고 에다가 사라진 지금, 그 마을에서 가장 약한 존재가 된 소녀들을 부모가 무사히 보호해 주면 좋겠다. 자식에게 빈집털이를 시키는 선에서 멈출 줄 알기를.

아직 내 눈앞에서 그늘 한 점 없이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까지는 보고 싶지 않지만 어딘가에서는 잘 지내기를 바라는, 딱 그 정도의 섭섭함이 남아 있었다.

“드디어 여름인가. 올봄은 진짜 길었네.”

루치아가 붉게 퍼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절절하게 중얼거렸다.

그 순간 종이 울렸다.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을이 푸르게 저물어가는 하늘에 중후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종소리가 겹쳐졌다. 조금 더 높고 차분한 소리였다. 처음 울린 종과는 다른 방향이다.

세 번째 종소리는 조금 더 낮지만 얕게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네 번째 종소리는 가장 높고 맑았다.

그리고 작은 종 여러 개가 동시에 울려 그 여운을 받치면서, 마지막 종이 낮고 다정하게 울렸다.

대성전의 다섯 종탑이 일제히 노래하기 시작했다. 높고 낮은 소리가 화음을 이루면서 자아낸 노래가 도시 전체에 울려 퍼졌다.

카트리야는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대성당의 노래’다.

큰 성당이 종을 여러 개 소유하고 그것을 마음껏 울리던 시절, 종지기들이 서로의 경험과 귀를 의지하여 박자를 맞추어 줄을 당겨 종으로 연주했다는 노래. 누군가는 천사들의 합창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성당의 노래라고 불렀던 음악이다.

여러 음을 내는 종을 갖춘 성당과 그 종을 다루는 데 익숙한 종지기가 필요하다 보니 현대에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만큼이나 듣기 힘든 음악이었다. 이 세계에서도 1년에 몇 번 없는 행사일 것이다. 동영상으로만 구경했던 진귀한 노래를 지금, 이곳, 다른 세계에서 듣게 될 줄이야.

옥상의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나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옥상 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까딱이면서, 난간 벽에 나란히 기대어 목청껏, 춤을 추면서 경쾌하게. 양손에 쥔 쿠키를 흔들면서 부르는 엉망진창인 노래가 마치 새들이 지저귀는 것처럼 귀여웠다.

대성전의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새로운 계절의 시작을 축복하는 노래였다. 지상까지는 들리지 않을, 오직 천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

카트리야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세계의 신이여. 부디 당신도 이 노래를 듣고 있기를.

당신의 아이들은 이렇게나 당신을 사랑하니까, 그러니 당신도 이 아이들이 웃음을 잃지 않고 노래를 잊지 않고 자라나도록 지켜 주시기를.


주방에 들러 다시 쿠키를 한 바구니 받아서 이번에는 대성전의 성소로 향했다. ‘사도의 요정 체험’을 위해 특별히 성소를 개방했다더니 카트리야가 평소 만나기 힘든 젊은 사제나 기사들도 여럿 모여 있었다. 목적은 성소 구경이 절반, 요정 구경이 절반일 거라고 샐비어가 설명해 주었다.

흐릿한 기억대로 성소는 숲속의 작은 샘터처럼 보였다. 카트리야는 구석의 제단에서 서 있던 것부터 기억하는데, 다른 사람들의 말로는 저 샘에서 자신의 몸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딱히 반갑지는 않았지만 ‘내가 생겨난 곳’을 보자 기분이 좀 묘했다.

오늘은 성소 여기저기에 앉을 자리를 만들고 등불도 밝혀 두었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안쪽의 상석에 도착하자 먼저 와 있던 루드비히가 일어나서 쿠키 바구니를 받아 주었다. 푸른 눈은 알록달록한 쿠키를 보고 미소를 머금었다.

“대성전 요리사들이 솜씨가 좋아졌군요. 제가 신학교 다닐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다람쥐 모양 쿠키를 하나 집어 들어서 등불에 비추어 살펴본다.

법황이 신학교 다니던 시절이면 20년··· 15년 전? 일 텐데 그때의 요리사들이 그대로 일하고 있는 것일까.

“오오, 그러고 보니 확실히 모양새가 나아졌습니다.”

“맛도 모양만큼 괜찮으면 좋을 텐데···.”

추기경들이 슬금슬금 모여들더니 쿠키를 하나씩 집어 가서 바구니는 또다시 반쯤 비어 버렸다.

카트리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몇 걸음 떨어진 곳의 테이블에 천을 덮어씌운 새장 같은 물건이 있었다. 카트리야의 눈길이 향한 곳을 보고 루드비히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알베르토 말로는 사도님이 저한테 주시는 선물이라고 하던데요···. 저는 무리하실 필요 없다고 분명히 말씀드렸건만···?”

부담스럽지 않으시게 작은 뱀 인형을 부탁했는데 왜 저렇게 되었습니까, 라고 루드비히의 눈이 묻고 있었다.

카트리야야말로 조금 불만이었다. 선물은 오후에야 겨우 완성했는데, 법황의 생일 행사는 점심에 추기경들하고 다 같이 식사를 한 걸로 끝이라는 게 아닌가. 심지어 법황은 오늘 새벽, 오전, 점심 예배를 전부 집전했다. 이래서는 생일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법황 탄신일이면 무도회도 열고 휘황찬란한 선물도 받고 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사제의 생일에 무도회는 좀. 선물은 접객소에 모여 있고요. 구경하고 싶으시면 로랑 예하가 보여드릴 텐데요.”

“본인이 받아서 하나하나 열어보면서 생일 분위기를 내면 좋으실 것을···.”

루드비히는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사도는 가끔은 무섭도록 예리하면서 가끔은 이렇게 순진할 때가 있다.

생일 선물은 물론 많이 온다. 하지만 사람 머리카락으로 만든 인형이나 자기를 안 만나주면 죽어버릴 거라고 피로 쓴 협박 편지를 받던 십대 시절부터 선물은 결코 공개적으로 열어보지 않고 있었다. 법황 즉위 후로는 좀 더 다양하게 무서워져서 다들 축제를 즐긴 뒤에 천천히 검사하곤 했다.

“요정의 밤이라 도시 전체가 축제니까요. 성기사들 대부분은 치안 지원에 바쁘고, 사제들은 아까 보신 타종 행사나 빈민가 구제 행사 같은 걸로 손이 모자랍니다. 오늘은 사도님이 계시니 이렇게 많이 모인 거고 보통은 추기경도 절반 가까이는 자리를 비우는 것을요.”

이미 술을 몇 잔 마신 로랑 추기경이 허허 웃으며 적당한 핑계를 대 주었다.

“이렇게 축하해주시는 분들이 계신 걸로 충분합니다.”

그래도 못마땅해 보이는 카트리야에게 루드비히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 카트리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루드비히의 옷소매를 잡았다.

“그럼 제 선물은 지금 보여 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지요.”

지난 며칠 동안 먹는 시간 자는 시간 아껴 가면서 뭘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오가면서 본 모든 사람이 입을 다물었기 때문에 고위 사제 중에는 루드비히만 자기 선물이 뭔지 모르고 있었다.

“음, 작은 인형으로는 좀 허전할 것 같아서··· 그리고 방직공 아이한테 준 것하고 똑같은 걸 드리기는 좀 민망해서,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노력해 보았습니다.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지만···.”

그새 도로 소심해진 사도는 약간 웅얼거리면서 새장의 덮개를 벗겼다.

“생일 축하드립니다, 성하.”

루드비히는 무심코 눈을 크게 떴다.

날개 달린 새하얀 뱀이 금빛으로 칠해진 사슴뿔 모양의 나무 받침대를 휘감고 있었다. 새하얀 몸통은 진주처럼 따스한 빛을 머금고 빛났다. 무지개빛 피막이 달린 날개는 가볍게 아래로 휘어져서 받침대를 살며시 감싸 안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날개가 바닥으로 처지지 않고 허공에 떠 있는 부분이 놀랍다. 나무 받침대에 턱을 얹은 얼굴은 각이 졌는데도 부드러운 인상이고 빛나는 두 눈은 반쯤 감겨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황금빛 캐츠아이를 사용한 두 눈이 웃으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새장의 성긴 창살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뱀의 몸을 쓰다듬어 보았다. 감촉마저 비단처럼 매끄러웠다. 뜨개질로 생긴 실의 흐름이 뱀의 비늘처럼 손끝에 감겨들었다.

“···아름답습니다.”

이건 명실상부한 ‘신상’이었다. 나무나 돌로 만든 신상과는 다른 온기가 느껴져서 더 좋았다.

휴우. 긴장해서 숨을 참고 있던 카트리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때 완성하셨군요, 다행입니다. 멋지게 잘 나왔네요. 저 날개 움직이는데, 만져 보시렵니까, 성하? 그러다 또 무게중심 틀어지면 미끄러질 텐데요, 놔두십시다. 저희도 이거 전시하면서 헌금 받아보면 안 될까요?

중간 과정을 구경했던 추기경들이 모여서 한마디씩 얹었다.

다른 사제들도 편히 보라고 비켜서는데, 카트리야가 작은 주머니를 슬쩍 건네주었다.

“성소에는 이걸 넣으시면 될 거예요.”

주머니를 열어 본 루드비히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손바닥 두 개 정도 길이의 작고 동그란 뱀 인형이었다. 날개는 달려 있지만 이건 그냥 달려만 있다. 몇 번 주물러 보니 동그랗게 또아리를 틀게 되어 있었다.

“이런 것까지 배려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커다란 뱀은 아름답긴 하지만 진짜로 어딘가에 전시해야 할 것 같은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은 뱀은 정말로 개인적인 선물이었다. 이걸로도 충분했을 텐데.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실수한 곳도 있긴 한데···.”

“마음에 듭니다. 정말로요.”

아직 걱정이 남은 듯한 카트리야의 말을 부드럽게 잘랐다. 잠시 루드비히의 얼굴을 쳐다본 뒤, 진심이라는 걸 이해하고 카트리야도 미소를 지었다.

때마침 빛이 쏟아져 나왔다. 요정들이었다.

숲에서 나타난 날개 달린 작은 인간들은 빛을 흩뿌리면서 쿠키 바구니에, 그리고 카트리야에게 달라붙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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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67 성잔화
    작성일
    24.12.16 14:21
    No. 1

    와우 예술 작품을 만들어놨네.
    신의 사도가 빚은 신의 형상이니 성상이라고 해도 되고 ㅋㅋㅋ
    아 작은 말랑떡 인형 따로 주는것도 너무 귀엽네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4 n7******..
    작성일
    24.12.16 14:53
    No. 2

    아니야 성소에 작은 거 넣으란 거야 ㅋ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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