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수 아래에는 시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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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롱뇽
작품등록일 :
2024.10.01 14:16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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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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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탕녀 엘피에라 (1)

DUMMY

“오냐. 먹성 좋은 아들놈 때문에 내가 아주 등골이 휜다.”

에드윈이 재미있다고 웃는 와중에 거리 한쪽이 좀 소란스러워졌다. 루드비히는 반사적으로 허리의 검에 손을 얹으면서 돌아보았다.

축제 인파를 헤치고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 새까만 개가 있었다. 그 개는 일직선으로 카트리야를 향해 달려갔다.

“으아아, 가지 마아~~!! 쿠키~~~!!”

애절한 비명이 조금 낯익다.

그리고 카트리야는 눈앞까지 달려온 검은 개에게 손가락을 세우며 단호하게 소리쳤다.

“쿠키, 앉아!”

착.

잘 훈련된 군견은 재깍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여전히 혀를 내밀고 꼬리를 흔들고 있지만. 멍, 하고 작게 짖은 건 상을 조르는 건지도 모른다.

카트리야가 주먹을 꾹 쥐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승리감을 만끽하는 모양이다. 치대면 다 받아주더니만 그냥 말을 못 해서 말리지 못했던 걸까···.

에드윈이 뽑아 들었던 단검을 도로 소매 속에 집어넣었다.

코린이 헉헉거리면서 쿠키를 따라잡았다. 바닥에 끌린 목줄을 집어 들었다. 정신없이 뭐라 뭐라 변명을 하다가 고개를 들고 샐비어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란다.

제이크까지 달려와서 무사히 합류했다. 코린이 일행을 돌아보다가 쿠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카트리야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뭔가 말하려는 것을 양옆에서 제이크와 헤이즐이 입을 틀어막았다. 호칭 조심하라고 윽박지르고 있을 목소리가 귀에 선했다.

루드비히와 에드윈은 조금 웃어 버렸다.

“개 주인 쪽은 이름이··· 코린이던가? 딱 수습이네. 나이도 그렇고 하는 짓도 그렇고.”

“좀 덤벙거리긴 하는데 가르칠 만은 해. 첩보 쪽은 무리겠지만.”

“오, 뭐야, 직접 얘기해 본 적도 있어?”

“저번에 손가락 날려 먹어서 고쳐 줬거든. 첫 실전이었다는데 손가락 잘렸다고 날뛰지도 않았고, 치료 순서 기다리면서 잡일도 바지런히 하고. 수습이 그 정도면 충분하지.”

그렇군. 서류로만 오늘 인원을 확인한 에드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이크가 일행에게 과일 주스를 나눠 주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았다.

“···저거 맛있나? 저쪽 가고 나면 우리도 먹자.”

“놀러 나왔냐?”

“놀러 나왔으면 시커먼··· 아니지, 새하얀 사내놈이랑 놀러 나왔을까. 여자랑 나왔지.”

에드윈이 주먹을 풀면서 조금 서늘한 눈으로 거리를 훑어보았다.

“분명히 오늘은 나타날 거야. 걔가 사도님한테 이 거리에서 접근할 기회를 날릴 리가 없어. 그러니까 우린 엘이 나타나면 바로 붙잡은 다음, 도망 못 치게 다리부터 부러뜨리는 거다. 알겠지?”

루드비히는 갈색으로 바뀐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짧게 기도를 올렸다.

부디 제게 제 동기들을 걷어차지 않을 인내심을 허락해 주시옵고, 이놈이 정말로 남의 다리를 부러뜨리겠다고 덤비지 않게 해 주시옵고, 엘피에라도 이놈의 척추를 박살 내지 않게 해 주시기를. 어차피 치료는 다 제가 해야 합니다···.


전대 사도가 단골이었다는 꼬치구이 집 안쪽, 두 번째로 큰 방.

원래 20명 넘는 대인원을 수용하는 방에 고작 6명과 개 한 마리가 자리를 잡았다. 방음이 적당히 되는 방 중에 외부 접근이 제일 어려운 방이라는 이유였다. 테이블도 자신들이 쓸 것만 남겨놓고 싹 치우게 했다. 대신 안주와 술은 개중 제일 비싼 걸로 넉넉하게 시켰기 때문에 가게에서도 불만은 없었다.

안주를 바로바로 구울 수 있게 화로를 얹어준 다음 종업원들은 물러났다.

제이크와 코린에게 세계수를 구경시켜 주는 순서가 찾아왔다. 남자들은 카트리야 뒤쪽에 나란히 서서 입을 벌리고 머리카락을 구경했다.

“와··· 이게 세계수···.”

“진짜 나뭇잎이··· 움직이네요···.”

코린은 카트리야에게 자꾸만 치대는 쿠키를 붙잡으면서 조금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물었다.

“이거 계속 자라요? 그럼 다시 좀비 되시는 거예요?”

세계수가 뇌로 뿌리를 뻗는다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럴 낌새는 없었다. 카트리야는 뺨을 긁적였다.

“···아마 아닐 것 같은데··· 전례가 없는 일이라 어떻게 될지는 추기경 예하들도 다들 모르신다고···?”

“일단 머리카락 말고 다른 신체 부위에는 변화가 없거든요?”

루치아가 안주로 나온 육포를 잘게 찢으면서 느긋하게 말했다.

“잎도 더 늘지는 않고, 크기도 안 커지고··· 그러니까 이제 자랄 만큼 자란 거 아닐까?”

다 자란 뒤엔 몸으로도 퍼지는 게 아닐까 하고 나무껍질이나 잎이 생기지 않는지 꼼꼼히 체크하고 있지만, 몸은 여전히 인간의 몸이었다.

“진짜로 뭘 먹고 자란 걸까요, 세계수는···?”

샐비어가 고개를 갸웃하며 세계수 잎을 건드리는 시늉을 했다. 이쪽은 황송하다고 직접 손을 대지는 않는 편이었다.

“제 식사량이 늘지도 않고, 햇빛을 안 받거나 너무 받아도 괜찮고, 물을 적시든 말든 변화는 없고···. 마력은 주입하면 튕겨 내고 마법으로 공격하면 결계가 있는 것처럼 막혀 버려서 일단 영향이 아예 없는 수준 같아요.”

카트리야가 손을 꼽아 가면서 그간 확인해 본 결과를 알려 주었다. 헤이즐이 루치아가 찢은 육포를 화로 위의 접시에 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호위들끼리도 오며 가며 정보 전달을 해서 대충 아는 내용들이었다. 

“솔직히 외모 변화 아티팩트까지 튕겨낼 줄은 몰랐지만요.”

카트리야의 얼굴로 시선이 모였다. 자세히 보면 원래 얼굴의 느낌이 남아 있긴 하지만 얼핏 봐서는 못 알아볼 만한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원래는 얼굴 모양에 머리색까지 다 바뀐다는 신기한 아이템인데 머리카락은 그대로 남았다.

“신성력하고 마력은 원래 좀 반발이 있기는 하지만···. 진짜 신기하네요···.”

제이크는 감탄하면서 슬그머니 머리카락의 잎사귀를 건드려 보았다. 잎은 제이크의 손을 피해서 다른 곳에서 다시 돋아났다.

“신성력하고 인구 밀도가 미치는 영향도 파악해 보고 싶긴 한데, 그걸 확인하려면 제가 도시 밖으로 며칠 나가야 하거든요.”

루드비히도 추기경들도 호위를 좀 더 보강하기 전엔 위험하다고 말렸다.

카트리야는 아티팩트 팔찌를 벗어서 품속의 주머니에 고이 넣고, 잔을 들어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 넘겼다. 맥주보다는 루드비히가 주는 증류주 쪽이 더 취향이지만, 이쪽도 보리 맛이 진해서 나쁘지 않았다. 꼬치구이도 신선하고 맛있다.

“저번에 켈보른 백작 영식? 그게 시비 걸었을 때 나뭇잎 하나 떨어졌다면서요. 그건 다시 났죠?”

제이크가 자리에 앉아 의자를 당기면서 물어보았다. 루치아가 육포를 뒤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났지요. 비브리다 예하 말로는 잎이 딱 27개라 완전수를 맞춘 것 같다고요.”

제이크는 그간 꽤 빡빡한 교대 파견 근무에 시달린 동료들에게 시중에 떠도는 웃긴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백작 부부 얘기 들으셨어요? 떨어진 잎 다시 났으니까 세계수에 위해를 가했다는 죄목은 없애 달라고 매달렸다는 거.”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렇게 치면 칼로 사람 찔러도 사제가 치료만 해 주면 상해죄 안 받겠다.”

“사도님한테는 아들 혀만 자르지 말아 달라고 싹싹 빌면서 기부금 갖다 바쳤잖아요? 그래서 켈보른 소백작, 그러니까 그 영식네 큰형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난리도 아니었대요. 어디 집적거릴 여자가 없어서 감히 신의 사도한테까지 수작질이냐, 언제까지 우리 가문에서 뒤치다꺼리해 줘야 하느냐, 하고. 그래서 조만간 외국 친척한테 보낸다는데요?”

“아, 난 소백작 마음 이해해. 걔 그 나이 먹고 집에 빌붙어 지냈다며. 자기는 마력 약해서 직업 찾기 힘들다고 핑계 대면서.”

“하는 일이라곤 높은 귀족들 따라다니고 술 먹고 여자 건드리는 짓밖에 없는데 형님이야 속 터졌겠죠. 조만간 작위 계승할 예정이었다던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이참에 손 끊어둬야 큰 탈 안 나지. 외국에서 또 얼마나 큰 사고를 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코린 넌 잘하는 편이야. 그러니까 많이 먹어라.”

헤이즐이 코린 앞으로 꼬치 접시를 밀어주었다. 코린이 조금 입술을 삐죽였다.

“맨날 덤벙대지 말라고 혼만 내시면서···.”

“굶고 혼날래, 먹고 혼날래.”

“잘 먹겠습니다!”

혼나지 않는 선택지는 없는 건가. 없겠지, 수습인데.

카트리야도 슬그머니 코린 앞에 고기를 놓아주었다.


“저희 세계에선 화장실을 친구랑 같이 가는 건 어릴 때 끝내는 습관인데 말이죠.”

젖은 손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카트리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루치아가 짧은 봉을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면서 웃었다.

“그나마 여기는 화장실 따로 쓰니까 저만 온 거지, 다른 손님들하고 같이 쓰는 곳이면 호위 다 움직이고 수색도 철저하게 해요.”

술 마시던 방에서 문을 열고 나와 짧은 복도를 지나면 나오는 화장실이다. 복도에서 메인홀로 나가는 문은 닫아 달라고 미리 부탁해 놔서 오늘은 이 방에서만 쓰기로 되어 있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카트리야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화장실 수색이라니. 아무리 사람들이 깨끗하게 쓴다고 해도 하기 싫은 일이다. 수색하는 동안 화장실을 못 쓰는 사람들도 민폐겠지···. 칼레 추기경이 ‘다음엔 한 건물을 통째로 빌리라’고 권한 이유가 있었다.

‘귀하신 분 생활’에 적응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아득하다.

“자, 그럼 슬슬···.”

복도로 나가는 문을 열던 루치아가 바로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쾅 소리에 문을 발로 차는 소리가 겹쳐졌다. 나무 문이 순간 들썩였다.

“사도님, 제 옆으로!”

루치아가 장난으로 돌리던 봉을 털어내며 제대로 거머쥐었을 때.

복도에서 엄청난 타격음이 들렸다.

퍽퍽. 탁, 빠직, 쾅.

무언가를 두들겨 패고 부수는 듯한 소리에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짧은 고함 소리가 뒤섞였다. 카트리야는 급히 문 옆의 벽에 붙어 섰다.

소란은 크고 짧았다.

잠시 후 남자의 경쾌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끝났으니까 나오셔도 됩니다~~. 아, 화장실 앞에서 남자가 말하면 무섭나?”

···여기서 들릴 목소리가 아닌데?

“루치아. 나와도 돼.”

헤이즐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루치아는 살며시 문을 열어 바깥을 확인하고 나서야 문을 활짝 열었다.

술 마시던 방의 문은 경첩이 고장 났는지 살짝 기울어져 있었다.

복도엔 가죽옷을 입은 용병 남녀가 각각 제이크와 헤이즐에게 등을 밟힌 채 엎드려 있었다. 쿠키가 남자 용병의 발목을 물고 있다. 샐비어가 여자를, 갈색 머리의 남자가 남자를 각각 밧줄로 묶는 중이었다.

카트리야는 복도로 나오다가 순간 휘청했다. 루치아가 급히 잡아 준 뒤에야 발밑의 나무 바닥이 부서졌다는 걸 알았다. 잘 보니 벽의 벽돌도 부서진 부분이 있었다. 둔기를 가진 사람은 루치아 하나밖에 없는데 도대체 맨발 맨손들로 뭘 한 건지 모르겠다.

금발의 여자 용병이 툴툴거렸다.

“좀 살살 묶어, 자기야. 오랜만이라고 너무 격렬하다?”

“입! 그 입 좀!!”

샐비어가 질색하며 여자 용병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옆에 있던 갈색 머리의 남자가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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