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수 아래에는 시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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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롱뇽
작품등록일 :
2024.10.0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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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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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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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탕녀 엘피에라 (2)

DUMMY

갈색 머리의 낯선 남자는 포박을 끝낸 남자 용병을 방 안에 던져 넣고, 카트리야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와서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카트리야는 벽에 붙어선 회색 머리의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법황의 경호대장 에드윈이다.

다시 갈색 머리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얼굴도 목소리도 낯설지만 이 체격과 자세, 말투, 그리고 무엇보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백합 향이 익숙했다.

“성하신가요?”

남자는 한순간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기쁜 듯 미소를 지었다.

“예, 루드비히입니다.”

맞췄다! 조금 뿌듯해져서 카트리야는 늘 그랬듯 루드비히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와. 어떻게 알아보셨지?”

에드윈이 신기해하는 찰나, 바닥의 여자 용병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사랑의 힘인가!”

샐비어가 용병의 등을 세게 밟았다. 끄에엑. 억눌린 비명이 새어 나왔다.

“혓바닥이 소중하면 그쯤 하자?”

법황이 돌아보지도 않고 으르렁대듯 내뱉은 말에 그 자리의 대부분이 흠칫했다. 하지만 등을 밟힌 용병은 까르르 웃었다.

“변호 기회도 안 주려고?”

루드비히가 힐끗 돌아보았다. 갈색으로 변한 눈은 온기 한 점 없이 여자를 노려보았다.

“사람 혀가 몇 번까지 재생되는지, 해 볼까?”

···사람을 잘못 봤나?

카트리야는 슬그머니 손을 빼내고 루치아를 붙잡았다. 루치아도 조금 멍한 표정으로 루드비히를 보고 있었다.


“하여간 성질머리 급해서. 미끼만 보면 덤벼드는 건 여전하지.”

의자를 180도 돌려서 등받이를 앞으로 놓고 앉은 에드윈이 비꼬았다. 코린은 남은 안주를 안겨서 돌려보내고 성인들만 남은 자리였다.

“···그, 죄송한데 지금 상황이···?”

제이크가 싸우느라 타 버린 고기들을 마저 치우면서 조심스레 물었다. 갑자기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서 튀어 나갔다가 샐비어가 시키길래 엉겁결에 용병들을 붙잡긴 했는데, 갑자기 법황과 경호대장이 나타났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샐비어가 의자에 묶인 여자를 가리켰다.

“이쪽은 전직 주교 엘피에라. 너도 이름은 알지?”

“‘탕녀 엘피에라’요?!”

제이크가 화들짝 놀라서 돌아보았다.

루드비히가 빈 의자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고 앉으며 덧붙였다.

“저와 에드윈의 신학교 동기입니다. 언데드 대전에 참전해서 싸우다가 사고를 쳐서 파문당했지요.”

카트리야는 고개를 기울였다.

“파문당한 사람은 성도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그래서 저희가 온 겁니다. 이래봬도 꽤 유능한 전투 사제라서 잘 안 잡히거든요.”

“꽤 유능한~?! 야, 말은 똑바로 하자! 언데드 공격법 너한테 가르쳐 준 게 누군데!”

엘피에라가 재빨리 소리쳤다. 루드비히는 불량해 보이는 자세로 앉은 채 성호를 긋고 덧붙였다.

“신께서 우리에게 치유력을 주신 이상 부상 방지에도 힘을 빌려주실 거라는 놀라운 주장을 하고, 증명했지요.”

진정한 힐러는 적을 뚜까뚜까 패서 아군이 치료받을 일도 없게 만든다는 그건가···!

“성기사가 무기에 신성력을 담는 식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방법을 창안하고, 마법을 응용해서 언데드 제압술을 개발하기도 했고요.”

에드윈이 설명을 추가했다. 루치아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격투술은 성하가 만드신 게 아니었어요?”

“아니, 나도 처음엔 엘피에라였다고 들었어. 성하가 전투 센스가 더 좋기도 했고, 엘피에라는 파문당하면서 공적이 묻히는 바람에 소문이 바뀐 거야. 굳이 정정할 사람도 없었고.”

샐비어가 거들자 젊은 세 사람은 입을 다물고 서로 놀란 눈빛을 교환했다.

카트리야는 고개를 더더욱 기울여 테이블에 엎드렸다. 언데드 제압술이라는 말에 떠올린 것은 당연히 법황이 만티코어에게 쓴 황금빛 그물이었다. 그 기술을 만든 게 눈앞의 이 사람인가.

30대와 20대 사이에 이 정도로 정보 격차가 있는 것도 꽤 신기했다.

에드윈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소리 없이 무언가, 아마도 좋지 않은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발로 바닥을 탁탁 쳐서 시선을 모았다.

“엘피에라. 파문당한 사제가 허락 없이 성도에 들어온 이상 처벌은 각오하고 있겠지? 성하가 널 영구 파문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말할 기회를 한번 주겠다.”

엘피에라는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밝은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이거 즉결 종교 재판이야? 난 또 동창회인 줄?”

“엘피에라.”

샐비어가 허리에서 단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잡힌 사람은 아까부터 생글거리기만 있는데 주위 사람들의 분위기가 무서웠다.

“네가 파문은 당했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가르침에 완전히 등을 돌리지는 않은 줄 알았다. 그런데 감히 성전 도시에 발을 들인 걸로 모자라서 이젠 사도님까지 노려? 목적이 뭐지?”

“뭘까~ 요~~?”

서걱.

금발 머리가 한 타래 잘려 나갔다. 샐비어는 한층 더 서늘해진 얼굴로 단검을 고쳐 쥐었다.

헤이즐이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서 카트리야의 어깨를 건드렸다. 우린 이만 나갈까요, 하고 속삭인다.

“아니, 사도님이 나가시면 섭섭하지. 난 사도님 보러 왔는데.”

엘피에라는 그 작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빠져나가고 한 톤이 낮아지는 순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녹색 눈에 금빛 광채가 깃들면서 존재가 무거워졌다.

“···진짜로 인간하고 똑같네. 까딱하면 속겠어.”

카트리야는 엎드린 채로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인간이 아닌가요?”

“아니지. 루디가 얘기 안 해 줬어?”

뭘? 돌아보았지만 30대들은 눈 하나 까딱 않고 엘피에라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고, 20대들은 고참들 앞에서 존재감을 줄이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을 뿐이었다.

···진짜로, 저 사람이 법황을 ‘루디’라고 불러서 놀란 건 나 하나란 말인가.

녹색 눈은 카트리야의 몸을 핥아 내려갔다.

“사도님 몸, 제대로 살아 있는 게 아닌데. 세계수가 끊임없이 부활을 걸면서 부활에 쓰는 신성력도 동시 회복하는 상태··· 인가? 신기하네. 그냥 회복보다는··· 그래, 신성력 고갈에서 회복할 때랑 비슷한 것 같아. 그런데 세계수는 상태가 나쁘진 않네? 인간하고 신성력 쓰는 원리가 다른가 봐. 사도님 몸은··· 부활이 되고 있는지 아닌지 짧게 봐서는 모르겠다. 언젠가 완전히 살아날 예정이야?”

난 지금도 내가 살아 있는 줄 알았다. ver.3가 있다고 알려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야.

카트리야는 눈만 굴려서 루드비히를 올려다보았다. 엘피에라도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세계수는 몰라도, 사도님이 정상이 아니란 건 알고 있던 거지?”

루드비히는 한숨을 내쉬고는 머리를 조금 거칠게 쓸어 넘겼다. 미간의 주름이 살짝 더 깊어졌다.

“···구조는 같지만 재질이 다르다는 정도는.”

“콘라드 예하 의견은?”

“현실적으로 치료할 방법은 없고, 세계수에 이변이 생기지 않는 한 사도님에게도 무해한 모양이니 일단 두고 보자, 고.”

그럼 본인한테도 좀 알려 주시지. ···아니, 또 거름 얘기 나올까 봐 싫으셨던걸까.

“쳇, 하여간 노친네.”

엘피에라는 혀를 차고 고개를 젖혔다. 무언가를 중얼거리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일으켰다.

의자 아래로 힘없이 흘러내리는 밧줄을 보고 연장자들은 일제히 한숨과 신음을 내뱉었다.

“그래, 어째 오래 앉아 있다 싶었다···.”

“저거 잔재주만 늘어 가지고···.”

“미안, 내가 이제 몸이 갑갑하면 머리가 안 돌아가.”

엘피에라는 두 손을 들어 보인 채 방 안을 걷기 시작했다. 뭔가를 소리 없이 중얼거리면서.

헤이즐은 착실하게 카트리야와 엘피에라 사이로 자리를 바꿔 앉았다.

그걸 본 엘피에라는 웃으면서 윙크를 해 준 다음, 계속 걸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춤을 추는 것 같다.

“내가 왜 성도에 들어왔냐고 했지? 일단 사도님을 확인해 봐야 했어. 그리고 루디한테 정보를 좀 얻을 것도 있었고. 사도님한테 접근하면 동시에 처리되겠다 싶었고, 보시다시피 목적을 이뤘잖아? 역시 난 천재야.”

“난 또 왜?”

루드비히는 팔짱을 끼고 퉁명스레 물었다. 카트리야는 왠지 모를 소외감을 느끼며 고개를 조금 들어서 맥주잔에 다시 코를 박았다.

벽 끝까지 걸어간 엘피에라는 두 손을 그대로 든 채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녹색 눈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뱀파이어 로드 말고 새로 로드급 언데드가 나왔다는 보고 있었어? 서쪽에서?”

“···없어.”

“그럼 그 아래, 제너럴이나 나이트는?”

“나이트는 간간이. 제너럴은··· 아직 없을걸. 왜, 용병들 쪽에선 뭔가 잡혔어?”

엘피에라는 원래 자리로 돌아와서 자연스럽게 의자를 끌고 가서 테이블에 앉더니 빈 잔에 맥주를 따랐다. 그리고는 테이블에 발을 올리고 등을 젖혔다. 군더더기 없고 유연한 동작이 그야말로 댄서 같았다.

루드비히는 테이블에 올라온 다리를 가차 없이 걷어차 버렸다. 그래도 균형을 잃지 않은 엘피에라는 맥주 반 잔을 원샷하더니, 입가의 거품을 손끝으로 닦으면서 설명했다.

“어디 보고하기는 애매한데 우리끼리 나오는 말이 좀 있거든. 주교급한테는 물어봐도 자기 교구 바깥 정보는 잘 모르잖아.”

맥주잔을 음악을 지휘하듯이 흔들면서, 엘피에라는 말을 이었다.

“봐, 진짜 별거 아닌 소문들이 있어. 예를 들면 어떤 계곡을 지나가는 용병단의 임무 성공률이 훅 떨어졌다, 어느 늪지대를 지나가는 일행에서 꼭 실종자가 한둘 나온다. 이 정도야 사실 컨디션 따라 달라지는 거지. 그러니까 뭐 크게 소란까지 피울 건 아니잖아?”

“그런데?”

에드윈이 의자를 돌려서 다시 엘피에라의 사정권에 자리를 잡았다. 루드비히도 살짝 몸을 틀었다. 다들 자연스럽게 엘피에라의 포위망을 유지하고 있다.

카트리야는 불 위에 다시 고기를 얹으면서 엘피에라를 가만히 관찰했다.

루드비히와 동갑이니 나이는 31. 그야말로 성숙미 넘치는 여성이었다. 노련한 용병 같은 관록이 느껴지는 것도 부러웠다. 파문 사제인 걸 알면서 따라와 줄 동료도 있고. 경계는 하지만 다들 저 사람의 말을 존중하면서 귀를 기울이고 있다. 전생의 자신은 저기서 몇 년을 더 살았지만, 결코 도달하지 못했던 경지다.

역시 조금 질투가 난다. 질투할 주제도 되지 않는 건 아는데도.

카트리야가 무슨 생각을 하든 말든 일행은 계속 심각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별거 아닌데··· 감 좋은 애들이 ‘거긴 좀’이라고 발을 빼기 시작하더란 말이야. 그게 어디냐면 말이지?”

엘피에라는 지명을 몇 개 읊었다. 카트리야 외의 사람들은 일제히 기억을 더듬는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루치아가 가장 먼저 깨닫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성 루치아 가도··· 인가요?”

“정답! 루치아 사제라서 루치아 가도도 잘 아는구나! 지금은 안 쓰지만, 옛날에는 대륙 북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메인 순례길이었잖아. 대륙 서쪽··· 한 1/10 정도를 자르는 선이고?”

“우연··· 같지는 않은데···.”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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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24. 영혼이 가는 곳 (3) +2 25.02.05 20 5 11쪽
91 24. 영혼이 가는 곳 (2) +2 25.02.03 18 3 11쪽
90 24. 영혼이 가는 곳 (1) +2 25.02.02 18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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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23. 울지 않는 아이 (4) +2 25.01.30 19 4 11쪽
87 23. 울지 않는 아이 (3) +2 25.01.29 20 4 11쪽
86 23. 울지 않는 아이 (2) +2 25.01.27 18 4 11쪽
85 23. 울지 않는 아이 (1) +2 25.01.26 22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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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22. 밟으면 꿈틀하기를 (1) +1 25.01.19 21 3 11쪽
80 21. 불행의 편지 (3) +2 25.01.17 24 5 11쪽
79 21. 불행의 편지 (2) +2 25.01.15 26 4 11쪽
78 21. 불행의 편지 (1) +2 25.01.13 25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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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20.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2) +2 25.01.08 28 4 11쪽
74 20.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 +1 25.01.06 2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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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19. 믿음은 시련으로 강해지는가 (4) +2 25.01.03 28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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