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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롱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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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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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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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믿음은 시련으로 강해지는가 (1)

DUMMY

엘피에라 외의 그 누구도 사도의 발언에 놀라지 않았다.

루드비히가 서류에서 눈을 들고 카트리야를 돌아보았지만, 여전히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건 신께서 인간이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더라도 잘 관여하지 않으시기 때문이지요. 대부분의 경우 인간의 일은 인간의 손에 맡겨 주시지만, 그분이 원하시는 바가 없는 건 아닙니다. 저희 인간들이야 미루어 짐작할 수만 있을 뿐이지만요.”

루드비히의 첨언에 추기경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트리야는 고개를 갸웃했다.

“방관하는 시점에서 허용 의사를 밝힌 셈 아닌가요?”

“음···. 그보다는 저희가 자유 의지로 그분께 오는 길을 찾으리라 믿어 주시는 것이라고, 저희는 생각합니다.”

“···흠.”

도대체 그럴 거면 신이 전지전능한 게 무슨 의미가 있고, 신의 뜻이랍시고 행동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어차피 인간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는 거 아닌가.

카트리야는 잠깐 고민해 보았지만, 그 말을 종교인들의 허용 범위에서 온화하게 질문할 능력이 없었다.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솔직히 잘 납득이 되지는 않지만 뭐.

표정이 여과 없이 본인의 의견을 전달해 주기는 했지만, 입으로 하는 말만은 건전한 선에 멈춘 채 카트리야는 다시 질문했다.

“그렇다면 파문이 신의 계시로 내려오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파문 조치는 사실상 신보다는 교단의 결정 아닐까요? 기도 중에 조는 것도 어머니의 뜻에 흡족하지는 않겠지만 파문감은 아니다, 사람을 죽이면 파문이다, 이런 세부적인 규칙을 결정한 건 교단이잖아요. 그래서 신의 계시를 기다릴 것 없이 법황의 뜻만으로 파문을 취소할 수 있는 걸 테고요. 그러니 파문당했다는 게 반드시 신에게 거역했다는 뜻이 되는 건 아닌 거지요?”

흠. 이렇게 듣고 보니 확실히 신의 가르침과 교단의 규율을 좀 더 엄밀히 구분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긴, 법황이 파문을 철회할 수 있다면 파문을 명령한 권위도 법황한테서 나왔다는 뜻이니까···. 법황이 어쩌다가 파문을 할 권한이 생겼더라? 나중에 확인해 보자.

루드비히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펜을 움직였다.

“잠시만. 이게 무슨 소리야? 왜 법황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어?”

날 선 목소리는 엉뚱한 방향에서 들려왔다. 루드비히는 눈만 움직였다. 손목에 수갑을 찬 엘피에라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카트리야를 보고 있었다.

“지금··· 신의 사도가, 이단이야?”

심의회장에 미묘한 침묵이 흘렀다.

카트리야는 고개를 살랑살랑 저었다. 의자 등받이를 피해 앞쪽으로 모여 있던 머리 덩굴의 잎사귀들까지 같이 살랑살랑 흔들려서 뭔가··· 쓸데없이 많은 사람이 반대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닐걸요.”

“당신, 지금 교단의 규율이 신의 뜻과 별개라고 하고 있잖아요?”

카트리야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갸웃하며 입술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음···. ‘이단’이라는 건 신의 뜻··· 아니지, 신의 뜻이나 존재를 기존에 정설로 인정된 교리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신도들을 가리키는 거잖아요?”

“지금 사도님이 말한 그런 궤변이 이단이지.”

“물론 저희 세계에서도 이교도나 배교자, 무신론자 등등 자신과 뜻이 다른 사람을 전부 합쳐서 ‘이단’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지만···. 저는 ‘신도’가 아닌 이상 이단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단이든 정통이든 일단 신을 믿기는 해야 하잖아요.”

엘피에라는 입을 벌린 채 굳어졌다.

루드비히는 그 말도 조금 고민해 보았다. 확실히 ‘이단’이라고 뭉뚱그리면 편하기는 하지만 역시 교리 해석을 할 때는 좀 더 정밀하게 표현해야 하는 것 같다.

“지금··· 그러니까···?”

엘피에라의 목소리가 이렇게 부들부들 떨리는 건 전쟁 후로 처음 듣는 기분이 들었다. 루드비히는 친절하게 불에 기름을 부어 주었다.

“신의 사도님은 신을 믿지 않는 분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이단이 아니라 불신자지요.”

선명한 녹색 눈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교단의 규율은 어머니의 깊으신 뜻을 좀 더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구체화한 겁니다. 물론 개중에는 교단의 관리나 일반인의 교화 때문에 생겨난 조항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 교단이 주축이 되어 사람들을 지키고 신앙을 알리기를 원하신 것 또한 어머니셨으니까, 교단의 규율을 어기는 건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는 게 맞는 겁니다!”

추기경들이 또다시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이 옆 사람과 귓속말을 속닥이기 시작했다.

오호. 카트리야는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의 뜻’을 그런 방식으로 넓게 파악한다면, 그래, 교단의 규율을 어긴 건 신의 뜻을 어긴다고 보아도 되겠다.

“세부적인 판결은 인간이 한다고 해도 심판의 권위는 어머니에게서 나오는 것이니 파문 취소 여부도 당연히 어머니의 뜻을 넓게 고려해서···!”

말을 하다 울컥했는지 엘피에라가 입을 다물고 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카트리야가 루드비히의 사제복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귓가에 속삭였다.

“성하보다 엘피에라 씨가 더 교리 해석을 잘 아는 것 같아 보이는데요.”

“말했잖습니까, 독실하다고.”

“성하도 좀 더 독실해지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전 굳이 따지면 육체파라.”

법황이 그래도 되나. 카트리야가 수상쩍게 올려다보는데 정면에 앉은 비브리다 추기경이 헛기침을 했다. 재빨리 자세를 바로 하고 정면을 바라보자 비브리다가 묘한 표정으로 둘을 보고 있었다.

“들으셨지요, 사도님? 그리고 성하. 거기서 같이 고개를 끄덕이시면 어쩝니까.”

“음, 그게··· 저도 모르게 그만.”

루드비히가 멋쩍은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비브리다는 한숨을 쉬며 주름진 이마를 문질렀다.

“성하께서도 연치가 젊으신데다 전장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교리에 너무 약하십니다. 다른 분도 아닌 법황께서 이단의 논리에 현혹되면 아니 되시지 않습니까. 이 늙은이가, 정말··· 정말 걱정이 많이 됩니다···.”

“정진하겠습니다.”

루드비히는 자세를 바로잡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여기서 반성하는 자세를 보여야 필사할 성전의 분량이 줄어든다. 어린 시절부터 익힌 삶의 지혜였다.

“사도님··· 은 뭐, 납득하지 못하신 부분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러합니다. 카트리야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비브리다는 또다시 한숨을 쉬며 턱을 고였다.

“어린이집에서 글자는 거의 배우셨다고 들었지만, 아직 성전을 편히 읽으실 정도는 아니시지요···. 사도님께 교리 수업을 진행할 사제를 따로 편성하기가 어렵긴 합니다만···.”

음? 카트리야는 사회성 넘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얼굴을 보고 비브리다의 눈이 가늘어졌다. 대성전에서 지낸 세월이 세월이다. 저건 교리 수업은 왜 듣나요, 하고 도망치는 신학생들과 똑같은 표정이었다. 저 불경한 신의 사도를 도대체 어찌한단 말인가···.

심의회장을 맡은 콘라드 추기경이 가볍게 손뼉을 쳐서 시선을 모았다.

“심의회도 길어졌으니 잠깐 휴식 시간을 가지도록 하시지요. 그리고 사도님은 계속 참관이 가능하신지···.”

가능하다고 대답해야 하는 상황인가? 고민에 빠지려는 카트리야의 귓가에 루드비히가 속삭였다.

“사도님이 계시면 아무래도 교리 논쟁으로 번져서 심의회가 도저히 안 끝날 것 같으니 적당히 자리를 피해 주시면 감사하겠답니다. 결과는 사도님께서 원하신 대로 될 겁니다.”

말꼬리의 침묵에 그런 심오한 암시가 담겨 있었나. 카트리야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일으켰다.

“죄송하지만 저는 오후에 방직 공방에 찾아갈까 해서요. 참관은 여기까지로 해도 괜찮을까요?”

“지금까지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도님.”

콘라드가 생각난 듯이 덧붙였다.

“세계수에 꽃망울이 맺혔다면서요?”

맞아 맞아. 카트리야가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보여 주려다가 포기했다. 왼쪽 귀 위쪽, 머리카락에 살짝 파묻히는 것처럼 작고 하얀 꽃봉오리가 맺힌 것을 오늘 아침에 루치아가 발견했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 보여주기엔 위치가 애매하다.

“세계수가 꽃이 피는 나무였다니 신선하네요.”

“세계수가 계속 순조롭게 성장하는 모양이라 다행입니다만, 더욱 각별히 안전에 신경 써 주십시오. 원래 식물은 꽃이 피면 벌이 꼬이게 마련입니다. 외출하실 때는 반드시 호위를 대동해 주셔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 벌이 인간일지 언데드일지 요정일지 모르는 부분이 제일 까다롭다. 카트리야는 추기경들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심의회장을 떠났다.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사도에게 인사를 갖춘 추기경들이 도로 자리에 앉았다.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한숨과 신음을 내뱉는다.

비브리다 추기경이 주름진 손으로 성호를 그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간만에 묵직한 한 방이군요. 지난번에 인간은 세계를 창조하고 쓰러진 거인의 시체에서 생겨난 구더기라는 발언 뒤로 제일 충격적입니다.”

신의 사도에게서는 간간이 저 세계의 신화를 채록하고 있었다. 허무맹랑한 게 어린아이들의 이야기 같아서 차라리 재미있는 이교도의 신화나 요정 이야기에 비해서 교리에 대한 지적은 심리적으로 타격이 컸다.

“교단의 규정이 신의 가르침과는 별개로 움직인다고 주장하는 건 좀 공격적인 의견인데 말입니다.”

공격하려는 의사가 없다는 점, 그리고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는 부분이 제일 골치 아프다. 사실 파고 들어가서 ‘신의 뜻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냐’고 물어보면 진흙탕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약점이기는 했다.

칼레 추기경이 아득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인간의 자유 의지라는 건 항상 복잡한 문제 아닙니까. ···저는 신이 진흙으로 인간을 빚다가 나중에 귀찮아져서 밧줄에 진흙 묻혀서 휘둘렀다는 신화도 너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구더기는 성의라도 있지···.”

“그거 인간이 늘어나니까 목소리 시끄럽다고 홍수로 전멸시켰다는 그 신입니까?”

“아마 다른 신일 겁니다. 시끄럽다고 인간을 전멸시킨 신도 있다던가요.”

“저 세계는 신들도 너무하고 신자들도 너무합니다. ···아니, 신자가 아닌 사도님이 제일 너무합니다. 로랑 추기경은 대체 왜 사도님한테 발언 기회를 줘 가지고···.”

“저 정도이신 줄은 몰랐습니다···.”

짝짝짝.

커다란 박수 소리에 모두가 눈을 들었다. 루드비히가 웃으면서 늙은 추기경들을 보았다.

“바쁘신 분들이 심의회를 이렇게 길게 끄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미 결과는 정해진 심의회였다. 엘피에라의 파문 철회는 확정이다. 단지 속죄 기간을 몇 년으로 둘까 정도만 따지면 되는 건데, 그것도 대충 결론은 나와 있었다. 외부 눈속임용으로 ‘회의를 했다’ 정도만 하면 그만인데 추기경들이 사도를 데려다 앉혀 놓고 길게 교리 논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사도님이 저희에게 무엇을 요구하셨는지 직접 보고 이해하실 필요가 있으니까요.”

콘라드는 담담히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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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23. 울지 않는 아이 (2) +2 25.01.27 18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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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22. 밟으면 꿈틀하기를 (1) +1 25.01.19 21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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