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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롱뇽
작품등록일 :
2024.10.0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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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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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0.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

DUMMY

이제 와서 사죄하려고 해도 받아줄 사람은 없었다.

에다의 나이는 21살이었다. 그러니 11년 전, 10살 때 신성력 테스트를 받았을 것이다. 언데드 대전이 발발하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루드비히가 전장에 나설 대성전의 젊은이들을 모으던 때. 어머니께서는 전쟁에서 죽어 나갈 젊은이들의 빈자리를 메워줄 또 다른 아이를 착실하게 보내 주셨거늘.

농부의 아들로 소나 치면서 지내던 루드비히도 10살 때 신성력을 확인했다. 믿기 어려운 결과를 보고 기겁한 교구 사제가 바로 주교좌의 주교에게 데려갔고, 주교는 루드비히를 성전에 입문시키도록 부모님을 설득해 주었다.

고향 마을이 속한 주교좌의 본당 성전은 지금 보기엔 그저 아담한 성전이지만 어린 루드비히의 눈에는 더없이 장엄하고 화려해 보였다. 그 새하얀 건물에 발을 딛는 순간 느꼈던 충족감.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하는 곳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가 앞으로 나를 지켜 주시리라는 그 안정감.

에다 또한 그 모든 것을 누릴 권리가 있었다. 교단의 다음 세대를 맡을 기대주로 추기경과 주교들에게 귀여움을 받으며 안전하게 살아갔어야 했다. 에다를 가장 먼저 학대한 촌장 부부에게서 벗어나려면 ‘신께 귀의하겠다’는 한 마디면 충분했어야 했다. 그것만으로 후원하겠다는 귀족이 줄을 서고 대교구의 추기경이 직접 달려가 맞이해야 했었는데.

그런데 에다는 구원받지 못했다. 도로 자신을 학대하는 집으로 돌아가서, 고통받다가, 살해당했다.

그 당연한 권리를 빼앗은 것은.

우리다.

루드비히는 천천히 눈을 들어 제단 위를 올려다보았다.

평소보다 낮은 자리에서 올려다보는 신상은 더 위대해 보이고, 그리고 오늘은 조금 두려웠다. 우리는, 나는 또 무엇을 얼마나 더 잘못하고,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을 돌이킬 모든 기회를 잃고 나서야 알게 될 것인가.

에다 하나만 놓친 것은 아닐 것이다. 엘피에라가 보았다는 아이들, 엘피에라조차 보지 못한 아이들. 잊혀진 어머니의 아이들은 대륙 곳곳에 있을 것이다.

신은 구해 달라는 애원 모두에 답을 해 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신의 자비는 어떤 모습으로 발현하게 되는 것일까. 부서질 때까지 고난을 겪은 그 너머에,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해 어머니께서는 무엇을 준비해 주고 계신 것일까. 그 영혼을 떠받들어 주는 또 다른 세계인가. 아니면 모든 상처가 사라지고 그저 평온과 행복만 가득한 낙원인가.

죽어본 적이 없으니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참회의 기도를 올리게 될 것 같다.

엘피에라가 몸을 일으켰다. 무릎을 꿇고 앉아 성호를 긋고 나지막이 기도를 속삭인 뒤 몸을 일으켰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어. 그러니 잘못한 걸 이제 와서 없앨 수는 없겠지. 그러니까 이런 짓을 벌인 자들은 대가를 치러야 해. 반드시.”

우리 자신을 벌하는 건 뒤로 미뤄두고, 말이지.

루드비히는 쓴웃음을 지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마찬가지로 성호를 긋고 일어섰다. 엘피에라와 나란히 본당의 복도를 걸어 나오면서, 루드비히는 낮게 설명했다.

“11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 마을을 거쳐 간 교구 사제는 셋입니다. 전원 서면으로 사정 청취는 받았고, 가장 오래된 사제는 촌장 부부의 학대를 눈치는 챘지만 증거가 없어서 조처를 취하지 못했다는 정도만 인정했습니다. 이제 교구 주민의 신성력 테스트를 소홀히 했다는 죄목이 추가되겠군요. 나머지 둘은 자신들은 몰랐다고 발뺌 중이라 한꺼번에 처리하려고 증인을 모으는 중입니다.”

“그런 곳이면 마을 전체가 한통속일 텐데, 증인은 무슨 수로?”

“어떤 마을이든 음유시인과 행상인은 지나다니니까요. 그쪽도 생계에 영향이 있으니 대체로 입이 무거운 편이고, 또 직업 특성상 행적이 묘연해서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리고 있습니다. 통례를 생각하면 반년은 걸리겠지만 사도님의 안건이고 해서 최대한 노력은 하고 있지요.”

마을에서 이삼일 묵어가는 외지인이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챘다면, 교구 사제들을 벌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마지막 교구 사제, 워렌의 경우는 살해 혐의까지 입증해야 해서 더더욱 주위의 증언이 필요했다. 신학교 때 워렌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학생 서너 명이 의문의 사고로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는 정도로는 혐의를 증명하기에 약했다.

엘피에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기억을 더듬는 표정으로 무언가를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쪽으로도 한번 찾아볼게. 외출 허가 내 줘.”

“그건 사도님의 허락을 받으셔야지요.”

그렇군. 엘피에라는 입구에서 발을 멈추고 다시 뒤를 돌아 신상을 올려다보았다.

“···있잖아, 루드비히. 만약에 우리가 에다를 제때 찾아내서 보호했으면, 신의 사도는 대성전의 사제한테 강림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역대 사도들은 늘 주인이 죽은 몸에 깃들었다. 주위 사람들이 원주인의 죽음을 깨닫기도 전에 빠르게 들어오긴 했지만, 원주인들과 몸을 공유하지는 않았다.

에다가 대성전에서 자랐다면 21살에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등에 칼을 맞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신께서는 다른 몸을 찾아 사도를 내려보내셨을지도 모른다.

“젊은 나이에 죽었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만. ···그랬더라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겠군요.”

루드비히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아, 맞다. 외출증. 그게 있었지. 그렇죠, 발급을 받는 게 좋겠네요.”

도서관 사서 사제들 옆에 앉아서 초대장에 답장을 쓰면서 사도는 반쯤 건성으로 대답했다.

엘피에라는 카트리야가 표본으로 삼아 베껴쓰는 답장을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았다. 오랜만에 보긴 하지만 저 끝내주게 우아한 곡선은 아무래도 울보 게오르그의 필체 같다. 표본은 꽤 여러 장 널려 있었다. 벌로 수도원에 가 있다는 녀석이 어쩌다가 필사 교본을 만들어 보낸 걸까. 설마 비브리다 예하가 만들어 보내라고 협박한 건 아니겠지.

“‘따스한 봄날’은 이제 철이 지났으니까 ‘화창한 여름날’ 정도로 바꿀까요? 이렇게 쓰면 되나?”

카트리야가 빈 종이에 서투른 글씨체로 또박또박 새 단어를 적어서 옆의 사제에게 보여 주었다. 뒤에 서 있던 엘피에라는 무심코 대답했다.

“화장한 여름날로 쓰셨습니다, 사도님.”

“어이쿠. 여름이 화장을 하면 곤란하네···.”

카트리야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글자를 제대로 고쳐 썼다. 그리고 바꾼 인사말의 철자를 확인받고 답장에 다시 제대로 베껴 쓰기 시작했다. 펜에 잉크를 묻히는 손놀림이 살짝 불안하기는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귀족에게 보내도 괜찮을 만한 품격을 갖춘 답장이 완성되었다.

카트리야가 펜을 내려놓자 옆에서 명단 작업을 하던 사서 사제가 넘겨다 보았다.

“와, 사도님, 글씨 많이 좋아지셨네요.”

“여전히 어린애 글씨긴 하지만요.”

“어휴, 귀족들이야 사도님의 친필 답장을 받은 것만으로도 분에 넘치는 영광이지요.”

사서는 웃으면서 대답하고 답장을 받아서 옆의 받침대에 눌러 놓았다. 잠깐 잉크를 말리는 자리에는 이미 카트리야가 쓴 다른 편지들이 여러 장 놓여 있었다. 글씨는 애매하게 서투른 데 비해 서명만은 익숙했다. 본래 세계에서도 사용하던 서명인 모양이다.

“그렇지, 외출증. 발급 절차가 어떻게 되나요?”

“접객소에서 외출증 발급 서류를 받아 왔습니다. 사도님께서 읽어 보시고 필요한 부분을 채운 다음 서명해 주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카트리야는 서류를 받고 엘피에라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서류를 차분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중간에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신중하게 읽은 다음, 끄트머리의 공란에 서명했다. ‘사도 카트리야’라는 이름은 다른 단어보다는 조금 더 깔끔하게 적혔다.

서명란에 블로터를 누를까 하다가, 엘피에라는 서류도 그냥 옆에 밀어 두었다. 급하지 않으니 말린 다음 들고 가면 된다.

카트리야는 오른손을 주무르면서 사서 사제를 돌아보았다.

“저 오늘 할당량 다 끝났어요? 좀 더 남았을까요?”

“아, 여기 청혼서 답장들에 서명만 해 주시면 됩니다.”

청혼서는 친필이 아니라 사제들이 쓴 답장에 서명만 해서 돌려보내는 모양이다. 카트리야는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열심히 서명을 했다. 그 옆에 멀뚱멀뚱 있기가 좀 민망했던 엘피에라는 잉크가 마른 답장들을 걷어다가 접어서 봉투에 넣어 주었다.

사서 사제가 슬그머니 봉인용 밀랍까지 밀어주며 속삭였다.

“인장 찍는 건 사도님이 좋아하시니까 하게 해 주세요.”

···이걸 좋아한다고?

엘피에라는 조금 못미더워 하면서 밀랍을 녹이고 인장을 준비해 주었다. 카트리야는 진짜로 눈을 반짝이면서 봉투에 밀랍을 살살 붓고 대성전의 인장을 꾹꾹 눌러 나갔다.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제법 신나 보인다.

이게 재미있는 건가. 알 수 없다. 사도에게는 뭔가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는 놀이처럼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신의 사도에게 이 세계란 도대체 어떤 곳일까. 엘피에라는 처음으로 그런 의문을 품었다. 본인의 세계에서 자살하고 영문도 모른 채 끌려 와 시체로 돌아다니다가 본인이 버린 몸을 다시 얻었다. 머리에 식물이 자라나는 반 시체가 되어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끝났다~. 이거 접객소에 가져다주면 되나요?”

그리 불쾌해 보이지는 않긴 한데.

“네, 엘피에라 경··· 은 아직 아니지, 엘피에라 씨 출입증 서류도 저희 주시면 한꺼번에 보낼게요.”

사서 사제가 문서 수발함을 가리켰다. 카트리야는 잠깐 서류를 내려다보고는 편지까지 한꺼번에 들었다.

“돌아가는 길에 그냥 제가 가져다줄게요.”

“아, 그럼 제가 가겠습니다, 사도님. 사도님이 가지 않으셔도···.”

엘피에라는 급히 몸을 일으켰지만, 카트리야는 아무렇지도 않게 도서관의 서류까지 같이 챙겨 들었다.

“재경소 가는 길에 조금만 돌아가면 되는데요, 뭐. 제가 직접 가져다주면 출입증 처리도 빨리 해 줄 테고요.”

그야 물론 모든 서류의 최우선 순위에 올려줄 것이다. 사양하기에는 마음이 급했다. 엘피에라는 결국 짐이라도 자신이 들겠다고 서류와 편지들을 받아내서 앞장섰다.

도서관을 나와서 좁은 길로 들어서는데 뒤에서 따라오는 기척이 멈추었다. 돌아보니 카트리야가 이상한 표정으로 엘피에라를 보고 있었다.

“접객소··· 로 가는 거지요?”

“예, 접객소는 이쪽··· 아.”

엘피에라는 자신이 가려던 길을 돌아보았다. 건물 사이에 난 어두운 통로는 주방과 욕실을 돌아 창고 앞을 지나서 접객소 마당으로 통하게 되어 있었다. 접객소에 들어온 짐을 다른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고 눈에 띄지 않게 옮기려고 만들어진 길이다. 무거운 짐을 나르는 걸 고려해서 길 자체는 최단 거리로 깔려 있지만 귀한 분이 오갈 곳은 아니었다.

대성전에 살 때의 습관으로 무심코 길을 잡았다. 낭패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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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67 성잔화
    작성일
    25.01.06 15:19
    No. 1

    ㅋㅋㅋㅋㅋㅋㅋ 실링이 왜!! 실링왁스 취미가 얼마나 건전하고 좋은건데!!
    지름길이면 좋아할걸.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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