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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롱뇽
작품등록일 :
2024.10.01 14:16
최근연재일 :
2025.02.1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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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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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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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0.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2)

DUMMY

“죄송합니다, 제대로 된 길로···”

“그쪽으로 가도 접객소가 나오나요?”

의문이 호기심으로 바뀐 눈으로 카트리야가 통로를 들여다보았다. 다른 곳에 비해 단단한 돌로 마감된 바닥의 포석과 통로에 따로 세운 벽을 찬찬히 훑어본다. 수레가 부딪친 흔적에 눈이 멎었다.

엘피에라는 당황해서 급히 대답했다.

“나오기야 합니다만, 그, 아랫것들이 다니는 길이라 사도님을 모실 길은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원래 다니시던 밝은 길로 가시죠.”

하지만 카트리야는 조심스럽게 어두운 길로 들어섰다.

“그럼 여기로도 가 보죠.”

“···그, 사도님, 진짜로 하인들이 다니는 길이라서요···.”

“엘피에라 씨는 이쪽으로 자주 다니신 거죠? 안전한 거 아닌가요?”

한낮의 어둠 속에서도 묘하게 반짝이는 눈이 의심 없이 엘피에라를 올려다보았다. 안전··· 하기는 하다.

엘피에라는 목덜미를 문지르며 사도를 안내했다. 좋게 생각하면 길은 많이 알아둬야 나중에 달아날 때 편하기는 한데··· 이래도 되는 걸까. 또 혼나는 거 아닌가.

“저희 지나갑니다~.”

경쾌한 목소리와 함께 음식 재료를 실은 수레가 돌돌돌 굴러와서 두 사람 옆에 멈춰 섰다. 부엌 뒷문이 열리고 주방에서 일하는 수사가 고개를 내밀었다.

“오, 저녁 재료! 오늘은 안 늦었네?”

“지난번에 늦었다고 그렇게 잔소리 해 놓고선?”

짐꾼과 수사는 마차에서 신선 재료를 내렸다. 수사가 양파를 받아 들다가 그 너머를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사, 사도님?!”

“안녕하세요.”

카트리야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짐꾼이 허어억, 하고 비명을 지르더니 급히 바닥에 엎드렸다. 양파 바구니를 든 수사가 당황해서 눈을 굴리는 것을 보고 카트리야는 급히 손을 들었다.

“아냐, 괜찮아요, 일어나세요! 양파 떨어져요!”

양파가 신의 사도의 권위보다 중요한가? 전혀 아니다. 하지만 사도는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짐꾼이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뒷문의 소란을 듣고 주방에서 일하던 사제들이 고개를 내밀다가, 주방장에게 혼나서 재빨리 도망쳤다. 주방장이 앞치마에 물 묻은 손을 닦으며 나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도님이 계신 줄 모르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모르는 길로 가 보자고 해서···.”

카트리야는 조금 아득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렇지, 짐 내리시는 거 도와드릴까요?”

아닙니다아!! 사제들과 짐꾼과 호위가 동시에 절규했다. 그렇구나. 차라리 사라지는 게 도움이 되는구나. 카트리야는 작별 인사를 말하려고 마차를 슥 훑어보다가 포도 바구니를 발견했다.

“오늘 저녁 후식은 포도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혹시 입에 맞지 않으실까요?”

전생에는 가벼운 포도 알러지였다. 저녁을 먹다가 그런 증상을 보이면 사람들이 곤란해하겠지? 그리고 숨을 못 쉬어서 헉헉대면 꼴 보기도 싫다.

카트리야는 자신이 대성전에서 먹은 음식들을 돌이켜 보았다. 포도.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제가 지금까지 포도를 먹었던 적이 있을까요?”

“올해 첫 포도입니다, 사도님. 포도밭 주인이 대성전에 바치는 공물입니다.”

짐꾼이 조심스럽게 모자를 벗어든 채 공손히 대답했다. 카트리야는 포도를 한 알 떼어서 노려보았다. 모든 건 실험해 보는 게 최고지. 그러니까···.

포도를 먹으려는데 엘피에라가 그 손을 잡았다. 조금 엄한 눈이 되어 있었다.

“사도님, 씻고서 드셔야지요. 그리고 체통을 지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러지인지 확인해보고 싶어서요. 전생엔 포도를 먹으면 일시적인 호흡 곤란이 왔었는데 이 몸으론 먹어 본 적이 없어요.”

엘피에라와 주방장이 모두 입을 딱 벌렸다. 그리고 엘피에라의 표정이 단번에 구겨졌다.

“그걸 본인 몸으로 실험해 보시려고요···?”

“그걸 남의 몸으로 실험하기는 좀 힘들지 않을까요···?”

엘피에라는 한숨을 내쉬며 무언가 짧은 기도를 중얼거리고는 카트리야의 손에서 포도알을 빼앗아 도로 바구니에 넣고 주방장을 돌아보았다.

“형제님, 일단 오늘 저녁 후식으로는 다른 과일을 부탁드립니다. 사도님이 주의하셔야 하는 음식은 확인해 보고 한꺼번에 정리해서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주교··· 아니, 엘피에라··· 님.”

엘피에라는 카트리야를 내려다보며 웃어 보였다.

“사도님, 포도는 저녁에 법황 성하가 계실 때 확인해 보실까요? 문제가 생기면 바로 조처해 주실 테니까요.”

엘피에라가 있는데 꼭 루드비히까지 대기해야 하는 것일까···.

카트리야는 입술 끝까지 나온 질문을 틀어막았다. 뭔가 사정이 있겠지. 엘피에라 하나로는 부족하다고 하는 다른 이유.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식사 잘 부탁드려요, 주방장님. 항상 맛있게 잘 먹고 있습니다.”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앞으로도 정진하겠습니다.”

“일꾼분도, 매일 무거운 짐 들고 오가시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수고해 주세요.”

“영광입니다, 사도님!”

일꾼은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 카트리야는 그냥 웃어 보이고 다시 길을 갔다. 등 뒤로 사제들이 몰려 나와서 저녁 식재료를 받아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인들이 다니는 길’이란 게 이런 길이었군요. 그래서 다른 분들은 저랑 있을 때는 안 들어오셨구나.”

“사도님의 세계에도 이런 길이 있던가요?”

“길··· 까지는 어떨지 모르지만, 귀족과 일반인, 일꾼들의 출입문을 따로 만들어서 오가는 길이 겹치지 않게 하는 경우는 자주 있었어요. 그리고 호텔··· 고급 숙박시설에 가면 일꾼들은 손님들이 지나갈 때까지 복도 옆에 비켜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한다거나, 세탁물을 옮길 때는 복도에서 문을 열고 나간 전용 통로로 옮겨야 한다거나, 그런 경우는 있죠. 아, 주방에서 요리하는 냄새가 손님들에게 불쾌할 수 있다고 주방 건물을 독립시키면, 주방에서 식당까지 지하 통로를 뚫어 버려서 손님들은 항상 깔끔한 옷을 입은 시종이 예쁘게 내미는 음식만 감상할 수 있게 만들기도 했다네요.”

한 박자 쉰 뒤, 사도는 뺨을 긁적였다.

“요리하는 냄새가 싫으면 그냥 식욕이 없는 거 아닐까요. 그걸 굳이 신경 써 줘야 하나···?”

동감이다. 하지만 엘피에라는 귀족들이 요리 냄새가 옷에 배는 것, 식욕이 없을 때 남의 식사 준비를 보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대성전에서는 그런 사람들의 꼴을 최소한 적게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런 면에서 사도가 소박한 성격이라 다행이다. 용병 생활로 더 거칠어진 자신과 그쪽에서는 딱히 부딪칠 일도 없다. 어쩌면 루드비히가 그런 것까지 고려해서 자신을 호위로 낙점했는지도 모른다.

사도가 아니라 에다도 비슷한 성격이었을까. 그리고 에다의 몸에 사도가 강림했다면, 그래서 에다가 신의 사도로 다시 태어났더라면···.

“사도님은···.”

접객소까지 이어지는 샛길을 앞장서 가던 카트리야가 돌아보았다. 엘피에라는 머뭇머뭇 단어를 골랐다.

“그, 이 세계가···. ···마음에, 드십니까?”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카트리야는 착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예, 좋아요. 작고 아름답고, 사람들도 대체로 친절하고요. 무엇보다 느리니까요.”

“느리다··· 고요?”

“저번에는 세상이 저만 두고 달려 나가 버려서 따라잡기가 늘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이곳은 그곳보다는 세상이 달려가는 속도가 좀 느린 것 같아요. 그래서 덜 뒤처지는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이곳에서는 저는 숨을 쉬고 있으면 쓸모가 있잖아요.”

‘저번 세상하고는 다르게’가 생략된 답변이었다. 카트리야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엘피에라는 그 얼굴을 빤히 보았다.

신의 사도는 상냥하고 관대하다. 다소 기력이 부족해서 종종 방이나 안뜰의 정자에 틀어박히긴 하지만, 느리더라도 착실하게 자기 일을 해 주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말했다. 신의 사도에 대한 외경심 때문에 좋게 해석하는 부분이 없지 않겠지만 대성전에서 사도는 아주 조용하고 차분하고, 가끔은 엉뚱해서 유쾌하기도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위화감을 느끼는 게 늦었다.

엘피에라는 카트리야에게 조용히 물었다.

“사도님은, 이 세계에서 행복하십니까?”

침묵이 내려앉았다.

카트리야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무언가를 말하려고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가. 한순간 무표정하게 가라앉았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돌아왔다.

해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거짓말.

하지만 엘피에라는 마주 웃어 보였다.

“그러시다니 다행입니다. 부디 앞으로도 오래오래 저희 세계를 아껴 주세요.”


카트리야의 일과는 점차 규칙적으로 변해갔다.

정규 조찬 시간이 끝날 때쯤 느지막이 일어나서 아침은 간단히 먹고 어린이집에 간다. 어린이집에 특별 행사가 있거나 수업이 없는 날에는 방에서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하면서 쉬거나, 산책 겸 납골당에 들렀다.

점심을 먹은 다음에는 성전 내부 활동을 시작했다. 매일 도서관에 들러 자신에게 온 편지를 처리했다. 비브리다 추기경과 시간이 맞으면 자기 세계의 신화나 종교 이야기를 해 주고, 이 세계의 종교 이론에 대한 질문을 퍼붓고, 어린이용 교리책을 받아서 돌아 나왔다.

재경소에서 칼레 추기경 옆에 앉아 장부를 보면서 주판 쓰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모래판에 숫자를 써서 계산하는 속도가 더 빠르고 정확하긴 해서, 가끔 다른 사제들이 울며 매달리면 계산이나 서류 검산을 도와주기도 했다. 여전히 금전 감각은 좀 떨어졌다. 자신에게 들어온 기부금이 평민 식사로 몇 끼인지, 엘피에라의 급료가 성기사단이나 각 급 사제들의 급료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자신의 용돈은 대성전 예산의 어느 정도인지, 그런 것들을 계산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날씨가 좋을 때는 직공소에 놀러 나가기도 했다. 공방들을 돌아다니면서 직공들과 이야기를 하고 본인 세계에 있던 독특한 물건들을 알려주기도 했다. 밀어붙이는 데 당해서 덜컥 구두 계약으로 괜찮은 저작권 넘기지 않도록 두 눈 부릅뜨고 잘 지켜보라고, 칼레 추기경이 지나가는 말로 당부했다.

사도의 규칙적인 생활 틈틈이 엘피에라가 온갖 핑계를 대고 외출하기는 매우 간단했다.

엘피에라는 용병단과 빈민가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전 대륙의 정보를 끌어모았다.

빈민가에서 만든 엉성한 공예품, 반쯤 시든 꽃다발, 수상한 게 들어 있지는 않지만 맛은 거의 없는 의문의 음식 같은 것을 사 들고 돌아올 때도 있었다. 사도님이 궁금해하신다는 핑계 때문에 샀는데, 의외로 카트리야가 진짜로 그런 물건들에 관심을 보여서 움직이기가 더욱 편해졌다. 청소 담당 사제가 쓰레기 모으지 말라고 매달렸지만 ‘사도님의 뜻이십니다’ 한마디면 대성전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없었다.

해괴한 법황 인형을 들고 엘피에라가 법황의 침실에 숨어든 것도 그런 어느 날이었다.

“루디, 내가 뭘 찾았게~?”

순찰대를 피해 창틀에 거꾸로 매달려 창문을 여는 순간, 피비린내가 덮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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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26. 상처 받은 짐승 (1) NEW +2 21시간 전 5 1 11쪽
98 25. 울게 하소서 (5) +2 25.02.16 12 2 11쪽
97 25. 울게 하소서 (4) +2 25.02.14 14 2 11쪽
96 25. 울게 하소서 (3) +2 25.02.12 14 2 11쪽
95 25. 울게 하소서 (2) +2 25.02.10 18 3 11쪽
94 25. 울게 하소서 (1) +2 25.02.09 18 3 11쪽
93 24. 영혼이 가는 곳 (4) +2 25.02.07 23 3 11쪽
92 24. 영혼이 가는 곳 (3) +2 25.02.05 20 5 11쪽
91 24. 영혼이 가는 곳 (2) +2 25.02.03 18 3 11쪽
90 24. 영혼이 가는 곳 (1) +2 25.02.02 18 4 11쪽
89 23. 울지 않는 아이 (5) +1 25.01.31 19 4 11쪽
88 23. 울지 않는 아이 (4) +2 25.01.30 19 4 11쪽
87 23. 울지 않는 아이 (3) +2 25.01.29 20 4 11쪽
86 23. 울지 않는 아이 (2) +2 25.01.27 18 4 11쪽
85 23. 울지 않는 아이 (1) +2 25.01.26 22 4 11쪽
84 22. 밟으면 꿈틀하기를 (4) +2 25.01.24 23 4 11쪽
83 22. 밟으면 꿈틀하기를 (3) +2 25.01.22 22 4 11쪽
82 22. 밟으면 꿈틀하기를 (2) +2 25.01.20 24 4 11쪽
81 22. 밟으면 꿈틀하기를 (1) +1 25.01.19 21 3 11쪽
80 21. 불행의 편지 (3) +2 25.01.17 24 5 11쪽
79 21. 불행의 편지 (2) +2 25.01.15 25 4 11쪽
78 21. 불행의 편지 (1) +2 25.01.13 24 4 11쪽
77 20.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4) +2 25.01.12 21 4 11쪽
76 20.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3) +2 25.01.10 29 4 11쪽
» 20.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2) +2 25.01.08 28 4 11쪽
74 20.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 +1 25.01.06 26 4 11쪽
73 19. 믿음은 시련으로 강해지는가 (5) +2 25.01.05 27 4 11쪽
72 19. 믿음은 시련으로 강해지는가 (4) +2 25.01.03 27 4 11쪽
71 19. 믿음은 시련으로 강해지는가 (3) +1 25.01.01 29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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