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불행의 편지 (2)

루드비히가 순간 눈을 크게 뜨고, 엘피에라가 무섭도록 빠르게 옆을 돌아보았다. 심문관 중 몇몇도 경악해서 짧은 비명과 한숨을 내뱉었다.
비브리다가 혀를 차면서 테이블을 손등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소란이 잦아들었다.
루드비히는 삐딱하게 앉아 있던 자세를 고쳐 바르게 앉았다.
“사도님. 이 세계에 그런 이단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대답에 따라서는 화를 내겠다는 의사가 분명히 전달되는 말투였다. 카트리야가 대답을 해도 되나 고민하는데 콘라드 추기경이 먼저 손을 들고 자백했다.
“제가 전했습니다. 전대 사도님의 수기를 전달드릴 때요.”
“···아아. 그렇군요. 노트르담. 어디서 들어 봤다 했더니 수기에 몇 번 언급되었던가요.”
루드비히가 냉정하게 중얼거렸다. 법황의 허가 없이는 열람할 수 없는 수기에 나오는 지명이었다. 그러니 법황, 그리고 전대 사도와 알고 지낸 늙은 추기경들이나 알 수 있는 단어였다.
“사도님께는 그런 게 있으니 조심하시라고 말씀드렸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드린 적이 없긴 합니다.”
그래서 자세한 이야기를 물어보러 콘라드를 찾아갔었다. 콘라드는 루드비히를 올려다보았다. 발언을 허락해 달라는 눈빛을 무시하고, 루드비히는 눈을 가늘게 뜨며 카트리야에게 질문을 던졌다.
“노트르담이라는 성전은 유명합니까?”
“유명합니다.”
보기 드물 정도로 단호한 대답이었다.
“사도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사도님이 그 이름을 알 거라고 확신할 정도로, 유명합니까?”
혹시 의심받고 있는 건가?
카트리야는 잠깐 질문의 의도를 고민해 보다가 포기했다. 수많은 로판 빙의자와는 달리 전생에서 이 생애까지, 사교계의 우아한 책략에는 아무런 재능이 없었다.
고민해야 하는 건 오히려 노트르담의 유명함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였다.
“아마 십 대 이상···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알지 않을까요? 건물 자체도 유명하고, 그곳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나 연극도 오랫동안 사랑받았으니까요. 적어도 전 노트르담을 모르는 어른을 만나본 적은 없습니다.”
“다른 종교의 성전에 그렇게까지 신경을 쓴다고요?”
카트리야는 작게 웃었다. 물론 한국에 목욕탕만큼 많다는 교회의 건물 따위에 신경을 써 본 적은 없다. 길거리에서 예수 믿으세요 하고 전단지를 돌리는 사람을 보면 교회인지 사이비인지가 어딘가 있겠군, 할 뿐이었다. 초파일에 길가에 연등이 켜지면 ‘이 동네 어디 절이 있었나 보네’하고 넘어갈 뿐이다.
하지만 성당들은 조금 분위기가 달랐다. 우상 숭배를 금지한다는 종교임에도, 어쩌면 그래서, 카톨릭은 시각적인 이미지가 가지는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여기 존재한다고 온몸으로 알리곤 했다. 마지막으로 살았던 동네의 성당은 작은 잔디밭에 성모상을 세우고 장미 아치까지 꾸며두었었다. 동네 십 대들의 야간 데이트 명소 겸 산책 명소였고, 자신도 간혹 외출할 때는 길을 조금 멀리 돌더라도 그곳을 지나가곤 했었다.
이름 없는 동네 성당도 그 정도인데, 노트르담 대성당은 어떨까.
“노트르담은 이 대성전 건물의 모티프가 된 곳입니다. 심지어 천 년 가까이 되었고요. 완공된 지 백년도 안 된 대성전을 보겠다는 순례객도 끊이지 않는데, 천 년이 지난 후에는 어떨 것 같으신가요?”
“종교가 다른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종교적인 의미는 없으니 아마 신자들처럼 감동을 받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미적 감각이 없는 건 아니거든요. 건축가든 예술가든, 사람들은 늘 과거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고, 시간이 지나면 기술은 진보하게 마련이지만.”
카트리야는 회의실의 기둥을 바라보았다.
루드비히도 무심코 카트리야의 시선을 따라 눈을 움직였다. 빛이 제대로 닿지 않는 기둥 꼭대기, 기둥이 천장을 받치는 기둥머리 부분에 박쥐 형태의 뱀파이어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작은 성인이 배틀 로드를 들고 서 있었다.
그 조각을 바라보며 카트리야는 부드럽게 말했다.
“인간이 한계를 뛰어넘어 기적을 창조하려면 신념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엘피에라와 비브리다가 동시에 기묘한 표정이 되었다. 루드비히도 조금 묘한 기분이었다. 사도가 종교에 대해 확실하게 좋은 평가를 주는 건 처음 들은 것 같다.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카트리야는 기둥에서 시선을 떼고 루드비히를 바라보았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저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역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루드비히는 고개를 끄덕이고 콘라드 추기경에게 시선을 움직였다.
“그럼 어디, 그 이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할까요.”
콘라드는 카트리야와는 전혀 다르게 의자 깊숙이 몸을 묻고 편하게 앉았다.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차분히 기억을 더듬어 나갔다.
“젊은 분들은 거의 처음 듣는 이야기겠군요. 시작은 별거 아니었습니다. 다들 전대 사도님께서 마력석 폐지와 빈민가 구제를 위해서 노력하셨다는 건 아시지요? 뭐, 지금도 마력석은 남아 있고 빈민들도 존재하지만, 전대 사도께서 귀족들의 돈을 닥치는 대로 뜯어내서 수많은 빈민을 구제하신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요. 빈민 구제 사업은 항상 예산이 부족하니까요.”
잠시 뜸을 들인 후 콘라드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분 덕에 목숨을 구한 마력석 공장의 아이들, 가족들, 그런 사람들이 그분을 생전에 성자로 추앙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도 성자 시성 이야기는 나왔습니다만···. 짐작하시겠지만, 귀족들의 반대에 밀리기도 했고, 또 신의 사도인데 성자로 추가 시성을 해도 되는지 교리 해석 문제도 있어서 진행이 되진 않았지요. 그랬더니 이게 와전이 된 겁니다. 대성전에서 사도의 영향력을 의식해서 시성을 안 하는 거다, 대성전이 우리에게 해 준 게 뭐가 있느냐. ···뭐, 덕분에 전대 사도님이 대성전 험담 하지 말라고 종종 역정을 냈습니다. 그분, 아주 성격이 화끈해서 한번 화를 내면 어마어마했지요.”
콘라드는 젊을 때 만났던 전대 사도를 떠올리며 웃었다.
지금의 사도와는 정반대다. 화통하고 뒤끝 없는, 다혈질에 독불장군. 술도 좋아하고 싸움도 좋아했다. 농땡이 피우는 제자들을 속옷 바람으로 길거리에 내쫓은 게 몇 번이었는지. 돈에 눈이 멀어 건축 자재를 빼돌린 후배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바람에 콘라드가 왕진을 한 적도 있었다. 저 새끼 저거 남의 집 가지고 사기 치는 미친놈이라고, 그 집에 제가 깔려 죽어봐야 정신 차린다고 소리소리 지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빼돌린 건축 자재는 기둥도 벽도 아닌 창문 장식이었건만.
그리고 콘라드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런데 전대 사도님이 돌아가신 즈음 해서··· 그러니까, 한 40년 전이지요? 이런 이야기가 퍼진 겁니다. 사제들이 선출하는 대성전의 법황보다는 신의 사도가 좀 더 신의 대리인에 가깝다. 백 년에 한 번 찾아오는 신의 사도야말로 어머니의 대리인이자 우리의 구원자다. 법황보다 사도님을 더 귀히 섬겨야 한다. 자, 여기부터는 이단이지요?”
신을 믿지만 그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 카트리야의 기준을 적용해도 그건 분명히 이단이었다. 아주 명백한.
“그래서 알아본 결과 귀족 중 일부, 아마 당시 법황 성하들을 암살했던 가문 몇몇이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었습니다. 법황이 자주 교체되면서 위태롭던 교단의 숨통을 끊어 놓고 싶었는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고. ···아무튼 당시의 이단 심문관들이 선동자들은 철저히 수색해서 처형했습니다. 그게 여러분이 아시는 마지막 이단 심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5년 전, 젊은 성하께서는 태어나시기도 전이지요.”
과연 얼굴을 숨긴 이단 심문관 중에서는 몇 명이나 태어나 있었을지 모르겠다. 비브리다는 무심히 심문관들을 훑어보았다. 은퇴 연령이 낮은 보직은 이게 문제다.
“그럼 그때 이단의 명맥이 끊긴 게 아닙니까?”
엘피에라가 질문했다. 아마 대부분 같은 질문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콘라드가 한숨을 내쉬며 두 손을 펼쳐 보였다. 늙은 얼굴에 쓴웃음이 피어올랐다.
“살아남았습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도 이번 요정의 밤에 카트리야 님의 머리 모양을 흉내 내는 여자들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그들 중 누가 이단이고 누가 정통인지, 하나하나 잡아서 심문할 여력이 있으십니까?”
신의 사도는 대성전의 주인이라고 루드비히도 몇 번이나 말했었다. 교단이 다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신의 사도를 떠받드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색출해 내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이단이었다.
대답은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콘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이단으로 의심은 되지만 확정하지 못한 몇몇은 파문에서 그쳤습니다. 그중 몇몇은,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지만 평범한 파문자가 되었고, 몇몇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어딘가에 이단이 남아 있다’는 의심은 있었던 거지요. 그럼 그들이 노릴 사람은, 뻔하지 않습니까?”
콘라드의 손이 움직였다. 그 손보다 먼저 모두의 시선이 카트리야에게 쏠렸다.
‘신의 사도를 새로운 신의 대리인으로’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다음 대의 사도 역시 신의 대리인이다. 만약 다음 대 사도가 대성전의, 또는 귀족의 편에 선다면 그들의 ‘신앙’은 갈 길을 잃는다.
그런데 이번 사도는 자신이 귀족의 편에 서지 않음을 보였고, 직공소의 평민들과 어울렸다. 더욱 놀랍게도 사도는 무려 파문당했던 사제를 사면해서 개인 호위로 임명했다. 여전히 성기사들의 호위를 받을 때도 있다고 하지만.
이단자들은 기뻐 날뛰었을 것이다.
우리는 틀리지 않았노라, 보아라, 신의 대리인은 교단이 아니라 교단이 내친 이들을 보듬어주시는 분이라고.
카트리야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삼키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엘피에라도 조금 넋이 나간 표정으로 조그맣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가? 이단자들한테? 계시가 됐다고? 내가??”
그 넋 나간 모습을 보고 루드비히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전쟁에서처럼 머리가 차갑게 식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하는 싸움에는 익숙했다.
“이단자들의 목표는 뭡니까? 제 목입니까? 아니면 사도님?”
비브리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단 심문관이 이제부터 알아내야지요. 성하, 마지막 이단 심판이 열린 지 35년입니다. 그런데 엘피에라에게 편지를 넘겨 준 자는 겨우 20살 전후였다더군요.”
“이단자들도 세대교체를 했다는 거군요.”
“예. 새로운 세대가 무엇을 원할지는 모릅니다.”
“구세대는···.”
콘라드가 다시 아득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법황위 위에 사도위를 놓자고 했지요. 사도가 이 세계에 없을 때는 대리인을 앉히자고.”
“대리인이라 함은?”
항상 존재하는 법황보다 더 사도의 대리인에 적합한 자. 종교에서 선지자의 맥이 끊길 때 사용하는 방법은.
카트리야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들인가?”
- 작가의말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1163년에 첫 건축을 시작했다는군요. 불이 났던 건 2019년, 이미 재개장도 했다고 하네요.. 세월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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