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울지 않는 아이 (2)

카트리야는 이마에 따뜻한 입술이 닿아서 안심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화를 내거나 자신을 비웃을 것 같지는 않···.
···응?
“그럼 오늘은 푹 쉬셔야 합니다. 좀 있으면 엘피에라가 지키러 올 테니 조금이라도 아프면 아프다고 말씀해 주시고요. 꼭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조곤조곤 당부하고 조용히 침실을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카트리야는 의문에 휩싸였다.
내가 방금 뭔가 또··· 상당히 배은망덕한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뭔가 대화가 안 이어지는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 아주 살짝 들었던 것 같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법황 루드비히는 좀비가 신의 사도라는 사실에 의문을 품었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차마 티를 내지는 못하고 정중하게 좀비를 신의 사도님이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의문은 의문이었다.
전장에서 구른 세월이 있다. 잃은 것이 있다. 언데드에게 품은 원한은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리 특이한 언데드라고 해도 저런 것이 신의 사도여도 된단 말인가, 신께서는 무슨 생각으로 저런 걸 사도로 내려 주신 건가, 라는 불경한 생각은 앙금처럼 쌓여 있었다.
그 좀비가 상당히 순한 성격이라거나, 의사소통을 잘한다거나, 엉망진창이 된 야전의 수습을 착실하게 도와준다거나. 그런 것을 보면서 경계심은 낮아졌지만 그래도 역시 가슴 속 깊은 곳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이성이 있는 좀비라도 좀비는 좀비 아닐까. 인간의 신을 모시는 사도는 될 수 없지 않은가.
신께서는 언데드를 인간의 사도로 내려보내셔서, 우리의 무엇을 시험하려 하시는 것일까.
만티코어에게 물리자 목을 뜯어내려고 하던 순간의 광기 어린 눈빛은 의심을 강화하면 강화했지 약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나중에 본인이 변명하기로는 목을 통째로 뜯어내려던 건 절대 아니었고 절반 정도만 뜯어내면 나머지는 몸통하고 붙은 채로 떨어질 줄 알았다고 하지만, 절반이든 전체든, 어지간한 인간은 상상할 수도 없는 폭력을 휘두르려는 모습은 그야말로 언데드의 사고방식 그 자체였다.
신의 계시를 믿고 좀비는 지켜줄 생각이었다. 신께서 좀비를 사도라고 하면 사도라고 받들 수도 있다. 뭔가 뜻하신 바가 있으실 테니까.
하지만 몸이 인간으로 바뀐다고 해도 그 안에 있는 것이 좀비의 영혼이라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지 않을까. 그건 몸만 썩지 않은 언데드가 아닌가.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대로 성전 도시로, 언데드에게 맞서 싸울 능력이 없는 사람들 속으로 데려가도 되는 건가.
갈등을 거듭하다가 결국 신의 계시를 믿어 보기로 했던 게 언제였는지, 루드비히는 분명하게 기억했다.
대성전으로 오는 길, 좀비 사도가 의식을 되찾은 다음 날. 밤중에 잠이 깨어 바깥에 나왔을 때였다.
여기저기 쳐 놓은 막사에는 기사들이 잠들어 있고, 좀비 사도는 늘 그렇듯 포대 자루에 담겨 짐마차의 짐칸에 실려 있었다. 푸른 달빛이 환하게 내리쬐는 가운데, 검은 개는 사도의 무릎에 머리를 얹고 잠들어 있었다. 사도는 군견의 머리를 느릿느릿 쓸어내리면서 막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뭇잎이 살랑거리는 소리에 낮은 콧노래가 섞여 있었다.
매끄럽지는 않았다. 호흡을 할 필요 없는 좀비의 몸은 성대를 울리고 가슴 속의 공기를 내보내며 소리를 내는 데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좀비는 나지막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툭툭 끊기는 낯선 선율로 조그맣게 노래하면서, 개를 쓰다듬으면서, 눈으로는 물끄러미 막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외로워 보였다.
그때 저 몸에 갇힌 것이 인간의 영혼이라고 확신했다. 어쩌면 성격이 조금 삐딱하거나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사고방식이 좀 특이할지도 모르지만, 저 몸에 깃든 영혼은 인간이라고.
언데드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 왜였는지는 금세 알았다. 전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그리고 신을 믿지 않는 사람. 그러니 루드비히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살아 있는 사람’과는 이질적인 존재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도는 이 세계에 조금씩 섞여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발을 잘 딛게 되었다고는 생각했는데.
아직도 많이 부족했다.
부상병이 소리를 지르지 않는 건 주위의 시선을 모으는 게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했을 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건 도움을 요청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을 때.
신체적 고통에 둔해지는 건 고통을 느끼면 생존율이 떨어진다고 판단했을 때, 또는 생존을 포기했을 때.
이미 필요한 도움은 받는 상태라서 소란을 피우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도는 그런 좋은 이유로 침묵을 지킨 건 아니었다.
그것이 더없이 속상했다.
“사도님한테 행복하냐고 물어봤었는데.”
엘피에라가 툭 하니 내뱉었다. 대답은 듣지 않고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더라.”
본인이 얼마나 거짓말을 못 하는지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행복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구나. 사도님은 우리를 못 믿는 거야.”
“본인 딴에는 믿는다고 생각할 겁니다.”
사람을 믿는 법 자체를 모르는 거다. 언제든 배신당할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발을 뺀 상태를 믿는다고 말하고, 그게 뭐가 문제인지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이미 오래전에 사람을 믿는 법 따위 잊어버린 영혼.
루드비히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자신을 따라오던 엘피에라를 돌아보았다.
“간호 쪽으로는 따로 말 얹지 않겠습니다만, 사도님은··· 잘 지켜 드리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성하.”
운이 좋으면 엘피에라도 카트리야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주면 좋을 텐데. 카트리야가 조금이라도 더 이 세계에 녹아들어 주면 좋겠다. 더 이상 외롭지 않기를.
루드비히가 돌아서려는데 엘피에라가 말을 이었다.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말입니까?”
“안장에 오르는 데 실패하는 사람··· 이 있을 수는 있겠지, 그래. 그건 나도 들어본 것 같기는 해. 그런데 얌전히 서 있는 말에 올라가려다가 실패해서, 그 말에 끌려가는 것도 아니고 머리를 밟히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어?”
찾아보면 어딘가엔 있을지도 모르지만 루드비히의 기억에는 없었다. 그건 불운에 불운에 불운이 겹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엘피에라와 루치아가 지키고 서 있었다. 솔직히 누가 뒤에서 등을 떠밀어서 말발굽 아래에 사도를 밀어 넣었다고 해야 말이 될 수준의, 어처구니없는 불운이었다.
“사도님이 끔찍하게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아니. 나는 말이지.”
엘피에라는 조금 서늘한 표정으로 사도의 침실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역시 우리 사도님은··· 아직도 이 세계에 속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
“···정을 붙이지 못했다는 뜻으로?”
“아니, 완전히 살아 있지 않다는 뜻으로. 세계수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몸도 좀 이상한 상태기는 하지만···. 사도님은 아직도 이 세계하고 다른 세계 사이에 걸쳐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이 세계에서··· 떠밀려 나가는 거지. 어머니께서 사도님을 여기에 데려오긴 했지만, 그 어머니의 뜻을 무시하고서라도···.”
멍하니 중얼거리던 엘피에라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올리고는, 두 손으로 가볍게 자기 뺨을 짝짝 두드렸다. 정신 차리라는 것처럼.
“아냐, 죄송합니다, 성하. 내가 무슨 불경한 소리를. 어머니께서 뜻하시는 바가 있겠지요. 사도님은 어머니께서 이 세계에 데려오셨으니까.”
전생에도 카트리야는 종종 재수 없는 꼴을 당했다고 했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에게는 별로 특이한 일도 아닐 것이다. 이번에도 말에게 밟혔다는 자체에는 딱히 놀란 것 같지 않았다. 엘피에라의 말대로 하자면 사도는 지난번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였다는 뜻이 되는데 그럴 리는 없지 않은가. 그럼 도대체 사도는 어느 세계에 속하는 사람이란 말인지.
···설마 요정들의 세계일 리는 없고.
루드비히는 문득 요정의 밤, 카트리야가 묘한 표정을 지었던 것을 떠올렸다. 요정들에게 달이 열 개 뜨면 데리러 오라고 말할 때였던가. 그 전이었던가. 뭔가 의문을 품은 표정으로 자신을 보다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고 어깨 너머로 다른 누군가를 쳐다보았던 적이···.
···왜 그런 표정으로 자신을 보았던 것일까. 당시엔 요정들에게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흘려 넘겼던 의문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 표정이 왜 지금 떠올랐는지··· 잘 모르겠는···.
“희사령 발표, 수고하십쇼, 성하. 성하가 희사령만 발표하면 바로 그 교구 사제 소환해서 작살낼 거니까.”
엘피에라가 루드비히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는 바람에 생각이 흩어졌다.
루드비히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자.
“진짜 자신 있는 거겠지요? 유도 신문으로 사형까지 끌고 가기 쉽지 않습니다. 파문에서 끝내 버리긴 아까우니까, 본인이 큰소리친 결과는 내야 할 겁니다.”
“내가 그 쉽지 않은 일을 해내면 이단 심문관으로 삼아줄 생각은 있어?”
“서임 다시 받아 보시든가요? 성공하면 교단 역사상 최초의 예가 되겠군요.”
“하아, 쉽지 않아···. 아무튼 내 솜씨 믿으라니까. 내가 이단자들도 쏙쏙 낚아채서 심문관들한테 넘겨줄게. 특히 언데드가 인간의 최종 발전형이라고 믿는 이단이 어디 있댔는데, 그놈들 내가 이번에 꼭 찾아낸다.”
뭐야,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전쟁에서 언데드한테 당하다 못해 머리가 이상해져 버린 사람들인가. 도대체 대성전의 눈에 안 띄는 곳에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가.
루드비히의 의문은 무시하고 엘피에라는 손마디를 꺾으며 살벌하게 웃었다.
“희사령만 넘기면, 파문당해도 복권될 가능성 없으니까. 잡아 족치자.”
차기 법황 후보를 죽이고 신의 사도를 위협한 발칙한 것들. 다 죽었어.
엘피에라는 각오를 다졌다.
“예, 그리하여 공사다망하신 선배님들 대신 오늘부터 사도님의 승마 강사를 맡게 된 제이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카트리야는 사람 없는 마구간 뜰 구석의 의자에 앉아 턱을 고이고 물었다.
“강사를 무슨 기준으로 찾았길래 체칠리아까지 동원되셨는지···?”
“사도님이 안장에 오르려다 떨어졌다는 말만 듣고도 이유를 맞춘 첫 번째 기사였다고 합니다.”
엘피에라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동네 어린이들과 성전 어린이집 애들한테 말타기를 가르친 경험이 많아서···. 그, 사도님을 어린애 취급하려는 건 아닙니다만!”
내용물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오히려 신뢰도가 높아졌다.
이번에는 말이 절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엘피에라가 말을 끌어안은 상태로 카트리야는 다시 안장 오르기에 도전했다. 물론 실패했다. 떨어지는 몸은 제이크와 루치아가 잘 받아 주었다.
그리고 제이크는 웃음을 터뜨렸다.
“와, 세상에! 딴 세상에서 오신 분들도 똑같은 실수 하시는구나! 그냥 말을 처음 타면 다 이러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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