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영혼이 가는 곳 (3)

양도 기뻐야 하지 않나? 천국에선 모두가 행복하니까. 그런데 양이 털 깎이기를 싫어하면? 양의 의사는 무시당하는 건가? 그럼 천국이 아니지 않나?
그럼 ‘모두’에서 양이 빠져야 하나? 천국에선 ‘인간 모두’만 행복한가···?
아니지. 인간 셋만 모아 놓아도 둘이 멱살을 잡는데 ‘인간 모두’가 싸우지 않는 게 가능할까? 그러니까 기적적인 평화인 건가. 지금까지 천국에 간 사람들끼리 싸우지 않고 지내는 이유가 뭐지? 싸우지 않긴 하나?
당장 자신이 아는 죽은 사람 중에도 천국에서조차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할 사람들이 줄줄이 튀어나왔다. 그 사람들이 죽어서 천국에서 만났다면··· 이미 피바다가 되었을 텐데···. 아직 천국이 피로 물들었다는 이야기는 없으니까 사이좋게 지내고는 있는 거겠지···?
루드비히는 고민에 빠졌다.
카트리야는 힘껏 허리를 돌려 루드비히를 돌아보며 생선 꼬치를 들어 보였다. 전생에서부터 꽤 궁금했던 질문이었는데, 안색 바꾸고 교회 나오라고 덤벼들지 않는 교인과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어서 대답을 못 들었던 것 같다.
“자, 보세요, 성하? 이 생선··· 저한테는 대충 ‘메로’처럼 보이니까 ‘메로’라고 부를게요.”
왜 생선에게 이름을 붙이는 거냐고 물어봐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루드비히는 천국에서 서로 멱살을 잡고 욕설을 퍼부어대고 있는 죽은 선배들의 망상에 정신이 팔린 채 말을 움직였다. 엘피에라도 멍하니 말을 따라왔다.
유일하게 정신줄을 놓지 않은 신의 사도는 생선 꼬치를 받들고 진지하게 말했다.
“메로는 죽어서 꼬치구이가 됐죠. 제가 딱히 메로와 생전에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메로는 아마 죽고 싶진 않았을 거예요.”
“예, 생물이니까요.”
루드비히는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생존욕은 모든 생물의 본능이다. 자살조차도 ‘생존 이하의 상태를 벗어난다’는 행위로 보면 생존욕의 발현이라고 해석하는 의견도 있는 마당에, 그물에 잡힌 물고기가 생존욕이 없었을 리 없다.
카트리야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럼 메로의 천국에는 제가 없어야겠죠? 전 메로를 죽여서 먹은 원수잖아요. 그런데 제가 천국에 가고, 메로구이가 마음에 들어서 매일매일 메로구이를 먹고 싶다고 생각하면, 메로는 제 천국에 있어야 하잖아요? 그럼 저희는 서로 다른 천국으로 가야 하는 거죠?”
메로구이가 짠 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라면, 그렇다. 천국에는 메로가 있어야··· 아니, 물고기 이름이 왜 메로인데.
“그, 아마 동물한테는 영혼이 없으니까 천국에 같이 갈 것 같지는 않은데요···?”
엘피에라가 확신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루드비히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니, 동물에겐 영혼이 있다. 그건 확실히 기억했다. 성인담에 ‘천국에서 죽은 애마를 다시 만나는 성인’이 나오니까 최소한 말에겐 영혼이 있다. ···혹시 훈련받은 군마 같은 특정 동물에게만 영혼이 있던가? 군견은?
카트리야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엘피에라 쪽으로 살짝 몸을 숙이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자, 보세요. 제가 메로를 잡긴 했는데 문득 애가 예쁘게 생겼다 싶어서, 잡아먹지 않고 집에 가져가서 어항에서 기른다 쳐 보세요. 그럼 메로는 제 반려 물고기가 되는 거니까, 제 천국엔 다시 메로가 필요해지겠죠?”
주인이 죽으면 먼저 죽었던 말이나 개나 고양이가 마중을 나와서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 그렇지. 그러려면 천국에 메로가 살아야 하는데···.
“말씀대로, 그럼 메로한테 영혼이 있어야겠군요. 천국에 같이 가야 하니까요.”
루드비히는 중얼거렸다.
혹시 동물은 영혼이 없어도 천국에 갈 수 있나?
루드비히는 잠깐 자신의 의문을 검토하고 곧바로 그 가능성을 폐기했다. 영혼이 없는 존재는 세계수에 접근할 수 없다. 언데드를 신성력으로 물리치고 정화할 수 있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엘피에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럼 같이 가야지···. 아, 그 메로랑은 사이가 안 나쁘니까 둘이 같이 있어도 괜찮은 거 아냐? ···아니지, 메로의 의견은 들은 적이 없구나. 아무리 잘해줘도 일단 메로를 납치 구속한 거니까 메로는 원망하려나?”
엘피에라는 스스로 자기 의견을 반박하면서 잠깐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죠? 어쩌면 메로한테 한시도 떨어지기 힘든 애인이 있었을지도 모르잖아요.”
카트리야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생선구이 하나에 어디까지 설정을 붙이는 건가.
루드비히는 낮게 신음을 뱉으며 카트리야의 정수리에 턱을 얹었다. 세계수의 덩굴이 조금 당황한 것처럼 출렁이면서 턱과 뺨을 간지럽혔다. 루드비히는 달콤한 꽃향기가 감도는 덩굴에 입술을 묻으면서 투덜거렸다.
“저 안 괴롭히고 친하게 지내기로 한 거 아니었습니까. 너무하십니다.”
“제가 언제 괴롭혔는데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 생선들을 맞이할 준비를 겨우 끝내고 먹이 찾으러 나왔다가 그물에 걸려 죽은 불쌍한 예비 엄마를 못 먹게 됐잖습니까.”
엘피에라도 조금 떫은 표정으로 자신의 생선 꼬치를 내려다보았다. 알이 가득 찬 배를 슬그머니 손끝으로 쓸어내린다.
“그러게, 산달이었는데. 건강한 아기들을 낳으려고 먹이를 찾다가 그만···.”
“두 분은 왜 생선한테 감정 이입하고 계신 거예요···?”
“누가 먼저 시작하셨는데 그런 말씀을요.”
하아아. 루드비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버릴 수도 없다. 어디에 묻어줘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밤에 기도할 때 이름 모를 생선의 명복을··· 아니, 그러니까 진짜로 메로의 영혼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냐고.
엘피에라가 다시 팔짱을 끼며 낮게 중얼거렸다.
“메로는 모르겠지만, 내가 타고 다니던 말한테는 영혼이 있었어. 걘 어지간한 인간보다 똑똑했단 말이지요. 이야, 심지어 내가 모자란 남자 데리고 오면 내가 안 보는 틈에 꼬리로 퍽퍽 때리더라. 잘생긴 남자한테는 막 치대면서. 걔한테는 영혼이 없을 수 없어.”
훌륭한 말이었던 모양이다.
루드비히는 대성전의 정문이 보이자 다시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았다.
카트리야는 먹다 남은 생선구이를 쳐다보다가 도로 루드비히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럼 동물한테 영혼이 있는데, 그 영혼이 천국에 가고 못 가고의 기준이 무려 ‘저’예요? 저하고 친하면 천국에 같이 가고, 저하고 안 친하면 못 가요? 그런 게 기준일 수는 없잖아요?”
“아뇨, 천국에 가는지의 여부는 어머니께서 오롯이 결정하십니다···. 어디 가서 그런 말씀 하시면 진짜 이단 심문관들한테 잡혀 오십니다···.”
루드비히는 과일꼬치를 양손에 들고 흔드는 에드윈을 발견하고 말고삐를 당겼다.
서커스단의 소란이 점점 가까워진다 싶더니, 이 사람들, 무려 대성전 정문 앞에 마차를 세워 놓았다. 대성전 저녁 예배에 참석하려는지 단원으로 보이는 몇몇이 줄을 서 있었지만, 나머지는 예배까지 남은 시간을 홍보에 쓰려는지 간단한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와서 즐기고 있었다.
루드비히는 자신들을 알아보고 다가오려는 성전 문지기에게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에드윈은 자기도 서커스 단원인 것처럼 과일꼬치를 휘휘 흔들면서 다가오다가 멈칫했다.
“뭐야, 오는 길에 사람 많았어요? 다들 왜 이렇게 피곤한 표정이야?”
“야, 이거 너 줄게. 먹어.”
엘피에라가 에드윈에게 생선구이를 주고 과일 꼬치를 빼냈다. 루드비히도 아직 입을 대지 않은 생선구이를 건네주었다. 졸지에 생선을 두 마리 받은 에드윈은 눈을 깜박이며 세 사람을 차례대로 돌아보았다.
“···왜, 혹시 덜 익었습니까?”
카트리야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에드윈이 머뭇머뭇 생선구이를 한 입 베어먹고 나자 엘피에라가 재빨리 천국에 대한 질문과 메로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잠시 벙쪄 있던 에드윈은 서글픈 표정으로 생선을 내려다보았다.
“가엾게도···. 임신만 시켜놓고 도망친 무책임한 애 아빠 몫까지 먹이를 찾으려고 애썼는데···.”
카트리야는 입을 틀어막았지만, 엘피에라는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와, 씨, 나 방금 돌아온 거 후회했어. 처음으로 후회했어! 이런 바보하고 또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내야 한다고? 바보 병 옮아, 미친!”
“하, 듣는 바보 섭섭하다? 네 메로는 그냥 만삭이었지만 내 메로는 좀 더 책임감 있는 녀석이었어! 배신당한 현실에 지지 않는 강인한 여성이었다고!”
“네 메로가 내 메로거든? 그거 내가 줬거든?”
“왜, 아깝냐? 줬다가 뺏으려고? 여자가 한 입으로 두 말 하기 있냐?”
“잠시만, 조금만 쉬고 들어가자.”
이게 진짜 서른 먹은 성인들 입에서 나올 소리란 말인가. 나이에서 0 하나씩을 빼도 믿겠다.
한심한 말싸움을 듣다 못한 루드비히는 결국 파업을 선언하고 말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길가의 숲을 향해 돌아서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대성전에 들어가면 법황 모드로 돌아가야 하는데, 도저히 이 바보들에게 존댓말을 쓸 자신이 없다. 수행의 부족함을 반성하는 짧은 기도를···.
···그래서 어머니, 제 메로의 영혼은 천국에서 잘 지냅니까···. 혹시 진짜로 가 있다면 부디 선처를···.
루드비히가 잠깐 기도를 하는 사이 카트리야도 말에서 내려 달라고 요구했다. 엘피에라가 안장에서 내려 주자 옆의 바위에 걸터앉으면서 허리를 두드렸다. 역시 뒤를 돌아보면서 말을 하느라 아팠던 모양이다.
엘피에라가 카트리야의 뒤로 돌아가서 허리를 꾹꾹 눌렀다. 작은 비명이 들렸다.
루드비히는 비명을 들으며 고개를 들었다.
일단 동물에게는 영혼이 있다. 그건 분명하다. 어머니의 피조물이니까.
그럼 천국에서 생선 꼬치를 먹고 싶은 사람, 육식을 즐기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잡다해진 설정을 제외하고 먹고 먹히는 관계에만 집중하면 흐릿한 기억 너머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옛날에 분명히 이 비슷한 문답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어머니께서 왜 사슴을 만들고 다시 곰을 만드셨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루드비히가 중얼거렸다. 언젠가 그런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자비로우신 어머니께서 어째서 먹이사슬을 만드셨는가, 왜 다른 존재를 해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를 만드셨는가에 대한 논쟁이었다. 주교 승진 심사 때 공부하면서 봤던 것 같다. 메로와 인간을 함께 만든 것도 분명히 같은 논리일 것 같은데.
비슷할 때 심사를 준비했던 엘피에라의 얼굴도 퍼뜩 밝아졌다.
“그래, 그거 있었어! ···그래서 왜 만드셨댔지?”
큰일이다. 질문만 기억나고 대답이 기억나지 않는다.
루드비히는 저도 모르게 낮게 신음을 뱉으며 미간을 눌렀다.
“···네가 기억 못하는데 내가 기억하겠냐.”
“은퇴한 지 5년 된 내가 기억을 해야 할까, 현직에 있는 네가 기억을 해야 할까?”
“내 업무는 교리 연구가 아니야.”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시는군요. 실례지만 제가 답을 알려드려도 될까요?”
낯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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