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영혼이 가는 곳 (4)

나긋나긋한 목소리. 아까부터 얼핏 신경 쓰이던 시선의 주인이었다. 루드비히가 몸을 돌리는 사이 엘피에라가 한발 움직여서 카트리야의 앞을 막아섰다. 카트리야가 머리 뒤로 편하게 넘겨 두었던 베일을 허둥지둥 뒤집어썼다.
에드윈이 시선을 끌려는 듯이 생선 꼬치 두 개를 휙휙 돌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어이쿠, 보자··· 이 근처에서 못 보던 사제님이시네?”
“예, 클레멘트 교구에서 왔습니다.”
루드비히는 여행 차림인 젊은 남자 사제를 슥 훑어보았다.
나이는 자신과 비슷하거나 조금 어린 수준. 신성력은 고만고만했다. 키는 평균, 체격도 평범. 단정하게 관리한 짧은 갈색 머리에 갈색 눈. 습관처럼 지은 미소. 여행 때문에 짚은 긴 지팡이 끝에는 성호가 조각되어 있고, 조금 복장이 흐트러져서 안에 받쳐 입은 교구사제복도 한눈에 들어왔다.
···아니. 자신이 성전 도시에서 본 적이 없는 젊은 남자 사제. 그 사제가 클레멘트 교구에서 왔다면, 누군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그렇다면.
훑어본 그대로 눈을 움직여 보고 루드비히는 첫인상을 정정했다.
일부러 사제라는 티가 나게 옷을 입었다. 말을 걸기 편하려고.
“클레멘트 교구라.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에드윈이 턱을 문지르며 고민하는 척했다. 그리고는 따악 손가락을 울렸다.
“아아, 맞다, 신의 사도님이 강림하셨다는 거기! 이야, 좋은 데서 오셨네, 사제님. 사도님 만나 뵈러 오셨나?”
“그런 셈이지요.”
글쎄올시다?
에드윈이 생선 꼬치를 빙글빙글 돌리며 웃었다. 그리고 루드비히를 힐끗 보았다.
루드비히도 가볍게 눈짓하고 엘피에라를 보았다. 엘피에라는 사제의 등 뒤를 보고 씩 웃고 있었다. 엘피에라의 시선 끝에 여행용 망토를 걸친 헤이즐이 서 있었다.
좋아. 상대가 누군지는 모두 알았군.
루드비히는 교구민 학대 및 살해 혐의로 종교 재판에 회부된 교구사제 워렌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렇게 생긴 사람이었군. 매력적이고 호감이 가는 외모라는 증언이 대부분이었고 그럭저럭 잘생긴 사제라 교구에서는 꽤 인기가 좋았을 것 같기도 하지만.
전장에서 단련된 본능이 믿을 수 없는 상대라고 속삭이고 있다.
워렌은 미소를 지으면서 엘피에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훔쳐 들으려던 건 아닌데 너무 재미있는 대화들을 나누고 계셔서 그만. 귀하신 아가씨도 그렇고, 다들 신학에 조예가 깊으시군요. 과연 성전 도시는 신의 은총이 가득한 곳입니다.”
에드윈이 ‘메로’들을 빙빙 돌리며 물었다.
“맞아, 우리 ‘아가씨’가 신학에 관심이 많으시죠. 그래서, 사슴하고 곰 이야기의 답을 알려 주신다고요?”
“아아, 그랬었지요. 어머니께서 사슴을 만들고 곰을 만드신 이유는, 곰이 사슴을 잡아먹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발성이 좋다. 사제들은 당연히 설교 훈련을 받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호소력이 있었다.
루드비히는 눈을 가늘게 떴다. 가끔 이런 재주가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같은 말을 그 사람이 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홀리고 설득한다. 호흡과 어조, 발성, 그런 것에 독특한 흐름이 있어서 끊고 맺는 데 미묘한 차이가 있고, 그 때문에 말에 집중을 하게 만드는 거라고 했었던 것 같다.
설교는 잘 할 것 같다.
“물론 그래서 곰이 사슴을 먹는 거겠죠. 그래서 곰은 왜 생겼는데요?”
엘피에라가 참을성을 발휘해 준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면서 슬쩍 가슴 앞에 팔짱을 낀다. 아주 짧은 순간 워렌의 눈이 엘피에라의 가슴에 머물렀다가 올라갔다.
“사슴만 있으면 사슴이 너무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사슴이 살 수 있는 곳, 먹을 수 있는 것은 한정이 있는데 사슴이 너무 늘어났다간 다 같이 굶어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슴의 천적을 만들어 사슴의 수를 줄이시는 겁니다. 또한 가장 약한 개체를 빠르게 고통 없이 죽이는 것이니 결국 사슴무리 전체는 평균적으로 좀 더 건강하고 강해지겠지요? 사슴들은 곰에게 사냥당하지 않기 위해 좀 더 강해질 테고요. 그러면서도 곰은 사슴을 자신이 먹기 위해서만 죽이니 사슴의 죽음은 헛되이 낭비되는 일도 없습니다. 사슴이 죽는다는 사실은 안타깝습니다만 조금 더 넓은 시야로 본다면 그 또한 장기적으로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일 뿐이지요. 어머니의 은혜이십니다.”
루드비히도 듣고 나니 기억났다. 어차피 나중에 믿을 만한 사람에게 확인하기는 할 테지만 적어도 이 사제가 교리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있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렇군요. 그럼 내 메로는 약해서 죽어 버린 거구나···. 가엾게도.”
에드윈은 다시 생선 꼬치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선을 와구 베어 물었다.
“네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전부 내 영양분으로 만들어 주마! 너도 네 아이들도 천국에서 잘 지내고 있겠지!”
“오. 그 물고기가 천국에 갔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닐까요?”
하하하. 워렌은 주먹으로 입가를 가리며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두 분은 사제로 훈련을 받으신 적이 있는데, 기사님은 아니신 모양입니다.”
에드윈은 그저 싱글벙글 웃었다. 법황의 비밀 경호대장··· 이라기엔 딱히 비밀스럽지 않기는 했지만, 아무튼 비밀 경호대장도 일단은 대주교였다. 언데드 대전에서 세운 전공 때문에 특별 승진이 되면서 교리 시험을 면제받은 세대일 뿐이었다.
“하긴, 아무리 대성전의 귀한 손님이시라도 사제를 셋이나 배정해 드리기는 어렵겠지요.”
“저희가 대성전의 손님이라고 생각하시는 이유라도?”
루드비히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워렌은 그제야 비로소 루드비히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금세 엘피에라의 배 쪽으로, 그러니까 앉아 있는 카트리야의 머리가 있을 근처로 시선을 움직였다.
“아가씨께서 베일을 쓰셨으니까요.”
“저건 대성전의 손님들이 쓰시는 베일이 아닙니다만.”
카트리야가 하도 신전 손님용 베일을 쓰고 돌아다니기도 했고, 한동안 대성전에 베일을 쓰는 여자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은 신전의 베일을 쓰면 오히려 정체가 드러났고, 오늘은 귀족 여자들이 쓰는 무난한 베일을 쓰고 나온 참이었다. 루드비히는 한번 우겨 보았다.
워렌은 그를 돌아보지 않은 채 엘피에라에게 대답했다.
“그런데도 대성전의 문지기가 누구신지 알아보고 마중을 나오려고 하더군요. 대성전의 문지기가 그 정도로 잘 아는 분이니 필시 귀한 가문의 소중한 아가씨가 아니시겠습니까.”
“음, 우리 아가씨가 좀 귀한 몸이시긴 하지. 우리 아가씨라서가 아니라 진짜로, 이 대륙에서 제일 고귀한 분일걸.”
엘피에라는 진실을 대답했고, 워렌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아, 과연, 이렇게 충성스러운 호위 사제가 있으시다니 정말 운이 좋으십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워렌의 질문은 분명히 카트리야를 향해 있었다. 루드비히와 에드윈은 입을 다물었다. 엘피에라의 미소가 깊어졌다.
이 새끼가 지금 건방지게?
딱 그런 말이 튀어나오려는 표정이었다.
“약한 생명은 솎아내야 마땅하다는 게 어머니의 뜻이라는 말씀이군요.”
카트리야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었다.
엘피에라가 살짝 움직여 카트리야의 앞에서 비껴 났다. 카트리야는 바위에 앉은 채 조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약한 생명에게 안배될 천국의 자리는 없다, 고.”
“···천국은 지복을 누릴 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입니다. 약한 생명은 보다 강해져야지요. 어머니의 뜻에 흡족해지려면 수행을 거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사제님도 천국엔 갈 수 없겠군요.”
평소보다 날 선 목소리가 조금 거칠었다. 그렇게 쥐어짜 낸 말에 워렌의 표정에서 조금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고 워렌의 손이 천천히 지팡이를 쓸어내렸다. 여길 보라는 듯이.
카트리야는 고개를 조금 치켜들고 워렌을 똑바로 보았다. 베일에 가린 얼굴이, 어째선지 상당히 매서운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법황 성하만큼 강하지도 않으신 분이니까요.”
에드윈이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면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소리소문없이 그들의 뒤에 헤이즐이 와서 서 있었다. 에드윈은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소리 죽여 물었다.
“저분 쟤 아는구나?”
“네.”
헤이즐의 대답은 짧고 단호했다.
젠장. 에드윈도 짧게 욕을 내뱉었다.
그 사이 워렌은 다시 미소를 되찾고 부드럽게 대답했다.
“천국엔 어머니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을 위한 자리가 언제나 마련되어 있답니다.”
“···그래서, 좋으신 말씀 전하러 오셨군요?”
뭐지. 단어에도 문장에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왠지 방금 굉장한 욕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루드비히가 떨떠름하니 고개를 기울이는데 카트리야가 손을 내밀었다. 루드비히는 반사적으로 그 손을 잡았다. 보드라운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신의 말씀이 말씀의 형태로 전해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으신 모양이고요.”
카트리야의 말에 워렌은 그저 애매하게 웃을 뿐이었다.
카트리야는 루드비히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만 쉬고 싶어요.”
“그럼 들어가시지요.”
루드비히도 상대를 끊임없이 재고 틈을 파고들 기회를 엿보는 사람과 대화하는 걸 즐기는 이상한 취미는 없다. 옷 속을 벌레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듯한 불쾌한 느낌이 들던 참이었다.
어차피 곧 재판정에서 지긋지긋하게 보게 될 테고.
“그럼 아가씨께서는, 약한 인간이 강한 인간의 길을 방해해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대성전을 향해 고작 두 발짝을 옮겼을 때, 워렌이 카트리야의 뒤에 대고 물었다.
카트리야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돌아보지도 않고 대꾸했다.
“예전에 법황 성하가 그러시더군요. 남자도 여자도, 사지가 멀쩡한 사람도 장애가 있는 사람도 모두 어머니에게는 똑같이 소중한 아이들이라고. 사제님의 신과 그분의 신은 다른 분인 모양입니다.”
아아, 그렇지.
루드비히는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해냈다. 아마 전쟁으로 다리를 잃은 소녀를 위로할 때 했던 말이었을 거다.
그래. 어머니는 자비롭고 다정한 분이다. 그분이 약한 생명을 솎아내는 걸 기뻐하실 리 없지 않을까. 사슴이 너무 늘면 곤란하니 수를 조절하자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약한 순서로 뽑으실 리는···.
“진짜로, 여기 튜토리얼 버전 평행 세계 따로 있는 거 아니죠? 그러니까, 성하네 신이 약한 애들만 골라내서 더 살기 쉬운 세계로 옮겨 주는 건 아닌 거죠? 모든 아기 생물들이 아장아장 뛰노는 세계가 따로 있다거나?”
카트리야가 불안한 듯이 조그맣게 속삭인 말에 루드비히는 그만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변장한 법황이 큰 소리로 웃는 것을 보고 눈이 동그래진 문지기가 삐걱거리며 문을 열어 주었다. 웃으면서 안전한 대성전으로 들어와서, 루드비히는 카트리야의 손등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사도님은 정말로, 신의 뜻을 전하는 사도시군요.”
상상도 못 해 본 공격과 유혹적인 답을 끊임없이 던져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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