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에게 배신당한 프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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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빈
작품등록일 :
2024.10.01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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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5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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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1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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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당했다 (1)

DUMMY

마왕.



마족들이 사는 세계, 「마계」를 다스라는 왕을 일컫는 말이다.



마왕 타그록은 마왕이라는 이름답게 아주 강했다. 그 막강함은 땅을 울리고, 공기를 찢을 정도였으니. 한낱 인간이라면 감히 그를 상대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용사 파티.



마왕을 토벌하기 위해 구성된 초인들이다. 우린 중간계를 마왕의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직접 마계의 마왕성까지 찾아갔고, 드디어 그 결말에 거의 다다르게 되었다.



마왕과의 긴 전투.



드디어 그 끝이 보인다.



“마그!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버텨줘! 그리고 엘리시아, 엄호 부탁해!”



“알겠다 카이언!”



“응.”



흑발의 사내가 동료들에게 지시를 내리자 각자 그에 맞춰 준비한다.



파티의 리더, 「용사」 카이언.



이 시대의 검사 중 가장 강한 자.



성스러운 성검에 마나를 불어넣으며 최후의 일격을 준비한다.



“이 벌레 같은······ 놈들!!!!”



피투성이 상태인 마왕은 비틀거리면서도 여전히 무시무시했다. 흉폭한 마기의 파동을 일으키며 거대한 대검을 위로 올렸다 내리찍는다. 단순한 동작이지만 그 여파는 엄청났다.

검에 길이의 비해 몇 배나 되는 지형까지 땅이 갈라지는 검격.



「가장 단단한 자」인 마그가 그 중심에서 방패를 땅에 박고 서 있었다. 충격으로 살 이곳저곳이 갈라지며 터졌으나 마그는 기어코 두 다리를 굳건히 세운 채 버텨내었다.



지금이 기회.



「마나에게 사랑을 받는 자」인 하프엘프 엘리시아가 강력한 중력 마법으로 마왕을 짓누른다. 엘프답게 수려한 외모를 갖고 있어 마법을 영창하는 모습조차 아름다웠다. 마법의 위력은 마왕이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크윽!”



마왕은 괴로운 소리를 내며 겨우 일어나 마법으로부터 탈출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전에 어디에선가 나타난 보라색 단발머리 암살자가 마왕의 뒤를 지나간다.



“와핫! 제대로 손맛이 있었어!”



그 찰나의 순간에 「어쌔신마스터」 크리스가 암기로 마왕의 발목을 베고 지나간 것이다. 그 결과 마왕이 한쪽으로 무너지고야 말았다.



“잘했어! 라이, 부탁한다!”



“맡겨둬!”



그리고 카이언이 마지막 일격을 마왕에게 꽂아 넣기 전에 나를 불렀다.



나는 「빛의 구원자」로, 이 파티의 힐과 버프를 담당하는 프리스트이다. 카이언에게 신성한 축복을 몰아넣자 성검이 반응하며 더욱 요동친다.



카이언은 성검의 영롱한 빛과 함께 마왕에게 달려갔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카이언은 마왕에게 도달했다.



카이언의 성검이 마왕의 심장을 꿰뚫는다.


“이,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 죽어라!”



카이언의 외침과 함께 성검을 중심으로 마왕의 몸에 밝은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는 빛에 의해, 마왕은 마침내 무너진다.



마왕의 심장이 멈췄다.



마왕이······ 드디어 죽었다. 정화된 마왕을 바라보던 카이언은 마왕의 죽음이 확실해지자 성검을 뽑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함께 해온 우리를 쓱 둘러보며 씨익 웃더니, 이내 검을 치켜든다.



“마왕을 쓰러트렸다!”



“와아!”



마그와 크리스가 얼싸안았다. 엘리시아도 얕게 미소를 지었고, 나도 이 순간만큼은 고양감을 참을 수 없었다.



우리 용사 파티가 세상을 구한 순간이었다.





.

.

.





마왕을 죽인 후, 우리는 피로를 회복하며 약간의 휴식을 취했다. 크리스가 마그의 상처를 봐주고 있다.



“괜찮아 마그?”



“이제 괜찮다. 라이가 치료해줬다.”



“다 치료는 안 됐네.”



“하하. 마기로 인한 상처라 바로 완치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전위에 섰던 마그. 그만큼 많이 다쳤기 때문에 내가 신성력으로 치유 성법을 걸어줬다. 크리스가 마그에게 다가가 굉장히 걱정했던 표정을 짓는다.



“죽는 줄 알았잖아.”



“살았으면 됐다.”



“그게 문제야?”



싸우는 것 같으면서도 알콩달콩하네. 보기 좋다. 처음엔 서로 성격 문제로 으르렁댔으면서 어느새 사랑이 싹텄다. 보는 사람은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런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옆으로 눈을 돌리니 엘리시아가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인간과 엘프 사이에서 나온 하프엘프인지라 무척 아름다운 외모라 보는 사람은 괜히 설레게 만드는 외모. 나도 괜히 멋쩍어진다.



“라이는······ 돌아간다면 뭘 할 거야?”



“나? 나는 말이지.”



나에 대해서 궁금한 게 생긴 건가.



“원래대로라면 이번 기회를 통해 에테른교의 추기경이 될 수도 있겠지. 용사도 잡았겠다, 언젠간 교황까지도?”



“원래대로라면? 다른 계획이 있다는 거야?”



“······막상 돌아가면 또 모르니까.”



말실수했네.



엘리시아는 안 그래도 예리한데 괜히 솔직하게 말했다가 큰일 날 뻔했다.



“라이는······ 그럼 에테른교의 교황이 되고 싶은 거야?”



이 세상엔 총 7명의 신이 있다. 그중 빛을 신을 믿는 「에테른교」의 프리스트가 바로 나. 신성력의 양은 이미 교황 바로 아래인 추기경 이상급이지만 지금까지 추기경으로 인정받진 못했었다. 왜냐하면 나이도 막 20대 초반이니 원로 신도들의 반대가 참 많았었다. 그러나 이번 마왕 토벌 건을 공로로 인정받으면 그 누구도 반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예전엔 해보고 싶었는데.”



“예전에는?”



“지금은 그게 중요해지진 않아서.”



예전엔 에테른교에 진심이긴 했었지. 빛의 신 에테른님의 말씀이 적히 성전을 달달 외우고, 에테른교와 관련된 모든 것을 익혔었다. 그리고 내 신앙을 인정받으며 에테른교의 최고 위치까지 언젠간 오르고 싶었다.



“욕심을 버렸다는 거구나.”



어찌 보면 탐욕에 빠진 거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걸 생각할 여유조차 사라졌다.



“으응. 그······렇지.”



자기 멋대로 잘 해석해준 모양이다. 엘리시아는 욕심을 버렸다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드는 것 같다. 하신 욕심 그득한 성직자가 보기야 좋진 않겠지.



“그럼 혹시.”



엘리시아는가 뭔가 말하려다가 잠시 주저한다. 전투 중 열이 올라서 그런가 묘하게 얼굴이 붉어진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엘프의 숲에 놀러 올래?”



이거 설레야 하는 건가? 내가 여자랑 사귀어본 적은 없어도 엘리시아가 내게 조금은 호감을 갖고 있다는 건 알 것 같다. 대신전으로 돌아간다면 먼저 할 일이 있긴 했는데 그건 좀 미뤄둬야 하나.



“뭐야. 둘이 무슨 이야기 중이야?”



마침 주변을 둘러보러 갔던 카이언이 돌아왔다.



“그게 말이지.”



“들었어. 엘프의 숲으로 간다며?”



카이언은 씨익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들겼다.



“좋겠다 라이. 엘리시아에게 초대도 받고.”



이거 좀 과하게 두들기는 것 같은데. 부자연스러운 카이언의 행동이 수상했지만 한편으론 이해가 된다.



카이언은 원래 엘리시아를 좋아했었다. 그러나 엘리시아는 동료 그 이상의 감정을 카이언에게 주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 카이언도 관심을 그만 줬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괜찮아 보이면서도 서글프게 나를 응원하는 모습이 참 안타까웠다. 카이언도 정말 멋진 놈인데.



“아 맞다. 먼저 말해줬어야 했는데.”



카이언은 두 손을 모아 탁 치며 주목을 모았다. 크리스와 마그도 이쪽을 바라본다.



“잠깐 마왕성을 탐색하다가 수상한 방을 발견했어.”



“수상한 방 말인가?”



“잠깐 마그. 바로 가려고?”



“크리스. 아직 토벌해야 할 대상이 남아있을 수도 있다.”



“마왕은 이미 잡았어!”



크리스는 정의감에 불타는 마그를 막을 수 없었다. 어차피 카이언 말대로라면 수상하니 혹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일 뿐, 실제 위험이 도사리는 것 같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최대 고비인 마왕도 잡은 마당에 우리의 앞에 어떠한 위기가 닥치더라도 쉽게 헤쳐나갈 자신감이 있었다.



나와 엘리시아도 앞장 선 카이언을 따라 마왕성 복도를 걷는다. 마그는 우직하게 걷고 있고, 크리스는 그 옆에서 혹시 모를 위협으로부터 대비해 재차 주변을 살피는 중이었다. 마왕성의 마왕에 도달할 때까지 앞을 막던 적은 다 제거했기 때문에 우리들이 마음껏 성 내를 활보하고 다녀도 저지하는 마족은 보이지도 않았다. 안 그래도 어두운 성이라 그런지 꽤 스산하네. 기분이 나쁘니 마지막 확인만 하고 곧바로 중간계로 돌아가면 될 것 같다.



“여기야.”



카이언의 발이 멈춘 곳은 단순하게 생긴 철문 앞이었다. 무슨 특별한 방은 아닌 것 같은데, 안에 강력한 기운이 느껴진다. 마왕처럼 대단한 양은 아니지만 그 밀도만큼은 마왕급이었다.



“연다.”



카이언이 성검으로 철문의 잠금장치를 베었다. 그리고 고리를 잡아 당기자 철문이 부드럽게 열린다.



어두운 방 안. 작은 촛불만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우린 그 작은 불빛으로 이 방의 주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 여성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오랫동안 빛을 못 받은 것 같은 새하얀 얼굴.



“너희는······.”



갈라진 목소리다.



“누······구?”



물이라도 한 잔 주고 싶을 정도로 입술이 메말라 있다. 보아하니 식사는 제때 할 수는 있었는지 수척하진 않았으나 너무 허약해 보였다. 카이언은 검을 거두지 않은 채 여성을 추궁한다.



“나는 용사 카이언이다. 마족, 네 정체는 뭐지?”



“나는······.”



얕은 불빛 속 붉은 눈에서 느껴지는 공허함.



“나는······ 아이리스······ 테네브리스.”



“테네······브리스?”



“잠깐. 테네브리스라면 우리가 아까 죽인 마왕의 성이잖아!”



크리스가 팔짝 뛰며 놀랐다. 확실히, 크리스의 말대로 이 마족과 마왕의 성이 같을 수밖에 없다. 느껴지는 마기를 보니 마왕과 같은 핏줄임은 분명했다.



“아버지가······ 아니, 마왕이······ 죽었어? 꺄하핫, 하하하······ 하하······!”



마왕이 죽었다는 말에 정신 나간 듯 웃는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기보단 어쩐지 후련해 보이는 웃음이다. 카이언은 마족의 비통한 웃음이 기분 나쁘기라도 한지 검을 들어올린다.



“마왕의 딸이라면 죽여야겠네.”



마왕의 핏줄.



그 말은 언젠간 세상에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불씨이기도 했다. 카이언의 판단은 명확했다.



······하지만.



“잠깐.”



“음? 무슨 일이야 라이.”



“굳이 마왕의 딸을 죽일 필요가 있을까?”



“뭐?”



카이언이 인상을 확 쓰며 나를 돌아본다.



“마왕은 죽었어. 그리고 이 마족도 물론 마왕의 피를 받았긴 했지만 그렇게 강해질 지도 알 수 없고, 무엇보다 마왕성 내에서도 공주 대접도 받지 못했던 것 같은데?”



내가 이렇게 인정머리 좋은 놈은 아닌데.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이 마족을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순 없다고 느껴졌다.



불쌍해서 그런 건가, 아니면 정말 쓸데없는 살생을 할 이유가 없으니 그런 건가. 아니면······.



아무튼, 나도 모르겠다.



“라이. 그게 무슨 말이야? 마왕이라면 모두 씨를 말리더라도 이 세상에서 없애버려야 해. 그리고 어떻게 엘리시아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지?”



“그건—.”



그러고 보니 엘리시아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엘리시아가 마왕에 의해 어떤 일을 겪었었는지 들었으면서, 어떻게 라이 네가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냐는 거야.”



“그건 아는데. 하아······ 그게 말이지.”



솔직히 눈 한번 딱 감고 그냥 죽여버리면 모두가 편하다. 그리고 실제로 카이언의 논리엔 문제가 없었다. 씨를 말려버려야 한다니. 정말 합리적인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내가 왜 이러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확실치도 않은 살생을 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 차라리 우리가 관리하면 되잖아.”



“라이. 갑자기 왜 그래. 너무 낙관적인 거 아니야?”



보다 못한 크리스도 끼어들었다. 내가 다가오려는 크리스를 카이언이 손으로 막는다.



“카이언?”



“잠깐. 아, 그랬구나?”



카이언이 뭔가를 깨달은 양 눈을 희번덕 뜨며 나를 노려본다.



“라이. 이제 보니 너······.”



그리곤 나를 경계한다.



“너······ 언제부터 우리를 배신했던 거냐?”



“뭐?”



무슨 소리야.

—라고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등쪽으로부터 강렬한 고통과 함께 지독한 무언가가 내 몸을 파고들었다.



“이······건?”



마기?



갑자기 왜?



“라, 라이가······!”



“크리스. 일단 물러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내 몸 안의 신성력과 마기가 세차게 충돌한다.



신성력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라이. 설마 네가 타락했었다니! 어쩐지, 그런 이유로 마왕의 딸을 살리려던 거구나?!”



“무슨 소리야. 그럴 거였으면 마왕을 잡지도—.”



“닥쳐! 마왕의 딸에게 뭔가가 있었겠지!”



잘못하면 큰 오해가 생기고,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야. 난— 커억?!”



카이언의 검이 내 옆구리에 파고든다. 순간적으로 몸을 옆으로 빼지 않았으면 그대로 심장까지 찔릴 뻔했다. 하지만 일단 몸에 검이 박힌 건 박힌 것. 난 부들거리며 카이언의 검을 더 움직이지 못하도록 붙잡는다.



“카······이언. 너······ 이게 무슨······.”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고통에 순간 현기증이 났지만 이대로 쓰러질 수도 없었다. 난 검을 여전히 꽉 잡으며 카이언을 불렀다.



······웃고 있다.



내가 고개를 들었던 순간 곧바로 표정을 바꿨지만, 분명 그 찰나의 순간, 카이언은 이런 내가 우스운 듯 비웃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내 등에서 시작된 마기로 인해 신성력이 사라져간다.



그러고 보니, 카이언이 방금 내 등을 두들겼었다.



내가 변명할 시간조차 주지 않으려고 검을 나에게 박았다.



그리고 방금 그 웃음까지.



······판단이 섰다.



이건 카이언이 판 함정이다.



“누굴······ 담그려고.”



“큭?!”



“이대로······ 당할 줄 알아?”



아직 남아있는 신성력을 카이언에게 휘두른다. 동시에 마기까지 얽힌 채로 카이언의 가슴팍에 상처를 냈다.



“라이. 이젠 숨기지도 않고 마기를 사용하는 거냐?”



“누구를······ 속이려고. 지금 나를 배신한······ 건 너—.”



“카이언! 괜찮아?!”



“카이언. 위험하다.”



“잖······아.”



난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마그와 크리스에게서 명백하게 적의가 느껴진다.



“엘리시······아.”



엘리시아를 바라본다.



나를 혐오하는 눈.



아.



“하, 하하하.”



나 제대로 당했구나.



더 변명해야 할 것 같은데 분위기는 이미 넘어간 것 같다.



무엇보다 내 신성력이 맛 가버린 게 명확한 증거였다. 차라리 신성력이라도 남았으면 저 빌어먹을 용사를 조져버릴 수 있는 건데.



“라이. 나는 너를 믿었어. 그런데 어떻게 우리를 배신할 수 있는 거지?”



카이언이 역겨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성검을 다시 들었다. 내가 카이언에게 냈던 상처는 지금 내 몸에 뚫린 것에 비할 게 못 되었다. 과한 출혈로 점점 눈앞이 흐릿해진다.



생각해보자.



감정에 호소하며 주장해봤자 무의미하다. 어차피 마그나 크리스, 엘리시아를 설득하기엔 내게 남은 시간도 얼마 없었다. 그 전에 카이언은 날 완전히 죽여버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난 카이언 죽일 수도, 공격조차 막을 수도 없다.



이때 나에게 남은 수단은 단 하나.



도망가야 한다.



“라이.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땐 부디 회개했으면 좋겠다.”



“······다음이라.”



난 옆에 있던 마왕의 딸을 콱 붙잡는다.



“흐읏?”



“라이 너—!”



신성력이 바닥났지만 억지로 마왕의 딸에게서 마기를 뽑아내는 나를 보며 카이언이 달려든다. 하지만 내가 빨랐다.



이거 더 빼도 박도 못하겠는걸. 마기라는 거 신성력과 반대로 이용하니 쉽네.



난 마기로 순간 방어막을 만들며 그와 동시에 공간 이동 마법을 구상했다. 신성력이나 마나는 마계에서 공간 이동을 하기엔 제약이 따르는데 마침 마기 사용에 제약이 없는 마계인지라 한순간에 멀리 도망갈 수 있다.



“카이언. 다음에 만나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안돼! 도망치게 둬선 안 돼!”



여기서 나를 완전히 죽여야 이후 증거가 여론 조작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도망친다면 카이언의 음모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제대로 당황한 카이언이 엘리시아를 부른다.



“엘리시아, 저거 박살 내야 해! 어서 마법을—!”



“늦었어.”



이미 내 뒤쪽엔 포탈이 열렸다.



“라이. 네가 도망간다고 해도 뭘 할 수 있을 것 같냐!”



“하아아. 말했잖아.”



안 그래도 힘든데 말 더럽게 시키네. 속에서 피맛을 느껴지는 걸 겨우 참으며 최후의 통첩을 날렸다.



“돌아온다고······ 그리고, 되갚아······ 주겠다고!”



씨익 웃어주며 마왕의 딸을 끌고 뒷걸음질 친다. 마기로 만든 공간 마법이라 그런지 찌릿한 감각이 온몸을 덮쳤다.



“다음에 보자.”



그리고 순간 붕 뜨며, 난 내 동료들과 멀어졌다.



“라이!!!!!!!”



나를 부르는 카이언의 목소리를 끝으로 나도 의식을 잃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잘부탁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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