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에게 배신당한 프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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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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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1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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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4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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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교의 의뢰 (1)

DUMMY

주인 없는 상단은 무사히 프롬 도시에 도착했다. 한적하던 시골 마을이나 숲길과 다르게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라인가르드 제국의 수도답게 굉장히 아름답고 웅장했다. 저 멀리 보이는 황실의 높은 건물과 잘 정리되어 있는 세련된 거리에 아이리스의 눈이 이곳저곳 움직인다. 성격 상 내색하진 않지만 이런 걸 보니 순수하게 호기심 많은 여자였다.



트리판은 굉장히 머리가 아파 보였다. 결과적으로 알릭 상단주가 죽어버려 이에 대해 용병길드에 보고해야 했고, 흑마법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빠트릴 수 없으니 신전과 황실 조사단이 오는 등 여러 가지 골치가 아파질 것이라고 했다. 단순히 형식상 진술만 요구할 테니 큰 문제야 생기진 않겠지만 우리까지 거기에 휘말릴 필요는 없겠지.



“트리판님. 저흰 이쯤에서 헤어지도록 하죠.”



“그래. 자네들에게는 그게 좋겠군.”



흑마법사는 단 한 명이었고, 멜리샤와 트리판이 함께 그를 겨우 막아냈다고 말을 맞춰놓은 상태이다. 상단주와 흑마법사의 시체도 짐칸에 싣고 와 인과관계도 확실히 만들어놓았다. 우린 이제 슬쩍 빠지면 되는 일이다. 우린 그냥 어쩌다가 휘말린 사람 둘에 불과하니까.



“짧은 기간이었지만 좋은 인연이었네.”



“덕분에 무사히 프롬에 올 수 있었습니다.”



“하하핫. 누가 할 소릴.”



트리판이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만날 일이 있을 진 모르겠지만 정의가 바로 세워지길 기원하겠네.”



정의라.



그건 아마 카이언을 향한 복수의 성공이다.



“제 말을 믿어주시는 건가요.”



“자네와 함께 지냈으니 잘 알지.”



나는 트리판과 손을 꽉 잡았다.



“행운을 비네.”



간단히 인사하고 난 이후 나는 멀어져가는 상단 행렬을 바라봤다. 카이언과 너무나 비교가 되는 사람이다.



“훈훈하네.”



“너도 저런 인간은 괜찮잖아.”



마족의 피가 섞인 인간. 그리고 마족과 인간의 화합을 바라는, 그러한 편견 없는 트리판은 아이리스에게도 신선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굳이 죽이고 싶진 않긴 하네.”



죽인다 안 죽인다로 귀결되는 건가. 카이언에게 얌전히 당할 뻔했던 연약한 모습이 비쳐서 그러지, 아이리스는 마족다웠다. 저번에 흑마법사를 고민 없이 터뜨려 죽였을 때고 그러고. 그러나 오히려 마왕성 내에서도 영 좋지 않은 취급을 당했던지라 오히려 마족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더 관조적으로 보는 것 같았다.



만약. 정말 만약에······ 아이리스가 언젠가 마왕이 된다면 트리판이 기원하는 대로 인간과 마족이 악수하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마치 내가 트리판과 헤어지던 때처럼 말이다.



“이제 북부로 가시는 건가요?”



“그렇죠. 그런데.”



오른쪽엔 아이리스. 그리고 왼쪽에 있는 밤갈색 양갈래 머리 여성.



“멜리샤 사제가 왜 여기에 있으신지.”



“엣. 저요?”



멜리샤 사제가 용병들을 따라가지 않고 여기에 남아 있었다.



.

.

.



창밖으로 저 멀리 거대한 신전이 하나 보인다. 라인가르드 제국민 중 절반 이상이 종교로 삼는 「미네르바교」의 대신전이다. 빛을 관장한다는 나의 신과 달리 미네르바는 지식을 관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황실만큼은 아니지만 그 위용만큼은 확실히 에테른교의 대신전에 꿀리지 않았다.



“꺼림칙하네.”



찬란한 빛이 나는 대신전 뚜껑에 눈이 부신 아이리스가 이내 고개를 돌린다. 반사되는 환한 빛만큼 대신전을 두루고 있는 신성력은 마족인 아이리스에게 불편할 것이다. 아이리스는 눈 앞에서 샌드위치를 열심히 먹고 있는 여자를 보곤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인간은 왜 또 안 간대?”



“넴?”



“하아.”



멜리샤는 우물거리던 입을 멈춘 채 아이리스를 쳐다봤다. 무슨 문제냐는 초롱초롱한 눈빛. 아이리스는 먹는 애 괜히 건드렸다가 자신이 쪼잔해질 것 같은 지 그냥 입을 닫았다. 더는 아무 말 없자 멜리샤는 남은 샌드위치 부위를 입 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음료까지 쭉 마신다.



“헤헤. 배고팠는데 이제 살 것 같네요.”



나와 아이리스는 배부터 채우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었다. 그리고 그 뒤를 멜리샤가 따라온 것이다.



“멜리샤 사제. 너무 편해진 거 아니에요?”



“라이, 아니지. 라크님. 저번처럼 편하게 부르셔도 돼요.”



내 이름을 숨겨주려는 노력은 해보려는 모양이다.



“그리고 교단은 다르지만 제 대선배이시잖아요.”



“제가 편하진 않아서요.”



“앗. 너무해요!”



나이야 내가 두 살 정도 더 많기야 했다. 막 성인이 된 에테른교의 성녀와 나이가 같다고 했었다. 그래서 말을 편하게 해도 괜찮겠으나 막상 정을 주고 싶진 않았다. 그럴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 제국까지 동행해야 하니 협력했던 거고, 이젠 각자 갈 길은 따로 갈 사이였다.



“라크님은 이대로 에테른교 대신전으로 바로 향할 생각이신가요?”



“네. 그곳으로 가면 도와줄 아군이 많으니까요.”



“아쉽네요. 사실 저 라크님께 더 배우고 싶었거든요.”



“제게 배울 게 뭐가 있다고.”



“그만큼 신성력을 잘 쓰시는 건 처음 봤어요. 저희 교황님보다도 더 자유자재로 다루세요!”



흑마법사랑 대치할 때 내게 신성력을 양도하면서 한 번 맛봤을 것이다. 마왕 토벌까지 완료했던 용사 파티 프리스트로서의 능력은 확실하니까. 원래라면 성녀가 함께 해야 할 마왕 토벌에 그 많고 많은 여러 교단 중에서 내가 괜히 뽑힌 게 아니다.



“에이. 멜리샤가 직접 싸울 일도 별로 없을 텐데.”



“모르죠. 이번에 라크님이 안 계셨더라면 전 무사히 이곳에 오지 못했을 테니까요.”



하긴 그러네.



“언제 출발하시게요?”



“오늘은 쉬고 내일에 또 북부로 이동하는 상단이나 용병들을 알아봐야지요.”



“아쉬워요. 그런 일만 아니었으면 며칠이라도 더 묶고 가라고 말씀드렸을 텐데.”



교단이 달라도 나 정도 급의 사제가 미네르바교에 들른다면 꽤 좋은 대접 정도야 받을 수 있다. 내 신세가 이러지만 않는다면.



“이곳 프롬이 얼마나 멋진 곳인데요. 문화 시설도 많고, 볼거리도 많고, 여기 삼살이라는 고기가 얼마나 인기 많은지 아세요?”



자기 동네 자랑에 신난 멜리샤는 엄청 재잘거렸다.



“그거 한번 맛이라도 봐야 하는데. 게다가 이곳은 저희 지식의 신 미네르바님과 관련된 여러 흔적도 있어요.”



“이곳엔 「지식의 바다」가 있다면서요?”



“아 맞아요. 저희 미네르바교 대신전의 가장 중요한 유산이랍니다.”



지식의 바다.



수많은 어류, 해조류 등 생명이 풍부하게 깃든 바다처럼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지식이 들어있다는 미네르바교 대도서관을 칭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출입 가능한 공적인 장소는 아니었고, 그 공간 자체가 성유물인 마냥 철저하고 소중하게 관리되는 곳이었다. 일반인이든 고위 귀족이든 허가를 받아야 출입 가능하다.



“그곳에 관심이 있으세요? 저는 책만 보면 머리가 아파서······.”



“전 그 바다의 「심해」를 보고 싶었거든요.”



“네? 심해······라 하면.”



바다 밑의 바다.



더 넓고 더 다양한 해양 생물이 사는 깊은 바다 아래. 그만큼 일개 인간이 얻을 수 없는 지식들이 들어있다고 한다.



“에이. 거긴 교황님도 마음대로 못 들어가는 곳이에요.”



“신께 허락만 받으면 된다면서요.”



“그러니까 교황님조차 감히 그러시질 못하는데 라크님이, 그것도 다른 교 출신이신 분을 허락해주실 리가 없잖아요.”



“그거 아쉽네요. 기필코 가고 싶었는데.”



아는 사실이긴 하나 마음 같아선 한번 시도 정도는 해보고 싶었다. 노크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꺼지라고 하면 하는 수 없고.



“너 뭔가 알아내고자 하는 게 있는 거야?”



내가 얻고자 하는 지식이 궁금하기라도 한지 아이리스가 대뜸 물어본다. 영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그곳에 들어간다는 건 신께 묻고 싶은 지식이 있다는 거잖아. 너 정도나 되는 인물이 더 궁금한 게 남았다고?”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네.”



“하긴, 저도 라크님이 단 1년? 2년 만에 에테른교 대신전의 모든 서적을 완독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세기의 천재라고도 들었었는데.”



꽤 오래전의 일이라 그랬었던 것 같다. 한동안 도서관에 박혀 살았었는데.



“맞아.”



“천재라는 말에 부인하진 않네.”



“실제로 천재 맞으세요. 그래서 저도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은 거였는데.”



너무 오만하게 보였는지 아이리스는 아니꼽게 보는 눈빛이다. 멜리샤야 그날 이후 어느새 내 열렬한 지지자로 변했고.



“천재도 모르는 게 있는 모양이네?”



“아는 게 많을수록 원래 이 세상의 진실에 대해 더 의문이 생기는 법이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어.”



내가 어쩌면 신에게 외면받을지도 모르는 이유. 나는 잠시 저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인간들이 신이 있는 곳으로 여기는 저 위를 보아도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새하얀 구름이 동동 떠다니는 걸 보니 어딘가 기분이 좋아질 뿐이다. 이만한 여유를 느끼는 게 얼마만일까.



······역시 모르겠다.



함께 식사를 마치고 나서 슬슬 멜리샤와도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좀 이따 가면 안 돼요?”



“곧 날도 저물 텐데요.”



“하아. 가면 또 지긋지긋한 교단 생활의 시작이란 말이에요. 오히려 수행하던 때가 더 나았을 지도.”



그래서 곧바로 교단으로 가지 않고 우리에게 붙어 있던 거구나. 나도 그랬던 때가 있으니 한편으론 이해가 갔다.



“멜리샤 사제님. 부디 신의 뜻을 잘 깨우치시길.”



“마지막인데 말 좀 편하게 해주면 덧나요?”



“그럴 수가요. 예비 성녀이신 분인데.”



“뭐?”



언제 가나 딴짓을 하고 있던 아이리스가 깜짝 놀라며 멜리샤를 쳐다봤다. 입을 떡하니 벌리고 말을 잇지 못하는 멜리샤를 보니 그렇게 충격이었던 걸까.



“어, 어떻게 아셨나요? 혹시 이 팔찌 때문에?”



“네. 보통 성물을 일개 사제에게 주진 않을 테고, 그 성물이 오히려 신이 내려주는 신성력을 막아주더군요.”



내가 눈치를 챘을 때는 흑마법사와의 전투였다. 오히려 신성력을 증폭시켜줄 성물은 멜리샤에게 들어가는 신의 은총을······ 즉 막대한 양의 신성력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마 이게 수행의 일환이겠지.



“그리고 전 에테른교의 성녀 가까이에서 일해봤던 사람인지라 미약하더라도 성녀의 신성력은 특별하다는 걸 알죠.”



“하으으. 그래서 말 놓지 않던 거였구나.”



멜리샤는 정체가 드러난 것에 대해 부끄러운지 볼이 빨개지며 얼굴을 들지 못했다. 혹시 나중에 반말 시켜놓고 곤란해진 나를 놀릴 작정이었던 걸까. 그렇게까지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을 텐데.



“으으. 저 같은 게 성녀라니, 미네르바교의 수치에요.”



성녀치고 성법 술식을 잘 못 짜긴 했었다.



“멍청해도 괜찮아요. 어차피 성녀는 직접 싸울 일도 없으니.”



“그거 전혀 위로 안 되거든요?!”



경어만 쓸 뿐이지 아주 날카롭게 말하자 멜리샤는 수치와 분노에 파닥거렸다.



성녀답지 못하다라. 그래도 하는 것 보면 좋은 성녀가 될 것 같다. 진심으로 누구를 위하고, 자기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런 성녀 어디 흔하진 않으니까.



어쨌거나.



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이다.



“그럼 언젠간 또 뵈길 기원할게요. 고마웠어요 라크님!”



“저희에 대해서만 잘 함구해주시죠.”



“네! 꼭 복수 성공하시고 재회하도록 해요!”



하는 행동 보면 어딘가 불안한데.



“그렇게 큰 소리로······. 말실수나 하지 마시길.”



멜리샤는 씩씩하게 미네르바 대신전을 향해 걸어갔다. 멀어져가는 멜리샤를 보니 한동안 또 조용해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게 맞겠지.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은 어쩌면 고독할 테니.



.

.

.


······였을 텐데.



때는 밤에 나와 아이리스가 내일의 일정에 대해 의논할 때였다.



“여기 라크님 계십니까?”



우리가 묶는 숙소 앞에 찾아온 성기사. 갑옷을 보니 에테른교 쪽은 아니었다.



“미네르바교의 성기사들께서 무슨 일로 오셨는지.”



잔뜩 경계한 아이리스를 뒤로 둔 채 앞으로 나가 성기사를 마주한다. 검을 뽑지 않고 내 앞에 나타났다는 건 나를 잡아가기 위함은 아니라는 건데. 무엇보다 성기사 뒤에 숨어 있는 한 사람.



“죄송해요! 제가 분명 조심한다는 게······.”



성기사 뒤에서 쏙 나오며 연신 고개를 숙이는 밤갈색 머리 여사제.



“교황님께서 라이님을 데려오라고 하셨어요. 그치만 정말 아무런 위험은 없을 거예요. 부탁할 게 있으시다고······.”



“하아.”



“네놈. 성녀님께서 미안하다 하시지 않느냐!”



대놓고 한숨을 푹 쉬니 멜리샤는 어쩔줄 몰라하고 성기사는 역정을 냈다. 내 정체까지 다 떠벌린 모양인데 한숨 안 나오게 생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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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미네르바교의 의뢰 (2) 24.10.05 26 0 13쪽
» 미네르바교의 의뢰 (1) 24.10.04 2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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