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33화
생각지도 못한 기능.
처음에 투명 공이 생겼을 때, 연습이나 할까 했던 호수였다.
“와. 대박이네. 왜 이제 알려줘. 아니다. 지금이라도 말해주는 게 어디야. 내일 육전 사 줄까?”
“미야옹~”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기분 좋은지 앞다리를 쭉 뻗는 녀석의 얼굴에 만족감이 퍼졌다.
정보의 중요성은 100년 후나 100년 전인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투명 공으로 야쿠타의 행동만 잘 파악할 수 있어도, 예상치 못한 위험의 대부분은 해결이 가능한 상황.
“이거 몇 개 더 있으면 좋겠다. 방법 없나?”
은근한 눈길로 고양이를 쳐다보았지만, 녀석은 아는지 모르는지 딱히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앞발을 연신 핥으며 털 정리를 했다.
그런 고양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호수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입을 열었다.
“아. 맞다. 너도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
매번 야, 너라고 부르자니 뭔가 정 없는 느낌이 들어, 이름 하나 지어주려던 참이었다.
워낙 하이호와의 경기가 중요하다 보니 경기 이후로 미루고 있었던 일.
호수의 말을 들은 고양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를 쳐다봤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막상 하려니까 마땅한 게 없더라고?”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는 호수를 보던 고양이가 말했다.
“미야옹.”
“너 이름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야. 그걸 왜 이제 말해. 뭔데?”
“미야옹.”
“뭐? 장돌이? 하하하하. 장돌이래.”
저항 없이 터진 웃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호수를 보는 고양이 눈이 날카로워졌다.
“아 진짜 웃기네. 하하하.”
웃느라 장돌이의 표정을 살피지 못한 호수가 갑자기 느껴지는 싸한 기운에 웃음을 멈췄다.
“미야옹?”
“다 웃은 게 아니라······.”
“미야옹!!”
“······미안.”
고양이 면전에 대고 이름이 웃긴다고 비웃는, 그런 예의 없는 행동이 어디 있냐며 화내는 장돌이의 눈에 분노가 차올랐다.
그의 사과에도 썩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 녀석의 눈치를 살피는 호수였다.
“미야옹.”
한동안 가만히 그를 노려보던 장돌이가 뭔가 생각난 듯 창문으로 갔다.
톡톡.
그리고 호수에게 창문을 열어 달라는 제스쳐를 하는 녀석.
문을 열어주자, 순식간에 어딘가로 가는 장돌이였다.
“어디 가는 거지?”
밤에는 추운지 늘 호수 방에서 자던 녀석이기에 호수는 장돌이가 올 때까지 조금 기다려보기로 했다.
“내일 몇 명이 올지 모르지만 조를 나눠서 봐야 하는데. 내일은 접수할 때 희망 포지션도 같이 적어 달라고 해야겠는데.”
차분히 앉아 내일부터 진행할 선수 테스트 내용을 정리하고 있는데.
톡톡
어딜 다녀온 건지 녀석이 호수방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왔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걸이를 풀어 문을 살짝 열어주었다.
후다닥 안으로 들어온 장돌이 입에는 여러 번 접힌 종이 몇 장이 물려있었다.
“이게 뭔데?”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종이를 바라보는 호수.
그런 그에게 어서 열어보라고 종이를 바닥에 내려놓는 장돌이.
별생각 없이 종이를 펼쳐 든 호수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너······. 이거 어디서 났어?”
놀람과 당황스러움이 섞인 목소리로 장돌이에게 묻는 호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미야옹.”
산에서 어떤 사람이 흘리고 가는 걸 주워 왔다는 말에, 호수는 녀석에게 바짝 다가서며 물었다.
“이 종이 떨어트린 사람 어디 사는지 알아?”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녀석.
“진짜 꼭 알아야 해서 그래.”
잠시 고민하던 장돌이는 결심한 듯 말했다.
“미야옹!”
고개를 끄덕이며 찾아보겠다고 말하는 장돌이에게 호수는 고맙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녀석이 가져온 종이를 빤히 바라봤다.
그 종이에는 호수가 쓰던 건 아니었지만, 분명 이전 생에서 많은 사람이 쓰던 휴대전화 디자인이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쓰던 배달 앱이나, 채팅 앱까지, 써 본 사람이라면 바로 알아볼 수 있게 그려져 있었고, 설명까지 덧붙여져 있었다.
‘이게 왜 여기 있는 거냐고. 도대체 누가 그린 거지?’
종이를 보는 호수의 눈에 많은 생각이 스쳤다.
**
호수가 밤새 잠을 못 자고 뒤척여도, 해는 뜨고 날은 밝았다.
9시에 웃터골에서 유산소로 몸을 풀고 테스트를 할 생각이었지만 그건 그거고 호수는 새벽에도 혁수와 철만을 깨워 웃터골을 달리고 돌아온 상태였다.
먼저 방에 갔다 오겠다고 들어가는 호수를 보며 혁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따라 왜 아무 말 없이 빨리 뛴 건지 모르겠네. 무슨 일 있었나?”
그는 호수가 평소보다 말이 없는 것을 눈치채고 철만에게 물었다.
크게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철만이 말했다.
“호수도 피곤하지 않겠나. 어제도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뒤척였다 아이가.”
호수가 피곤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철만과 달리 혁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물론, 예전에 알던 아픈 호수보다야 컨디션이 좋아 보였지만.
아무래도 어젯밤부터 조금 이상했다.
“아닌데. 뭔가 다른데. 뭐지. 음······.”
혁수는 분위기를 봐서 호수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아침을 먹으러 들어갔다.
아침을 먹고 웃터골에 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병호와 재호, 태주가 호수네 집으로 들어왔다.
“이모. 저 왔어요!”
막내인 태주가 살갑게 유모에게 소리쳤다.
“아이고. 밥은 어떻게?”
“먹고 왔어요! 다들 먹고 왔데요. 걱정 마세요!”
“이모 지는 먹고 왔구먼유. 쉬셔요.”
“저도 먹고 왔습니다.”
태주 뒤로 들어온 병호와 재호도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
“준비 다 됐어?”
병호가 혁수에게 물었다.
“응. 호수는 신청자 명단 가지러 올라갔어. 그거만 가지고 내려오면 바로 갈 수 있어.”
“가자.”
때마침 2층에서 내려오던 호수가 혁수의 말을 받아 대답했다.
“오늘 몇 명이나 올까?”
“그러게 말여. 일단 달리기부터 시작한다고 혔지?”
“네. 속도는 제가 맞출게요.”
“응. 호수야.”
“알겠구먼.”
“네! 알겠습니다.”
**
9시보다 이르게 웃터골에 도착했지만, 먼저 온 신청자가 고려단 선수보다 더 많았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
“그러게요.”
병호와 태주는 조금씩 거리를 두고 어색하게 떨어져 있는 신청자를 보며 말했다.
“아! 안녕하십니까아! 로진박 인사드립니드아!”
“아. 네 안녕하세요. 하하하.”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는 진박에게 놀란 혁수가 존댓말을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오늘 제대로 실력 보여드리고 저도 꼭 고려단이 되겠습니드아!”
“네. 응원하겠습니다. 힘내세요! 하하하.”
응원한다는 말과 다르게 혁수는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그의 눈에서 나오는 열정이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아이쿠. 죄송해요.”
뒷걸음질로 조금씩 물러나던 혁수가 미처 사람을 보지 못해 한 남자를 툭 하고 쳤다.
“아, 아··· 아니예···요······.”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소리에 혁수는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귀를 바짝 가져다 댔다.
“네? 뭐라고요? 제가 못 들어가지고.”
“아, 아··· 괘, 괜찮···다고···했어요······.”
“아. 괜찮다고요. 하하. 다행이네요. 네. 하하.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아, 아··· 이···훈이라고 합니다······.”
“이훈님이군요. 아 네. 힘내세요. 하하하.”
“아, 아··· 네에······.”
훈이는 자신의 이름이 ‘이훈’ 외자가 아니라 ‘이훈이’라고 말하지 못해 당황했지만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혁수도 당황스러웠다.
앞에는 눈에 불을 켜고 자기를 바라보는 진박이 있었고, 뒤에는 자기의 이름도 겨우 들리게 말하는 훈이가 있었다.
‘오늘 쉽지 않겠는데?’
아직 사람이 다 온 건 아니었지만 혁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직 시간 좀 남아 있으니까. 좀 더 기다렸다가 9시 되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생각이 많아 보이던 호수는 방에서 명단을 가지고 내려올 때 다시 이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뭔가 결심한 듯 강한 의지도 엿보였었다.
‘괜한 착각이었나 봐.’
삼삼오오 여기저기 어색하게 모여있는 신청자를 모으고 테스트 시작을 알리는 호수의 모습을 보며 혁수도 걱정을 거뒀다.
시간이 되고 웃터골에 9시까지 모인 사람은 대략 30명 정도였다.
전날 정신없던 것에 비하면 조금 적은 숫자.
“생각보다 적네.”
“아무 때나 한 번만 오면 된다고 해서 그런가벼.”
선수들은 재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기나 연락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시대다 보니, 고려단 선수들은 신청자에게 언제든 일주일 안에만 테스트에 참여하면 되고, 매일 아침 9시에 시작한다고 말했었다.
“자 다들 모여주세요.”
호수는 시간이 되자 사람을 모았다.
“오늘 우리는 실제로 지난 하이호 경기를 준비하면서 했던 훈련 일부를 하게 될 겁니다. 끝까지 잘 따라오시면 됩니다.”
호수의 말을 듣는 신청자의 눈이 반짝였다.
“고려단은 보통 새벽에 숙소에서 웃터골까지 20여 분 거리를 달려온 뒤, 쉬지 않고 이곳을 5바퀴 정도 뛰는 걸로 훈련을 시작하는 편입니다.”
예비 고려단원들은 호수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그러고 나서 단거리, 장거리 유산소를 하고, 근력운동을 하는데. 오늘은 여기서 시작하는 관계로, 가볍게 10바퀴 정도 뛰겠습니다.”
“이 넓은 곳을 10바퀴를 뛴다고?”
“그런가 본데요?”
“3바퀴만 뛰어도 죽을 것 같던데······.”
사람들이 저마다 걱정스러운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때 그들의 중얼거림을 뚫고 커다란 기합 소리 같은 외침이 들렸다.
“넵! 알겠습니드아!”
“와, 와아······.”
하필 진박 뒤에 선 훈이는 그런 그가 멋져 보였는지, 손을 모아 소리 나지 않게 박수를 보냈다.
혁수가 어색한 얼굴로 둘을 보며 웃었다.
“헉, 헉, 지금 몇 바퀴죠?”
한 남자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옆 사람에게 물었다.
“헉, 헉, 이제 저기 지나가야 5바퀴예요.”
“말도 안 돼······.”
생각보다 먼 거리에 참가자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달리고 있었다.
“속도가 너무 후. 너무 빠른 거 아닙니까? 헉, 헉.”
“후우, 후우, 이게 그나마 느리게 달리는 거라던데요?”
“참말이에요?”
“네. 맞아요. 하하.”
태주는 이 정도는 일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실제로 맨 앞에서 속도를 조절하며 뛰는 호수는 자기가 가장 저질 체력이었던 몇 주전 속도로 웃터골을 달리고 있었다.
겨우 공 몇 개 던지고 숨차하던 체력으로도 악착같이 완주했던 그 속도와 거리.
그런 약한 상태로도 해냈던 운동량이었다.
이것도 어렵다며 체력적 핑계를 대거나, 지쳐서 포기하는 사람은 1차로 거를 생각이었다.
“이걸 지금보다 더 빠르게 매일 뛴다는 거죠?”
“그렇죠.”
태주는 생긋 웃었다.
“이게 끝이 아닙니드아! 바로 단거리, 장거리 달리기 훈련을 연달아서하고, 근력운동까지 해야 끝이라고 했습니드아!”
지치지도 않는지 진박은 큰 소리로 말했다.
“아, 아··· 그, 그렇구나······.”
여전히 작은 목소리긴 했지만, 의외로 훈이 역시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와······. 이건 아니지. 헉, 헉.”
“후우. 후우. 지금도 죽겠는데, 이걸 끝내고 또 훈련이 있다고?”
“네. 그게 새벽 운동이고, 그 뒤로 오전, 오후, 저녁 훈련이 더 있어요. 하하하.”
너무 밝게 웃으며 참가자의 타오르던 마음에 물을 들이붓는 태주였다.
‘이건 아니야.’
‘나, 난 못해. 난 못해!’
‘도망가야 해.’
처음 시작된 웃터골 달리기에서 벌써 여러 사람은 포기할 결심을 했다.
“하느아! 두울! 세엣! 네엣!”
그러거나 말거나 호수는 우렁찬 기합을 넣으며 웃터골을 달렸고.
“하느아! 두울! 세엣! 네엣!”
“하느아! 두울! 세엣! 네엣!”
혁수와 재호, 철만과 태주는 여유로운 얼굴로 기합을 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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