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34화
"몸이 식으면 감기, 아 고뿔 걸릴 수도 있으니까. 바로 다음 훈련 시작하시죠."
웃터골을 10바퀴 돌고, 단거리 달리기 훈련까지 마친 참가자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바로, 다음 훈련을······?”
"이게 말이 되나."
“그럼요. 말이 되죠. 평소보다 확실히 수월한데요. 달리는 시간도 짧고. 하하하.”
“그럼 평소에는 이것 보다 더 길게 한다는?”
“네. 보통은 이것보다 두 배는 더 하죠. 하하하. 어유, 몸 식겠어요. 얼른 일어나세요.”
해맑은 얼굴로 태주는 별일 아니라는 듯 예비 선수들을 보며 싱긋 웃었다.
마냥 밝은 얼굴로 웃고 있지만, 고려단 막내의 몸은 어느덧 근육이 조금씩 붙어 태가 나고 있었고.
달리기 역시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뛴 덕에 그다지 힘들지 않은 상태로 다음 훈련을 준비했다.
그는 그저 하던 대로 하는 것 뿐이었지만.
"저 정도 체력은 되어야 고려단을 들어갈 수 있는 건가."
"난 어림도 없겠는데."
"나도."
태주를 바라보는 참가자의 눈엔 경외가 서렸다.
제일 첫 테스트로는 끈기와 지구력, 정신력을 알아보기 위해, 그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춘 호수가 쉬지 않고 바로 다음 훈련 내용을 간단히 설명했다.
“이제 근력 훈련을 할 겁니다.”
여전히 숨을 몰아쉬며 호수를 보는 사람, 그 사이 숨을 많이 고른 사람이 모두 그에게 시선을 모았다.
“제가 하는 훈련이나 용어가 다소 낯설고 이상 할 수 있지만. 열심히 따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예! 알겠습니드아!”
“예······.”
"그럼 이제 버피랑, 푸쉬업, 마운틴하고, 스쿼트랑 플랭크 같은 동작으로 하체랑 코어 갈게요.“
"뭐, 뭐라고?"
“코어가 어딘데 거길 가?”
“도대체 뭘 하라는거야?”
참가자들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하나도 알아듣지 못할 말에 서로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뒤로 조금 물러나있던 고려단 선수들이, 참가자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가볍게 웃었다.
“우리가 처음 했던 반응이랑 똑같네요. 헤헤.”
“난 아직도 저 말들을 글로 쓰라면 못쓰겠구먼. 하라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하지.”
“저도요. 대충 동작으로 외웠는데, 저 말들은 지금도 낯설긴하거든요.”
“그건 나도 그래. 그러니까 저런 반응도 당연한 거지.”
옆에 있던 병호가 말하자, 나머지 선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고 해도, 어떻게 저런 것까지 다 알고 있는 거지?"
"그러게요. 어디서 한 백 년은 야구하고 온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러게 말이구먼."
고려단 선수들이 호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이 말을 끝낸 그가 그들에게 손짓했다.
그 의미를 알아차린 선수들이 익숙하지만 빠르게 각자 위치로 움직였다.
"자, 먼저 버피테스트."
호수의 말에 일정한 간격으로 벌리고 선 선수들이 동작으로 먼저 시범을 보였다.
"속도보다 동작을 정확히 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렇게 손으로 바닥을 짚을 때 허리 너무 구부리지 않게 주의하시고."
주의할 점을 하나하나 짚어주며 호수와 선수들은 같은 동작을 두 세 번 더 보여줬다.
"이해하셨죠?"
“알겠습니드아!”
진박의 우렁찬 대답 소리가 나오자, 호수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가볍게 50개만 할게요.”
동작 자체는 그다지 힘들어 보이지 않아서인지 참가자들은 개수를 듣고도 딱히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들 간격 벌리고 이 자세로 서주세요. 15개씩 3번 하는데, 마지막엔 20개로 하겠습니다. 시작 할게요. 하나!”
"하나!"
“하나!”
“둘!”
“둘!”
.
.
.
"삼십삼!"
"······으아아. 삼십삼!"
"사, 삼······, 십삼!"
처음엔 가벼운 얼굴로 시작했던 참가자들 얼굴에 금세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버피테스트를 끝낸 뒤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휴식 시간 후.
푸쉬업, 마운틴 등 몇 가지 동작을 거의 쉬지 않고 진행했다.
“헉, 헉, 헉. 아니, 선수들은 나랑 다른 걸 하는 건가? 왜 저렇게 가볍게 하는 것 같지?”
버피테스트를 거쳐 몇 가지 동작을 한 뒤에도 여전히 흔들림 없는 자세로 스쿼트를 하는 고려단을 보며 참가자들이 고개를 저었다.
"돈을 그렇게 쉽게 줄 리 없지!"
"볼 땐 별 거 아니더니, 막상 내가 하려니까 왜 이렇게 훈련이 힘든 거야."
"그러게. 그냥 공이나 좀 던지고 달리기 좀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심지어 포수까지 나보다 훈련을 더 잘 하잖아."
"맞네."
덩치가 제법 있는 혁수도 힘든 얼굴을 하면서도 끝까지 모든 훈련을 완벽히 소화하고 있다보니 사람들 눈에 놀라움이 가득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이렇게 까지 많은 훈련을 하는 줄 몰랐어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괜히 2경기 연속으로 이긴 게 아니었어.”
“저, 저는 지금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은데 계속 해야 될까요······?”
참가자 한 명이 자신의 옆에서 열심히 스쿼트를 하는 태주에게 물었다.
“허벅지가 터질 것 같으세요? 자극이 잘 가고 있나 봐요. 조금만 더 내려가면 효과 제대로 나거든요? 좀 더, 더 앉으세요. 이렇게요. 하하하.”
“······.”
지금도 허벅지가 아픈데 거기서 더 내려가면 효과가 좋다며 밝게 웃는 태주를 보며 어색하게 웃던 참가자가 말했다.
“괘, 괜찮습니다. 하하.”
쓰러질 것 같은 얼굴로 동작을 겨우 하는 참가자에게 태주가 다시 한 번 악의 없는 해맑음으로 열정을 꺾었다.
“오늘은 진짜 쉬운 거예요. 평소 절반도 안 하고 있거든요. 거의 2배, 아니다! 한 3배는 더 하는데.”
“절반도 아니고 세 배······.”
의도한 건 아니지만 태주는 특유의 밝은 심성으로 그렇게 또 한 명의 야구 꿈나무에게서 야구를 앗아갔다.
‘집에 가고 싶다.’
너무 힘들어 짜증이 나는 단계를 넘어, 해탈한 얼굴이 될 때쯤 기초체력 테스트가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호수의 말에 차디찬 겨울 흙바닥에 사람들이 벌러덩 드러누웠다.
“끄, 끝났다.”
“진짜 끝이 있긴 있네요.”
“물 어딨죠? 목이 타들어 가는데.”
“오늘 날씨가 왜 이렇게 덥지. 유난히 덥네.”
한겨울 손 부채질하며 땀을 식히는 참가자의 얼굴이 환하게 바뀔 때쯤, 호수가 입을 열었다.
“자 다들 이제 일어나시죠. 이대로 계시면 고뿔 걸려요. 땀 식으면 안 되니까. 저희 집까지 뛰어갈게요.”
“예?”
“뭐, 뭐라고요?”
“또 뛰, 뛰······.”
참가자들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호수를 쳐다봤다.
“늘 이렇게 합니다. 집까지 빨리 뛰면 15분이면 가니까요. 밥 먹고 잠깐 쉬었다가. 수비 훈련하면 되겠네요.”
태연하게 말하는 호수를 보던 참가자들이 하나 둘 눈치를 보았다.
“저, 저는 집에 볼 일이 있어서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갑자기요?"
"예."
“저도요. 저도 집에 가야 해서.”
"무슨 일 생기셨어요?"
"예. 아마 그랬을 거예요."
하루를 다 뺄 수 있는 날을 정해서 오라고 몇 번이나 말해줬었지만.
갑자기 많은 사람이 중요한 일이 생기고 있었다.
“오늘 시간 되시는 분만 오라고 말씀드렸는데 바쁜 일이 있으시구나.”
“예.”
“그럼 이번 주 안에 언제든 다시 오세요.”
“하하. 예······.”
겨우 기초 훈련만 했을 뿐인데, 절반을 훌쩍 넘는 인원이 갑자기 일이 생겨 선수테스트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호수는 남은 사람들에게 물었다.
"더 가실 분 없으신가요?"
"······."
그의 말에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호수는 남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 그럼 땀 식기 전에 뛰겠습니다.”
“알겠습니드아!”
“네······.”
“예!”
호수는 몇 안 남은 사람들과 함께 달리면서 웃터골을 빠져나갔다.
**
김사장은 준목이 밤새 고민한 내용이 반영된 도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가능하겠나?”
항구 근처 어망을 만드는 업자에게 그가 물었다.
“마침 재고가 많이 있긴 한데. 갑자기 창고를 왜 그물로 덮는다는 건가?”
“당분간 거길 좀 아들 녀석이 쓰기로 해서 말이야. 허허허.”
“호수가?”
준목은 미소 띈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겨울에도 야구 연습을 하고 싶다는데, 밖은 너무 춥지 않은가.”
“그 창고에 쌀 저장비로 받을 돈만 해도 무시 못 할 텐데. 그걸 아들 야구 하는데 쓴다는 건가?”
놀란 얼굴로 준목을 바라보는 김사장에게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렇다는 제스쳐를 했다.
“허허. 자네. 아들 사랑이 아주 남다르고만.”
“요즈음 부쩍 사이가 좋아져서 뭐든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러네. 알잖나. 그 애 엄마 죽고 나 힘들다고 애는 어멈한테 내팽개치다시피했던거.”
“······그랬었지.”
“그 뒤로 아무리 찾아봐도 녀석과 친해질 방법이 없었는데. 이렇게 기적처럼 가까워지고 있으니. 뭔들 아깝겠나.”
준목의 말을 가만히 듣던 김사장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봄세. 이틀 만에 해 달라는 게지?”
준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내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 지어서 연락하겠네."
“고맙네. 비용 걱정 말고, 사고 나지 않게 잘 부탁하네.”
이번엔 김사장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김사장은 진심 어린 준목의 말에 그렇게 실내 야구장 만들기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되었다.
‘하는 김에 그 장비도 같이 하면 되겠어.’
며칠 전 호수가 저녁을 먹고 서재로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때 어떤 그림을 그리면서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가 있는지 물었다.
연습할 때 필요한 장비라며 열심히 설명을 했는데.
공을 던져주는 사람이 툭 던진 다음 그물 뒤로 숨어야 공에 맞거나 다칠 일이 극히 줄어든다며, 그 장비를 만들고 싶다고 했었다.
호수의 말을 듣다 보니 일리가 있어 이기게 된다면 승리 기념으로 하나 줘야겠다 생각해 이미 제작을 맡겨둔 상태였다.
일주일 후 선수까지 뽑고 새로 훈련할 때, 그 장비까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는 쌀 저장고를 본다면 얼마나 기뻐할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럼 부탁하네.”
“걱정 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니.”
가지고 있던 그물 중 공이 빠져나가지 않을 구멍 크기를 가진 그물이 마침 재고가 있는 상황.
준목이 나가자, 김사장은 준목이 주고 간 도면을 보며 그물 사이즈를 계산했다.
그리고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사람을 모았다.
한편 준목은 김사장 가게를 나와 쌀저장고를 지었던 강사장을 찾아갔다.
사정을 설명하고, 그 안에 그물을 걸 계획을 말했다.
“그건 가능합니다. 천장에 일정 간격으로 그물을 고정하면 금방이거든요. 나중에 떼는 거야 잘라도 되니 크게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럼 혹시 이틀 후부터 시작할 수 있겠나? 닷새 안에는 끝내고 싶은데.”
“그거야 뭐 인부만 쓰면 하루 만에도 됩니다. 그물만 제때 주시면요. 닷새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강사장의 말을 듣는 준목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럼 부탁하네.”
그는 강사장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모든 게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호수가 훈련을 다시 시작하는 다음 주에는 모든 게 완벽하게 준비가 될 수 있는 상황.
아들이 좋아할 모습에 신이 난 준목은 그제야 한상상회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호수는 그저 쌀 저장고를 쓰겠다고 했지만, 밤새 고민한 끝에 준목은 그 안에서 다양한 야구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됐다.
웃터골 보단 작지만, 거의 그 정도에 가까운 크기의 쌀 저장고를 사용하지 않으면 떠안게 되는 손해가 결코 작지 않지만.
아들이 돈 벌일이 잔뜩 있다고 했으니 그걸로 벌면 될 일이었다.
물론 크게 기대하진 않았지만.
“삼겹살이 고마워할 정도로 가치가 있을거라고 하니. 그걸로 돈을 벌어 봐야겠지. 허허허.”
준목은 호수의 귀여운 허세를 떠올리며 한껏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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