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대한야구를 빌드 업 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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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고목나무.
그림/삽화
구공사팔
작품등록일 :
2024.10.01 22:42
최근연재일 :
2024.12.03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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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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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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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43화

DUMMY

43화


호수와 철만, 혁수가 달리는 모습을, 한 사내가 조금 거리를 두고 엉성하게 숨어 지켜봤다.


나무 아래 사람이 서 있는 게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누가 봐도 자세가 엉거주춤했던 터라, 호수는 그 사내를 위아래로 훑었다.


비단 호수만 그랬던 건 아닌지, 혁수가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


"어? 저 나무 아래, 이 씨 아저씨 아냐?"


"어데? 맞네? 저 아재가 와 저깄지?"


"그러게. 이상하네."


호수도 뒤늦게 그 남자가 이 씨 아저씨인 걸 알아챘다.


이 씨 아저씨.


한때 나라를 들썩일 정도로 유명했던 천재였지만, 결혼 후 갑자기 아내가 집을 나간 뒤, 서서히 미치고 만 동네마다 한 명쯤 있는 미치광이였다.


"이 씨 아저씨 참 안타깝지 않아? 부인이 집 나가서 반 미치기 전까지는 진짜 좋은 사람이었잖아."


혁수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맞다. 동네 아들 모아가 한글도 가르쳐주고 그랬다아이가. 내도 저 아저씨한테 배웠다."


"저 사람이 근데 아직 이 동네에 있었나? 안 보인 지 한참 된 것 같은데?“


호수는 평소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이 씨 아저씨가 갑자기 나무 밑에 서 있는 것이 이상했다.


"그러게."


"인사라도 할 걸 그랬다. 내는 저 아저씨한테 참말로 고맙거든. 아저씨 아니었으면 여태 글도 못 읽었을 기다!"


이제 뛰면서 가벼운 대화까지 가능해진 셋은 뛰면서도, 마치 천천히 걸으며 대화하듯 숨찬 기색 하나 없이 대화를 이었다.


"근데 왜 자기를 아저씨라고 불러 달라고 했을까?"


"내도 모르지. 갑자기 아저씨 부인 집 나가고, 자기도 부인한테 갈끼라면서 뭔 이상한 그림이랑 숫자 막 쓰고 그랬던 것만 기억난다."


"그래, 그 이상한 그림이······!"


호수가 달리다 말고 갑자기 그 자리에 멈췄다.


"아야! 갑자기 멈추면 어떡해!"


속도를 줄이지 못한 혁수가 호수와 부딪혔다.


"와 뭔데?"


맨 뒤에 있던 철만 역시 혁수와 부딪히며 멈췄다.


"이상한 그림! 그거!"


호수가 그제야 정신이 든 듯 황급히 고개를 돌려 지나온 길을 돌아봤다.


하지만 어설프게 숨어있던 이 씨 아저씨는 이미 사라졌고, 텅 빈 나무만 휑하게 서 있었다.


"왜. 뭔데?"


한 번씩 호수가 저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꼭 무슨 일이 생겼었다.


어디가 아픈 건지, 또 기억을 잃는 건 아닌지 걱정 가득한 얼굴로 혁수가 호수를 바라봤다.


'날 찾아온 거야.'


-100년이 지나면요. 우리나라 사람이 다 자기 개인 전화기를 가지고 다닌대요!


-차가 너무 많아서 길이 막히고, 차보다 빠른 기차가 땅 아래로 다니고 말이에요.


어린 호수의 기억에는 그저 정신 나간 사람의 헛소리로 남아있었지만.


그 이야기를 떠올리는 호수의 눈은 점점 커졌다.


‘이게 왜 이제 생각나는 거야!’


기억하려 하면 기억 속 정보를 이용할 수 있으나.


떠올리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기억날 리 없는 게 당연했지만.


호수는 지난 며칠이 아까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간 이 씨 아저씨가 동네방네 했던 이상한 말들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호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장돌이가 주워다 준 스마트폰이 그려진 종이의 주인은 이 씨 아저씨다.


'근데 왜 날 찾아왔지? 그리고 스마트폰이며 지하철이며 그런 내용들은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제정신이 아니라던 이 씨 아저씨의 이상한 헛소리는, 호수의 이전 생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확인이 필요하다.


워낙 두문불출하고 있어,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찾을 수 없다면, 찾아오게 하면 된다.


얼른 광고를 신문에 올려야겠다, 생각하던 호수가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에 눈을 번뜩였다.


'이게 될까?'


그리고 가만히 손바닥을 바라보며 투명 공을 불렀다.


휙!


착!


순식간에 호수의 손바닥 위에 올라온 투명 공이 오늘따라 유난히 빛났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했었지.'


투명 공은 호수가 특정 사람을 보호하라고 시키면, 그 사람이 어디에 있든 그 곁을 지키는 능력이 있었다.


'아버지도 그렇게 지킬 수 있었던 거고, 야쿠타가 지금 잠잠한 것도 다 이 녀석 덕분인데.'


둘 다 호수가 얼굴을 정확히 아는 것만으로 공이 알아서 왔다 갔다 하며 일하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이 씨 아저씨가 어디 있는지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이 공이 한 번에 몇 명까지 케어가 가능한지 모른다는 것.


그는 아직 투명 공이 얼마나 더 대단한 능력이 있는지 몰랐다.


그래서 겨우 호수와 준목, 야쿠타, 장부 정도만 입력해 두고도 너무 입력해 둔 것이 많은 것이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중이었다.


'아버지는 무슨 일이 생기시면 어차피 부르실 거고, 야쿠타야 집 밖에 안 나온다고 하니까.'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된 그는 투명 공을 이 씨 아저씨 찾는 데 쓰기로 했다.


'이 씨 아저씨 좀 찾아줘.'


그렇게 생각하며 이 씨 아저씨의 얼굴을 떠올리자.


투명 공이 말을 알아들었는지, 순식간에 호수의 손에서 사라졌다.


이런 일방적 대화는 가능하지만, 투명 공이 가져온 정보를 해석하는 건 장돌이가 필요했다.


'밤에 장돌이랑 투명 공 불러서 물어보면 되겠네."


그때까지 굳이 신경 쓸 것 없이, 돈 벌 일에만 집중하면 되는 상황.


광고비도 줄어들었고, 찾던 사람도 찾게 된 호수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흐흐흐. 돈 굳었다."


갑자기 얼음땡 하듯, 다시 움직인 그가 바보같이 웃으며 펄럭펄럭 달리기 시작했다.


"......"

"......"


‘흐흐’ 웃으며, 혼자 저만치 뛰어가는 호수를 지켜보던 철만과 혁수가 입을 열었다.


"······이상하지?"


"······많이."


갑자기 잘 달리다 멈추더니 혼자 멍하니 손바닥을 보질 않나.


빈 하늘을 보고 뭐라 중얼거리질 않나.


그러고는 허공을 향해 시선을 두며 마치 뭔가 있는 것처럼 굴었다.


그들의 시선에서 호수는 정상이 아닌 게 맞았다.


엄청난 걸 깨달은 표정으로 뒤를 휙 돌아보더니 갑자기 씨익 웃고, 불현듯 눈이 초롱초롱해지면서 다시 퍼러럭 거리며 저 앞에 혼자 달려가고 있으니까.


“괜찮겠지······?”


“아휴. 그래야 할 낀데. 가다 쓰러질지도 모른다. 얼른 따라가자.”


철만은 그 말은 남기고 빠르게 호수 뒤를 따라갔다.


‘유모한테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휴우.’


“같이 가!”


짙은 한숨을 내뱉은 혁수도 그 뒤를 따라 달렸다.


**


나무 아래 서서 몰래 호수를 바라보던 이 씨는 그들과 눈이 마주치자 서둘러 몸을 숨겼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거두고 앞으로 달려갔지만.


이 씨는 뒷모습을 좀 더 지켜보다 자리를 떴다.


처음에 호수를 보러와야겠다고 결심한 건.


‘대박’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늦은 저녁 사람이 없는 시간.


이 씨는 준목을 찾아갔었다.


그는 자기 이야기가, 미친 헛소리가 아니라고 이해해 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물론 완벽하게 이해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미치광이라 부르지는 않았다.


준목과 인연은 결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너무 가난한 집에 태어난 천재.


그런 이 씨가 타인에게 배타적 마음을 갖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 잘되는 것 말고는 큰 관심이 없던 그에게, 어느 날 준목이 찾아와 돈을 줄 테니 아이들을 가르쳐 달라고 했었다.


그나마 만세운동 이후에 조금 규제가 풀리긴 했지만.


한글을 가르친다는 게 쉽진 않았던 상황.


하지만 거절하기엔 꽤 큰 액수를 제안해 한글을 가르치게 됐다.


‘그게 날 바꿀 줄 몰랐지.’


온전히 자기를 믿는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빛.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성실하게 삐뚤삐뚤 한글을 한자 한자 적는 분위기.


이씨는 누군가 가르친다는 게 오히려 배우는 일이라는 말의 의미를 그때 깨달았다.


그래서 자기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르는 아이들에게 아저씨라 불러달라고 했었다.


처음 의도는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사라질지 모를 한글을 전파하겠다는 정의로운 선생의 마음이 아니었고.


뒤로 많은 돈까지 받고 있었으므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듣기 불편하고, 미안했던 것이 그 이유였다.


그래서 그냥 떠오르는 단어였던 아저씨를 별명처럼 부르라고 했었다.


'그게 이렇게 굳어질 줄 몰랐는데.'


그리고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을 떠났던 그가 얼마 전 준목을 찾아갔던 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한글을 가르치겠다 했을 때, 준목은 충분한 돈을 주면서도, 언젠가 한 번 도움이 필요하면 꼭 도와주겠다고 말했었다.


‘그땐 흘려들었던 말이었는데.’


그 말이 갑자기 떠올랐던 건, 수 년간 해왔던 연구의 실마리가 조금 잡혔을 때였다.


어려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준목을 찾아갔을 때.


그는 정말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이 씨를 반겨주었다.


연구는 잘 되어 가는지, 먼저 물어주었던 준목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연구는 계속하면서, 돈을 벌고 싶은데,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고민이라 말하자.


그에게 마침 딱 좋은 자리가 있다며 추천했던 일은.


바로 임시 숙소 온돌 관리자였다.


- 온돌 관리자라는 일은 처음 듣는데, 뭘 하면 됩니까?


- 그저 따뜻한 방에 앉아 연구하다가 방이 좀 추워지면 데우면 됩니다. 다만, 고려단 선수들이 쉬러 오면 조금 시끄러워 연구에 방해가 될 순 있습니다. 허허허.


- ······겨우 그 일을 하는데 한 달에 50원이나 받는다고요?


- 겨우 그 일이 아닙니다. 치밀한 계산으로 적당한 온도를 알맞게 관리하는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니까요. 허허허.


- 일부러 말도 안 되는 일을 만들어 주시는 거라면.


- 아닙니다. 마침 적임자를 찾고 있던 차였어요. 제가 오히려 대박인 상황입니다. 허허허.


- ······. 대박이요?


- 낯선 단어지요? 좋다는 의미입니다. 아들 녀석에게 배운 뒤로 워낙 입에 붙어서. 죄송합니다. 허허허.


그 뒤로 준목은 고려단이 그 숙소를 쓰게 될 거고, 쌀 저장고에서 겨우내 연습할 동안 온돌 유지를 잘 부탁한다며 말했지만.


이 씨는 오로지 '대박'이라는 단어에 꽂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호수가 어떻게 그 단어를 아는지 그로서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그들이 쌀 저장고에 오는 걸 알고 몰래 지켜보고 있었던 것.


'조만간 둘이 이야기할 시간을 만들어 봐야겠어.'


이 씨는 임시 숙소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


"너 괜찮은 거 맞아?"


호수 집 거실에 들어서며 혁수가 그에게 물었다.


너무 아무렇지 않아 보이긴 하지만.


그렇게 믿기엔 뭔가 섣부른 상황.


“진짜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


호수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혁수에게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다행인데······.”


“괜찮아 보인다. 너무 걱정 마라.”


철만이 혁수의 어깨를 토닥였다.


훈련에 진심인 호수가 오늘 하루 고려단 선수에게 휴가를 주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겨울 훈련이 그만큼 혹독할 예정인 표면적 이유 하나.


스마트폰 종이의 주인을 찾기 위한 광고를 내고, 고려단 운영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한 계획을 세울 이유 하나가 그것이었다.


계속 날짜며 시간대를 신경 쓰고 있을 수 없으니, 계획표를 짜서 국밥집 아주머니에게 주고 알아서 투자를 부탁할 생각이었다.


훈련 계획은 이미 머릿속에 다 구상한 상태고.


장돌이가 주워다 준 그림 주인은 이미 찾았다.


갑자기 시간 여유가 생긴 호수가 흥얼거리며 거실에 편하게 앉았다.


“자, 그래도 우리가 오늘 정말 귀한 쉬는 날인데. 뭔가 하나 해야 하지 않겠어?”


“뭐?”


“뭐할 게 있나?”


“우리 애관극장 갈까?”


“뭐어? 애관극장?”


소파에 거의 누운 채로 널브러져 있던 혁수가 갑자기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너무 좋은데!”


“내도 좋다!”


어차피 근처에 국밥집이 있어 밥 먹는 척 들려 먹고 영화를 보면 딱 좋은 상황.


호수는 잔뜩 들뜬 둘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가자.”


“아리랑이 그렇게 재밌다던데! 애관극장에서 하나?”


신난 얼굴로 종알거리며 혁수가 현관에서 신발을 신었다.


“아직 들어왔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가보자. 시간 되면 뜨끈한 국밥 한 그릇 하고.”


“좋아!”

“좋지!”


지금 하는 외출이 100억을 벌게 해줄 계획을 전달하는 중요한 일인 걸 모르는 둘은.


그저 영화를 본다는 생각에 신나 광대가 하늘로 승천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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