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상해보험 - 1
나는 집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엄마가 내 옷을 붙잡고 엉엉 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물이 얼굴에 번져 흐르며, 엄마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엄마!"
나는 깜짝 놀라 외쳤다.
"아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나를 꽉 껴안았다. 나도 엄마를 보자 긴장이 풀리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한동안 우리는 그렇게 껴안고 울었다.
"아들, 분명 죽었다고 들었는데?"
몇 시간 동안 울었을까? 이제 진정된 듯, 엄마는 나를 쳐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지옥에서 돌아왔어."
나는 짧게 대답했다. 지옥 같은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것을 설명하기에 너무나 힘든 감정들이 밀려왔다. 다 커서 엄마랑 껴안고 울었던 것이 갑자기 창피해졌다. 그래, 정말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지. 갑자기 그곳에서 나를 배신한 녀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살아돌아오면 된 거지 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애써 그들의 얼굴을 지워버리려 했다. 지금은 살아 돌아온 기쁨만 즐기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래! 무사하게 돌아와줘서 고맙다. 엄마가 얼마나 놀랐는데."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등을 힘차게 후려쳤다.
"엄마가 옛날부터 헌터인가 그거 위험하다고 하지 말랬지! 지금이라도 퇴직금 받아서 엄마가 하고 싶었던 분식집 같이 하자."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엄마는 옛날부터 항상 틈만 나면 같이 분식집을 하자고 했다. 엄마가 요리하면 내가 서빙하고 설거지하라고 한다. 하지만 뭔 분식집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데 나 퇴직금 없대 엄마."
나는 미안한 듯 대답했다. 내 대답에 엄마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에휴, 뭔 놈의 회사가 퇴직금도 없냐? 그거 불법 아니야?"
"맞을 걸? 그런데 배 째래."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엄마는 다시 한숨을 푹 쉬었다. 뭔가 할 말을 잃은 듯했다. 뭐지? 살아 돌아왔는데 왠지 눈치가 보인다. 다시 아까 감동의 재회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퇴직금도 없어, 4대 보험도 없어. 심지어 죽었는데 사망 보험금도 못 받는다고 그래. 그러니까 헌터 하지 말라니까! 내일부터 엄마랑 분식집 상권 알아보러 가자!"
엄마가 갑자기 화를 내며 말했다.
역시나 폭풍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잠깐. 사망 보험금 얘기는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야. 죽었는데 보험금은 또 왜 못 받아?"
나는 당황해서 물었다.
헌터는 항상 사지를 오가는 직업이다 보니 사망보험은 필수였다.
물론 사망률이 높았던 초반에는 헌터가 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었다.
하지만 힐러들의 실력이 상향평준화되고 부상률, 사망률이 급격하게 줄자 헌터를 대상으로 한 보험 상품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입한 상품도 헌터 대상 사망보험 상품이었다.
물론 헌터 대상인 덕에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내가 한 달에 100만원을 보험비로 내는데. 게이트에서 죽었는데 보험금은 왜 안 나와?"
나는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지금은 살아 돌아왔으니 보험금이 안 나오는 것이 맞다.
하지만 죽은 걸로 되어있을 때라도 보험금이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게 말입니다... 아까도 길게 설명 드리긴 했는데..."
갑자기 구석에서 웬 정장 차림의 남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아! 뭐야! 누구세요?!"
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엄마랑 한참을 껴안고 울고 있었는데 아까부터 여기서 보고 있었던 건가?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야.
"시한 헌터상해보험 최실장입니다.
하하. 사실 아까부터 있었는데 끼어들기 애매해서요."
최실장이라는 사람은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시한 헌터상해보험이라면 내가 가입한 생명보험의 보험사였다.
"아무튼! 살아 돌아오신 거 축하드립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두 분이서 생환의 기쁨을 마저 누리세요."
그 남자는 나에게 악수를 한 번 하고 나가기 위해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
"뭐, 살아 돌아왔으니 잘 된 거죠!
앞으로 건승하시고 필요한 거 있으면 아까 드린 명함으로 연락 주세요! 저는 이만!"
그가 말하며 나가려는 순간 나는 급히 앞을 막았다.
"잠깐만요! 살아 온 건 살아 온 거고요.
죽었다고 했을 때, 보험금 안 나온 건 뭐죠?
이거 어떻게 믿고 헌터 생활 합니까?"
나는 화가 난 목소리로 물었다.
"아 그게 말이죠.... 아까 어머님께 다 설명 드렸었는데..."
최실장은 한숨을 쉬더니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아까 엄마한테 설명할 때 친 듯 중간중간에 밑줄이 쳐져 있었다.
최실장이 가리킨 약관 부분을 자세히 읽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보험금을 지급하지 아니하는 재해
1. 힐러가 없는 공대에 참여하여 사망하였을 경우
2. 사고의 원인이 다음과 같은 경우
- 공대장의 명령 불복종
- 함정
- 독
- 게이트에서 장시간 체류
3. 몬스터의 직접적인 공격이 아닌 경우
- 게이트 내 환경으로 인한 사망 (추위, 더위, 산소 부족 등)
- 게이트 붕괴로 인한 사망
4. 고의적인 자해 또는 자살
5. 공대원 간의 분쟁으로 인한 사망
6. 미신고된 스킬 사용으로 인한 사망
7. 게이트 등급보다 낮은 랭크의 헌터가 참여하여 사망한 경우
8. 불법적인 아이템 사용으로 인한 사망
9. 게이트 입장 전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 경우
10. 보험 가입 후 3개월 이내 게이트 입장으로 인한 사망
또한 약관 하단에는 작은 글씨로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상기 명시된 경우 외에도, 보험사의 판단에 따라 보험금 지급이 거부될 수 있습니다. 세부 사항은 전체 약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세부 조항들을 보니, 실제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굉장히 제한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게이트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부분의 위험 상황이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던 것이다.
"공대장의 명령 없이 가다가 함정에 빠져 게이트에서 나오지 못해 사망하셨잖아요.
여기 밑줄 친 곳 보시면 공대장의 명령 불복종, 함정, 게이트에서 장시간 체류···
이거 3개 다 해당되세요.
여기서 하나만 하더라도 보험금 지급이 안 되시는데 말이죠."
최실장은 냉정하게 말했다.
아, 나 혼자 함정에 빠져 사망했다고 보고되었구나.
갑자기 또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건 말도 안 되지.”
해당 약관은 애당초 밑줄을 치지 않았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글씨로 써져있었다.
게다가 보험 가입되었을 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서류를 말없이 읽어보았다.
해당 사례들 말고도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 재해는 120가지나 되었다.
심지어 몬스터의 공격으로 인한 상처 감염으로 사망도 보험금 지급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정도면 뭐 보험금 안 주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는데?
이제까지 자세히 약관을 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말도 안 되는 조항이 가득했다.
"아무튼 다시 한 번 살아 돌아오신 거 축하드립니다!
저희는 보험금 지급 안 드려서 좋고, 앞으로 보험 납부 더 받을 수 있어도 좋고 그쪽은 살아서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니겠습니까? 하하"
최실장의 웃는 모습이 얄미워 보였다.
"우리가 무슨 누이 매부 사이에요? 그냥 해지할래요. 이거."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신뢰가 깨진 상품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네? 그게 무슨..."
최실장은 당황한 듯했다.
"해지한다고요.
이렇게 보험금 지급 안 되는 사례가 많은 줄 알았으면 가입 안 했죠.
오신 김에 해지하고 가주세요"
나는 차갑게 말했다.
"아아.."
최실장은 고통에 찬 듯 머리를 움켜쥐었다.
뭐 저쪽에서는 그럴 수밖에.
보험 해지를 방어 못 하면 뭔 패널티가 있다고 들은 것 같기도.
거기다가 내 상품은 보험료를 받지 못했을 경우 해지 환급금이 있는 상품이었다.
이제까지 월 100만원씩 적금 든 셈 치고 환급금으로 장비나 사야지.
이제 전투까지 가능하니 무기를 좀 좋은 걸로 바꿔야 할 것 같다.
"해지환급금이나 정산해주세요."
"아.. 그게.. 고객님 상품이.."
최실장은 태블릿PC를 꺼내 뭔가 열심히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저도 고객님의 생환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환급금을 드리고 싶긴 한데.. 그게..."
"왜요? 또 뭐요. 설마 환급금도 안 나와요?"
나는 짜증스럽게 물었다.
"안 나오는 건 아닌데..
지금 환급되면 입금하신 금액에 10%밖에 안 돼서."
"네?"
나는 놀라서 물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그게.. 이 상품은 가입한 지 30년이 되어야 원금 회수가 되는 상품이라.."
최실장은 아까부터 말끝을 계속 흐렸다.
"무슨 소리세요? 분명 가입할 때는 연 5% 이자 수익까지 얹어 준다고 했는데."
나는 화가 나서 말했다.
"그게 30년 이후부터 이자가 쌓이기 시작하는 거에요."
"가입할 때는 그런 얘기 없었는데요?"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상태로 따졌다.
"했을 거에요. 고객님 싸인도 있는데.."
최실장은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그건 그냥 싸인하라는 곳에다가 한 거에요!"
"그래도 고객님이 싸인한 이상 고객님 책임입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럼..."
최실장은 고개 한번 까딱 숙이고 나가려고 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한 달에 비싼 보험금을 냈는데 죽는다 하더라도 보험금도 못 받고, 해지하더라도 환급금까지 못 받고. 이 정도면 사기 아니에요?”
"제가 더 해드릴 수 있는 권한이 없어서... 만약 민원 넣고 싶으시면 저희 고객센터로 넣으시는 게..."
그는 말을 흐렸다. 나는 최실장의 명함을 다시 보았다.
최건희 실장
시한 헌터상해보험
전화번호 xxx-xxxx-xxxx
'시한 헌터상해보험... 잠깐만...'
명함을 보자 문득 생각이 나는 것이 있었다.
아주 기분 나쁜 기억이...
"네. 그러면 직접 가서 컴플레인 걸겠습니다."
"네? 하지만..."
최실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건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고객센터가도 결국 약관대로 처리해서요. 이제까지 고객센터에서 민원이 수락된 적이 한 번도 없을 겁니다."
"아. 그건 제가 알아서 할 거고요. 그냥 빨리 갑시다."
나는 최실장을 따라가기 위해 신발을 신었다.
"엄마, 일단 집으로 가 있어. 있다가 전화할게."
나는 엄마를 다시 한 번 안고 최실장을 따라 집을 나섰다.
엄마는 강하게 나가는 나를 보고 살짝 당황한 듯 보였다.
아들이 갑자기 필요 이상으로 열을 내는 것 처럼 보이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내가 직접 시한상해보험에 가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안녕하세요. 시한 길드 소속 김현재입니다. B랭크 버퍼입니다.'
게이트에서 그 놈의 검은 뿔테 안경이 아직도 기억 난다.
‘김현재···’
그 B급 버퍼 녀석.
나를 배신한 공대원 중에 한 놈인 김현재는 분명 시한 길드라고 했다.
시한 길드는 워낙 유명한 길드였기에 단 번에 기억 했지.
'시한 길드라... 복수가 좀 어려워질 수도.'
시한 헌터상해보험은 시한금융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였다.
시한은행, 시한증권, 시한카드 등등 여러 금융 계열사들이 있었다.
시한 금융은 많은 자본을 바탕으로 공격적으로 헌터들을 영입한 결과, 대한민국의 3위 거대 길드인 시한 길드를 만들 수 있었다.
'만약 지금 시한 헌터상해보험에 간다면, 그 녀석을 마주칠 수도 있지.
시한 길드는 시한 헌터상해보험의 뒷배이니까.'
B급 버퍼. 첫 복수 상대로 딱이었다.
내가 얻은 스킬들만 있다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복수의 감정이 전신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기다려라 김현재. 반드시 후회하게 해주마.'
나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최실장을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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