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크 재측정
치킨집의 활기찬 분위기가 나를 감쌌다.
"이야. 진짜 오랜만이다!"
이재영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재영은 내 고등학교 친구다.
대학 졸업 후 취업준비를 하다가 결국 공무원의 길을 택했다.
"그래. 공무원 합격 축하한다!"
나는 진심 어린 축하의 말을 건넸다.
우리는 맥주잔을 부딪히며 건배를 했다.
차가운 맥주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이곳은 취업준비 시절, 친구들과 자주 가던 치킨집이다.
익숙한 냄새와 소리가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루치페르와 카페에 있을 때 걸려온 전화는 이재영의 전화였다.
공무원 시험에 붙었으니 모처럼 한잔하자는 제안이었다.
결국 루치페르와의 대화는 중단되었고, 궁금한 점들은 묻지 못한 채 끝났다.
"천천히 하나씩 알려주마. 너무 조급해하지 말도록. 일단 친구들 좀 만나고 오거라. 나는 잠시 현세에 할 일이 있어서."
루치페르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하여 나는 이렇게 친구들과 치킨집에 온 것이다.
"이야. 이재영, 최민혁. 이렇게 셋이 만나는 거 진짜 오랜만이네.
민혁이랑은 게이트에서 도통 마주칠 수가 없어가지고."
역시 고등학교 친구인 김예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반가움과 함께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하하. 랭크 차이가 좀 나서 그런가?"
나는 웃으며 애써 화제를 돌리려 했다.
김예준 역시 나와 같은 헌터였다.
내가 힐러 양성 학원에 가기 전, 같은 태권도 도장에서 헌터 훈련을 했었다.
"그러게 너도 계속 딜러 했어야 했다니까. 그럼 랭크도 훨씬 높게 측정됐을걸?"
"하하. 그러게."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김예준은 도장에서 꾸준히 수련한 결과 격투가로 A랭크를 받은 유망한 딜러가 되었다.
나 같은 C랭크 힐러와는 마주칠 일조차 없는 높은 존재.
심지어 국내 2위 길드인 [아르지]에 입사하여 현재 대리를 달고 있었다.
그렇기에 김예준과 만나면 뭔가 마음이 불편해지고 열등감이 올라왔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뭐. 이제는 나도 달라졌다고.'
나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이제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무려 A랭크 버퍼의 버프를 받은 B랭크 딜러도 이길 정도로 강해졌다.
이 정도면 웬만한 A랭크 딜러 정도 전투력은 될 듯하다.
그렇기에 오늘 만남이 불편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오늘 만나기를 기대해왔다.
이렇게 당당한 기분으로 만나는 것을 원해왔으니까.
"나중에 관장님이나 한 번 보러가자. 안 뵌 지 오래됐네."
김예준이 제안했다.
"그..그래.. 연락줘.."
나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사실 내가 태권도 도장을 그만두었을 때, 관장님은 엄청나게 화를 내며 반대했다.
하지만 그 당시 딜러 자리는 차고 넘쳤기에 나는 취업이 잘 되는 힐러 학원으로 가고 말았다.
‘내 인생 최악의 선택이지···’
그렇기에 만약 관장님을 다시 만나게 되면 분명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
"그때 시작한 공무원 준비가 5년이나 걸릴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이재영이 치킨을 집으며 말했다.
"그래도 합격했으면 된 거지. 고생했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건넸다.
사실 이재영의 합격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땐 살짝 배가 아프기도 했다.
나만 제자리인 것 같아 불안하기도 했고.
하지만 친구가 잘되면 나도 좋은 것이 아닌가.
지금은 그저 축하하는 마음뿐이다.
"그나저나 바로 부서에 배치됐다며."
김예준이 물었다.
"어. 요즘 헌터 관련 공무원이 많이 부족해서 임용대기 없이 바로 일해야 된다고 하더라고. 덕분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재영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아. 헌터부서 공무원이야?"
하긴. 헌터부서 공무원이면 이해가 간다.
게이트가 발견되면 바로 길드들에게 입찰 진행해야 되고, 게이트 앞에서 다른 헌터나 민간인이 들어가지 못하게 지켜야 하고, 심지어 게이트가 토벌된 후에도 게이트에서 얻은 아티팩트와 클리어 시간, 클리어 인원 등등을 기록한 보고서를 한가득 작성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아는 것만 이 정도고 실제로 일은 훨씬 더 많겠지.
"인수인계도 제대로 안 해주지.
일은 엄청나게 줘서 맨날 야근이지.
이것도 막상 되니까 할 게 못된다."
이재영이 불평했다.
"야. 그래도 철밥통이잖아. 나처럼 파리목숨도 아니고."
내가 농담을 던졌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너 얼마 전에 A랭크 게이트 갔다며!"
이재영이 갑자기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A랭크 게이트?
아. 그때 통화할 때 얘기네.
"어?? 어···"
순간 나는 당황해서 말을 흐렸다.
"뭐? A랭크 게이트?"
이재영 말에 김예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비명횡사할 일 있냐? C랭크 유리몸으로 그런 험한 데를 왜 들어가?"
"아··· 그게···"
나는 어떻게 둘러댈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때 이재영이 눈치 없이 입을 열었다.
"야! 민혁이는 힐러잖아! C랭크라도 A랭크 게이트 갈 수도 있겠지!"
"하하. 언제적 힐러 얘기야.
요즘 A랭크 힐러도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아.
뭐 S랭크 힐러면 모를까."
김예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 그러냐? 공부하는 동안 세상이 많이 바뀌었구나···"
이재영이 머쓱해하며 말했다.
그래. 아판사판이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사실 나 C랭크 아니야."
"뭐?"
이재영과 김예준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번에 좀 오른 것 같더라고."
"이야. 랭크 올리기가 쉽지 않은데 대단하다."
이재영과 김예준이 내 등을 치며 축하해줬다.
"라고 할 줄 알았냐?"
"어?"
"뭔 개소리야. 랭크가 어떻게 올라."
김예준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다.
"너. 내가 그동안 공부만 하느라 속세랑 멀어졌다고 놀리는 거냐?"
이재영이 눈을 찌푸렸다.
"아님 취했나? 이 새끼 몇 병 마셨어?"
역시나 애들은 믿지 않았다.
나는 답답함을 느끼며 말했다.
"아! 진짜라고!"
"그럼 헌터 등록증 보여줘봐."
김예준이 손을 내밀었다.
"어?"
"헌터 등록증 보여주면 믿을게~"
"아. 안 가져왔어."
"역시 구라였네."
김예준과 이재영은 킬킬대며 술을 따랐다.
하아. 얘들이 안 믿는 건 당연하다.
헌터가 랭크가 오르는 경우는 별로 없으니까.
어쩔 수 없나?
"내기?"
나는 결심한 듯 말했다.
"콜. 얼마?"
김예준의 눈이 반짝였다.
"장비 하나 걸어."
"오케이. 최소 B랭크 이상으로."
"좋아. 다음에 내가 헌터 등록증 꼭 가져온다."
나는 앞에 따라져 있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차가운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결의를 다졌다.
'내일 당장 랭크 재측정하러 간다.'
***
그리하여 이른 아침부터 루치페르를 데리고 온 곳은 바로 서울 시청이었다.
거대한 건물 앞에 서자 어젯밤의 숙취가 밀려왔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냐!"
루치페르가 투덜거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서울 시청이야..."
나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서울 시청? 도대체 뭘 시청하려고 온 것이냐! 하하하"
"창피하니까 크게 말하지 말아줄래?"
나는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내가 시청에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여기서 랭크를 재측정 받을 거야."
"하아? 랭크 재측정? 그런 걸 도대체 왜 받느냐?"
루치페르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제대로 측정이 안 될 텐데?"
"그게 무슨 말이야?"
"그야. 너한테는 힐러와 버퍼의 힘이 다 있으니까. 아마 정상적으로 측정은 안 될 것이다."
그런 변수가 있었다니.
"그래도 랭크가 오르긴 올랐을 거 아니야.
C랭크 헌터로는 높은 랭크의 게이트 가지도 못해."
사실 랭크 재측정을 하는 이유는 굳이 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앞으로 높은 랭크의 게이트를 출입할 일이 생길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C랭크 헌터 자격으로는 택도 없다.
"뭐. 그야. 그렇겠지."
루치페르는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빨리 갔다 올 테니까"
"응? 내가 왜 여기서 기다리느냐? 나도 같이 갈 것이다! 혼자 있으면 심심하단 말이다!"
"... 랭크 측정은 혼자 가야 해."
"그건 걱정 안 해도 되느니라."
갑자기 루치페르의 몸이 작아지기 시작하더니 작은 박쥐로 변했다.
박쥐이기는 하지만 털이 복슬복슬하고 둥근 것이 귀엽게 생겼다.
"이건 또 뭐야?"
나는 놀라서 물었다.
"이건 무려 상급 악마들부터 할 수 있는 폴리모프이니라!
이 정도면 너의 소환수라고 속이고 들어갈 만하지 않느냐?"
"흠..."
소환수보다는 그냥 애완동물에 가까워 보이긴 했다.
"왜? 너무 무시무시하느냐?"
"대악마는 무시무시의 기준이 인간이랑 다른가?"
"뭐라?!"
루치페르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아...아니야..."
나는 얼른 말을 돌렸다.
나는 박쥐로 변한 루치페르를 데리고 서울 시청으로 들어갔다.
시청에는 굉장히 지쳐 보이는 여자 공무원이 앉아 있었다.
"저기... 랭크 측정하러 왔는데요."
"... 후우..."
공무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왜요?"
"번호표부터 뽑으세요."
"아."
나는 얼른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옆에서 루치페르가 지루한 듯 내 주위를 빙빙 돌며 파닥거렸다.
"... 진짜 미안한데 좀 가만히 있어주면 안 되나?"
"너무 지루하다. 랭크 측정은 언제 하느냐?"
"음... 아직 내 앞에 5명 정도 더 있어."
"으악!"
한 20분 정도 기다리자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아까 그 무표정 여자 창구에 앉았다.
명찰에는 김미연이라고 적혀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저... 헌터 랭크 재측정하러 왔습니다."
"하아... 헌터 랭크 재측정이요?"
김미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냥 안 하시면 안 되나요?"
"네? 왜요?"
"가끔 선생님처럼 자기 랭크에 불만 가지고 온 사람들이 많아요."
김미연은 건조하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제가 이제까지 랭크 재측정해서 랭크 높아진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물론 어쩌다 아주 아주 가끔 재측정해서 오르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는데 되게 드문 케이스에요."
"그냥 해주시면 안 되나요? 저 진짜 랭크 오른 것 같은데."
"하아. 잠시만요."
김미연은 자리에서 기분 나쁜 듯이 일어났다.
"뭐냐? 저 불친절한 여자는?"
루치페르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원래 여기 일하는 사람들은 좀 불친절해."
"하아. 화나는구나."
잠시 뒤에 김미연이 약간 투덜거리면서 랭크 측정기를 가지고 왔다.
랭크 측정기는 혈압 측정기처럼 생겼다.
나는 랭크 측정기에 손을 올려놓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원래 랭크는 C랭크시구요. 랭크 재측정 시작할게요."
랭크 측정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김미연은 계속 인상을 쓰면서 컴퓨터 화면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띠링
랭크 측정이 완료되었다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끝인 것이냐? 기대했건만."
루치페르가 실망한 듯 말했다.
"처음에는 기계도 엄청 컸는데 기술이 발달하면서 되게 작아졌어.
물론 저거 엄청 비싸서 우리나라에도 5개밖에 없는 거야."
김미연은 여전히 귀찮고 따분해하는 표정으로 내 랭크를 확인했다.
모니터에 뜬 결과를 본 김미연의 표정이 곧바로 놀람과 경악으로 바뀌었다.
"랭크가..."
나는 숨을 죽이고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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