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의 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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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신너
작품등록일 :
2024.10.02 00:38
최근연재일 :
2024.11.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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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2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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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01. 산호랑이 (1)

DUMMY




ep 01. 산호랑이 (1)



비로소 닿은 바위에도 몸을 피할 곳은 없었다.


숨을 수 있을까?


아니다.

숨지 못한다.


이곳은 더이상 숨을 공간이 없고, 숨는다고 해도 달이 밝다.

금방 발견될게 뻔하다.


그렇다면 따돌릴 수 있을까?


아니다.

따돌리지 못한다.


생전 처음 올라온 산이다.

지금도 길을 몰라 이리저리 헤매고 있지 않은가.


그에 반해,

구르고 뒤엉키며 지금껏 살아온, 이곳이 삶 그 자체인 산짐승은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손쉽게 먹잇감을 노릴 수 있겠지.


애초에 시작점이 다르다.


혹시 도망칠 수 있을까?


아니다.

도망치지 못한다.


비탈진 오르막.


급격한 내리막.


눈을 찌르는 나뭇가지들.


내가 피하고 힘써서 도망쳤을 수많은 방해들이,

산짐승에겐 장해물 조차 되지 못했다.


때문에,


가쁜 숨을 한꺼번에 몰아쉬어 머리로 갈 산소가 부족해서인지,

생각이 빠르게 미치질 못했다.


"이런, 바보같이..."


밟고,

박차오르고,

헤쳐서,

곧 먹잇감에 도달하리라.


강인하고 단단한 금속과도 같은 발톱과 송곳니가 내 몸을 구석구석 난자하기 위해 지금도 벼락처럼 달려오고 있다.


그럼에도 양쪽 귀를 두드리는 발소리는 차분.


주위를 살피려는 것인지, 아니면 먹잇감이 맞는지 확인하려는 것인지.

허나, 차분하게 내딛는 발자국은 거침없다.


확인하며 걷는다.


걸으며 확인한다.


확실하지 않지만 추적하며 검증한다.


검증되지 않았지만 확실해질 때까지 추적한다.


그리고,

내딛는 발소리와 그 다음 발소리 사이가 점점점 좁혀져...

조금씩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사냥 확정.


꽤나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마치 산이 달려오는 것만 같다.


속도가 붙어,


달리는 산은 지금,


나를 먹잇감으로 확정했다.


호랑이라고...

고양잇과의 포유류.


정말이지,

꼴사납게도.


이 시대에 맞는 모습인지,

이 시대에 맞는 사망 사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니,

애초에 호랑이는 꽤 오래전에 멸종되지 않았던가?


머나먼 타국에는 아직까지 있다고 하나, 우리나라에서는 멸종된 걸로 알고 있는데?


사람보다 훨씬 큰 덩치에 검은색 가로무늬를 가진 누런 빛깔의 산짐승.


물리면 아프겠지.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 자신이 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 맞는 모습인가?

우리나라에서 호랑이에 물려 죽었다고 한다면 분명 내일 발행될 신문 1면에 나오겠지.


그런 모습은...

원하지 않는다.


어깨에 가로 멘 약가방을 다시 부여 잡았다.


약 재료들이 담긴 작은 가방, 건너 마을에서 겨우 나눠 받을 수 있었다.


배를 통해 들어 오려면 2달은 넘게 기다려야 했으나, 그때까지는 기다릴 수 없다.

환자들에겐 그만큼 기다릴 체력이 없다.


이 정도 양이면 몇 명을 고통에서 구원하고, 밤을 무사히 보낼 수 있게 하며, 놓았던 의식을 붙잡아 올 수 있을지 가늠조차 안 된다.


그만큼 귀하고 다급한 물건이건만,


지금 이 약들을 운반 할 내 목숨은,


도저히 구할 방도가 없었다.


얼마나 뛰었을까.


진작에 넘었어야 할 산 속을 빙글빙글 헤매고 있진 않은지, 아니면 빙글빙글 헤매도록 길을 유도하는 건 약삭빠른 그 짐승이 아닌지.


산에 처음 발을 딛은 그 순간부터 나는 사냥감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노림을 당했을 것이 분명했음에도,

어리석은 나는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순간,


겉으로 크게 드러난 소나무 뿌리에 걸려 꼴사납게 앞으로 쓰러져,

요란하게 구른뒤 엉덩이를 하늘로 세운 채, 얼굴로 바닥을 핥았다.


"아어..."


작은 신음과,

입으로 들어간 풀뿌리, 흙을 뱉으며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칠흑과도 같은 두루마기를 걸친 그녀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넓게 펼쳐진 고풍스러운 검은 치마.

새하얀 눈밭과도 같은 옷깃이 달린 상의.

그리고 주변을 검고, 검고, 검게 물들일 것만 같은 칠흑과도 같은 두루마기를 어깨에 걸친 그녀.


가운데 손을 모으고,

긴 머리는 정성스레 뒤로 묶어 보다 단정하게.


한눈에 보더라도 나같은 사람과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그녀였다.


과장없이,

순수하게,


세계를 넘어 시대를,

시대를 넘어 차원을 달리하는 모습이었다.


검은색.


말 그대로 검은색.


드러난 피부와 흰색의 옷깃이 아니었다면 어둠 속에서 보이지도 않았을 터.


말 그대로 순수한 검은색.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라고는 하나, 그녀만큼은 아니었다.

그녀가 걸친 두루마기는 달빛조차 집어 삼키고 있었다.


"...저승사자."


흡사 저승사자.

저승사자의 모습.


책, 입으로 전해 들었던 저승사자와는 형태가 달랐으나,

나도 모르게, 직감적으로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라 입으로 뱉은 이미지는 저승사자였다.


죽은 자를 인도하기 위해 저승에서 온 사자.

명령이나 부탁을 전하는 이.

저승의 일을 이승에서 행하는 이.


나는 이미 죽었나?

죽은 목숨인가?


혹시 아까 꼴사납게 넘어졌을 때 땅바닥에 부딪친 부분이 잘못 되었나?


그렇군.

그렇구나...


그렇다면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더불어 죽었다는 사실에 잠시... 실로 낙담까지 했으나,

오히려 현재로서는 넘어질 때의 아픔만 남아 있으니 그나마 고통없이 죽은 격.

나는 무척이나 운이 좋은 죽음에 속하는 것이 분명했다.


좋은 죽음이 어디 있겠냐만은...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아니 이미 죽었으니 눈 뒤에 두었다고 해야 할까? 암튼 운 좋게 죽었다는 가정은 다소 틀린 표현이라 여겨질 수 있으나 최소한의 고통으로 숨이 끊어졌다고 한다면?


그 반대로 고통 속에 죽었다고 한다면 이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고통 속에서도 결국에는 살아 남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통 속에 몸부림 치다가 결국 죽었다면 이는 문제다.


아~ 덜 아프게 죽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나는 정말 운이 좋았어, 라고.


분명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건 그렇고...


이렇게 빨리 데리러 오다니 저승이라는 곳은 무척이나 성격 급하신 분들이 일하고 있는 곳이 아닐까 싶긴 했지만.


아니면 본래 느긋한 이도 나중에 되서는 성격이 급해질 정도로 도저히 처리 하지 못 할 만큼 일이 쌓여 있다던가, 그만큼 인도 해야 할 사람, 죽은 사람이 많다던가, 아니면 모욕에 가까운 꾸지람을 내뱉는 귀신같은 상사가 많다던가.


아니, 저승이니 모두 귀신인가?

그러면 귀신 같은 상사가 아니라 귀신 상사다. 그게 맞는 표현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절... 깊은 환대엔 감사하오나, 그토록 예의를 갖추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개를 아래로 내리며,

바닥을 핥고 있는 나의 모습에 그녀는 진심으로 놀란 듯이 보였다.


마치 절을 하고 있는 모습에,

그녀는 별다른 과장없이 순수하게 당황하고 놀라워 했다.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그래,

바쁘신 몸이니 절을 하고 있는 이 청년을 한시라도 빨리 일으켜 세워 저승으로 데려가려는게 분명하다.


이분, 혹은 성격 급하신 저승사자분들의 일정에 폐가 되어서는 안되기에 몸 이곳 저곳을 털면서 되도록 서두르고 있다는 모양새가 느껴지도록 신경쓰며 일어났다.


도중 몸의 몇 군데에서 이상한 뼈소리가 났지만,

이미 죽은 몸이니 걱정할 일은 아닐 터.


그 와중에도 나는 품에 멘 가방을 더욱더 끌어 안았다.

가방에 든 내용물은 이제 주인에게 도착할 일이 없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혹시... 언제 오셨어요?"

"본래 있었습니다."


나의 물음에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는 마치 오래 전부터 여기 있었다는 듯이 말하고선,


자세를 고쳐 잡고 오른손에 쥔 접선을 아래로 펼쳐,

제법 낮게 속삭였다.


"간청드리옵니다. 화덕벼락장군님."


낮게,


염을 외듯,


절절하게 염원하듯,


그 이름을 나직히 입에 올렸다.


잔잔히 부른 다음 접선을 접자,

본래 있었던 듯,


팔을 걷어 붙인 건장한 사내가 내 옆에 서 있었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마치 오래 전부터 여기 있었다는 듯이.


나는 숨 조차 쉬지 못하여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나무로 만든 탈 뒤에 숨어 있었다.


어디를 보는 지 알 수 없었다.

탈에는 눈 구멍이 뚫려있지 않았다.


탈에는 턱이 없었다.


그럼에도 굳게 닫힌 입꼬리는 아래를 향하여,

결코 열리는 일 없었다.


수문장이었으면 수천명 병사의 앞길을 막았고,

선봉장이었으면 수천명 병사의 목을 날렸을 터.


걷어 붙인 팔은 내 허리보다 두터웠고,

평범한 농부의 행색이었으나, 허벅지가 터질 듯 팽팽하여,

나는 여러 의미로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화덕벼락장군님."

"......"


조용히,

건장한 사내는 그녀를 바라 본다.


"이곳은 몹시 어두워 주위를 분간할 수 없으니, 앞에 서시어 주변을 밝혀 주시길 간청드립니다."


다시금 잔잔하게,

검은 두루마기를 걸친 그녀는 그녀 특유의 정갈한 목소리로 그에게 청하였다.


조용한 부탁에 화덕벼락장군님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왼손에 든 나무 몽둥이를 왼발 뒷꿈치에 거칠게 2번 턱턱.


작은 불들이 몽둥이를 따라 걷기 시작했고, 이내 제법 큰 불이 되어 꽤 멀리까지 비추는 횃불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장군님."


다시금 크게 끄덕인 화덕벼락장군님이 성큼성큼 길을 따라 걷자,

그 뒤를 검은 두루마기를 흩날리며, 그녀가 따라 걸었다.


나는 그저 작은 가방을 품에 움겨쥔 채,

하염없이 뒤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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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ep 08. 이름 없는 이들 (6) -시즌1 종료- 24.11.23 11 0 12쪽
55 ep 08. 이름 없는 이들 (5) 24.11.22 9 0 10쪽
54 ep 08. 이름 없는 이들 (4) 24.11.21 9 0 9쪽
53 ep 08. 이름 없는 이들 (3) 24.11.20 13 0 10쪽
52 ep 08. 이름 없는 이들 (2) 24.11.19 10 0 11쪽
51 ep 08. 이름 없는 이들 (1) 24.11.18 12 0 10쪽
50 ep 07. 꼬리 아홉개 (7) 24.11.17 12 0 10쪽
49 ep 07. 꼬리 아홉개 (6) 24.11.16 12 0 10쪽
48 ep 07. 꼬리 아홉개 (5) 24.11.15 12 0 10쪽
47 ep 07. 꼬리 아홉개 (4) 24.11.14 14 0 10쪽
46 ep 07. 꼬리 아홉개 (3) 24.11.13 15 0 11쪽
45 ep 07. 꼬리 아홉개 (2) 24.11.12 16 0 9쪽
44 ep 07. 꼬리 아홉개 (1) 24.11.11 17 0 10쪽
43 ep 06. 풀 밟는 남자 (9) 24.11.10 20 0 11쪽
42 ep 06. 풀 밟는 남자 (8) 24.11.09 17 0 10쪽
41 ep 06. 풀 밟는 남자 (7) 24.11.08 16 0 10쪽
40 ep 06. 풀 밟는 남자 (6) 24.11.07 17 0 10쪽
39 ep 06. 풀 밟는 남자 (5) 24.11.06 19 0 10쪽
38 ep 06. 풀 밟는 남자 (4) 24.11.05 17 0 10쪽
37 ep 06. 풀 밟는 남자 (3) 24.11.04 16 0 10쪽
36 ep 06. 풀 밟는 남자 (2) 24.11.03 18 0 10쪽
35 ep 06. 풀 밟는 남자 (1) 24.11.02 20 0 10쪽
34 ep 05. 인형사 (9) 24.11.01 20 0 11쪽
33 ep 05. 인형사 (8) 24.10.31 23 0 11쪽
32 ep 05. 인형사 (7) 24.10.30 23 0 11쪽
31 ep 05. 인형사 (6) 24.10.29 22 0 10쪽
30 ep 05. 인형사 (5) 24.10.28 27 0 9쪽
29 ep 05. 인형사 (4) 24.10.27 27 0 10쪽
28 ep 05. 인형사 (3) 24.10.26 3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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