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의 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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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신너
작품등록일 :
2024.10.02 00:38
최근연재일 :
2024.11.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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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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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05. 인형사 (8)

DUMMY




ep 05. 인형사 (8)



바닥에 박혔던 호리병을 쑥! 하고 뽑은 감찰관님은 묻었던 흙을 털어낸 뒤, 원래 자리였던 옷깃 안으로 넣었다.


"그건 뭔가요?"


그런 좋은게 있었으면 진작에 꺼내라고.


"호리병이지요."

"......"

"뭐,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둘러대서 얼머무려 봤자 소용 없겠네요."


고개를 좌우로 작게 흔드는 감찰관님.


"한때 저승사자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던 도구입니다. 보기와 같이 이름은 호리병. 이승에선 주로 물이나 술을 담아두는 용도로 사용한다고 들었으나, 저승에서는 혼을 담습니다. 빨아들이는 기능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저승사자들이 이승으로 가기 전에 하나씩 챙겨갔다, 그런 시시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감찰관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시한 이야기가 아닌 듯 한데요."

"시시하고, 부끄러운 이야기지요. 알다시피 우리는 죽은 이의 넋, 혼을 데려가기 위해 이승을 방문합니다. 신입이 생각하는 저승사자의 모습은 어떤가요? 이승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습과 대부분 겹치지 않나요?"


검은색 두루마기에 검은색 갓.


소체를 처음 만났을 때, 갓을 쓰고 있지는 않았지만 검은색 두루마기는 걸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저승사자를 만났다고 생각했지.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대부분 그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단편적인 사례.


검은색 두루마기.

검은색 저승사자.


"예복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예의와 격식을 차리기 위함이 유일한 목적인 옷차림이지요. 죽은 이에 대한 존중, 모시러 왔음을 있는 힘껏 드러내어 보이기 위해서. 물론, 삶의 미련이나 못다 한 책임이 있어 죽은 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죽은 자리를 지키려는 넋들은 분명 있습니다. 의외로 많고,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순순히 우리를 따라 나서는 이들의 모습은 대부분 비슷하나, 그렇지 않은 자들의 모습은 그보다 훨씬 다양하지요.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고 해야 하나요? 정말이지 '오늘 하루도 무사히' 라고 빌고 싶어지는 곳이 바로 이승의 현장입니다. 현장의 고통은 현장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만 알고 있지요."


감찰관님 역시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는 저승사자 중 하나여서 그랬는지,

이야기가 시작되자 입이 멈추질 않는다.


경험이 없는 나, 죽은 이를 저승으로 데려가본 적이 없는 나는 곧이곧대로는 이해하기 어려워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애초에 나는 저승에 가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이승의 사람이 저승에 갔다간, 돌아오지 못 할 것이 뻔하다.


"앞서 언급한대로 저승사자는 싸울 능력이 없습니다. 있어도 써서는 안되고, 차라리 없는 편이 보다 저승사자라는 역할에 어울립니다. 예상된 귀결인가요? 울부짖으며 들고 날뛰는 넋을, 혼이 내지르는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저승사자들은 현장에서 어찌하지 못했던 겁니다. 몇 날 며칠을 마냥 두고 보며 울음이 그치기를, 분노가 가라앉기를, 화가 삭기를 한없이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옷깃 안, 호리병이 있는 위치를 가볍게 손으로 치며 감찰관님은 말을 이었다.


"호리병의 등장은 일대 혁신이었지요. 그래서는 안 되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지만... 이승으로 가는 저승사자들의 얼굴이 너 나 할 것 없이 다들 밝았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겁니다."

"호리병으로 빨아 들였군요."


울부짖었던 혼을.

들고 날뛰던 넋을.


"무엇이든 남발하면 독입니다. 비상시에만 사용했으면 좋았을 것을. 위협이 심해졌을 때만 사용했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을. 실제로 지박령이 되기 직전의 혼령은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몹시 위험합니다. 저승사자는 죽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아픔이 없는건 아니죠. 지금도 염라청에는 현장에서 입은 상처가 회복되지 못 한 저승사자들이 다수 있습니다. 신입, 저승엔 무덤이 있을거라 생각합니까?"


저승에 무덤?


여태껏 생각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죽은 이들이 가는 곳을 저승이라 생각하고 여겨왔으니까.


죽은 자가 저승에 또 무덤을 만들 일이 있을까?

하지만 감찰관님께서 지금까지 말씀하신대로라면.


"아마도 있지 않을까요?"


넘겨짚는 말에 감찰관님은 작게 웃었다.


"그건 신입, 자네가 저승에 오게 되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소소한 궁금증으로 남겨두지요. 아무튼 남발했다는 이야기까지 했나요? 모든 일이 그러한 것처럼 급박하고 다급한 상황에서만 사용했다면 괜찮았겠으나, 참으로 어리석고 무능한 녀석들은 정갈한 예복을 입고 죽은 이의 곁으로 다가가 무작정 혼부터 빨아 들이는 만행을 저지르고 맙니다. 예복을 입고서 말이죠."


무자비하고,

무책임하게.


"저승사자의 모습이 아니지요. 그래서는 안됩니다. 저승사자가 그래서는 안되지요. 예의와 격식은 언제 어느 때 강조하더라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물며 예복을 입은 이가 양해를 구하는 일조차 생략한 채 혼을 빨아들이는 일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 있어서도 안되고, 존재해서도 안됩니다. 현장의 어려움은 익히 알고 있으나, 그들이 그래서는 안되었던 겁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럽고, 소인배들이나 할 법한 시시한 이야기입니다."


감찰관님은 최대한 절제하며,

탄식했다.


"이후 염라청의 지고지순한 경고에 따라 호리병은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에게만 지급 되었습니다. 저 역시 그에 해당되나, 최후까지 쓰기 망설였던 모습은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결심하셨죠."

"맞습니다, 신입. 그저 올려야 할 수십 장의 보고서에 사유서 1장과 시말서 1장이 추가되는 것 뿐입니다. 그 정도로 정리가 된다면 꽤나 쏠쏠한 거래군요. 다만 오해는 금물입니다. 겨우 2장 추가되는게 무서워 쓰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현장의 편리를 위함이긴 하지만 예의에 어긋나는 물건은 쓰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예의... 아팟! 호랑이님! 그만 만져!"


쪼물딱, 쪼물딱.


호리병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나를 감싸 안았던 호랑이님은 지금껏 떨어지지 않은 채 쉴새없이 내 몸을 본인 취향에 맞춰 주무르고 있었다.


우리들의 대화는 뒷전.

아프다고...


"거기... 엌!"

"그런데 너네들 괜찮느냐?"


호랑이님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뭐가?"

"저기에 불이 나고 있다만?"


여기보다 훨씬 더 높은 곳.

낮이었으면 보기 힘들었을 거리에 작게나마 무엇인가가 어둠 속에서 불타고 있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뛰어가는 감찰관님과 나.

아쉬운 표정으로 뒤따르는 호랑이님.


굴러다니는 시체를 젖히고 도착한 곳엔 성인 절반 크기의 목각 인형이 하나.

머리쪽에 붙어 있던 종이 쪼가리는 우리가 다가갈 때 쯤 더욱더 세차게 타올라, 손톱 크기 정도의 형태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조잡한 구성의 목각 인형.


체계적으로 교육 받은 작업자, 혹은 장인이 만든 완성품이 아닌 일개 개인이 취미 삼아, 그것도 실력이 부족한 자가 처음으로 만들어본 습작이라 해도 좋을 만큼 조잡한 수제품.


양쪽 어깨의 높이가 달랐고, 다리 길이가 제각각이었다.


찌그러진 얼굴은 다듬은 흔적 조차 어색하다.


팔이 2개, 다리가 2개라서 인간의 형태라는 걸 알 수 있었지, 그 외에는 인간을 닮지 않았다.


취미로 했다면 악취미다.

부족한 건 실력이 아니라 안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괴한 곳에 놓여진 기괴한 목각 인형.

장소가 장소인지라, 으스스한 기운이 흘러 넘쳐 도무지 만져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당했군요."


감찰관님의 말은 깊은 한숨과 함께 나왔다.


"실수입니다. 이것을 먼저 찾았어야 했는데, 그만 반대로 해버렸습니다. 상대를 너무 얕봤나요? 경계심 없이 결계에 걸려들고, 조심성 없이 시체를 깨우고, 재빠르게 움직이지 못해 연결고리를 놓쳤습니다. 요사스러운 종이 쪼가리의 역할을 알아 챘을 그 순간에 바로 움직였어야 했음에도... 정말이지 바보같이 당해 버렸군요. 괴상한 놀이를 한다고 다소 낮게 취급했던 제가 오히려 바보 였습니다. 교육비라 여기기엔 너무나도 비싼 값을 치뤘군요."

"저런게 그리 중요한 거였나요?"


나는 다시 한번 목각 인형을 내려다 봤으나 등을 할퀴는 듯한 기운에 흠칫 놀라 다급하게 시선을 돌렸다.


"연결고리, 연결의 중심, 호출의 중간 지점, 매개의 역할. 타버린 종이는 둘 사이에서 양쪽을 이어주는 일을 수행했으리라 추측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시체들이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였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기 어렵지요. 물론 아직까지는 추론입니다만, 같은 노란색 종이인 걸로 봐서 나무나 시체에 붙어있는 종류와 비슷한 행동 원리를 가지고 있었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종이가 타버린 위치는 검게 그을려 있었다.


목각 인형.

나무로 불이 옮겨 붙지 않고, 붙어 있던 종이만 태워버린 모습.


"첫번째로 시체를 움직인다. 두번째로 행동 원리 종료 시 타올라 흔적을 없앤다. 일단 떠오르는 건 이정도군요. 더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는 염라청의 전문 기관에서 상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종이에 담을 수 있는 행동 원리는 최대 2개인지. 나무에 붙은 종이는 목각 인형을 보조하기 위함인지. 이런 기이한 일련의 흐름들, 대체 무엇을 목적으로 준비하고, 움직였는지."

"불쾌하면 내가 부셔주랴?"


목각 인형 곁으로 다가가 주먹 쥔 오른손을 머리 위로 드는 호랑이님.

감찰관님이 그 손을 잡으며 만류한다.


"아닙니다. 가져가서 분석해야 하니, 오늘은 참아 주십시... 읔!"


감찰관님의 품에 넣어 두었던 노란색 종이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급히 꺼내어 바닥에 던졌으나, 불길은 잡히질 않고 그대로, 그대로.

형태를 남기지 않고 모두 타버렸다.


동시에.


시체에 붙어 있던 종이 역시 마찬가지.

나무에 붙어 있던 종이 역시 마찬가지.


작은 불길을 내고 전소.


목각 인형과 마찬가지로 주변에 옮겨 붙지 않은 채 노란색 종이 그 자체만 이곳에서 사라지게 했다.


"행동 원리."


작지만 깊은 탄식.


감찰관님은 입고 있던 검은색 두루마기를 벗어, 바닥에 놓여진 목각 인형을 감쌌다. 들고 가기 편하도록.


"목적이 뭘까요?"

"개인의 일탈일 수도 있습니다. 재능이었을 수도 있고, 얼떨결에 얻어버린 능력을 쏟아부어버린 결과일 수도 있지요. 허나,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항목은 추측의 영역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확실한게 있다면 우리가 졌다는 것. 이건 확실하군요."

"정말 단순 개인의 일탈일까요?"

"무엇인가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조직의 실험장 같은 형태로 보이기도 합니다."


뒷짐을 진 감찰관님.

한심한 듯한 시선이 모든 걸 나무라듯 바닥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잃어버렸군요."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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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ep 08. 이름 없는 이들 (6) -시즌1 종료- 24.11.23 11 0 12쪽
55 ep 08. 이름 없는 이들 (5) 24.11.22 8 0 10쪽
54 ep 08. 이름 없는 이들 (4) 24.11.21 9 0 9쪽
53 ep 08. 이름 없는 이들 (3) 24.11.20 13 0 10쪽
52 ep 08. 이름 없는 이들 (2) 24.11.19 10 0 11쪽
51 ep 08. 이름 없는 이들 (1) 24.11.18 12 0 10쪽
50 ep 07. 꼬리 아홉개 (7) 24.11.17 12 0 10쪽
49 ep 07. 꼬리 아홉개 (6) 24.11.16 12 0 10쪽
48 ep 07. 꼬리 아홉개 (5) 24.11.15 12 0 10쪽
47 ep 07. 꼬리 아홉개 (4) 24.11.14 14 0 10쪽
46 ep 07. 꼬리 아홉개 (3) 24.11.13 15 0 11쪽
45 ep 07. 꼬리 아홉개 (2) 24.11.12 16 0 9쪽
44 ep 07. 꼬리 아홉개 (1) 24.11.11 17 0 10쪽
43 ep 06. 풀 밟는 남자 (9) 24.11.10 19 0 11쪽
42 ep 06. 풀 밟는 남자 (8) 24.11.09 17 0 10쪽
41 ep 06. 풀 밟는 남자 (7) 24.11.08 16 0 10쪽
40 ep 06. 풀 밟는 남자 (6) 24.11.07 17 0 10쪽
39 ep 06. 풀 밟는 남자 (5) 24.11.06 19 0 10쪽
38 ep 06. 풀 밟는 남자 (4) 24.11.05 17 0 10쪽
37 ep 06. 풀 밟는 남자 (3) 24.11.04 16 0 10쪽
36 ep 06. 풀 밟는 남자 (2) 24.11.03 17 0 10쪽
35 ep 06. 풀 밟는 남자 (1) 24.11.02 20 0 10쪽
34 ep 05. 인형사 (9) 24.11.01 20 0 11쪽
» ep 05. 인형사 (8) 24.10.31 23 0 11쪽
32 ep 05. 인형사 (7) 24.10.30 23 0 11쪽
31 ep 05. 인형사 (6) 24.10.29 22 0 10쪽
30 ep 05. 인형사 (5) 24.10.28 27 0 9쪽
29 ep 05. 인형사 (4) 24.10.27 27 0 10쪽
28 ep 05. 인형사 (3) 24.10.26 3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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