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의 딸과 함께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공모전참가작 완결

신너
작품등록일 :
2024.10.02 00:38
최근연재일 :
2024.11.23 20:00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2,436
추천수 :
1
글자수 :
261,506

작성
24.11.12 20:00
조회
15
추천
0
글자
9쪽

ep 07. 꼬리 아홉개 (2)

DUMMY




ep 07. 꼬리 아홉개 (2)



실패했다.

완전히 망해버렸다.


"귀찮게 됐네, 정말이지... 너구리 같이 얕은 수나 쓰다니."


하지만 얕은 수에 제대로 걸려버린건 우리다.


우리 모두.

제대로 걸려버렸다.


참으로,

어쩔 도리 없이 참으로 어리석게도.


4일 뒤,

서쪽 2번째 항구.


대감, 그 영감이 말한대로 그 전날부터 군이 주도하는 대대적인 환경 정리가 진행되었다.


손님을 맞이 할 준비.

중화국의 사신들을 맞이 할 준비.


외교 사절단.

인원수에 대한 정보는 들은 바 없다.

영감의 정보망도 거기까지는 닿지 않았다.


깊이 숨겨둘 만큼 철저한 비밀 보장이 필요해서 인지,

아니면 아무래도 상관없을 만큼 대수롭지 않은 정보였는지.


내가 가진 정보력으로는 진상을 알 수 없는 범위였으나, 우리가 하려는 일과 비교해서는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 사소한 것이었다.


단 1명.


우리는 단 1명만 제거하면 되었기 때문에,

전체 인원수는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다.


가토 특사.

본국의 지방 관리.


최근 그는 가지고 있는 능력을 인정 받아 중화국 특사로 파견.

여기까지가 내가 들은 이야기.


능력을 인정 받았다라...


능력을 인정 받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인간의 탈을 쓰면 될 일이다.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의 탈을 쓰면 될 일이다.


인간이 아니니까,

인간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


보통 인간 같지 않은 것이란 표현은 대부분 모욕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으나...


조직이라는 집단,

조직 내라는 한정된 범위 내에서 인간 같지도 않은 것이 인간 같지도 않은 일을 행하면 윗선에선 환호한다.

그런 야만적인 논리로 이루어져 있다.


아랫 사람이 윗 사람에게 자비롭고 자애로울 수는 없다. 구조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윗 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자비롭고 자애로울 수는 있다.

그런 구조로 되어 있다.


허나,

아랫 사람의 신뢰를 받고, 믿음직스럽다는 평판을 얻어도 그게 무슨 소용인가?

모든 결정 권한은 윗 사람에게 있는데.


일부분은 몰라도,

대부분의 성과는 열정과 땀, 노력에서 오지 않는다.

아랫 사람의 고난이 이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애처로워 공물을 덜 받으랴?

자비를 배풀어 이번 공납을 면제하랴?


흉년이면 어떻고, 사정이 있으면 또 어떠랴?

윗 사람의 사정이 아니고 아랫 사람의 사정이거늘.


그러니,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분량을 상납하라.


사유를 돌아보지 않는 인간 같지도 않은 지시는 이를 가속화 시켜,

주변 마을, 주변 지역보다 높은 성과를, 보다 높은 목표치를 매번 달성시켰다.


걷어 들이는 농작물의 양이 매년 높아지고,

내야 할 금전의 양 역시 순간 순간 갱신된다.


납부를 못 할 때마다,

지시를 어길 때마다,

손가락이 하나씩 잘려 나갔다.


면세 특권을 받은 촌장은 이미 가토의 앞잡이.


마을 내 유일한 무사 계급이었던 우리집으로 날이면 날마다 분노에 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크게 실망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고정과 결의는 일상이 되었다.


설득과 공론 그리고 궐기까지는 일사천리.


다만, 아버지를 필두로 한 첫번째이자 마지막이었던 봉기는,

우리들의 염원과는 반대로 허무하게 제압당해 버렸다.


실패했던 것이다.


일사천리로 모였던 이들은 순식간에 와해.


아무런 사심없이 주변 사람들을 믿고 좋아했던 아버지는,

촌장이 심어놓은 자에게 고발당하여 초췌한 시작과 함께 끝을 맺었다.


가토는 뱀과 같은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후속 조치로 마을의 존속을 담보하는 대신,

주동자가 대표하여 배를 갈라 전체의 죄를 면한다.

이렇게 결정하노라.


일벌백계.


경각심을 주기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한 사람에게 다소 엄한 처벌을 내려 백 사람을 경계하게 하였다.


반동분자의 싹을 자른다는 빌미로 마을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일은 당시 관리였던 가토의 의중에 반하였고,

마을 전체의 죄를 혼자서 가져갈 수 있다면 아버지로서는 그만한 조건이 없었다.


다행이라고, 말씀하셨다.


어차피 실패할 일...

어차피 실패가 눈앞이었던 일...

조기에 진압된 덕분에 마을 전체에 끼칠 피해를 최소한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미안하다는 말씀도 함께.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배를 가른 직후 내려쳐진 칼로 순식간에 목이 잘려,

고통받은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고 전해 들었다.


그런 말로 위안이 될 리가 없지.

겨우 그딴 위로로 마음이 달래질 리가 없지.


얼마후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간 길을 따라가버린 일은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나름대로, 마음대로 납득해버리는 꼴이 되었다.

남겨진 가족, 아들의 슬픔보다는 차라리 그러는 편이 어머니의 행복이리라, 그 편이 더 나을 것이라는 체념이 들 정도로 꼴이 말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마을은 존속되었지만,

필연적으로 초토화되었다.


이 역시 당연한 수순.


책에서나 읽어 봤을 법한 일이 펼쳐지고 있었다.


전체의 괴로움.

전체의 어려움.


허나,

책에서나 읽어 봤을 법한 결말은 우리들에게 오지 않았다.


행실이 깨끗하지 못한 관리가 숙청되는 권선징악 같은 꽃밭으로 가득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펼쳐지지 않았다.


작은 봉기,

작은 사고를 무마한 계기로 승승장구한 가토는 그렇게 중화국의 특사로,

우리들 눈 앞에서 사라졌다.


놓칠 소냐.


가까운 시일 내에 가토 특사가 이 땅을 방문한다는 첩보와 함께,

우리들은 마을에서 인원을 선별하여 이곳으로 당도했다.


개인적으로 원한이 있는 자들이 모여,

본국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결심을 한 자들을 모아.


이제는 의미없는, 본래 무사 계급이었던 내가 자연스레 우두머리가 되버린 일은 그다지 상관없었으나,

실제 문제는 개개인의 능력치였다.


대부분이 농사를 업으로 한 사람들.


평소에 곡갱이 정도나 들어 봤지, 사람을 죽이는 기술은 들어본 적도 없고, 수련해본 적도 없는 비전문가들.

한없이 낮은 능력치에 대의라는 명분만 앞세운 오합지졸.


규율도 없고 질서도 없이 그저 분노만 가득찬 인간들의 조합은,

처음부터 자살 희망자들의 모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었다.


가리고 있을 처지가 아니었다.


자살 희망자라고 할지라도, 우리들은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나절,

항구 주변에서 일반인 복장으로 자리를 지켰고, 이후 중화국 사신들을 태운 배가 서서히 항구로 들어와 정박했다.

수행인을 제외한 사신 복장을 한 이가 모두 7명.

그 중 다른 색, 다른 형식의 복장이 1명.


가토다.

영감이 알려준 정보에 의하면 저 모습은 분명 가토가 틀림없다.


배에서 내린 사신들은 사전에 준비된 가마에 올라타고 이동을 시작.


여기서부터는 쉽다.

사람이 나르는 가마다 보니, 크게 속도를 내지 못한다.

구경꾼인척 숨어들어 가토가 탄 가마를 노리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다.

6명이서 한꺼번에 몰아 친다면 가마 하나 박살내는 일은 단순 폭력이라 해도 좋을만큼 어렵지 않은 일.


끝에서 2번째 가마.


분명 어렵지 않았을 터인데,


각자 손에 쥔 소태도로 목표한 가마를 순식간에 난도질 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터인데,

가마 안에는 가토의 옷을 입은 전혀 다른 얼굴이 우리들의 칼에 맞아 숨져 있었다.


다른 얼굴.

가토의 옷.

하지만 다른 얼굴.


가토가 아니다.


낭패.

혼란.

무질서.


달려온 본국의 호위 무사들에게 차례 차례 제압, 사살 당하는 자살 희망자들.


나는 무사들을 뿌리치고 급하게 몸을 돌려, 주변에 모인 구경꾼들 사이로 거칠게 숨어 들었다.


이미 행색이 특정되었기에 몸을 숨기고자 하는 목적보다는,

밀집된 인파에 들어가 일반인들을 방패삼아 내 몸을 보호하고자 하였다.


백성들 속에 숨은 나를 그들은 쉽사리 건들지 못할 것이다.

내 행동도 제약되지만,

그들의 행동도 분명 제약된다.


제약...


메마른 쇳소리.


총구를 빠져나간 탄환이 내 앞에 서 있었던 장신의 청년을 쓰러지게 했다.


노리고 쐈다.

분명, 노리고 쐈다.


다만 노리고 쏜 목표물 앞에 장애물이 있었을 뿐.


장애물.

사람이 아니라 장애물.


다른 사수가 쏜 총알이 옆을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뒤에 있던 할아범이 바닥에 쓰러진다.


이 녀석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전혀 개의치 않고!


재장전의 틈을 타 무사 2명이 내게 달려들어 칼을 휘둘렀다.


길을 가득 메운 구경꾼들이 혼비박산 도망가려 하여도,

서로가 서로에게 부딪쳐 정체 상태.


무사들은 칼로 길을 열었다.


장애물.

사람이 아닌 그저 장애물.


"네놈들 제정신이냐!"


외침에도 아랑곳 없이 크게 장검을 휘두르는 무사들.


곁에 있던 아낙네도, 미처 피하지 못한 사과 장수도,

모두 날카롭게 벼린 칼에 맞아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딩굴었다.


휘감겨 들어오는 날쎈 칼날.


몸을 숙여 피했으나 뒤에 있던 누군가가 피맺힌 괴성을 지른다.

인파에 밀려 오도가도 못하는 이들은,

그저 짐승들의 칼부림에 비명을 지르는 일 외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나는 양손에 쥔 소태도를 바닥에 던지고,

천천히 손을 든 채 앞으로 나섰다.


"하핫! 단단히 미친 놈들..."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작가의말

매일 오후 8시 연재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염라의 딸과 함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매일 오후 8시 연재됩니다. 24.10.02 13 0 -
56 ep 08. 이름 없는 이들 (6) -시즌1 종료- 24.11.23 11 0 12쪽
55 ep 08. 이름 없는 이들 (5) 24.11.22 8 0 10쪽
54 ep 08. 이름 없는 이들 (4) 24.11.21 9 0 9쪽
53 ep 08. 이름 없는 이들 (3) 24.11.20 13 0 10쪽
52 ep 08. 이름 없는 이들 (2) 24.11.19 10 0 11쪽
51 ep 08. 이름 없는 이들 (1) 24.11.18 12 0 10쪽
50 ep 07. 꼬리 아홉개 (7) 24.11.17 12 0 10쪽
49 ep 07. 꼬리 아홉개 (6) 24.11.16 11 0 10쪽
48 ep 07. 꼬리 아홉개 (5) 24.11.15 12 0 10쪽
47 ep 07. 꼬리 아홉개 (4) 24.11.14 14 0 10쪽
46 ep 07. 꼬리 아홉개 (3) 24.11.13 15 0 11쪽
» ep 07. 꼬리 아홉개 (2) 24.11.12 16 0 9쪽
44 ep 07. 꼬리 아홉개 (1) 24.11.11 17 0 10쪽
43 ep 06. 풀 밟는 남자 (9) 24.11.10 19 0 11쪽
42 ep 06. 풀 밟는 남자 (8) 24.11.09 17 0 10쪽
41 ep 06. 풀 밟는 남자 (7) 24.11.08 16 0 10쪽
40 ep 06. 풀 밟는 남자 (6) 24.11.07 17 0 10쪽
39 ep 06. 풀 밟는 남자 (5) 24.11.06 19 0 10쪽
38 ep 06. 풀 밟는 남자 (4) 24.11.05 17 0 10쪽
37 ep 06. 풀 밟는 남자 (3) 24.11.04 16 0 10쪽
36 ep 06. 풀 밟는 남자 (2) 24.11.03 17 0 10쪽
35 ep 06. 풀 밟는 남자 (1) 24.11.02 20 0 10쪽
34 ep 05. 인형사 (9) 24.11.01 20 0 11쪽
33 ep 05. 인형사 (8) 24.10.31 22 0 11쪽
32 ep 05. 인형사 (7) 24.10.30 23 0 11쪽
31 ep 05. 인형사 (6) 24.10.29 22 0 10쪽
30 ep 05. 인형사 (5) 24.10.28 26 0 9쪽
29 ep 05. 인형사 (4) 24.10.27 27 0 10쪽
28 ep 05. 인형사 (3) 24.10.26 30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