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8. 이름 없는 이들 (1)

ep 08. 이름 없는 이들 (1)
"이거 한 번 볶아봐."
찬 대장님이 냅다 들이민 바가지에는 형용할 수 없는 색깔을 가진 된장 같은게 들어 있었다.
된장이 아니라 된장 같이 생겼다고 한 이유는 색이 너무나도 탁해서.
도무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색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아저씨가 남의 가게에 와서 무슨 행패야!"
선술집 텐야.
소싯적 몸을 담았던 조직에 실망하여 무작정 배에 몸을 실어 타국으로 넘어온 청년 다케다 소이치로, 통칭 닷치가 주인장이자 주방장으로 있는 선술집.
본국에서 넘어올 때 함께 온 이복동생 다케다 이온과 함께 둘이서 소소하게 운영하고 있는 작은 가게다.
낮부터 둘이서 함께 그 날 판매할 음식의 재료를 준비하고, 저녁 쯤에 문을 열어 하루가 지나기 전에 문을 닫는다.
명색이 술집이다보니 새벽까지 장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대체로 무방하겠으나 닷치는 그걸 원하지 않았다.
어차피 더 오래 해봤자 주정뱅이만 늘어날 뿐.
탁자에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바닥에 치워야 할 토사물이 쌓여질 뿐이다.
게다가 취한 형색을 핑계로 이온에게 번번히 시비를 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술에 취한 눈으로 보면 남자든 여자든 어느 누구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맨 정신에 보더라도 이온은 충분히 귀여웠다.
본색을 아는 사람은 몇 없지만.
최소 이 주변에선 나와 소체 뿐이었지만.
입이 무거운 소체는 두말할 것이 없고,
나 역시 함구 당하고 있었기에.
그래서 이온은 지금까지 줄곧 귀엽게 있을 수 있었다.
그러니 주정뱅이들의 놀림감이 되기 일상이었기에,
닷치는 그걸 원하지 않았다.
이복 동생이라고 해도 자신의 소중한 혈연이다.
닷치 성격상 치근대는 놈들을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굳이 일반 음식을 파는 식당이 아닌 선술집을 선택한 이유는,
전에 있었던 조직에서 자신이 관리했던 곳이 도박장이었기 때문에.
도박장에서는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는 꾼들을 위해 간소한 음식과 술을 준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더 오래 붙들어 둬야 하기 때문에 공복을 핑계로 손님을 외부로 보내는 건 되도록 막아야 했고, 대체로 술에 취한 이들은 돈 씀씀이도 컸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조직원 하나가 그 일을 맡았고, 제법 흥미가 동했던 닷치는 여유가 있을 때마다 주방을 들락거리며 요리를 돕는다는 이유를 들먹이며 어깨너머 하나씩 배워갔다.
같은 칼을 쥐더라도 닷치에겐 주방이 훨씬 매력적인 공간이었던 것이다.
거창한 건 못 만든다.
흥미가 있었다고는 하나, 깊은 시간을 주방에서 보낼 처지는 안 되기엔 어깨너머로 배운 지식은 한계가 있었다.
이해도 부족하고 경험도 적었다.
무엇보다 기술이 부족했다.
기술을 배울 시간이 한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틈틈이 배워 만들 수 있었던 건 기껏해야 단순 노동이 필요한 굽기, 튀기기 정도.
정말이지 요리라고 하기엔 부족한 완성도였으나, 술과 함께라면 대부분 용인되는 그 정도의 맛, 그 정도의 모양새.
하지만 닷치에게는 이게 어울렸다.
이런 가벼운 음식이 자신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꼬치 종류나 닭튀김만 내놓기엔 구색도 허전했기에...
함께 먹을 수 있는 술도 곁들여 팔게 되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조직에서 배우고 익혔던 경험을 궁시렁거리며 사용하기 시작했다.
음식을 만드는 기술뿐만 아니라, 장사의 구색까지.
음식의 부족한 맛은 술로 보충하고,
술에 취한 이들은 분위기에 취해 안주의 부족함을 탓하지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 술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팔기 위해 술을 곁들이게 되었다.
게다가 최근에 닷치는 허리춤에 칼을 지니고 다닌다.
보통의 태도보다 한 뼘 더 길다란 장검.
그것도 2자루.
덕분에 술주정을 하는 사람이 대폭 줄었다고 이온은 내게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지만, 그게... 그것도 술집 주인장이 칼을 차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게 장사꾼으로서 올바른 행동, 올바른 모습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온은 그저 자신의 오빠가 좋은 거겠지.
무엇을 해도 좋은 거겠지.
길거리에서 무뢰한을 썰어도 멋지다고 할 그녀니까.
암튼,
색이 탁한 된장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거 볶으면 맛있다고 해서 얻어 왔어."
"안 그래도 재료 준비중이라 바빠 죽겠는데! 거기서 꼬치나 꿰고 있어! 볶아 줄테니까. 근데 이거 똥 아니야?!"
찬 대장님이 가져온 바가지를 홱 낚아 채고는 커다란 냄비에 탁한 된장을 쏟아 붓는 닷치.
이온이 의자를 하나 내줬고, 찬 대장님이 앉아서 나와 함께 꼬치를 꿰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도 약속 시간보다 다소 일찍 도착한 덕분에 재료 준비를 돕고 있었다. 이온과 함께.
"이거 염통인가? 염통 맞지? 이렇게 꽂으면 되나?"
"네, 찬 대장님. 손이 엄청 크신데, 보기보다 잘 하시네요."
이온의 진심인지 아닌지, 돌려 까는건지 모를 칭찬에 찬 대장님이 쑥쓰러워 했다.
아... 저 눈.
이온의 가늘게 뜬 저 눈은 분명 돌려서 까는거다.
"자주 먹어봐서 어떻게 생긴지 잘 알거든."
아무렴...
그러시겠지.
"뭐해, 너희들? 잉? 찬 대장까지?"
찬 대장님이 염통 꼬치를 7개 완성해서 이온의 칭찬을 듣고 있었을 때, 샤화가 도착했다.
뒤에 따르는 무리들은... 뭐, 언제나의 샤화였다.
"아직 준비가 덜되서 같이 돕고 있었어."
"어머, 그래? 너희들도 앉아서 도와."
샤화가 허리에 손을 얹고 턱으로 가리키자, 뒤따라온 샤화 상회 사람들이 탁자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이온이 눈치껏 재빠르게 쌓여있는 꼬치 재료들을 배분했다.
익숙하다 못해 능숙한 솜씨다.
역시 아랫 사람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 조직의 장녀.
조금 험하게 다뤘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은 있지만서도.
"너는 또 뭐해?"
"여~ 흰 도마뱀 왔냐?"
샤화는 넓게 개방된 주방을 기웃기웃.
검은 연기가 천천히 피어 오르고 있다.
"그거 첨면장이잖아?"
"뭐? 뭐냐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볶고 있었어?"
"찬 나리가 볶아달래. 맛있는거라고는 하는데... 아직까진 도무지 모르겠네."
샤화의 얼굴이 돌처럼 굳는다.
나는 귀기울여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지만 시선은 탁자의 야채들을 향해 있었다. 괜히 불똥이 튀지 않기를 바라면서.
"찬 대장. 이거 어디서 주워 왔어?"
어디서 돈주고 사왔냐고는 묻지 않는구나.
샤화는 찬 대장님을 너무 잘 안다.
"주워오다니... 저기 밑에 금화루에서, 지나가다 맛있는 냄새가 나길래 좀 달라고 했지."
"아... 그 가짜 중화국 요리 파는 거기? 그러면 뭐를 만들려고 했는지 알겠네."
지끈지끈 머리가 아픈지, 샤화는 내내 허리를 짚었던 오른손을 이마로 옮긴다.
"너, 지금 금화루에 뛰어가서 면 좀 삶아 와. 주인장이 뭐라고 하면 내가 시켰다고 해, 돈도 지불하고. 그러면 순순히 줄테니까. 그리고 넉넉하게 사와. 모자라면 부끄러우니까."
딱부러지는 명령에 샤화 상회의 막내로 보이는 이가 텐야를 뛰쳐 나갔다.
"그리고 닷치. 양파 있지?"
"양파? 많지."
"네모낳게 썰어서 같이 볶아. 물도 조금 넣고. 너무 많이 넣지는 마. 양파에서도 물이 나오니까 타지는 않을거야."
고분고분 양파를 씻는 닷치.
이럴 때 샤화는 무섭다.
양파와 함께 조금씩 물을 넣어가며 농도를 조절하는 닷치.
샤화는 곁에서 제대로 하는지 감시중.
그런 모습을 힐끔힐끔 곁눈질하며 지켜봤다.
붉은 치파오가 주방의 조명빛에 따라 번들번들.
문외한인 내가 봐도 고급 비단으로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깊고 선명한 색감과 재질.
어깨부터 내려와 아랫배를 감싸는 황금빛 용.
샤화의 드문드문 흰 머리와 함께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모습이라, 나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겨 결국 샤화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샤화.
승리의 미소.
금새 내게 다가와 귓속말로 속삭인다.
"그렇게 도둑처럼 힐끔거리지 말고 똑바로 쳐다봐. 저번주에 들어온 비단으로 만든 거라고. 보여주려고 입었으니 천천히 감상해."
"으어..."
귀를 간지럽히는 숨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이거면 되냐?"
주방에서 들리는 닷치의 물음.
"좀 더 볶아. 그래야 단맛이 나니까."
"음식에서 단맛? 그게 맞아? 나는 이해가 안 되네."
"나는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데."
옆에 있는 이온도 고개를 끄덕인다.
나 역시 마찬가지.
우리는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가.
볶는 냄새가 천장을 가득 채우고 가게 밖으로 점점 풍겨갈 때쯤 삶은 면이 도착했다.
샤화의 지시에 따라 작은 접시에 면이 먼저 놓여지고, 신나게 볶은 첨면장이 큼직하게 썰린 양파와 함께 위에 올라갔다.
샤화가 말한대로 달디 단 향이 코를 깊숙하게 괴롭혔다.
이 냄새는,
굉장히 폭력적이다.
"맞지? 그렇지? 정말이지? 내가 맡았던게 바로 이 냄새야."
"사고 친 사람은 이럴 때 가만히 있어야 되요."
"그러냐?"
찬 대장님은 두 젓가락만에 접시를 비웠다.
애초에 가지고 온 첨면장이 적었기에, 여기 있는 모두에게는 정말 맛보기 수준의 양 정도 밖에 돌아가지 않았다.
"나쁘지 않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음식에서 이런 단맛이 나는구나.
"그 말이 맞아. 나쁘지 않기 때문에 더 자존심 상하지. 이런 건 중화국 요리가 아니야. 첨면장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다니."
"그래?"
"인정 못 해. 이런 요리는 중화국에서 먹어본 적 없어. 애초에 첨면장은 반찬을 찍어먹을 때 말고는 먹어본 적 없다고."
"그래도 신기한 맛이기는 하네."
닷치도 의견을 거들었다.
주방장으로서의 흥미인지, 개인의 취향인지는 모르겠으나, 닷치 안에 있는 뭔가를 건드린 건 분명했다.
"금화루라고 했나? 내일 찾아가서 물어봐야겠어. 제대로 만드는 방법."
"나는 인정 못 해. 그런 음식."
"어련하시겠어요, 흰 도마뱀. 오늘은 빨간색 옷을 입고 왔으니 고춧가루 범벅이냐?"
둘이서 샤악! 샤악! 하며 파충류처럼 싸우고,
이온이 곁에서 쿡쿡 거리며 웃는다.
언제나의 모습.
언제나의 텐야다.
- 작가의말
매일 오후 8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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