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의 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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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신너
작품등록일 :
2024.10.02 00:38
최근연재일 :
2024.11.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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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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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08. 이름 없는 이들 (3)

DUMMY




ep 08. 이름 없는 이들 (3)



"엇!"


이틀 뒤 아침,

다소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는 서문에 도착한 나를 보자마자 기겁을 하며 놀랐다.


"아래위로 온통 시커먼색이라 저승사자가 걸어오는줄 알았네."


이제 때가 된 줄 알았다며 나중에는 실실 웃기까지 했다.


저승사자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믿어줄지 말지는 둘째치고, 앞으로 몇 번이나 볼지 모를 이 분을 위해 정성을 들여 설명하고픈 마음은 없어 그저 따라 웃기만 했다.


생각없이 주섬주섬 옷을 입다보니 이렇게 됐다고,

그저 취향이라고... 대충 둘러대면서.


"수레는 저걸 타고 가면 되고, 여기 서류."


남자는 내 품에 종이 다발을 안겨주며 주의사항을 일러 주었다.


"중요한 서류니까 절대 잃어버리지 말 것. 문지기에게 보여줘야 통과가 될테니, 그거 없으면 다시 돌아와야 해. 거기가 워낙에 까다로운 곳이다보니 절대 안 들여 보내줄테니까."

"정말 중요한 거였네요."


나는 옷깃 사이에 종이 다발을 곱게 접어 집어 넣었다.


"그리고 샤화 상회 라는 이름은 절대 입 밖에 내지 말 것."

"...뭔가 시커먼 냄새가 나는 주의사항이군요."

"비밀이라 붙은 일들 대부분이 이런 식이지. 익숙하지 않으면 못 살아 남아. 밝은 세계, 밝은 일거리만 찾아 헤맸다간 굶어죽기 십상이거든. 게다가 말이지, 업무 대행이라는 것들은 비밀이란 단어가 붙으면 벌이가 꽤 짭짤해지잖아? 그 맛으로 하는 거니깐."


자칭 심부름 대행, 업무 대행 선배는 고생하라며 어깨를 2번 툭툭 치고선 마을로 걸어 갔다.


선배님의 말씀이라...


샤화가 내게 던져주는 일감은 대부분 그러했다.

굳이 비밀이라는 단어가 안 붙어도 착수금이라던지, 수고비라던지... 단 한 번도 섭섭하게 받아본 적은 없었다.


그만큼 샤화에게 있어, 샤화 상회에 있어 나는 부리기 쉽다라고 해야 할지, 생각대로 움직인다고 해야 할지, 기대에 준하는 결과를 가져다 준다고 해야 할지.


그보다...

비밀 엄수가 잘 되서? 비밀이 잘 지켜져서? 상정한 범위 내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서?

뭐 그렇고 그런...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 다른 업무 대행자들보다 돈을 더 주고서라도 내게 맡긴다는 느낌?


신뢰하는 사람에게 일을 맡긴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


비용을 써서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면 의뢰인은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


반대로 말하자면,

위험 부담이 높아지는 대신 들어가는 비용이 줄어든다면 원가 절감을 사유로 이 방향을 선택하는 의뢰인도 분명 존재한다.


실패했을 경우 부담해야 할 위험성이 낮다면,

그것이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면,

당연히 비용을 낮추는 선택지를 고르겠지.


실패해도 무방하고,

성공하면 좋고,

와 같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괜찮은 그런 소소한 일들.


하지만 샤화는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든 일의 성공을 바라고 있다.

샤화 상회에는 실패라는 미적지근하고 재미없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실패하면,

없어지니까.


샤화의 성격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일.


지극히 당연한 수순.


수순대로 없어진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일은 그저 조금 먼 곳에 물건을 옮겨주는 일.

쉽게 말해 장거리 운송이다.


샤화는 늘 그렇듯, 매번 그래왔듯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이렇게 수레도 미리 준비해줬고,

가야 할 곳은 전에 다른 의뢰인이 주문했던 책을 받으러 몇 번 들렀던 곳의 부근이라 길도 잘 알고 있다.


목적지인 남쪽으로 쉬지 않고 부지런히 걸으면 14시간 정도 걸리겠지만,

거리가 거리인 만큼 한 번도 쉬지 않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고, 샤화가 수레까지 준비해줬다는 건 나를 편하게 하려는게 아니라 배달할 물건이 무겁다거나 부피가 크다는 소리겠지.


그나저나 거기엔 쌀이 맛있다던데,

마침 수레도 있겠다 몇 포대 구입해서 돌아올까?


나는 수레로 다가가 뒤에 실린 물건을 확인했다.


꽤 기다란 나무 상자가 2개.


좌우 넓이는 건장한 성인 어깨 넓이와 비슷했고,

길이 역시 건장한 성인의 키보다 아주 약간, 조금 더 길었다.


높이는 사람이 누웠을 때 쏙 하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


"......"


뭐야 이거.


품에 넣었던 종이 다발을 급히 꺼내 펼쳐 본다.


총 2장.

각각 사람의 이름과 본적, 사망 날짜가 적혀 있었다.


총 2명.

내가 지금부터 가야 할 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이고, 사망 날짜는 동일하게 어제.


뭐야 이거.


설마 관인가?

정말 관인건가?


상자의 생김새와 손에 든 서류가,

명백하게 시체가 들어 있는 관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사망 날짜가 어제라면 이미 부패가 진행되고 있을 터.


불행 중 다행인지,

관 뚜껑은 못으로 박혀 있었다.


살짝 흔들어보니 무겁다.

안에서 뭔가가 둔탁하게 흔들린다.


뭐야 이거.


나는 수레에 올라타 급하게 말을 끌었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부패 진행 속도가 빨라진다.


지금은 괜찮지만,

괜찮을거라고 믿고 있지만,

곧 시체가 부풀어 오르고 부패물이 녹아 나오며 주변을 마비시킬 악취를 풍기게 되겠지.


약 배달을 자주 다녔기 때문에 본의아니게 썩어 문드러지는 신체를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성당으로 직접 찾아 오시는 분들 중에도 그런 모습이 일부 있었다.

처치는 루이스 수녀님과 신디 누나가 하셨고, 나는 곁에서 도왔을 뿐이지만.


어쨌거나 뒤에 실려있는 2개의 관은 본래 가족에게 돌아가야 할 몫.

심각하게 진행된 부패로 인해 혹여 남아있는 가족들이 얼굴이나 형태를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마음에 충격이 조금이라도 덜 할 수 있도록, 생전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유지할 수 있도록.


나는 서둘러 가야 한다.


일에 대한 불만은,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던 불만은,

나중에 샤화에게 털어놓도록 하자.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운반해야 할 물건이 타지에서 비명횡사한 시체라니,

상상도 못 했다고!


가는 중간에 위치한 주막에서 말을 교체한 뒤, 다시 쉬지않고 달린 결과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빠르게 오셨네요, 심부름꾼님."

"잉? 혹시 약속 시간을 정했었나요?"


북문 앞에는 익숙한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찬 대장님의 부관님.

단정하고 짧게 자른 머리에 오늘은 늘 보던 군복이 아닌 깔끔하고 세련된 사복을 입고 있었다.

날렵하게 빠진 서양식 치마에 서양식 상의, 속에 받쳐 입은 한복의 옷깃이 그녀와 너무나도 잘 어울려 마치 그녀만을 위해 만들어진 옷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신고 있는 신발은 군화,

허리에는 가죽끈으로 묶인 4자루의 가느다란 도검을 차고 있는 점은 그녀가 뼛속까지 군인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정하지는 않았죠. 예상보다 일찍 오셔서 조금 놀리고 싶었네요."


이런 장난을 치던 분이셨던가?


늘 찬 대장님을 부축하러 오실 때 인사를 나눴던 일 외에는 대화를 주고받은 적이 없어서 그런지 이런 모습은 다소 새로웠다.


"너, 어디 가냐?"


이틀전 텐야.


찬 대장님의 물음에 목적지를 답했더니,


"그래? 우리 부관이 지금 거기에 가 있는데, 내가 일 좀 시켰거든. 내일 서신 하나 보내 놓을테니, 만나서 밥이나 사달라고 그래."


이런 오지랖 덕분에 부관님과 만날 수 있었다.


때문에가 아닌 덕분에라고 표현한 까닭은,

부관님 덕분에 북문 경비병 통과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의도치않게 큰 도움을 받아 버렸다.


"일행이라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실제로 일행인걸요. 저 역시 매번 찬 대장님께서 신세를 지시는 분들께 언젠가는 도움을 드리고 싶었으니 너무 부담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참, 맡으신 일을 마치고 식당에 갈까요? 아니면 지금 가시겠어요? 저는 슬슬 배가 고파오네요."


나는 힐끔, 뒤에 실린 관을 쳐다보고 대답을 이어갔다.


"그... 운반해야 할 물건이 조금 급한거라서, 이 일부터 마치고 밥을 먹으면 안 될까요?"

"그럼, 그렇게 해요. 자, 가시죠."


라며, 수레에 올라타 옆자리에 자리를 잡는 부관님.


그렇게 수레에 총 4명을 태우고 북문에서 조금 이동하여 미리 전달받은 위치에 도착.


우리를 경계하는 사내가 3명.

모두 두꺼운 천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있었다.


수레 뒤에 실린 관을 보자마자 팔짱을 낀 1명이 턱으로 관을 가리켰다.

2명이 묵묵히 관을 내리고 이내 기다란 쇠붙이로 관 뚜껑에 박힌 못을 뽑기 시작했다.


"저기..."

"왜?"


나의 물음에 팔짱을 낀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쏘아 붙였다.


"제대로 받으셨다면 저희는 이만 돌아가도 될까요?"

"가긴 어딜 가. 내용물 확인이 먼저다."


관 뚜껑이 완전히 열리고,

코를 넘어 뇌를 파고드는 악취가 퍼져 나왔다.


이게 싫어서 자리를 뜨려 했건만.


관에 담겨진 것은 사체.

부패가 꽤 진행된 사체.


그러나 인간의 것이 아니라,

관 크기에 맞춰 억지로 우겨 넣어진 짐승의 사체였다.


얼핏 보기엔 사슴이나 그와 비슷한 것처럼 보이는 사체였다.


2개의 관 모두 동일.

2마리의 짐승.


남자들은 짐승의 배를 거칠게 만지다가 꿰매진 실밥을 발견하고는 거칠게 뜯어내고 안에 들어 있던 덩어리들을 꺼냈다.


천으로 여러 차례 감싸진 덩어리.


짐승의 배 내부는 미리 세척을 했는지, 차례 차례 나오는 덩어리들의 겉면은 눈쌀이 찌푸려질 정도로 더럽게 오염되지는 않아 보였다.

그런 덩어리들이 다섯개, 여섯개 차례 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나와는 다르게 코와 입을 막지도 않고, 지그시 그 모습을, 그 행동을 지켜보는 부관님.


"심부름꾼님."

"넴?"


코를 막고 있어 코맹맹이 소리가 나왔다.


"사유는 잘 모르겠으나 함께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제 착각이 아니겠죠?"


수레에서 내린 부관님은 허리에 양손을 얹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식사하며 여쭙겠습니다. 우선 정리부터 빠르게."


살며시 올라가는 입꼬리와 함께,


두 자루의 도검이 날렵하게 뽑혔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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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ep 08. 이름 없는 이들 (6) -시즌1 종료- 24.11.23 11 0 12쪽
55 ep 08. 이름 없는 이들 (5) 24.11.22 8 0 10쪽
54 ep 08. 이름 없는 이들 (4) 24.11.21 9 0 9쪽
» ep 08. 이름 없는 이들 (3) 24.11.20 13 0 10쪽
52 ep 08. 이름 없는 이들 (2) 24.11.19 10 0 11쪽
51 ep 08. 이름 없는 이들 (1) 24.11.18 12 0 10쪽
50 ep 07. 꼬리 아홉개 (7) 24.11.17 12 0 10쪽
49 ep 07. 꼬리 아홉개 (6) 24.11.16 11 0 10쪽
48 ep 07. 꼬리 아홉개 (5) 24.11.15 12 0 10쪽
47 ep 07. 꼬리 아홉개 (4) 24.11.14 14 0 10쪽
46 ep 07. 꼬리 아홉개 (3) 24.11.13 15 0 11쪽
45 ep 07. 꼬리 아홉개 (2) 24.11.12 15 0 9쪽
44 ep 07. 꼬리 아홉개 (1) 24.11.11 17 0 10쪽
43 ep 06. 풀 밟는 남자 (9) 24.11.10 19 0 11쪽
42 ep 06. 풀 밟는 남자 (8) 24.11.09 17 0 10쪽
41 ep 06. 풀 밟는 남자 (7) 24.11.08 16 0 10쪽
40 ep 06. 풀 밟는 남자 (6) 24.11.07 17 0 10쪽
39 ep 06. 풀 밟는 남자 (5) 24.11.06 19 0 10쪽
38 ep 06. 풀 밟는 남자 (4) 24.11.05 17 0 10쪽
37 ep 06. 풀 밟는 남자 (3) 24.11.04 16 0 10쪽
36 ep 06. 풀 밟는 남자 (2) 24.11.03 17 0 10쪽
35 ep 06. 풀 밟는 남자 (1) 24.11.02 20 0 10쪽
34 ep 05. 인형사 (9) 24.11.01 20 0 11쪽
33 ep 05. 인형사 (8) 24.10.31 22 0 11쪽
32 ep 05. 인형사 (7) 24.10.30 23 0 11쪽
31 ep 05. 인형사 (6) 24.10.29 22 0 10쪽
30 ep 05. 인형사 (5) 24.10.28 26 0 9쪽
29 ep 05. 인형사 (4) 24.10.27 27 0 10쪽
28 ep 05. 인형사 (3) 24.10.26 3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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