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8. 이름 없는 이들 (6) -시즌1 종료-

ep 08. 이름 없는 이들 (6)
"생각보다 번거롭네, 이거."
"그러게."
샤화 상회 서문 본관 1층.
탁 트인 응접실 원형 탁자에 샤화와 그녀의 직원들 그리고 내가 둘러 앉아 대하 껍질을 까고 있었다.
커다란 중화제 냄비에 소금을 깔고 구운 대하.
특유의 강한 화력 덕분에 금새 터질 듯 붉게 구워졌다.
접시 한가득 내어지는 시뻘건 대하의 산.
모두 한자리씩 꿰차고 앉아 묵묵히 껍질을 까고 내용물을 입에 넣었다.
놀라운 점은,
누구 하나 빠지는 직원 없이 모두 모여 그들 나름의 소소한 잔치를 즐기고 있다는 것.
지금 보니 정문까지 걸어 잠군 모양새.
용무가 있으면 기다리라는 배짱.
더욱 놀라운 점은,
총 책임자인 샤화와 함께 몇몇 간부도 함께 이 자리에 참석했으나, 그 어느 누구도 불편한 기색없이 묵묵히 본인들의 잔치를 즐기고 있었다.
이 모습은 영락없이 가족.
분명 피는 이어져있지 않겠지만,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피부에 톡톡 와닿는 공동체스러운 기운이 탁자에서 구운 대하의 뜨뜻한 김과 함께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좋다고 해야 하나?
어찌되었든 샤화 상회 소속의 누구 하나에게 손해가 가는 짓을 하게 되면, 샤화 상회 전체가 들고 일어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가족이니까.
누가 상대할 수 있으랴, 이 거대한 집단을.
"들어간 비용이랑 만드는 수고를 생각하면 그렇게 맛있다는 생각은 안 드네."
"그래도 대하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몇 마리만 구워도 밤새 마실 수 있는 술안주일텐데."
"맛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솔직히 귀찮다는거지."
샤화는 대하를 가득 담아 오는 주방장에게 손을 들어 노고를 치하했다.
"껍질 까는게?"
"그렇지. 그런데 남이 까주는 건 또 허무하단 말이지. 보고 있으면 직접 까서 먹어야 제대로 된 맛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막 그래."
쌓여있는 시뻘건 대하들.
가만 보면...
대하보다 저기 들어가는 소금이 더 비쌀텐데?
"소금? 헤엄쳐도 될 만큼 창고에 있으니까 필요하면 가져가."
"부유한 상인은 다르구나."
"몰랐어? 우리 집안은 대대로 염상이었다고."
"염상?"
"소금 상인."
아, 그러면 이해가 간다.
중화국은 소금으로 세금을 낸다고들 하니, 염전 주인, 소금을 다루는 자가 곧 부와 권력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이치.
금과 다를 바 없다.
이렇게 퍼부어도 남아 돌겠지.
사회 계급에서 주로 하위를 차지하는 장사꾼이라도,
다루는 물건이 소금이라면 나라에서 용을 하사받을 수 있구나.
"소금에 구운 대하라니... 너무 귀한 대접을 받는거 아닌가 모르겠네."
"대하가 자주 잡히는 건 아니지만, 가끔 대량으로 들어올 때가 있으니까 먹고 싶을 때 미리 얘기해. 날짜 잡는거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그나저나 똑같은 것만 계속 먹으니 심심하네. 남은 건 초피랑 고추 기름을 둘러서 볶아달라고 할까?"
"나 매운건 못 먹어."
"뭐야, 가리는거 없이 다 잘 먹어야 건강해지지."
"값비싼 음식을 대접받은 덕분에 충분히 건강해지고 있습니다요."
이번엔 대게찜이 탁자 가득 차려졌다.
"뭐야, 배를 통째로 사왔어?"
"어떻게 알았어?"
"세상에나, 진짜냐고..."
"2번 항구 근처에 일이 있어 갔다가 접대 받았는데, 이 동네 찜도 먹어보니 생각보다 괜찮더라? 그래서 그물망에 걸린 거 그대로 다 사왔지."
보통은 볶아 먹는데 말이야, 하며 맨손으로 게다리를 뜯는 샤화.
익숙한 솜씨라 마치 현지인 같았다.
뭐든지 금방 익숙해지고 능숙해진다, 샤화는.
머리가 좋다는 뜻이겠지.
"오늘은 혼자?"
"소체랑 시화는 집 지키기. 나는 근처에 전해줄게 있어서 나왔다가 네 마차가 지나가는 걸 봤거든. 그래서 따라 왔지. 이야기 할 것도 있고."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 같은데."
샤화가,
샤화 상회가 나에게 일을 맡겼고,
그 일이 물건을 운반하는 일이었고,
물건이 관이었으며,
관 안에는 짐승의 사체,
사체 안에는 조잡한 가루.
아편이라고 하기엔 조잡한 부스러기.
"어떤 질문이 들어올지는 예상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답변을 받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말았으면 하는데. 이쪽도 여러가지로 신경 써야 할 게 있으니까."
여러 면을 신경 써야 하니까.
게 껍데기를 반으로 쪼개는 샤화의 손은 멈추질 않는다.
"알고 있는 건 알려줄게, 나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다만, 거짓말은 하지 않아. 나는 그런거 싫거든. 돌려서 말하는 것도 싫어. 빙빙 돌리면 사람이 빈곤해 보이잖아? 돌려 말하는 걸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건 배려가 아니지. 해야 할 말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머금는게 더 친절하지 않아? 그게 더 똑똑한 대처라고 생각하는데,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알 필요는 없고."
"어쨌거나 네가 중심이구나."
"당연하지. 그러니 나를 생각한답시고 빙빙 돌려서 질문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아줘, 부탁이니까. 나를 배려한답시고 말을 돌려가며 더듬는 놈들은 내 인내심이 끝났을 때 쯤 머리가 박살났거든. 너는 제발 그런 부류가 아니길 바라고 있어."
두번째 게 껍데기를 반으로 쪼개는 샤화의 손은,
여전히 멈추질 않는다.
"아편이 들어 있었어."
"어디에?"
"옮겼던 물건에. 참, 옮겨야 될 물건이 관이더라. 들어있던 건 사슴같이 생긴 동물이었지만. 알고 있었어?"
"글쎄, 죽은 거?"
"응, 죽은 거."
낄낄 웃는다.
"보통 크기라면 안 들어갈텐데, 사람의 관에. 관절이란 관절은 다 꺽어서 넣었나? 아니면 잘라서? 어쨌거나 수고스러운 짓을 했네. 나 같으면 귀찮아서 진짜 사람을 넣었을텐데."
탁자 주변에서도 작은 웃음소리들이 들린다.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등뒤에서.
"어쨌거나, 짐승 배에서 아편이 나왔어. 내장을 꺼내고 아편을 꽁꽁 싸맨 천을 넣은 뒤 실로 꼬맸더라."
"그거... 아편이 아닐텐데."
그제서야 샤화가 나를 본다.
갈색의 눈동자에,
작은 불꽃이 보였다.
"알고 있네? 관아에서는 품질이 떨어지는 물건이라고 했어. 추측하기로는 실제품은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비슷한 물건?"
"그래서?"
손이 멈춘다.
모두들 시선은 앞을 향해 있었으나, 관심은 나와 샤화에게 쏠려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공동체.
마치,
처형장에 서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심부름꾼님은 무엇이 그렇게 궁금하실까?"
"......"
"천천히 대답해도 좋아. 기다릴테니까."
"왜 그런 조잡한 물건을 파는 거야?"
순간 정적.
침 삼키는 소리 조차 내지 못 할 정도로, 탁 트인 공간이 순식간에 얼어 붙었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샤화의 벼락같은 웃음소리에,
뒤에 선 사내들이 허리춤에 찬 칼을 뽑았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샤화라면 분명.
"아냐, 아냐. 됐어. 됐으니까 넣어 둬. 너무 재밌었어. 아, 슬슬 목까지 차올랐던게 확! 하고 내려가는 기분이야. 진짜 진짜, 너무 재밌었어. 역시 최고야 넌."
"...다행이네."
의자를 끌며 다가온 샤화의 어깨가 내 가슴에 닿는다.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마. 그러다 칼 맞겠어."
"...선처할게."
숨결이 가까워,
좋은 향이 올라왔다.
"혼잣말이니까 그냥 듣기만 해. 소문과 소문과 대수롭지 않은 소문이 합쳐져서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말인지 모를 정도니까."
"응."
기댔던 허리를 본래 자리로 돌린 샤화는 말을 이어갔다.
"옛날 옛날에."
전래동화냐고?!
"아편을 유통하는 장사꾼이 있었습니다."
"...대단한 장사꾼이네."
"한번만 더 끼어들면 혀를 잘라서 볶아버리겠어."
"죄송합니다, 볶지 말아 주세요."
닷치가 말하기를,
소 혓바닥 구이가 기가 막힐 정도로 맛있어서 지역 명물이 됐을 정도라고 하던데,
그래도 내 혓바닥을 명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 장사꾼은 커다란 상인 집단을 운영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아편은 다른 얼굴, 다른 이름으로 유통했습니다. 그만큼 위험부담이 큰 상품이니까요. 물론, 약제로만 사용해야 하기에 나라의 감시 아래에서 유통했지요."
마취.
지사와 통증 완화 역할에 최면, 진정 효과까지 있는 흡사 만병통치약.
하지만 강한 중독성과 발열, 구토를 동반한 금단 증상까지 함께 따라오기 때문에 병을 고치려고 다량 투약했다간 금세 폐인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쾌락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의료용 보다는 오락용으로 찾는 이가 많은 것이 아편.
그래서 나라의 엄격한 감시 아래 유통된다.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개인이, 마을이, 도시가 황폐화되고 만다.
"몇 번의 불가피한 사고로 아편의 일부가 시중에 풀려버리는 일이 발생하였지만, 나라는 장사꾼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대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이제와서 다른 유통망을 찾기에는 지금껏 맡겼던 장사꾼이 너무 유능했거든요. 유능하고 유능해서 이미 깊숙히 파고 들어버린 상태. 대체 불가능. 그러니 나라에서는 보고도 못 본 척 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어느 누군가가 가짜 아편을 시중에 풀기 시작했답니다. 기존 아편보다 가격은 10배 이상 저렴한 반면, 부작용은 10배 그 이상이었답니다. 여기서 질문."
"나?"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는 샤화.
"아편의 10배 이상 부작용이면... 가짜 아편을 먹은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죽겠지?"
"정답."
너무 쉬웠나,
시시하단 눈썹으로 다시금 이야기를 시작하는 샤화.
"죽으니까 문제였던 겁니다. 죽으니까요. 가짜 아편은 완성도가 처참한 수준이었던 거죠. 쓰레기에 쓰레기에 이만한 쓰레기가 없었지만 값이 싸니까. 일반 아편보다 더 많이, 더 넓게, 더 깊게 사람들 사이로 침투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목숨을 가져갔지요."
10배 더 빠르게.
10배 더 많이.
"아편 장사꾼은 화가 났어요. 너무너무 화가 났어요. 너무 화가 나서 게 등딱지를 맨손으로 부셔버릴 정도였죠."
불쌍한 게 등딱지.
"왜 화가 났을까요? 사회 윤리가 파괴되서? 아편은 나쁜거니까? 안타깝게도 아편 장사꾼은 그런 재미없는 사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답니다. 사람이 죽으니까. 고객이 죽으니까. 너무 빨리 죽어 버리니까. 내 아편을 사갈 고객이 죽어버리니까. 죽고 죽고 죽어서 내 아편이 안 팔리니까. 실수로, 사고로, 어쩔 수 없이 시중에 유통되야 할 아편이 먼 미래에는 안 팔리게 될 것이 뻔하니까."
"......"
"그래서 화가 났던 거에요."
소문과 소문.
그리고 대수롭지 않은 소문.
"지금도 아편 장사꾼은 빌어먹을 가짜를 찾고 있답니다. 하지만 몰래 찾아야 해요. 나랏님의 눈에 걸리면 화를 풀 대상을 뺏겨버리니까요. 자, 이야기는 여기까지."
짝짝짝.
나는 열심히 박수쳤다.
가짜 장사꾼이 잡혔을 때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 라는 기상천외하고 밥맛 떨어지는 후속 처리는 하지 않은 걸 환영하는 의미로.
그나저나...
당연하겠지만서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는 끝나지 않는구나.
"그... 매콤한 음식을 먹으면 짜증이 좀 날아가는 효과가 있다고들 하던데."
"그래서?"
나는 저멀리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주방장을 가리켰다.
"지금이라도 네가 말한 양념을 둘러 볶아달라고 할까? 싶어서."
말이 끝나자 샤화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ep 08. 이름 없는 이들, 끝.
- 작가의말
시즌1 종료.
지금껏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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