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

“이러시면 안 돼요!!”
“만지시면 안돼요! 지금 선을 넘으셨어요 손님!”
손님이 사고를 치는군, 딱 봐도 자기 주량을 한참 넘을때까지 마시는 손님이였다
아까부터 꽐라가 될 정도로 취했었는데 괜찮다하며 계속 술을 들이키고서는
좀 불안했는데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역시 일이 터진 모양이다
해나랑 같이 술 마시는게 그렇게 좋았나?
유흥주점, 아가씨를 두고 술을 파는 가게
세간에서는 술을 물에 빗대어 나 같은 사장들에게 「물장사」를 한다고 부른다
“사장님 보고만 있지 말고 어서 손님좀 떼어줘요!”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이 여자의 이름은 해나, 우리 가게의 직원이다, 붉은빛이 감도는 단발머리에 흰 피부를 가진 미인이다
영화 화면에서 바로 나온듯한 외모다.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도 예쁘네
“사장님! 거기 멀뚱히 서서 뭐 하는거에요?!”
맞다, 해나의 외모에 정신이 팔려 내 할 일을 잊으면 안되지
“손님 죄송하지만 저희 가게는 접촉이 일절 금지되어있습니다, 많이 취하신 것 같습니다, 저희가 돌아가실 수 있게 택시를 불러드리겠습니다.”
머릿속으로 미리 준비해 둔 멘트를 생각하며 손님께 말한다
인사불성인 취객이지만 어쨌거나 우리 손님이다, 해결하는건 둘째치고라도 예의바르지 못 한 태도를 보이면 안 된다
“너가 누군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내가 누군지 알아?
물론 당연히 통하지 않는다
고작 말 몇마디 정도로 해결될 일이였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다
“너희들 여기서 장사 못 하게 해줘?””
“너 오늘 임자 만났어, 내가 예의라는 걸 좀 알려줄게, 딸꾹”
영화에서 봤나? 마치 삼류 건달같은 말을 하며 내게 삿대질을 하는 이 손님
어찌나 술을 많이 마셨는지 얼굴은 홍당무같이 새빨개진 이 손님은 보통 방법으로는 물러나지 않을 성 싶다
손님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족히 나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큰 상대다,
나도 작은 키는 아니지만 상대는 그 키에 체격이 말도 안 된다,
게다가 소매가 걷힌 팔에는 날카로운것에 긁힌 듯한 흉터들이 나 있다.
“진짜 건달인가...?”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딸꾹”
귀까지 좋네, 타고난 싸움꾼이다
이렇게된 이상 별 수 없다.
어지간해서 쓰기 싫은 방법이지만, 취객과의 싸움에 목숨을 거는 것보다는 낫지
우리 가게와 내 목숨의 가치를 여러 번 머릿속으로 저울질해본 결과 아무래도 난 지금 죽을 때는 아니다
사장이 살아야, 가게도 영업을 하는 거니까
해나는 재빨리 가게 구석에 숨어서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고있다
“부르자”
난 해나에게 눈치를 준다
그와중에...손님은 주먹을 휘두르며 내게 다가오고 있다
“너 오늘이 사람되는 날이야, 딸꾹”
시체도 사람에 포함된다면 그렇겠지
해나는 조용히 핸드폰을 들고 번호를 누른다
“여보세요, 네 경찰서죠? 폭행사건이에요, 위치는...”
부탁해 해나
유흥주점에서 경찰을 부른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나는 꿀릴 게 없다
우리 가게는 사람들의 나쁜 인식과는 다르게 철저히 합법적인 활동만을 추구하는 가게다
경찰이 오건 검찰이 오건 떳떳해
라고 생각은 하지만 사실 조금 불안 하다
잠시 후
“네 감사합니다, 따로 폭행 건은 접수하지 않을게요, 네네 괜찮습니다, 아니 정말로 괜찮습니다”
다행히 금방 출동한 경찰덕에 순조롭게 일은 해결되었다
그 동안 손님의 주먹을 받아내느라 양 팔에 한가득 멍이 들었지만 그건 사소한 문제다,
그리고 내 가게와 목숨은 무사했지만 역시 다른 문제가 생겼다
“사건은 접수하지 않으신다구요, 알겠습니다 취객은 일단 서로 인도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와 해나, 우리 가게를 번갈아 처다 본 경찰이 말한다.
“사장님이신가요?
사건 정황 설명을 위해 같이 동행해주시겠습니까”
말은 동행이지만 사실상 연행이였다. 경찰 입장에서는 우리 가게가 아주 범죄의 온상이라고 생각한거겠지
아마 머리부터 발끝까지 탈탈 털 테지만
괜찮다, 하늘에 우러러 한 점 부끄러운 일 한 적 없다
“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것도 아니니까, 금방 끝나겠지”
그런 속 편한 생각을 가지고 꼬박 6시간이 지나서야 난 간신히 경찰서를 나올 수 있었다,
내 신분증, 사업자등록증, 그간의 영업내역 등등을 모두 보여주고나서야 말이다
“완전 발가벗겨진 기분이네”
9시쯤이 되어 해가 완전히 떠오른 밖을 나서며 중얼거렸다.
그간 세금까지 꼬박꼬박 납부한 모범 납세자에게 이런 대우를 하는 게 맞는가 싶다
“딸랑”
빈정거리며 한참 걷다보니 가게에 도착했다, 해나는 이미 퇴근했겠지
“사장님~~! 오셨어요~~!!!”
“어?”
가게에 힘없이 들어오는 나를 해나가 반갑게 맞아준다
“헤헤 아침이 되어도 안 오시길래 구치소에 들어가셨나 싶었어요!!, 변호사를 알아볼 뻔 했다니까요?!”
대처가 능숙한데?
“정말 다행이에요! 하마터면 저 혼자 가게를 열 뻔 했어요!”
거기까지 생각해두었던거냐구...
“어쨌든 피곤하실텐데 얼른 돌아가세요 이따 또 영업해야죠”
해나는 마치 자기 일마냥 신경써준다, 내가 올때까지 기다려준것도, 미처 못한 뒷정리를 한 것도, 나에대한 배려까지도
“사랑스러워”
실수다, 내 마음의소리가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네 뭐라구요?”
“아냐 아무것도”
아주 잠깐 해나의 당황한 표정을 본 거 같은데 기분탓인가?
“그럼 사장님~ 전 이만 갈게요~ 이따봬요!!”
해나도 마음고생이 분명 심했을텐데 여전히 밝게, 여느때와 같이 인사하며 퇴근했다
“잠깐 쉬고 갈까”
고된 몸을 쇼파에 기대며 생각에 빠진다
레이스티스, 삼개월 전 내가 직접 이름붙인 이 가게는 세간에서 말하는 유흥주점으로,
아가씨를 두고 영업하는 가게, 소위 말하는 물장사다.
물론 당연히 적극적인 뭘 하는 그런곳은 아니고, 그냥 직원이 같이 술을 마셔주는 수준이다,
분명 합법이라고
그렇게 변명을 해 보아도
사람들의 인식은 썩 좋진 않다, 오늘 경찰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뭐 당연한거겠지”
이미지가 좋지 않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래도 가게에 와서 잔뜩 기뻐하는 손님들의 모습을 보면 나름 보람이 있다,
특히 우리 가게의 유일한 직원인, 해나의 인기가 대단하다
가게 모집공고를 내자마자 어디서 보고 왔는지 바로 면접을 보러 왔고,
마치 자기가 이미 채용이 된 것마냥 행동했다
“오늘부터 여기 근무하게 될 해나라고 합니다~!, 여기 약력카드에요”
얼굴도 분명 예뻤지만, 특히 그런 당당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사장님 오늘부터 잘 부탁드려요 히히”
그리고, 난 미인에 약하다
“슬슬 일어나볼까, 할 건 해야하니까”
어느정도 쉬고 나서 난 가게를 나선다. 정오였다
여전히 죽을만큼 피곤했지만 내 발걸음은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한다
번화가, 우리가게와 멀지 않은 곳
‘호스트’라는 큰 간판이 걸린 가게로 들어간다.
점심 때, 손님도 직원도 없는 호스트가게는 조용하다,
넓은 내부와 대비되어 약간 싸늘한 분위기까지 난다
그리고
“오랜만이야”
나이는 좀 들어보이지만, 큰 키에 다부진 몸 금발로 염색한 머리를 한 전형적인 호스트의 모습을 남자가 날 맞이한다.
“가게 운영은 잘 되가나? 공권력의 횡포라도 당하고 있는 건 아니지? 하하”
눈치하나는 정말 빠른, 이 남자는 이 호스트 가게의 사장, 예니스다.
다행히 오늘은 있네
“마침 그 일 때문에 왔습니다, 어제 경찰을 불렀어요”
난 심각한 일이 일어났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인다
“가끔씩은 경찰의 도움을 받을때도 있어야지, 혼자 해결하기는 힘에 부치잖아?”
“술이라도 한 병 주고오지그랬어?” 예니스 사장은 능글맞게 말한다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하는 예니스 사장의 태도에 난 조금 화가 났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무책임하신거 아닙니까? 당신의 가게잖아요”
“아니 물론 임대료는 여기서 내고 있긴 하지만, 거긴 네 가게야 주인의식을 좀 가지라고 레이스티스 사.장.님.”
“...”
책임감있는 모습을 보여줄 거라는 기대도 안 했지만, 모든 걸 내게 떠넘기는 예니스 사장의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실 난 사장님이라고 불릴 사람이 아니다.
해나는 날 항상 사장님이라 부르지만
나도 단지 월급을 받고 가게를 운영하는 직원이다.
3개월 전 정말 어이없는 이유로 갑자기 가게 운영을 맡게 되었다, 단지 그 뿐이다
“하하 뭘 그리 생각해 레이스티스 사장은 생각이 너무 많은게 탈이야”
내 회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예니스 사장은 말한다
호스트 경험이 쌓이면 독심술은 기본인가? 이젠 감탄이 나오네 진짜
“가게 일이 도움이 많이 되지?, 이제 여자를 좀 알겠어?”
“네 참 도움이 많이 되네요”
난 한숨을 쉰다
‘여자를 안다’ 이게 내가 평범했던, 아니 탄탄대로였던 삶을 버리고 이쪽의 삶을 선택한 계기다.
“처음 너가 면접을 본다고 찾아왔을땐 미친 사람인줄 알았다니까”
예니스 사장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한다
“미친게 맞았습니다, 그때는”
“되도록이면 늦게 배워 줘, 다 배우고 그만둔다 하면 큰일이니까”
“하아 오늘은 진지하게 경영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주면 안될까요”
“아니 넌 정말 잘하고 있어”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기라도 한걸까 예전부터 입발린 소리만 잘 하네
난 원래 이쪽 일 하고는 연이 없는 사람이였다.
유흥업을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 정말로, 접점이 없었다.
유흥주점은커녕 남들이 흔하게 가는 술집에도 거의 간 적이 없다.
오히려, 예니스 사장의 말과는 다르게
난 접대 같이 사람 상대하는 이런쪽에 재능이 없다.
조금이라도 재능이 있었다면 30살 인생에 여자친구가 한 번쯤은 있었겠지...
난 모태솔로다
모태솔로였던 나의 삶은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그리 힘들지 않았다.
여자친구가 있어 본 경험이 없어 여자친구가 없다는 외로움을 느끼지 못했다.
애초에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사랑이 없는걸 느끼겠는가?
물론 모태솔로임을 밝혔을 때 주변의 시선은 좀 당황스러웠지만, 대개 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다 정도의 말로 무마하고 넘기면 됐었다,
실제로도 공부를 꽤 많이 했으니
여자에 대해선 몰랐지만 학문적 재능은 있었다, 이건 확실하다,
국내 최고의 대학에 들어가 학과를 수석으로 졸업,
졸업과 동시에 중앙은행에 입사했다.
학부 졸업만 하고 바로 중앙은행에 입사한 경우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였는지 그때는 꽤 화제가 됐었다
아무튼 그렇게 몇 년간 열심히 일하며 탄탄대로를 걷고있을 때
내 인생의 위기가 찾아왔다
난 사랑에 빠졌다
눈웃음이 정말 아름다웠던, 같은 부서 신입 여직원을 짝사랑했고
그녀에게 고백했다.
“내 인생의 반려자가 되어줘”
내 고백을 받은 그녀는 정말로 당황했다
“무무무 무슨말이세요 장난이시죠? 이건 없던일로 할게요 아니 없던일로 해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아직도 그때의 그녀의 당황과 경멸이 모두 섞인 그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당연히 내가 아무 근거 없이 고백한 것은 아니다, 일주일 밤낮을 머리를 쥐어짜내 고민해서 나온 결과다
“같이 점심먹은 횟수 3회, 커피먹은횟수 5회, 나한테만 반갑게 인사해주고 사탕도 건내줌 따라서 그녀도 날 좋아하고 있음, 고백성공확률 ...100%! 좋아 완벽해”
분명 성공할 줄 알았어!
누구나 감탄했던 내 분석능력이였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지금까지 내 예측이 틀린 적이 없었었는데...
그녀는 창백한 얼굴을 한 채 내게서 도망치듯 떠났고
난 망연자실한 채로 그 자리에 서서 꼼짝하지 못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여자를 대하는 데 심각한 하자가 있다는 걸
“변하고 싶어”
그 길로 난 직장을 그만두고 호스트에 지원했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