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우리는 정부를 뒤집어(2)
“대통령을 접대하겠다니, 애초에 우리 회사 가게로 오기나 한 대?”
“난 근거없는 말을 하는게 아니야 인스, 대통령은 아니지만 국회의원들은 몇 번 접대했다고”
그것도 정말 대단하긴 하네, 그들도 일단 사람이니까 즐기러 오는 건 당연한건가
버윈 회장이 내게 본사로 들어오라 강요했을때도, 국회의원 인맥을 과시했었는데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갈릴 일이다
그들은 법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다수가 우리 편이기만 한다면 차차 우리에게 유리한 식으로 법을 제정할 수 있겠지
그리고 예니스 말대로 대통령을 접대하는데 성공한다면
애써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때부터는 일사천리지
“계획은 있는거야 예니스?”
“없지 당연히”
그럴 줄 알았어
“하지만 내 호스트로서의 직감이 말해주고 있어, 곧 큰 건이 올거야”
예니스의 말에는 어느정도 동의한다, 호스트로서의 직감으로가 아니라
최근 너무나도 세간의 이목을 많이 끌었다
권력자들 역시도 우리를 눈여겨 보겠지
문제는 이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하는 일마다 잘 되었고 한번의 실패도 없었다
이제 고꾸라질 때가 되었다는 강한 예감
하필이면 가장 중요할 때에
“인스씨!, 예니스! 둘이 구석에서 꿍얼꿍얼 뭐라고 하는거야?”
“누가보면 작당모의 하는 줄 알겠어, 이런 좋은 날에는 일 얘기하지 말고 즐겨야지!”
“리페, 취하면 이런 스타일이구나”
“왜 반했어? 이런 걸 두고 반전매력이라고 하는 거야”
물컹
나를 끌어안은 리페의 가슴이 내 팔에 닿는다
“둘이 지금 뭐하는거에요?”
“미네 이건 오해야”
“표정은 희희낙락하면서, 말만 잘하시네요 오늘 진짜 죽었어요”
“미네 으악 잠깐만!”
잠깐이나마 앞으로의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는 밤이다
이렇게 쉴 수 있는 때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소중한 시간을 천천히 마음에 녹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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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뭐야”
여느때와같이 본사에 출근한 날
수십대의 검은 차들이 우리 회사를 포위하듯 감싸고 있다
검은 정장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험악한 인상의 경호원들이 입구에서 보안요원들과 대치중이다
“이게 무슨일이지”
골목 구석의 조용한 가게도 아니고 번화가의 이런 큰 회사를 포위할 정도면
틀림없다
“정부가 나섰군”
급히 회사 입구로 다가간다
“당신들 회장인가 대행인가를 불러와”
“회장 대행님을 만나시려면 정식으로 일정을 잡고 와주셔야합니다”
가까이서 보니 사태는 더 심각했다, 자칫하다가는 무력 충돌로까지 번질 정도로
추측대로 상대가 정부가 맞다면 절대로 싸움만은 피해야한다
그들에겐 우리를 무너트릴 수 있는 권한도 있고 명분도 있다
이유야 나름 잘 만들면 된다
나도...그랬으니까
“제가 회장 대행 인스입니다, 무슨일로 오신거죠?”
내가 나서자 경호원들이 파도가 갈라지듯 갈라진다
그리고 앞으로 중년의 남성이 나선다 상당히 높은 분인 듯 한데
잠깐
총리잖아
대통령 다음가는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 No.2 총리
날 부른 것도 아니고 본인이 직접 왔다는 건 가히 충격적인 일이단
“인스 회장 대행, 회장실로 안내해주시지 여긴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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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전 부서에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1층에는 여전히 총리의 경호원들과 우리 회사의 보안요원들이 편 가르듯이 대치하고 있다
회사 전체에 긴장감이 감돈다
“후, 차가 맛있군 우리 사무실에도 하나 놓았으면 좋겠네”
“무슨 일이십니까 총리님”
중앙은행에 있을 때 국장님과 한 번 총리실에 보고를 간 적이 있었다
그 때 총리에게 느꼈던 감정은
‘대통령의 하수인’
권력서열 No.2 라지만 대통령 앞에서는 그저 순한 양이되고
일의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대통령의 명령만을 충실히 수행할 뿐인
정권의 나팔수
반대로 말하자면 총리의 뜻은 곧 대통령의 뜻이라는 것
우리 회사에는 무슨 일로 온 거지
“물장사나 하는 사람이 정말 출세했지 하핫 총리가 찾아오기도 하고 말이야”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 않나?”
내 속을 긁는 말이지만 이건 인정한다, 대단한 일이 맞고, 출세한 것도 맞다
총리가 직접 유흥업소 회장. 그것도 대행역에게 찾아오다니
국내 최초 사례일 게 분명하다
“대통령께서 말이야 자네와 자네 회사를 흥미롭게 보고 있으시다네”
“특히 KIDEX에서 별다른 기구 하나 없이 오직 직원들만으로 그렇게 많은 방문객을 모집한 건 나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
남한테 칭찬을 할 사람이 아니다, 이 다음에 대체 얼마나 큰 요구를 할 거 길래 이러는거지?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그래서 말일세 회장 대행”
“두 달 뒤에 진행되는 국제행사 「세계자유박람회」를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
「세계자유박람회」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국제행사로, 4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박람회
예전엔 이름값을 하는 명성있는 행사였지만
요즘들어선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는 비판을 많이 받곤 한다
나 역시도 정부가 우리나라에 유치한다 했을 때 욕을 많이 했었다
“구체적으로 뭘 하면 되는거죠?”
“좋아좋아 태도가 좋구만, 딴거 없어 그저 자네들 가게에서 자유박람회 방문객들을 좀 접대해주면 좋겠네”
“아무래도 그냥 방문객들이다 보니까 접대비도 좀 깎아줬으면 하고~”
“우리가 이것저것 만든다고 만들어봤는데, 자네도 알지 않나? 공무원들이 하는 일이 재미가 별로 없어~”
하, 이럴 줄 알았다
개최할 역량도 없으면서, 공적 쌓기식으로 일단 유치부터 한 행사라는건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그 뒤처리를 우리에게 맡긴다니
“흠? 그 표정은 뭔가 설마 거절한다는 건 아니겠지?”
“그랬다간 재미없어질거야 회장 대행”
“그러고 보니, 버윈 회장은 아직도 의식불명 상태라지...?”
‘빠직’
다른건 다 참아도 회장을 인질로 잡는 건 참을수가 없어 내 표정이 대놓고 일그러진다
“하하, 그냥 그렇다는 걸세”
마음같아서는 얼굴에 바로 주먹을 꽃아주고 싶지만 그랬다간 지금까지 쌓아올린 게 모두 물거품이 될 게 분명하다
이 회사에 있으며 행복했던 기억들, 나를 위해 항상 애써준 직원들을 생각하며 간신히 평정심을 유지한다
“승낙...하겠습니다”
선택지는 없다, 거절했다간 마찬가지로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모른다
차라리 실패하더라도 지금 자리에선 제안을 받아들여야한다
능력이 없는 것보다 예의가 없는 걸 더 싫어하는게 높은 사람들의 마음이니까
“좋아 좋아 잘 생각했네!”
“솔직히 자네 회사에게도 좋지 않은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홍보도 하고 말이야 으핫핫”
마치 자신이 선심을 썼다는 듯한 태도에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두른다
이정도 뻔뻔해야지 총리 하는건가?
“기대하고 있겠어~ 회장 대행, 버윈 회장의 쾌유를 비네”
“리페”
“네 회장 대행님”
“소금 뿌려”
“가장 굵은 걸로 준비했습니다”
꼴보기도 싫은 총리, 누가보면 조폭이 협박하는 줄 알겠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등에 업고 행패를 부리다니
언젠가, 그게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올 날이 있을거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총리는 강자, 우리는 약자
국가라는 시스템과 체계 앞에서 일개 기업은 약자에 불과하다
바람앞에 등불같이 언제라도 꺼질 수 있는
“부서장을 소집할까요 인스씨?”
“아닙니다, 일단 생각을 좀 정리해야겠습니다, 회의는 그 다음입니다”
이번 「세계자유박람회」의 주제는 ‘경제사’
정부가 정말 아무 고민도 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자기들 실적 홍보에는 좋겠지만 저걸 누가 보러 오겠어
4년 전 다른 나라에서 연 박람회는 ‘만화’를 주제로 해서 세계 만화 팬들이 전부 몰려와 대 흥행을 했었다
그렇기에 이번 박람회의 부담감이 더 큰 모양인데
솔직히 우리나라의 경제사를 굳이 누가 보러 올지 의문이 든다
“하아”
잔치는 본인들이 열어놓고 재주는 우리가 부리라니
너무 불합리한거 아니야
“1층의 경호원들도 모두 물러 갔다고 해요, 암만 그래도 너무 막무가내인 거 아니에요?”
“시간도 겨우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는데...”
“총리의 태도도 문제고, 시간도 문제긴 하지만 우리도 얻는 게 있습니다”
정부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건, 반대로 정부의 비호를 받는다는 것
이걸 역이용하는거다
“박람회를 보러 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가족 손님들이 많겠죠”
“우리 가게들에 연령 제한이 없어질 당위성이 생겼습니다”
완벽한 하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뭘로 방문객들을 접대할 것이냐
단순히 그들을 기쁘게 할 목적이라면 고민할 필요 없다 우리 직원들은 프로니까
하지만 오늘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되겠어, 한 방 먹여줘야 할 거 같아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버윈 회장의 체면이 안 살지
기다려,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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