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우리는 정부를 뒤집어(3)
“다음 「세계자유박람회」 방문객들을 저희가 접대하게되었습니다”
급하게 소집된 부서장 회의의 분위기는 침울하다
사실상 정부의 강요에 마지못해 참여한다는 점
박람회가 아무래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할거라는 점
그 책임을 우리가 같이 물어야 할거 같다는 점
아무리 포장해보려 해도 직원들의 사기는 바닥이다
“방문객들에게 술값을 할인해준다 하셨는데, 비율은 얼마나 되나요?”
“30%입니다”
“...”
너무 높은 할인율에 다들 할 말을 잃었나보다
“걱정되시나요 모두?”
“걱정 안 될 수가 없어요...”
해나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다른 방법이라도 있는거야 인스?”
“아니, 오히려 이건 기회입니다”
“이번 「세계자유박람회」의 승자는 우리입니다”
“뭐...라고요?”
“우리는 날아오를겁니다”
“「작전명 이카로스」”
그리스 신화속 인물 이카로스
그는 태양을 동경해 하늘 높이 날아가다
너무나도 높이 난 나머지 바다로 떨어졌다
우리 역시도 떨어지겠다
“하핫 그런 불길한 이름은 뭐야 인스, 우리가 떨어지기라도 한단 말이야?”
“이건 장난이 아니야 예니스, 우리는 결국 날아오를거야”
이카로스처럼 떨어져서 땅바닥에 기겠다,
그렇지만 끝까지 살아남겠어
그 다음 팔에 달려있는 날개로 날아오르겠다
“우선, 정부와 협상을 해서 우리가 원하는 걸 먼저 얻어내”
“그리고, 뒤를 친다”
“뭐? 인스 제정신이야? 정부와 싸움을 걸겠다고?”
“아니 싸움은 아니야, 싸운다면 우리가 분명히 지겠지”
“이건 일방적인 기습이야”
“그래 기습은 그렇다 치고, 어떻게 숨길건데 정부 상대로?”
전자문서로 남긴다면 분명히 걸린다, 이미 우리 회사는 분명 저쪽의 정보망 안에 들어있다
“직원들을 믿는거지”
“모든 회의는 대면으로 진행하고 절대 문서로 남기지 마”
“나 역시 모든 전달사항은 직접 가서 말로 하겠어”
“인스, 너의 말대로라면 스파이가 한 명이 있음, 즉시 실패네”
예니스의 말이 맞다 500명이 넘는 직원 중에서 단 한 명이라도 정부측 스파이가 있다면 내 계획은 실패한다
그렇지만 말야
우리 직원 전부는 호스트/호스티스 출신이라고
정부의 인사가 개입할 여지가 없어
“계획은 어떻게 되는 거야?”
“눈속임용 가짜 보고서를 만들고, 내가 그걸로 정부의 시선을 돌릴게”
“아주 성실하고 바르디 바른 보고서로 말이야”
“그 다음 접대 당일날, 우리의 새로운 컨셉을 적용해서”
“세상을 놀라게 하겠어”
「작전명 이카로스 - Make Us Happy 세계대축제」
테마는 ‘공무원’
너희의 행태를 전부 까발려 주겠어 총리
“하하, 실패의 리스크가 너무 큰거같은데 인스”
“그렇지만, 역시 일은 좀 위험해야 재밌어”
우리의 날갯짓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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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한 분위기
총리 주재 각 부 장관들이 모두 참석한 중대 회의
중앙에는 총리가 앉아있다
“그래서 저희는 경제사에 맞게 우리나라의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접대를 진행할 것입니다”
“직원들의 복장을 노동복으로 맞추고 포스터도 그에 맞게 산업의 역군들을 표현하였습니다”
내 발표에 장관들은 전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벌레씹은 얼굴을 하고 있다
‘짝짝짝’
오직 총리만이 만족했다는 얼굴로 박수를 친다
“완벽해 인스 회장 대행, 정말 마음에 쏙 드네”
“자네를 우리 비서관으로 들이고 싶을 정도야 우하하”
목젖이 훤히 보이도록 경박스럽게 웃는 총리와, 어쩔 줄 몰라하는 장관들의 매치가 심히 부자연스럽다
속임수를 간파해서 트집이라도 잡히면 곤란했는데
이런 분위기라면 이미 결정됐다
“의심스러워...”
얼굴을 잔뜩 찌푸린 한 장관이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듯이 내 보고서를 만지작거린다
“질문이 하나 있네 회장 대행, 정말 이대로 하는건가?”
“사기업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함, 특색, 자기주장 이런게 전혀 없어”
“마치 전부 우리 기호에 의도적으로 맞춘 느낌이야”
아무래도 보고서에 관한 한 우리나라의 최고 전문가들을 속이기는 무리였는지
정곡을 찔렸다
여기서 더 파고든다면 정말로 위험할 수 있지만
우리에겐 든든한 후원자가 있지
“그게 무슨말인가 장관!”
“이렇게 잘 쓴 보고서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도 모자랄판에 뭐?”
“너무 완벽해서 문제라고?”
“허, 보고서를 못 써서 문제인 건 봤어도, 너무 잘 썼다고 토를 다는 건 처음봤네”
믿고 있었다구 총리
공직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장관들과는 다르게
총리는 단순히 대통령이 임명한 자
보고서를 그렇게 모든 부분에서 면밀히 분석할 수 있는 능력따윈 없다
여기서 더 나아가 총리가 우리에게 날개를 달아준다
“일이 잘못되면 자네가 책임질 건가?”
캬
완벽해
‘자네가 책임질 건가?’ 라니
장관은 총리의 말에 반박 하나 못 하고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꾹 닫고 있다
장관보다 한 급이 더 높은 총리, 상명하복의 원칙 그리고 책임전가까지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요소는 전부 모여있다
날카로운 질문을 했던 장관도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은지 내 보고서를 내려놓는다
“좋아 좋아, 다른 의견 있는 장관 있는가?”
“...”
장관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겠지만, 보는 내 입장에서는 웃음을 참기 힘들 정도다
“우하하 그럼 이 안으로 결정일세”
“인스 회장 대행 잘 부탁하네, 이번 일이 잘 되면 내 라인으로 넣어줄테니 기대하고 있게!”
참 웃기는 소리야 총리
2주간의 관람회가 끝나면, 당신이 잡고 있는 줄이 없어질 거야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봐주겠어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 일을 계획하는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문제? 무슨 문제인가?”
“현재 Make Us Happy 가게들은 다수가 유흥주점으로 분류되어서 어린이 손님을 접대하기 어렵습니다”
“원활한 방문객 접대를 위해서는 업종변경이 필요합니다”
원래는 가게를 부수고 다시 짓지 않는 이상 죽었다 깨어나도 안 해주는 것
“우하하 겨우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장관들!”
“들었지? 개막식 전까지 반드시 해결해 놔!”
장관들의 마음속 탄식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리는거같다
뭐, 잘들 부탁한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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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유박람회」 개막 전날
“인스씨, 아무리 그래도 이런 옷은 너무 구리잖아요!”
“노동복이 꼭 헤질 필요가 있어요?”
“포스터도 참 촌스럽네요”
“빨리 내일이 되어서 모두 떼고 싶어요!!”
의도한 것이긴 하지만 내가봐도 진짜 구리다, 노동복 고증을 맞춘다고 일부러 군데군데 구멍을 숭숭 뚫어놨다
이것도 물론, 정부에서 지정한 업체와 계약을 한 건데, 돈을 얼마나 빼돌린거야?
포스터도 정말 가관이다, 초등학생이 그린듯한 조잡한 그림
내가 그려도 이것보다는 잘 그릴거다
“하루만 참자 리페, 그래도 스파이는 없었어”
회장실 한 켠에 산처럼 쌓인 박스들
절반은 고위 공무원들이 입는듯한 고급 양복이
나머지 절반은 정부 부처 로고를 배낀 포스터가 들어있다
내일, 「세계자유박람회」 개막과 함께 우리는 전부 노동복을 벗고
양복을 입을 것이다
“사장님 그럼 내일 전부 Make Us Happy 소속 가게로 전달하면 되는거죠?”
“응 미네 고마워 고생했어”
양복은 물론 미네가 전부 며칠밤낮을 세면서 만들었다
“이젠 아주 레이스티스는 잊어버리시겠어요~”
“조금만 기다려 줘, 이제 거의 막바지니까”
“어휴, 그건 그렇고 담도 크세요 사장님, 뭐 전 언제나 믿고 있어요”
직원들의 사기도 최상
「작전명 이카로스」는 조금의 방해 없이 순조롭게 척척 진행되었다
단지 눈속임용 포스터나 복장들을 정부에서 직접 제작한다 한 건 조금 문제였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하루 입고 더 이상 안 입을테니
“7080노동자의 삶? 공무원들이 아니랄까봐 문구도 정말 구리네”
‘박람회 이후 지정된 가게에서 7080노동자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현장을 마련했습니다’
홍보문구가 너무 나빠서 손님들이 올 지조차 의문이다, 홍보만큼은 그렇게 우리가 하겠다고 했는데
이것도 문구 만드는데 얼마나 줬을까 궁금하네
홍보야 좀 안 돼도 괜찮아 어차피 내일 세계는 뒤집어질거니까
이카로스 비상(飛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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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유박람회」에 참석해주신 모든 세계인들을 환영합니다”
“저와, 모든 공무원들이 힘을 합쳐 밤을 새면서 박람회 준비를 했습니다”
“분명 만족스러운 경험이 되실거라 확신합니다”
교장선생님 말씀같은 대통령의 연설이 박람회에서 가장 재밌는 순간이였다
우리네 경제사를 솔직히 외국인들이 흥미있게 볼 리 만무하다
그 결과
‘역대 관람객 수 최저’라는 충격적인 실황
정부 모든 부처는 비상이겠지
“인스 자네만 믿네 꼭 잘 해줄거라 믿네”
총리도 급한지 내게 전화를 걸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부탁한다
“네 총리님 접대를 뒤집어놓겠습니다”
뭐, 거짓말은 아니지~
“우핫핫 역시 자네야”
“시간이 되신다면 마지막 날 방문한번 해주시겠습니까?”
“입이 쩍 벌어질정도로 놀라게 해드리겠습니다”
“물론일세, 장관들보다 사업가인 자네가 어떻게 더 믿음직스러운지!”
가장 믿는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는 느낌은 어떨까 총리
당신이 우리에게 한 짓을 조금이나마 생각해보면 의심을 조금이라도 해야지
뭐 이젠 다 지나갈 이야기니까
***
“아니 박람회가 뭐이리 재미가 없어, 무슨 교과서 읽는줄 알았네”
“미안하다, 나도 이럴 줄 몰랐어 저번에 간 건 재밌었는데 우리나라에서 한 건 왜이러냐”
“야 됐어 술이나 마셔, 뭐 지정 가게인가 있다면서?”
“저번에 KIDEX에서 그 회사 전시회 한번 가봤는데 꽤 괜찮았어”
“그래? 노동자 테마라는데 맥주라도 주는건가?”
“뭐든 주겠지, 가자!”
‘딸랑’
“환영합니다, 장관님 현재 국가 동향을 보고드리겠습니다”
“뭐야? 홍보문구하고 다른-”
“자리는 이쪽입니다, 사태가 시급합니다”
이미 삶이 노동이라 힘든데 노동자 체험은 뭐야
오늘은 귀빈으로 접대해드리겠습니다 손님들
고위공무원이 된 기분을 느껴보시지요
박람회 내용은 더럽게 재미없지만
뒷풀이 접대는 끝내준다는 특이한 「세계자유박람회」에 대한 소문이
전 세계로 퍼지는 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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