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그대의 꿈과 당신의 소망(4)

“지금 뭐하자는겁니까 대통령!”
“일개 기업을 위해 국가 공사가 나서다니”
“정부의 체면이 땅으로 떨어졌소!”
국정감사
100명의 국회의원들과 단 한 사람의 대통령
탄탄한 논리와 법적 근거들로 무장한 국회의원들과는 다르게
대통령은 그저 감정에 호소할 뿐
“당신의 결정은 법에 반한다는 것 아시오 대통령?!”
“전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행복권」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게 무슨 억지야!, 아무데나 갖다붙이면 다 되는건줄 알아?”
전혀 물러섬 없는 대통령의 말에
국회의원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진다
“계속 밀어붙이려했다간, 국회에선 당신을 심판하겠어!”
“국가는 당신의 장난감이 아니야!”
보는 내 손에 땀이 날 정도의 날카로운 말들
“문제가 있다면, 정당하게 심판받겠습니다”
“하지만 Make Us Happy 테마파크 건설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하아”
국회의원들의 시선이 나로 향한다
상대하기 어려운 대통령 대신, 만만한 나를 부르려는 것 같다
“Make Us Happy 인스 회장 대행!”
난 단상으로 나간다, 앞에 놓인 수많은 카메라들과, 내 조그만 흠이라도 찾아내려는 국회의원들
그리고 이 장면을 지켜보는 전 국민들까지
보통내기로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리라가 데뷔하며 우리 가게 이름을 까버린 탓에
기자들이 날 취재하려 몰려들었었지
그때는 제대로 반박 할 생각도 없이 꽁무니 빠지게 도망쳤는데
지금은 다르다
“네 Make Us Happy 회장 대행 인스, 국정감사 증인으로 이 자리에 섭니다”
사태의 심각성으로 따지자면, 그때보다 지금이
수백 수천 수만배 더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전혀 긴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러주지 않았으면 서운했을 것 같을 정도로
난 이 자리를 기대하고 있었다
기자들이 왔을때는 왜 도망쳤을까 싶었는데
이제는 알겠다
아무리 내 일을 좋게 포장하려했어도
마음 한 켠으로는 당당히 말 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있었다
부모님정도까지는 밝힐 수 있었지만, 전국으로 공개되는것까진 무리였던거야
하지만 이젠 강한 확신이 들어
“회장 대행은 대통령과 공모했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국가 공사를 조종한 것을 인정하는가?”
“인정하지 않습니다”
내 대답에 국회의원들의 표정이 구겨진다
“국민을 위해 설립된 공사를 본인 회사의 테마파크를 짓는데 이용한다면서 어떻게 뻔뻔하게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국정감사에서 거짓 증언은 형사 처벌 대상이야!”
“전 한치의 거짓을 말 한 적이 없습니다”
나를 위해서 공사를 이용 했다면, 진작에 회장이니 뭐니 그만두고 나갔겠지
나는 호흡을 가다듬는다, 앞으로 이어질 긴 연설을 대비해야하기에
“국회의원들 모두에게 이 자리에서 제가 묻겠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국민들을 웃게 해준 적이, 즐겁게 해 준 적이 있습니까?”
좌중이 술렁인다
“뭐라는거야! 당장 마이크 꺼버려!”
“이건 증인의 정당한 발언 기회입니다, 막는건 국정감사법 위반입니다!”
그렇게 법 법 하던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조용해진다
“국가는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여기있는 대통령과 국회의원들 모두 국민을 행복하게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 아시다싶이 행복이라는 건, 절대로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단 한번이라도 국민들의 고단함과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보신적이 있습니까?”
“저는 제가 「레이스티스」라는 조그만 가게의 사장으로 있을 때부터 수도없이 지치고 힘든 손님들을 맞이했습니다”
“아무리 힘든 얼굴을 하고 들어왔어도, 우리 가게를 나갈 때는 한 명도 빠짐없이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다시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레이스티스」는 내게 정말 많은 걸 알려주었다
손님들의 일상이 얼마나 힘든 지 그리고 위로하기 위해건 어떤 게 필요한지
중앙은행에서 숫자에 파묻혀 살아갔다면, 평생 몰랐을 일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Make Us Happy 회장인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 국회의원모두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Make Us Happy 테마파크 개막식」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는지”
“그리고 얼마나 행복해 했는지”
“여기계신 국회의원분들이 쓸데없는 싸움으로 시간을 쏟고 있을 때”
“저는 오직 모두의 행복만을 생각했습니다”
“저희 직원들과 저, 고작 60여명의 인원으로”
“수십, 수백만 명이 넘는 방문객들을 맞이했습니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당장이라도 쓰러질 거 같았지만”
“손님들의 웃는 얼굴을 보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크윽...”
한방 먹었다는 표정들이다, 원래 이런 자리에 증인으로 나오면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저 자세를 취했으니
일개 기업인인 나의 이런 태도가 국회의원들에게는 예상치못한 타격이 되었을 터
이제 마지막 쐐기를 박을 차례다
“그런 행복한 기억속에서 너무나도 아쉬웠던 점은”
“기간이 짧았다는겁니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저희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저희와 함께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쌓고 싶어합니다”
“이걸 모르시진 않지 않습니까”
그때 전국이 난리였으니 모르는게 더 이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국회의원들은 한 명도 우리 행사장에 얼굴을 비치치 않았다
사람 많은곳이라면 물불안가리고 찾아가는 사람들인데
역시 그들도 ‘접대’이라는 우리의 이미지가 걸렸던 거겠지
이럴 때는 총대를 맬 단 한명만 있으면 된다
그 뒤는 서로 자기는 날 믿고 있었다는 둥 벌떼같이 나서겠지
“흠흠, 사실 난 애초부터 긍정적이였네”
역시
“맞아, 마음같아선 개막식 참석하고 싶었어”
“너무 바빠서 말야, 이해해주게 회장 대행”
“어때 테마파크 건설 내일부터 시작하지 않겠나?”
그동안 반대파의 기에 눌려 가만히 있던 몇몇 국회의원들이
나에대한 우호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날 쏘아붙이던 강경 반대파 국회의원은 당황한 듯 얼굴에서 땀이 흐른다
“지금까진 조용히 있다가 중요할 때 왜!”
한풀이를 해봐야 소용없다 이미 형세는 역전
순식간에 절반 정도의 국회의원이 나에대한 지지를 밝힌다
50대 50동률인거 같아보이지만
“모두 동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에겐 대통령이 있다
“크으으으윽”
반대파 국회의원의 수장은 분한 듯 마이크를 내려놓는다
패배를 인정한다는 거겠지
“더 질의하실 의원 있으십니까?”
‘조용’
“그럼 이것으로 국정감사를 마치겠습니다”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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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회장 대행 이건 내 명함일세!”
“테마파크 우리 지역구에 짓는 건 어떤가?”
“버윈 회장은 괜찮나? 의식이 없다해서 통 걱정이야”
국정감사가 끝나고 돌아가려는 길 국회의원들은 날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조금이나마 자신과 내가 이어진 끈을 찾으려 기를쓴다
참, 평소에 이렇게 잘 좀 대해주지
그들의 이중적인 태도에 조금 실망할 뻔 했지만
결국은 국회의 지지를 얻었다
과반수의 동의를 받진 못했어도 적어도 가로막힐 일은 없다
“인스 회장 대행, 정말로 고맙습니다”
“단상에서 한 연설이 없었다면, 분명 국회의 마음을 돌릴 순 없었을겁니다”
자신의 일을 대신 해준것에 대통령 역시 감사를 표한다
“국민들의 반응도 뜨겁습니다, 오늘 국정감사 시청자 수가 천만명이 넘습니다!”
“천만명?”
평소에는 기껏해야 일만이 넘으면 많이 보는 수준이였는데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숫자에 잠시 정신을 잃을 뻔 했다
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내 연설을 봤다
많이 봐주길 원했지만, 이렇게까지 많이 봐주기는 원하지 않았어!
살짝 부끄럽다
“혹시 말입니다, 회장 대행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정치...하실생각 있으십니까?”
“네???”
대통령한테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단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는데
“회장 대행님의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이끌어주는 힘이”
“아뇨아뇨 절대 없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골치아픈데 정치는 무슨 정치야
회장의 목표를 이뤄주고 나면 레이스티스로 돌아가서 조용히 사장을 하고 살 거다
애초에 이렇게 스케일이 큰 삶은 나와는 별로 맞지 않아, 그저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럴 뿐
“마음이 바뀌신다면 언제든지 연락주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대통령은 그 말을 남기며 떠났다
대통령한테 정치하자는 말을 듣다니
정말이지 익스트림한 인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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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심하고 고심해서 만든 구상입니다, 너무 신경을 써서 다른 안은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철 본부장이 건낸 한 장의 설계도
단지 언뜻 보기만해도 정말이지
“제 생각과 딱 맞습니다”
마치 내가 건축가에게 빙의해서 그렸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정도로
내가 원하는 모든 게 담겨있다
“역시 화려하고 요란한 것보다 전 이런 게 좋습니다”
간소하지만 힘있고, 작지만 꽉 찬
「Make Us Happy 테마파크 구상도」
이 아름다운 어트렉션에서 우리 직원들이 손님들을 맞이할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웃음이 나온다
“부탁드립니다, 아철 본부장님”
“알겠습니다, 제가봐도 이건 너무나...잘 만들었습니다”
“실물도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구상과 설계가 끝났다
이제 남은건 짓는 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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