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너의 진심(3)

“우리 가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인스 회장 대행”
“저는 예니스 사장님의 출장기간을 대신해 가게를 맡고있는 ‘제이’입니다”
은빛 탈색을 한 긴 장발의 머리
난 이 사람을 알고 있다
내가 처음 예니스의 가게에 들어왔을 때 가게의 공식적인 No.2
VIP급 손님들을 접대하느라 나는 얼굴조차 보기 힘들정도였지
호스트로서의 실력은 가히 최고 수준으로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제이의 기술이 예니스보다 한 수 위라는 호스트들까지 있었다
“우리 처음보는 사이도 아니잖아 제이, 뭘 예의 차리고 있어?”
“그리고 가게 사정은 뻔히 알고있다고, 출장이라니 변명이 말이 안 되잖아”
누굴 혼내러 여기에 온 건 아니다, 하지만 거짓말이 너무한거 아니야?
접대 실력은 일류지만 거짓말하는 실력은 형편없네
“사장님은 반드시 돌아오실겁니다”
나 역시도 예니스가 이렇게 영영 떠날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그리고 예니스의 이 가게가 사라지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사람을 풀면서까지 찾아다녀봐도
어디있는지 전혀 낌새조차 찾을 수 없어
“사장님이 없더라도 모든 직원들이 함께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1년은 족히 걱정이 없을 겁니다”
“1년을 기다려달라는 말이야?”
“네...부디...”
나야 물론 1년이든 10년이든 상관이 없지만
그럼, 다른 가게들에게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출근하지 않는 직원은 해고, 사장도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사장이 진 무게는 직원과는 다르다
사장의 결근은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룬다
이게 우리 회사의 규칙이다
“다른 회사들로 따지면 결근이야 결근, 이정도면 벌써 내쫓기고도 남을 기간이라구”
“정말 예니스는 또 어디갔는지 모르는거야?”
“네...”
나 역시 시위대를 상대했을 때 예니스를 본 게 마지막이다
그 이후로는 도대체 어딜 간 건지
연락은커녕 어디서 보였다는 목격담도 없다
예니스 가게에 굳이 내가 온 것도
조금의 단서나마 찾을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에서였는데...
“그날 이후로 저희도 전혀 감이 안 잡힙니다”
“집에도 여러 차례 찾아가봤지만, 텅 비어있었습니다”
제이가 거짓말을 하는거같진 않다, 애초에 그가 단서를 알고 있었다면 우리 직원들에게 이미 들켰겠지
예니스가 시위대로 나선 후
우리 회사는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회장 다음가는 회사의 중역이자 내가 오기전 차기 회장 유력 후보
물론 본인이 회장을 할 의사는 없는거같지만
그만큼 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회사의 온갖 비밀들을 속속들이 알고있는 건 덤이다
그런 그가 적으로 돌변했다
마땅히 대응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
“회장 대행님은 사장님이 정말로 배신자라 믿으십니까?”
“그건 중요하지 않아”
배신자는 아니야, 분명히
시위현장에서 그의 태도를 보고 확신했다 거짓말이 어찌나 티가 나던지
하지만 그게 이 가게를 지킬 수 있는 이유가 되진 않는다
“내가 예니스를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회사에는 규칙이 있고 그걸 지켜야해”
“그건 예니스가 아니라 설령 나라도 예외 없는 일이야”
규칙에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그건 더이상 규칙이 아니게 된다
특히나 여러 술집과 유흥주점으로부터 시작한 우리 회사에게는
더더욱 중요하다
버윈 회장이 이를 세우기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그걸 고작 일개 사장인 내가 무너트릴수는 없는 일이다
“내 대답은 언제나 하나야”
“가게를 지키려면, 예니스를 찾아와, 이 가게 사장으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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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로 돌아왔지만, 마음이 너무 복잡하다
예니스의 행방에 대한 실마리는 조금도 찾지 못했을 뿐더러
사장이 없어진 가게를 유지하기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호스트들의 모습을 보니 더더욱
예니스의 가게를 살리고 싶다
“차라리 내가 인수해서 경영한다고 할까?”
불만있으면 직접 따지라고 하라지
물론 그랬다간 회사가 아주 뒤집어지겠지
지금까지 많은 가게들이 사장이 없어져 문을 닫았다
일이 힘들어서든 다른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든
개개인의 사정을 고려해줄만큼 회사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
“예니스...넌 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자기 자신을 벼랑끝까지 몰 게 아니라면 제발 나타나줘
정말, 시간이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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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구조조정 하루 전
난 동앗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예니스의 가게로 간다
손님도, 호스트도 없이 텅 비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주인없는 술병들만이 날 기다리고 있다
“하...설마 다들 포기한거야?”
아무리 그들이라지만 희망이 없는 가게를 붙잡는 건 무리가 있었겠지 일찌감치 살 길을 찾아 나선것도 당연해
‘또각또각’
선명한 구두굽소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회장 대행님”
“저는 「YESS」 임시 사장, 제이”
“오늘 귀빈의 접대를 맡게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본인의 트레이드마크같은 백색 정장과 함께
제이가 내 뒤에서 천천히 걸어나온다
그리고 이어서
숨어있던 예니스의 가게 모든 호스트들이
나타나서 가게 안을 가득 메운다
“접대 컨셉은 엔드리스(무한)”
“저를 포함한 우리 가게 모든 호스트들이 회장 대행님을 접대하겠습니다”
“예니스 회장님이 돌아오실때까지!”
‘「YESS」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모든 호스트들이 일제히 구령을 외친다
“접대가 끝나기 전에는 우리 가게를 닫을 수 없습니다”
마치 장관과도 같은 풍경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돌아올지도 모를 사장을 끝까지 믿고 기다리는 직원들
분명 불안할거다 다들, 그러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이라도 다른 가게의 직원자리를 알아보거나 해야할텐데
이대로 예니스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모두 낙동강 오리알신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니스가 올 것을 믿고있다
“그래, 부탁해”
“시작은 제가 하겠습니다”
제이는 내 앞으로 천천히 걸어나온다
내 평생 호스트에게 접대를 받을 줄 생각도 못 했고
또 이렇게 많이 받을지도 몰랐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이지만
내 만족도는 이미 최고조
“우리 가게의 간판 서비스 술잔 돌리기부터 보여드리죠”
그렇게 접대의 밤이 시작했다
그래 직원들이 이런데 안 돌아오는게 말이 돼?
양심적으로 얼굴을 비추긴 할거야
사람이라면 안 그럴수가 없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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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회장 대행님이 3일째 여기 앉아 계시는군요...”
“표정이 정말 말이 아니에요
“정신차리세요!”
‘헉’
잠깐 졸았나?
그보다 리페가 여기 왜?
“출근날이 되어서도 안 오시니까 또 예니스처럼 어디 사라진줄 알았잖아요”
“그리고 이게 다 뭐에요...”
가게에는 지쳐 쓰러진 호스트들이 한가득
“아직...안...끝났습니다...”
“제이 포기해요 이미 시간은 지났어요”
그나마 남은 몇몇 고참 호스트들이 힘겹게 술병을 들고 술을 따르고있다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다
간절히 바란다고해서 이루어지지도 않고
정해진 운명의 길을 바꿀수도 없다
마치 마법처럼 짠~ 하고 예니스가 나타나기를
나도 제이도 호스트들도 간절히 바랬지만
마지막날까지 예니스가 나타나는 일 따윈 없었다
이미 구조조정일부터 하루가 더 지났다
일말의 변명의 여지조차 없다
이젠 정말로 그가 우리를 배신했다고 말 할 수밖에 없다
“으흑”
“제이...「YESS」의 호스트들은 책임지고 원하는 자리에 우선 배치할테니까...”
“으흑흑”
나름 배려라고 한 말이지만 제이의 입장에서는 마치 최종선고와도 같이 들렸는지 눈물을 쏟아낸다
“하아”
솔직히 나타날 줄 알았는데, 적어도 전화정도는 할 순 있을거잖아
제이는 자리에 쓰러진다
“...마지막 직원도 접대 불가상태, 회장 대행님 즐거우셨나요?”
“평생 잊을수 없을 정도야”
“이 시간부로 예니스 회장의 「YESS」 폐업을 선언, 구조조정을 시작합니다”
리페의 말과 함께 일사분란하게 가게가 치워진다
술도 테이블도 직원도 모두
오늘부로 이 가게는 사라진다, 회사 기록에도 남지 않고
오직 우리 기억속에서만 존재할거다
“리페씨 제이를, 회장실로 옮겨주세요, 부탁합니다”
“그를 두 번 죽이실 생각인건가요?”
“저도 간절합니다, 그리고 혹시모르죠, 제이의 생각이 바뀌었을지도”
예니스에 대한 마음이 한결같을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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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니스를 찾는 일을 같이 했으면 해 제이”
“물론입니다 그놈을 잡아서 죽도록 패버릴겁니다”
쓰러진 제이를 회장실로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정신을 차렸다
예니스에 대한 엄청난 분노를 가진 채로
그렇게나 많이 믿고 따랐었으니까, 배신감이 그만큼 큰 거겠지
제이가 유별나긴 하지만, 다른 호스트들도 이에 뒤지지 않게 예니스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깊었다
마지막까지 가게를 지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는거야...예니스?
미치도록 물어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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