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처음으로 돌아가(3)

기본에 충실한 깔끔한 정장 스타일의 옷
하지만 결코 촌스럽지 않다, 입은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정말 우리 회사와 딱 맞는 분위기
“어떻게 이렇게 빨리 만든거야?”
“오래 고민한다고 해서 항상 더 좋은 수가 나오는 건 아니에요”
“그냥 평소에 느낀 Make Us Happy의 이미지를 담았어요”
미네에게는 처음부터 답이 정해진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그저 한 가지 길로 마음가는대로 걸었고
당연하듯이 이 옷이 나온 것
“고마워, 정말로...!”
“그것보다 사장님, 지금 이 상황... 어떻게 된 건지 설명부터 하셔야죠!”
모두의 눈길이 우리에게 쏠린다
기자들, 줄 선 손님들 모두 나와 미네 그리고 우리가 손에 든 옷을 쳐다본다
“뭐지 이것도 의도한 퍼포먼스인가?”
“그런가봐, 저 옷 딱 봐도 비싸보이지 않아?”
사람들이 웅성인다
“회장 대행님 그 옷은... 혹시 회사의 새 접대복...?”
기자 한 명이 대표로 내게 다가와 물어본다
좀 이르긴 해도 공개할 생각이긴 했으니까 뭐
지금 밝혀도 되겠지
그리고 시선을 돌리지 않으면 또 미네의 주먹이 날아올 테니
“네 맞습니다”
“저희 직원, 최고의 디자이너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모두 보시죠”
여기저기서 우와 하는 탄성이 들린다
‘화아악’
최고의 디자이너라는 말에 미네는 이미 얼굴이 빨개진 채로 굳어있다
의외로 칭찬에 약하구나
그래도 할때는 확실히 해둬야지
“제 첫 가게 「레이스티스」직원이자, 현 사장 미네입니다”
난 미네의 손을 카메라에 잘 보이도록 든다
옷을 만드느라 손 곳곳이 상처투성이, 하지만 그것이 더욱 극적인 스토리가 된다
“공식 발표는 언제하실 예정인가요?”
“곧 방송인터뷰를 진행하겠습니다”
“세상에!”
기자들이 모두 놀란다
그도 그럴테지 난 지금까지 한 번도 공식적으로 TV에 출연한 적이 없다
모든 제의를 거절했지만, 이번은 경우가 달라
반드시 가야만 한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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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가게 복장을 통일하는 것이 우려됩니다 인스 사장님”
방송 인터뷰를 하루 앞둔 날 해나가 날 찾아왔다
굳은 표정과 손에 들린 두꺼운 보고서들
나를 설득하기위해 단단히 준비했겠지
“반대는 받지 않겠어”
“사장님...!”
“내일 인터뷰 대본 외워야하니까 돌아가 봐”
“보고서라도 한번 봐주시기바랍니다”
“알았으니까 가 봐”
모든 가게들이 같은 옷을 입고 접대했을 때 생기는 문제들이 구체적인 근거와 함께 열거된 보고서들
쓰느라 정말 고생했겠어
근데 헛수고가 되었네, 이건 사과할게 해나
나도 다 알고 있다
무슨 부작용이 있는지 우리 가게들이 얼마나 반대가 심한지
매일같이 내 마음을 돌리겠다는 전화가 걸려오는 통에 핸드폰도 꺼 놨다
근데 다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 의도는 옷을 입히는게 아니니까
회사의 상징이 될 콘텐츠를 열심히 찾아준 해나나
이렇게 굉장한 옷을 만들어준 미네에게 모두 미안한 말이지만
예니스의 가게가 공중분해된 그 시점에서 우리 회사 고유의 콘셉을 잡기는 이미 포기했어
「YESS」의 접대를 받아버린 이상, 뭘 대신한다해도 내 눈에 차지않아
미네가 만들어준 옷 역시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하고, 내세울만한 직원들도 많지만
최고는 아니지
누가 보면 정신이 나갔다고 말 할 수도 있는 나의 고집이다
‘쾅’
“돼지...! 이게 무슨 말이야”
문을 발로 차고 들어온 사장들
그 맨 앞에는 이스가 채찍을 서있다
꽤나 진지한 모양진지 오늘은 늘 가지고 오는 채찍도 없다
“너, 높은 자리에 오래 있으니까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의상을 하나로 통일해? 정장으로? 말도 안돼는 소리라는건 너도 잘 알잖아”
맞다 특히 이스같이 SM플레이 콘셉의 가게는 특히나 치명타겠지
뭐, 이스정도는 고객 충성심이 높으니까 어찌어찌 살 수 있어도
나머지 가게들에겐 상당한 치명타가 될 게 분명해
“난 진심이야, 옷 시안도 보여줬잖아? 나름 괜찮지않아?”
“뭐?”
이스는 당황한다, 평소에 날 깔보는 여왕님 표정도 깨졌네
“내일까지 일단 기다리라고 이스, 그리고 사장님들”
“내가 직접 입고 보여줄테니까 분명 다들 마음에 들겁니다”
말 하진 않아도 불만이 가득한 표정의 사장들,
“너도 변했어, 난 너가 그러지 않을 줄 알았는데 돼지, 아니 회장 대행님”
“내가 잘못 생각했었나봐”
내 설득은 무리라고 생각한건지 이스와 사장들은 의외로 싱겁게 돌아갔다
“하핫 하하하”
“인스씨!”
“지금 웃음이 나와요?”
옆에서 이 상황을 말없이 지켜보던 리페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인가보다
“이건 저도 아닌거같아요, 대체 무슨 생각이신거에요”
“모두가 항상 입고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그동안 내 말이라면 모두 지지했던 리페마저도 내게 돌아섰다
정말...
“크흑 하하하핫”
끝내주네
아직 우리 회사 무사하다구
“인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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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늘은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공중파 주말 가장 황금시간대에 편성된 특별 프로
1시간의 방송시간을 전부 내 인터뷰가 예정되어있다
“요즘 모르시는 분이 없겠죠! Make Us Happy사 인스 회장 대행님을 소개합니다”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화면이 비치는데
“어? 어디가신거죠?”
또각또각
난 화면 멀리서 천천히 걸어온다
미네의 옷을 입고서,
모델 워킹이라고 하나? 어제 밤새 연습해서 발바닥이 다 아프네
“세상에 너무나 멋지군요 회사의 새 옷!”
20대가 넘는 카메라가 우리 회사의 새로운 옷을 클로즈업한다
꾸벅
그 앞에서 난 정중히 인사를 하고
싹둑
옷을 벗어 가위로 잘라버린다
“이...무슨...?”
패널들과 스텝 모두 눈 앞에 펼쳐지는 상황에 얼어붙은 듯
그저 내 행동을 말리지도 어쩌지도 못하고 쳐다보고 있다
“저희 Make Us Happy사의 강점은 다양한 직원들입니다”
“복장을 통일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그들의 재능을 억압하는 건 우리의 강점을 없에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엔 예니스의 가게 접대를 회사 상징으로 하려했건만
일이 꼬이다보니 이 사단이 나네
“모든 국민들에게 약속드립니다, 전국의 저희 가게들은 모두 다른 테마 다른 복장 다른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고”
“어딜 가도 매번 다른 경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밤, 우리 가게들을 찾아주십시오”
좋게 말하면 광고, 나쁘게 말하면 카메라앞에서 옷을 자른 또라이
그렇지만 내 파격적인 행동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와아아아 역시 회장 대행이야!”
프로그램을 보고있는 사람들 역시도 마찬가지일테지
참 문제야
내가 이번 퍼포먼스를 비밀로 한 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확인받고 싶었다
우리 직원들이 아닌 걸 보고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고마웠다
내게 당당히 맞서줘서
최고 경영자의 말에 반대 의견을 내기는 어렵고,
정면으로 맞서기는 더더욱 어렵다
특히나 그 사람의 인기가 대단하다면 감히 엄두조차 못 내겠지
그런데 그걸 해냈네
“모두 저희 직원들의 공입니다”
맞아 그리고 내 복이지
한때는 어떻게 이런 무능한 사람들이 있냐고 우리 직원들을 욕 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진가를 알아낸 지금은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다
오히려 쓸데없는 사무일이나 시키니 문제가 생기지
직원 배치를 잘 못하는 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니까 말이야
‘짝짝짝’
모두 감사합니다
그렇게 한 시간의 인터뷰는 대성공으로 끝났다
이젠 사람과 공간과 콘텐츠 3박자가 모두 갖춰졌어
그저 손 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세상이 바뀔 거야
사람들은 이제
퇴근길에 자연스럽게, 경조사에,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접대를 받으러 가는 걸 당연하게 생각할거야
그 속에서 웃고 기뻐하며 또 내일 하루를 버틸 힘을 얻겠지
그러면 된거다
목표를...이룬건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난 스튜디오 뒤로 걸어나온다
그런데...전혀 기쁘지 않아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시간이 아닌가?
버윈 회장도 깨어나고, 꿈도 이뤄주고, 대통령한테도 내세울만한 게 생기고
끝난거 아닌가? 근데 왜...
가슴이 이렇게 아프지
마치 목에 무언가가 걸린듯한 불편함이 느껴진다
“아-”
진짜 잊어버린건가, 아니면 의도적으로 잊으려 한 건가
전자라면 나는 쓰레기고 후자라면 나는 구제불능의 쓰레기다
“내가,,,무슨 짓을 한 거지...?”
미네의 옷을 잘랐다
오직 내 부탁을 들어주기위해 가게도 당장 재쳐두고나서
온 신경을 다해 정성스럽게 만들어준 옷을
난 단지 한순간의 퍼포먼스를 위해 이용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머릿속에는 목표만
다른 건 중요하지 않다
내가 사장 시절이였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선택들
직원을 이용하는 그런 방법들
손쉬운 방법이지만 난 그것들을 정말 싫어했다
좀 더 돌아가더라도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선택을 했는데
이번 일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미네를, 미네의 호의를, 미네가 나에대해 갖는 감정을 철저히 이용한 결과
후회가 물밀 듯 몰아친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오늘 생방송도 분명 봤겠지 이건 안돼
자신의 옷을 입고 나온 나를 보고 기대하는 미네의 표정을 상상하자
더욱 괴로워진다 이젠 숨쉬기가 힘들다
아...
눈앞이 캄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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