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누군가는 져야하는 짐
“또 여기인가?”
정신을 잃을 때마다 보이는 풍경 아니, 장소
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던 꽃길에서
이젠 테마파크 안으로 장면이변했다
넓디 넓은 우리 테마파크 안에 홀로 서 있는 나
근데 정말 잘 지었네
현실에서도 이렇게 지어지면 소원이 없겠어
마음같아서는 아철 본부장을 모셔서 보고 싶을정도로
내 마음에 쏙 들게 지어져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넓은 정원이 펼쳐져있다
“설계도에선 분명 중앙이였지 여기”
털썩
잔디위로 눕는다
포근한 잔디가 내 몸을 감싼다, 눈을 감으면 바로 잠에 들 수 있을 정도로 편하다
차라리 이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어떨까?
영영 이곳에 남는다면?
그럼 복잡한 일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미네의 슬픈 얼굴도 볼 필요 없고, 잘못을 빌 필요도 없다
내 양심에 가책을 느껴 쓰러질 일도 없지
그냥 처음부터 없는 일로 하는건 어떨까...?
‘쏴아’
“앗”
바로 옆에 있는 분수에서 물이 뿜어져나온다
내 얼굴에까지 차가운 물이 튀긴다
근데 과연 그게 옳은 일일까
사람은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져야한다
죄가 있다면 벌을 받아야한다
내 행동을 따져 본다면
“확실히 죄가 작지는 않지”
미네의 옷을, 미네의 마음을 조각냈다
내게 항상 조건없는 마음을 보내주는 사람을
그녀의 호의를 철저히 이용했다
그것 때문에 내가 돌아갈 수 없다면, 이곳에 남는걸 받아들이겠다
쏴아
분수 물줄기 뒤로 선명한 무지개가 펼쳐진다
그리고 갑자기 밝은 빛이 나를 비춘다
“뭐지,,?”
빛은 너무나도 밝아 잠시 눈을 가려야했다
그리고 내 앞에 선
한 여자가 보인다
맞다 이 여자, 전에 여기 왔을 때 입구에서 내게 손을 흔들어준 여자다
한 번 그것도 멀리서 봤을 뿐이지만 잊을 수 없어
물어볼 게 너무나 많아 도대체가 어떻게 된거야
“당신은 누구죠? 여긴 어디고?”
“전 진짜 죽은 건가요?”
여자는 대답대신 한 상자를 건내준다
“이럴수가...”
상자안에 든 것은 내가 자른 그 옷이다, 근데 아직 자르기 전 모습인거 같은데?
자세히 보니 내가 가위질한 경계면에 감쪽같이 바느질이 되어있다
세심하게 보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모를정도로 솜씨가 뛰어나다
싱긋
다시 밝은 빛이 비친다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고
난 옷을 든 채 이곳에 서있다
참 내가봐도 한심하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준 것으로도 모자라 나몰라라 도망치려하기까지 하다니
내가 이대로 사라진다면 미네는 어떤 기분일까
옷을 자른 것 정도는 그깟 일 따위로 여길정도의 상처가 생길거야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다
사람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한다
도망친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는 건 절대로 아니다
도망치는 사람의 마음이 편하게 되는것도 더더욱 아니다
이기적인 행동은 더 이상 그만하자
“미안해 미네”
정식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겠다
나를 두고 울건간에 때리건간에 무슨 벌이든지 받아들이겠다
그게 내 행동에 대한 책임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자
밝은 빛이 다시 나를 감싼다
---
“여기는...병원...?”
“인스씨!”, “회장 대행님!”, “돼지”, “...?”
천장의 밝은 조명과 내 손에 연결된 링겔 줄이 내 처지를 보여준다
“으흑흑, 제가 그래서 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커헉 리페 너무 세게 안지마”
내가 쓰러진동안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렸었는지 리페의 눈가는 퉁퉁 부어있다
“하아...그래도 다행이에요 깨어나셔서”
“돼지, 한건 했던걸? 우리까지 속일줄이야”
해나와 이스도 많이 걱정했던건 마찬가지였는지 숨을 고른다
그 잘못을 저지르고도 쓰러진 날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 이렇게 있다니
솔직히 조금 감동이다, 인생을 아주 헛 살진 않았구나
그리고 내 시선 끝에서, 고개를 돌리고 서 있는
“미네”
“...”
다른 직원들과는 다르게 내가 깨어난 걸 알면서도 그 자리에 서서 날 쳐다보지 않은 채 가만히 있는다
나름 자기가 화가 났다는 걸 보여주는 모습이지만...
숨길수는 없다 애초에 여기 와준 것 자체가 날 너무나도 걱정하고 있다는 거니까
“미안해 정말 잘못했어”
“변명의 여지없이 모두 내 잘못이야”
“알면 됐어요”
‘훌쩍’
미네의 얼굴에 눈물이 뺨을 타고 떨어진다
“정말 미안해, 염치 불구하고 부탁 하나만 더 해도 될까?”
“뭔...데요...?”
“그 옷, 내가 입고다니고 싶어 다시 꿰메줄 수 있어?”
제3자가 봤으면 정말 어이가 없을 부탁이다 자기 손으로 잘라버린 옷을 다시 붙여달라니
그것도 직접 만들어준 사람한테서
“물론이죠”
하지만 미네는 그런 나의 요구마져 아무런 댓가없이 들어준다
꿈 같은 삶이다
---
하아
정신을 차리고도 병원에서 꼬박 하루를 더 있었다
의사한테는 당장 나가겠다고 했지만, 리페를 포함한 직원들이 결사 반대했고,
팔자에도 없는 휴식을 하루나 더 했다
“여기있어요”
퇴원을 하면서 미네는 꿰멘 옷을 건내줬다
꿈에서 본 여자의 솜씨보다도 더 뛰어났다, 자세히 봐도 전혀 꿰맨 흔적이 안 보일 정도로
아니 애초에 꿰멘 게 맞나 싶다
“하하, 새로 만들어 준 거 아니지?”
“하루만에 어떻게 옷을 만들어요 사장님!”
“다음에도 이러면 절대 안 고쳐줄거니까 소중하게 입고 다니라구요”
그렇게 쓰레기짓을 한 나를 미네는 기꺼이 용서해줬다
“절대로 잊지 않을게 미네 정말 고마워”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하세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고있지만 미네도 분명 속으로는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나 자기 옷들을 끔찍이 아끼지 않았는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의 옷을 잘랐다
이 상처의 흉터는 깊게 남겠지, 평생이 걸려도 사라지지 않을 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게, 치료를 하지 않을 변명거리가 되진 못해
잘못된 건 하나하나 고쳐나가면 될 뿐이야
책임을 져야한다면 기꺼이 지겠다, 벌을 받아야 한다면 기꺼이 지겠다
그게 나의 앞으로의 각오다
그렇게 난 새 옷을 입고 회장실로 들어섰다
근데...회장실이 이렇게나 컸던가?
고작 이틀 들어오지 않았어서인가 회장실의 모습이 너무 낯설다
아니, 이젠 보이지 않은 부분이 보이는 거지
두 사람이 쓰기에 너무나도 넓은 공간,
굳이 꼭꼭 숨겨둬서 찾아오기 어렵게 한 구조,
하나같이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회장의 권위를 살리기 위한 목적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렇지만, 하루종일 있는 공간의 구조가 이러니까...
내 생각이 그렇게 변하는게 아닌가?
이번 일로 뼈저리게 느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위험해
내 무의식에서 더 이상 인간성이라는게 없어질 수도 있다
사람들을 그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장기말로 삼고
죄책감 하나 없이 이용하는 내가 되었다
다행이도 이번엔 내게 남은 마지막 양심이 마지막에 날 잡아줬지만
다음에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점점 남을 이용하는것에 무뎌진다면...큰일이다 정말로
“공간부터 옮겨야 하나?”
옮기려 해도 마땅치가 않다, 당장 명분도 없고, 회사에 빈 공간도 없어서 옮기기도 곤란하다
나야 뭐 컴퓨터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지만, 손님들 맞는 공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직원 사무실쪽으로 옮기면 직원들은 무슨 죄야
대형 폭탄이 터지는 급이겠지 난 그건 원치 않는다
“차라리 밖으로 나가는 건 어떨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회장 대행님 급한 소식입니다!”
보통일이 아닌지 보고를 하러 들어온 직원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허억...허억... 예니스 사장이, 아니 예니스가 우리 회사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정확하게는-”
“푸흡 하하하”
“허억...회장 대행님?”
이런 심각한 상황에 자지러지게 웃는 내가 이해가 안 된다는 직원의 표정
나도 참아보려 했지만 예니스 이름만 듣자마자 웃음이 나서 도저히 참을수가 없다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잘 맞는걸까? 성별 반대로 태어났다면 분명 천생연분 부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핫, 죄송합니다 보고 안 해주셔도 대충 알겠습니다”
“예니스가 저에 대해 부정적인 보도를 냈고, 우리 회사 직원들을 빼내 우리와 적대하고 있다는 것 맞습니까?”
“네? 네 맞습니다 어떻게...?”
보고도 안 받고 어떻게 알고있냐는 말이지? 흠...
마음이 이어진것도 아니고 이건 나도 설명하기 곤란하네
어쨌든 말이야
예니스, 너가 우리 회사에 있을 때 좀 더 잘해줬어야 했는데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기나 하고
역시 난 쓰레기가 맞아 은인에게 그런 짓거리나 하다니
돌이켜보니 쓰레기짓을 너무 많이 했네
그런 쓰레기인 나라도
직접 치워주려고 나서주기까지 하다니
뭄둘바를 모르겠어
길게 끌 필요도 없이, 지금 만나러 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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