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회상

당연히 사직서를 낼 때 모두가 날 말렸다
상사도, 동료도, 친구도
“사기업에서 스카웃이라도 받은건가? 승진 1순위로 추천할테니 여기 남아주게”
“아니 어제까지 잘 다녔잖아? 갑자기 왜...?”
“푸하핫 여자 때문에 그만두겠다고?”
부모님께는 그만 둔 후의 계획까지 말씀드렸는데 진심으로 걱정하셨다
“한 번만 다시 생각해보렴, 그만두는것까진 이해해도 그런 일을 하겠다니...”
그런 일이라, 호스트 일이 그닥 좋은 일은 아니긴 하지
하지만 내 의지는 강했다
지금의 삶의 길대로 계속 간다면 물론 좋은 직장에, 좋은 아내를 만나서 가정을 잘 꾸릴 수 있을거야
여자 앞에서 바보 천치인 나라도 능력은 남부럽지 않으니 결혼 상대를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삶이 과연 행복할까...?
나도 진심으로 사랑이란 걸 해보고 싶다
난 그 길로 바로 사직서를 냈다
지금까지의 인생이 많이 후회됐다, 그래도 대학때는 여자랑 어울릴 기회가 조금이라도 있었는데
“크흑”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난 그렇게 생각했었다
인터넷에 접속해 아무 호스트 공고를 보고 곧바로 지원했다
호스트를 하려는 생각도 참 웃겼는데
단지 내가 예전에 본 영화의 주인공이 호스트일을 하며 많은 여자들을 능숙하게 다룬 장면이 인상깊었어서
나도 그렇게 되고싶었을 뿐이다
호스트가 되기는 의외로 정말 쉬웠다
구직신청을 하고 하루만에 바로 면접을 보라 연락이 왔었다
“이렇게 바로 면접에 가도 되는건가?”
난 의문스러웠지만 일단 호스트가게로 들어갔다
“반가워 난 이 가게의 사장 예니스라고 해”
첫인상부터 전형적인 호스트였던 예니스 사장이 직접 면접을 봤었다
“명문대 졸업에 중앙은행 근무...이력서가 굉장히 인상적인데? 이런 능력을 가지고 왜 여기서 일을 하려는 거야?”
사장은 의아스러운 듯 내게 물어본다
“여자를 알고 싶습니다.”
“푸하핫”
예니스 사장은 연신 웃음을 터트린다
“정말 의외의 대답이네, 상상도 못했어, 좋아 그럼 너의 진심을 한번 봐야겠어 내일부터 출근해!”
번화가의 호스트라는 큰 간판을 단 가게 난 그곳에서 첫 호스트 생활을 시작했다
들어가기가 굉장히 어려울 줄 알았는데 너무 쉽게 채용된거 아니야?
“이렇게나 쉬워도 되는 건가?”
그런 내 의문은 곧 해소되었다
호스트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특히나
“신입에게 기본급은 없어~ 손님을 접대하면 나오는 인센티브만 제공해”
급여 조건이 말도 안 됐다
내가 한 일들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였다.
호스트의 규칙은 정말 단순했다
인기가 있는 호스트는 성공, 없다면? 실패
당연히 외모도 어중간하고, 별다른 기술조차 없던 아니 여자랑 제대로 대화조차 못 했던 내가 호스트 일을 잘 할 수는 없었다.
첫 접대에 한 자기소개를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안녕하세...요..신입 호스트...9번...지명...부탁...드립...”
여자 손님들이 날 뚫어지게 처다보는 상황에서 제대로 뭘 할 수 있을지 만무했다.
“시작부터 접대는 좀 힘들지 하하, 일단은 지원 업무부터 해봐”
예니스 사장은 나름 날 배려한답시고 그렇게 말하며 지원 역을 맡겼지만
실상은 다른 사람들이 하기 귀찮아하는 짐 나르기나 숙취해소제 구매 같은 잔심부름을 하는 역할
사실상 가게 잡부역으로, 호스트를 할 실력 미달인 나를 적당히 치워 둔 거겠지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것만큼이나.
선배 호스트들의 요구사항을 받아주는 건 힘들었다, 어이없는 요구들이 많았는데
가령
“어이 신입, 숙취해소제 하나 사와”
“창고에 있습니다, 하나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하... 난 프랑스산만 먹는 것도 몰라? 빨랑 백화점에 가서 사오라고”
“...”
근처 마트에 가서 겉에 대충 영어가 써진 걸로 하나 사서 가져오면
“하 그래 난 알프스 물이 아니면 술이 안 깬다니까, 신입 이거 미리미리 좀 채워놔”
“요즘 사장님이 새 가게 사장을 지명하려 한다는 소문이 있으니까 접대에 신경을 더 써야한다고, 싸구려를 샀다가 내가 접대를 망치면 다 네 탓이야”
병에 써진 게 프랑스어인지 영어인지, 알프스 산맥이 프랑스에 있는지 스위스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접대고 자시고
평균 이하의 호스트들을 상대하다보면 머리를 붙잡고 쓰러지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런데
그런 돌대가리 호스트들에게 정말 수많은 여자 손님들이 몰려오고, 호스트들을 위해 수 백만원을 호가하는 술을 사준다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듯이
심지어는 애정과 사랑을 잔뜩 담은 명품 선물들을 가져다 바치는 모습을 보고 난 생각했다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기세군”
매일 저런 대우를 받는다면야
호스트들의 콧대가 높은 이유도 어느정도는 이해되었다.
반면에 난...
“나도 여자에게 저렇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그때는 눈물나도록 서글펐다.
한 호스트의 생일날
가게는 완전 축제 분위기였다, 손님이 호스트를 위해 억대에 가까운 술값을 냈다
인기 호스트 생일에는 늘 이렇다
난 그 모습을 보고 가게 구석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런 나에게 예니스 사장이 다가왔다
“어두운곳에서 뭐해? 오늘은 너도 즐기라구 오늘은 더 팔 술도 없으니까”
눈물을 흘리는 내 모습을 보자
“하하하 이 좋은날 뭘 울고있어, 자신감을 가져 너도 특별한 존재야”
눈물을 흘려 벌개진 내 얼굴을 보고 예니스 사장이 말한다
“넌 재능이 있어 분명히, 그리고 이곳에 꼭 필요한 사람이야”
“그만두지 말고, 조금만 버텨봐”
그렇게 예니스 사장은 날 위로하고 다시 손님을 맞이하러 돌아갔다
직원 관리라는 건가, 내게 무슨 재능이 있다고 그런말을 하는거지
형식적인 말이라는걸 알지만 그래도 좀 위안이 된다
간신히 추스르고 나서 다시 창고로 돌아가려는 찰나
“이봐, 사장님하고 무슨 이야기를 한 거지?”
다른 선배 호스트가 날 붙잡고 추궁한다
“별 이야기 안 했습니다, 위로정도 해주셨어요”
“너 사장님이랑 무슨관계야?”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난 당황한다
“사장님이 그렇게 친절한 사람인 줄 알아? 이쪽 업계에서는 호랑이로 통하는 사람이야 호스트들을 무섭게 잡는다고, 위로따위는 한 적이 없어
근데 전부터 너한테만 왜 그렇게 친절한거야?”
호랑이? 무섭게 잡는다고? 지원역으로 쫓겨난 뒤 도통 예니스 사장님이 호스트 관리하는 모습을 볼 기회가 없어서 몰랐다
“저도 모르겠어요...”
난 당황해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애초에 아무런 관계도 아니니까
다행히 호스트 지명이 들어오자 선배 호스트는 자리를 떴다, 날 무섭게 노려보면서...
이쯤되면 나도 궁금해졌다, 손님하나 제대로 접대를 못 하는 반푼이 호스트를
굳이 가게에 잡아두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잡일이라면 내가 아니여도 할 사람은 많은데”
의문을 품고 일단 내 자리인, 창고로 돌아갔다
창고 안엔 의외의 사람이 서 있었다
“사장님? 여긴 왜?”
“오 깔끔해 정리도 잘 했도 재고도 완벽해”
“이전 회사에서도 비슷한 일을 했었나?”
“그때는 거시경제 관리를 했습니다”
“하하 대충 우리가게보다 규모가 더 큰 곳을 관리했다고 생각하면 되지? 여기 일은 별 거 아니겠구만”
예니스 사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이였다, 중앙은행의 일과 비교했을 때 이 정도는 애들 장난 수준이였다
모든 물건들의 수요를 한 자릿수 단위까지 정확히 예측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주 업무는 접대잖아요, 전 접대를 못 합니다.”
난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런건 배우면 할 수 있어, 접대야 연습만 하면 그럭저럭 먹고 살 정도까지는 스킬을 키울 수 있어”
“하지만 네 재능은 아니야, 호스트들을 기를 쓰고 가르친다고 해서 너처럼 될 수는 없어, 절대로”
예니스 사장이 날 너무 과대평가하는거 같은데...아니면 호스트들의 평균 수준이 너무 낮은걸까?
“내일부터는 가게 술 재고를 관리해 모두”
예니스 사장은 갑자기 말을 한다, 뜬금없는 말에 난 당황한다
“네?”
또 잡일을 시키려는건가, 이젠 할 말을 해야겠어
“사장님 호스트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여기 온 이유도 그렇구요, 물건 정리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긴...싫습니다”
내 말에 예니스 사장은 당황했다
단순히 부하가 업무 거부의사를 밝혔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게 아니라
마치 이런 건 처음 봤다는 그런 표정이였다
“물건...?”
“너 술 관리가 뭔지 모르는 거야?”
“모릅니다, 한번도 해본 적도 없습니다”
“푸흡 푸하하, 그랬구나 날 진심으로 웃긴 사람은 오랜만이야”
사장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투로 말하고,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럼 술 관리 내일부터 하는걸로 결정, 모르는게 있음 물어봐”
웃음을 그친 사장은 그렇게 말하며 창고를 나섰다
내 의사는 하나도 존중하지 않은 채
나는 망연자실했다, 귀찮은 일이 늘은 것과 더불어 원래 이 가게에 왔던 목표와도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다른 일 알아봐야 하나?”
나는 진지하게 일을 그만둘 고민을 하며 창고를 나섰다, 영업 종료 시간이 다다라서인지 손님들은 다 떠났다
뒷정리를 하러 가게 스테이지로 갔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가게 호스트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일제히 험악한 표정으로 날 처다본다
“신입, 너 그 말이 사실이야?”
경력이 많은 연장자 호스트가 내게 다가와 말한다, 어지간히 화가 났는지 표정이 험악하다
“네?”
“가게 술 관리, 너가 한다는 게 사실이냐고?!”
“네 제가 전부”
연장자 호스트는 내 멱살이라도 잡을 듯이 내게 접근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어어? 나는 놀라서 거의 뒤로 넘어질뻔 했다, 대체, 무슨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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