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각성(4)
하무란은 존을 향해 거대한 분노를 터트리고 있었다.
존의 몸에서 일렁이기 시작한 사이오네틱 에너지.
그것은 선택받은 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초능력 현상의 일종이었다.
원래라면 자신이 사용하고 있어야 할 능력이었던 것.
존 밀리어라는 방해물만 없었다면 밴디의 후계자는 자신이었을 거라는 굳은 믿음 하에 하무란이 분노를 터트리고 있었다.
크오오오오!
지금이라면 베카모레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존의 몸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베카모레 역시 시선을 빼앗긴 상태였으니까.
단 한 번의 기회면 눈앞의 거슬리는 꼬마를 완전히 묵사발을 만들어버릴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하무란이 존을 향해 맹렬한 분노를 터트리려 할 때였다.
존의 내면에서는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몸속에서 꿈틀거리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감각.
베카모레와의 대화에서 배웠던 사이오네틱 에너지를 감지하는 방법.
그것을 익혔던 존이 자신의 몸속에 흐르고 있던 사이오네틱 에너지를 감지하고 제어하려하고 있던 것이었다.
물론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새로운 감각을 익히는 것은 걸음마를 막 떼는 어린 아이처럼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시행착오들을 무시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해방하려 하고 있었다.
심장의 기운이 요동치고 몸이 끓어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게 사이오네틱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느낌인지 아니면 전신이 찢겨지며 나타나는 현상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의 몸에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감각에 따라 존의 전신에서 에너지가 솟구쳐 올랐다.
세포와 세포 사이를 빠져나와 몸을 감싸고 갈가리 찢긴 몸의 틈새에서부터도 에너지가 세어 나왔다.
그야말로 사이오네틱 에너지로 뒤덮인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에 따라 마구 에너지를 분출하기 시작한 존의 모습은 너무나도 위협적으로 보이고 있었다.
마치 다른 세계의 존재가 현실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는지 하무란은 망설임도 없이 존을 향해 돌격해 그의 머리를 향해 펀치를 날렸다.
쿠웅! 하무란의 팔을 감싸고 있던 거대한 쇳덩어리가 존의 머리를 강하게 타격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단단한 벽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였다.
사람의 몸이라면 그 타격을 맞고 날아가지 않을 수가 없을 터였다.
그런데 지금 존의 몸은 마치 단단한 벽이라도 되는 듯 그 공격을 받고도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사이오네틱 에너지를 가진 클라스크 능력자의 힘인가?
도대체 그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평범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인간의 몸이 이렇게나 강해질 수 있다니?
충격적인 상황 속에서 존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눈앞의 하무란을 제거하기 위해 휘둘러진 팔.
그리고 그 팔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거대한 에너지!
그 에너지에 당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마 게일포스에 당한 사람처럼 갈가리 찢겨지겠지.
그동안의 경험으로 위험을 감지할 수 있었던 하무란이 존과의 거리를 벌리고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덤핑슈즈의 추진력을 높였다.
빠른 속도로 뒤로 빠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이버슈트의 일부가 공격에 닿아 부서지며 파편을 휘날렸다.
칫! 꼬마라고 해도 역시 능력자는 능력자인가?
위험했던 순간을 넘겨 거리를 벌리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순간이었다.
무차별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사이오네틱 에너지.
현장에서도 이런 식으로 에너지를 마구 뿜어내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아직 자신의 능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닥치는 대로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는 듯 보였지만 그래봤자 풋내기의 발악일 뿐.
곧 통제하지 못한 에너지가 폭주하며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 기회를 봐서 마무리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존의 모습을 보고 있던 순간.
존이 하무란을 향해 손을 뻗기 시작했다.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저 자세는 능력자들이 자신의 에너지를 방출할 때 곧잘 취하곤 하는 자세였다.
저런 풋내기가 자신이 가진 능력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 흉내를 내려 하는 것인가?
아니면 본능적으로 에너지를 뿜어내기 위해 저런 자세를 취하는 것인가?
한 번도 클라스크의 능력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하무란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 불길한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지던 가운데 마침내 존이 길게 뻗은 손바닥 앞으로 투명한 형태의 에너지탄이 쏘아져 나갔다.
피슈웅!
크어억!
이럴수가!
정체불명의 에너지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느낀 하무란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명을 내질렀다.
눈 밑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건 더 이상 풋내기의 발악이 아니었다.
사이오네틱 에너지탄!
그건 도저히 자신의 능력으로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설마 이렇게 단기간에 에너지를 제어해 자신을 향해 탄환을 발사할 줄이야?
이렇게 된 이상 답은 탄환을 피하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미 탄환은 발사된 뒤였고 당황한 상태로 멈칫하는 사이 더는 피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급한 대로 망가진 게일포스를 에너지탄에 조준해 발사하려 해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틱, 틱 거리는 소리만 반복되고 있을 뿐 게일포스는 아무런 역할도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무란의 눈앞으로 공포가 밀려왔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온 몸에는 소름이 밀려왔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탄환의 윤곽을 보면서 운명을 예감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운명이 완전히 막을 내리려던 순간 누군가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동안 자신의 일을 방해해왔던 베카모레.
그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퍼엉! 마치 빛과 같은 속도로 날아와 강력한 발차기로 탄환을 튕겨낸 베카모레가 긴장한 표정으로 존의 상태를 지켜보았다.
자신을 공격한 하무란에 대한 분노로 완전히 이성을 잃고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듯한 상황.
이런 상태로 에너지를 난사한다면 정말 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거기다가 언제 사이오네틱 에너지가 고유 능력으로 발현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더 난감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이성을 잃고 밴디처럼 불을 뿜어대기라도 한다면 더 막을 길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았다.
막으려면 지금 막아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베카모레가 존을 향해 능력을 발현하려 할 때였다.
콰지지직! 베카모레가 쳐냈던 존의 에너지 덩어리가 순식간에 노란 빛을 내는 번개로 변화해 주변에 큰 소음과 함께 빛을 내뿜었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전격. 그것이 바로 존의 안에 내재되어 있던 초능력의 힘이었다.
그 힘을 본 베카모레는 순간 전신에 전류가 감도는 듯 짜릿한 감각을 느꼈다.
만약 탄환을 쳐내는 게 조금만 더 늦어졌더라면.
자신 또는 하무란이 전류에 감전돼 전기구이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하무란과 베카모레는 전신의 세포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전격의 플리커.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던 능력이었다.
내면에는 대체 어떤 힘을 더 감추고 있는 것일까?
클라스크가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자연의 에너지와는 다르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기 에너지와 비슷할지 모르지만 어떤 비밀을 감추고 있을지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던 베카모레가 긴장한 표정으로 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과연 자신이 존 밀리어를 안전하게 제압할 수 있을까?
불가능은 아니겠지만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와 더불어 이 모든 일의 책임자인 하무란 역시 그냥 가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두 사람을 한 번에 제압하기 위해 베카모레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바인드 링!”
외침과 함께 베카모레의 양쪽 손목에서 각각 두 개의 링이 만들어져 존과 하무란을 향해 날아갔다.
존을 향해 날아간 것은 투명한 형태의 링이었고 하무란을 향한 것은 남색 빛을 내는 특이한 형태의 에너지였다.
형태가 다른 것으로 보아 그 특이한 형태의 에너지가 베카모레가 가진 능력의 힘인 것으로 보였다.
두 사람을 향해 날아간 에너지가 각각의 팔과 다리를 묶어 제압하려 할 때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하무란을 향해 날아갔던 남색 빛을 내는 에너지가 섬뜩한 소리를 내며 하무란의 사이버슈트를 갈아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키시시시시시싱!
크아아아악!
하무란은 그 에너지에 붙잡힌 채 공포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베카모레가 가진 초능력.
그것은 메더 에너지라고 불리며 모든 것을 갈아버리는 공포스러운 능력이었다.
메더 에너지가 가진 위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무란은 그렇게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베카모레가 자신을 죽일 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베카모레가 그런 성격의 사람이었다면 자신은 상황이 이렇게 되기도 전에 이미 죽어 없어져 있을 테니까.
불길한 소리를 내며 사이버슈트를 갈아버린 에너지가 마침내 하무란의 속박을 해제하고 흩어져 버렸다.
잠깐이지만 몸에 착용하고 있던 금속이 통째로 갈리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한 경험이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감각.
이런 때에는 베카모레가 자신의 적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윽.
일단 베카모레의 도움으로 살아남기는 했지만 정말이지 곤욕이 아닐 수 없었다.
깔보던 꼬마에게 굴욕을 당한 것도 모자라서 베카모레에게까지 이런 꼴을 당하게 될 줄이야.
일이 꼬이기 시작한 뒤로는 더 좋은 결과를 바랐던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굴욕을 당하게 될 줄은 몰랐던 참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날뛴다고 해봤자 문제만 더 커질 것 같았고 존 밀리어 역시 제압당하긴 했지만 능력을 각성한 상태였다.
이제 자신은 전혀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상황을 깨달은 하무란은 더는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날 생각을 굳혔다.
“버닝 라이트에 대단한 인재가 들어온 것 같군.”
번개 능력이라면 능력자들 사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공격 능력을 가진 것이었다.
전기가 가진 빠른 속도와 살상능력을 생각하면 이에 견줄 수 있는 능력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어린애까지도 저 정도로 강력한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 줄이야.
클라스크가 가진 능력은 대체 어디까지란 말인가?
만약 자신이 존이 가진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그럼 플리커들을 학살하는 안티플릭의 베일런서들을 단번에 멸살할 위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회를 저런 꼬마에게 넘겨주고 말았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지만 이제는 그만 돌아가야 할 때였다.
베카모레는 하무란의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하무란의 행동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당장의 상황에 정신이 없기 때문일 뿐이었다.
당장 하무란을 세상에서 지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플리커로서의 마지막 배려와 같은 것이었다.
하무란이 더 이상 날뛰지 못하도록 사이버슈트를 부숴버린 것도 있었지만 진짜 문제는 존이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적당히 붙잡아 놓는 것으로 간단하게 제압을 할 수 있겠지만 사이오네틱 능력자라면 얘기가 달랐다.
언제 에너지를 방출해 주변에 큰 피해를 입힐지 알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
베카모레는 존을 제압한 뒤에도 여전히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존이 가진 초능력은 전격.
언제든지 작은 크기의 에너지만으로도 하무란을 순식간에 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을 경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하무란이 있는 게 방해가 된다는 생각에 베카모레가 빨리 그를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 했다.
“빨리 이곳을 떠나라 하무란!”
하무란을 향한 베카모레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하지만 하무란에게는 그저 좋은 기회가 되고 있을 뿐이었다.
사고를 일으킨 뒤에도 조용히 이곳을 떠날 수 있다니.
이보다 좋은 기회도 찾기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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