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폭압의 베일런서 마구스
다음날.
차량이 멈춰서며 두 명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긴 머리를 가진 여성과 근육질의 큰 덩치를 가진 남성의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존의 가족에게 소식을 전하러 온 캐러미아와 밀리버였다.
바쁜 베카모레를 대신해 이 자리에 온 것이었지만 불만은 없었다.
비 능력자인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이런 종류의 잡무들뿐이었으니까.
존에게 전달받은 주소로 찾아와 문을 두드렸을 때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존의 어머니 글릿이었다.
“누구세요?”
글릿의 물음에 캐러미아가 답했다.
“존 밀리어의 어머니 되시죠?”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저희가 존을 안전하게 데리고 있다는 걸 알려드리려고 왔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글릿은 충격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죽은 줄 알았던 자신의 아들이 살아 있었다니?
감격에 겨운 눈물이 흘러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캐러미아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나며 글릿이 말했다.
“제 아들은 지금 어디 있죠? 잘 있는지 제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요.”
글릿의 요구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원래 목적은 소식을 알리고 돌아가는 것뿐이었는데 갑자기 누군가를 데리고 본부로 돌아간다는 게 곤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캐러미아는 존의 생사를 걱정하는 글릿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때문에 조금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베카모레와 대화를 통해 글릿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정했다.
“그럼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한 번 본부에 연락해볼게요.”
“정말 고마워요.”
밀리버는 계획과 달라진 상황에 당황하긴 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마음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캐러미아가 베카모레와 연락을 취하는 사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밀리버가 돌아온 캐러미아와 이야기했다.
“어떻게 됐습니까?”
“데려와도 좋다고 하셔.”
확답을 들은 밀리버가 글릿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럼 같이 가시죠.”
두 사람의 승인에 글릿이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남편 유스 밀리어와 함께 버닝라이트의 본부로 가는 차량에 올랐다.
같은 시각 차량을 타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밀리버와 캐러미아 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장소에서 차량을 타고 모습을 드러낸 존재가 있었다.
리버트의 베일런서 중 한 사람인 마구스 역시 차량을 타고 플리커가 숨어 있다는 소문이 있는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은 버닝라이트의 본부와 멀리 떨어진 별개의 장소였지만 베카모레를 도와주던 비 능력자들이 숨어 있는 상태였다.
그들의 앞에 마구스가 나타난 건 그리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마구스는 이미 폭압적인 성격으로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평화와 안정을 이야기하는 안티플릭이기는 했어도 그 안에서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마구스는 안티플릭에서도 특히나 그런 성질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런 마구스의 등장만으로 사람들은 수군대며 그의 이름을 되뇌기 시작했다.
이미 일대의 분위기가 긴장 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 그가 능력을 사용하며 폭압적인 행태를 보일지 알 수 없었으니까.
가벼운 발걸음으로 차량에서 내린 마구스는 사람들이 말하던 이미지와 다르게 평범해 보이는 노란색 단발머리를 한 남자였다. 폭압적이라는 수식어와 어울릴 정도로 인상이 나쁜 것도 아니었으며 덩치가 큰 것도 아니었다.
이런 점이 사람들에게는 조금 의외의 면처럼 다가오는 듯하기도 했다.
그가 만약 그 수식어와 어울리는 외모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에 대한 말들을 믿기라도 할 테니까.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그가 타고 온 차량의 뒤에 실린 거대한 크기의 도끼 한 자루였다.
사이버웨폰의 한 종류로 보이는 무기였는데 마구스가 왜 그런 무기를 가지고 다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겉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에 비해 도끼의 크기가 지나치게 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가진 체격으로는 도저히 들고 휘두를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크기.
그걸 사용할 모종의 방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의 행동을 두고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마구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의 목표를 찾고 있었다.
그가 뭘 찾고 있는지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베일런서라는 그의 직업 특성상 뭘 찾고 있을지는 뻔한 것이었으니까.
한동안 그 자리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마구스가 마침내 사람들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사람들은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피했고 겁에 질린 사람들을 향해 그가 입을 열었다.
“여기에 플리커가 숨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왔다. 뭔가 알고 있는 사람이 있겠지?”
마구스의 물음은 간단했다.
자신이 알고 온 내용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이야기한 것 뿐.
이제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며 숨어 있는 플리커를 찾아내 처단하는 일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사람들의 협조를 받는다면 손쉽게 플리커를 찾아내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여러 사람이 피곤해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베일런서인 자신의 시간이 낭비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구스는 사람들이 순순히 자신의 요구에 따라 행동해주길 원하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똑똑히 인식시킨 뒤 잠깐의 시간을 주면서 그들이 플리커의 위치를 말하길 기다렸다.
만약 일이 잘 풀리면 플리커를 처리하는 데까지는 1분.
그 정도의 시간만 있으면 충분했다.
상대가 누구라고 하더라도 이 리버트 지역 안에서는 결코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었으니까.
실제로도 그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마구스는 내면에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느낀 마구스가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압박을 시작했다.
“여기에 플리커가 있다는 말을 듣고 왔다고 했다. 설마 일부러 놈들을 숨겨주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자칫 심각한 사안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에 압박감을 느낀 사람들이 마구스에게 다가가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이야기했다.
“저희도 알아볼 시간이 필요하니까 조금만 시간을 주시죠.”
말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마구스가 자신들에게 무슨 짓을 할까봐 겁에 질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티플릭의 베일런서를 앞에 두고서 겁에 질려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들이 이야기하던 평화와 안정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10분 기다려주겠다. 그 안에 뭐든 답을 가져와야 할 거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이야기하던 도중 말을 끊은 마구스가 공포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들어 건물 벽을 향해 사이오네틱 에너지를 쐈다.
피슝- 그대로 건물의 벽은 관통되어 버렸고 그 모습을 본 주민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꼭 찾아오겠습니다!”
마구스의 말에 주민이 주저하며 대답한 뒤 사람들을 향해 멀리 떠나갔다.
잠깐 시간을 벌기는 했지만 결국 숨어있는 플리커를 찾을 때까지 그는 절대 얌전히 돌아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건물 안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게토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마구스가 찾고 있는 플리커는 바로 자신.
클라스크를 이식한 초능력자는 아니었지만 무능력자인 플리커로서 베카모레를 도와오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임무를 하던 중 안티플릭의 감시망에 걸려버린 모양이었다.
제길.
마구스한테 잡히면 끝장이야.
분명히 날 찾자마자 죽이려 들 텐데.
게토스는 자신이 밖으로 나가게 되면 마구스의 손에 죽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구스의 앞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사람들이 죽어나가게 될지도 몰랐으니까.
이제 남은 건 이 수단밖에 없어.
게토스의 손에 들린 것은 작은 형태의 사이버웨폰인 리틀보우 하나였다.
손목에 착용하는 것으로 활공탄을 발사할 수 있는 원거리 무기였다.
특별히 강한 위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마땅한 대항 수단이라고 가지고 있는 것은 그것이 유일했던 것이다.
그게 마구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기습할 타이밍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랫동안 함께 생활해왔던 주민들이 자신을 배신할 리가 없었다.
아마 주민들은 적당히 시간을 끌다가 플리커에 관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고 말하겠지.
그 말을 듣고 마구스가 순순히 물러난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주민들에게 해를 가하려고 한다면 자신이 나설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게토스는 베카모레에게 연락을 보냈다.
어쩌면 자신이 살아서 보내는 마지막 연락이 될지도 몰랐다.
간단한 정보들로 연락을 마친 게토스가 다시 마구스에게 접근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며 리틀보우의 사용 준비를 마쳤다.
주민들은 역시나 생각대로 마구스에게 게토스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주민들이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한 마구스가 격분하며 소리쳤다.
“플리커가 이미 도망가고 없다고? 그런 말을 누가 믿을 것 같냐? 이 플리커 놈들! 다 같이 지옥구경을 해봐야 정신을 차리겠냐?”
격분하기 시작한 마구스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사이오네틱 능력자들은 찰나에 순간에도 사람들을 죽일 수 있었으니까.
마구스가 아직 제대로 된 전투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건물 안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도 못하고 있을 테니 기습을 가한다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판단으로 게토스가 눈을 질끈 감고 마구스를 향해 리틀보우의 총구를 겨누었다.
“하앗!”
커다란 기합 소리와 함께 탄환이 발사되었고 총성을 내며 날아간 탄환이 마구스의 몸을 관통했다.
크억!
탄환이 마구스의 몸을 관통했지만 치명적인 피해를 준 것은 아니었다.
즉각 사이오네틱 에너지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시작한 마구스가 탄환을 발사한 게토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제 더 이상 숨어서 몸을 숨기는 것은 의미가 없는 짓이었다.
마구스를 제대로 마주하기 시작한 게토스가 다시 한 번 탄환을 발사하기 위해 리틀보우의 총구를 겨누었다.
그러나 그것은 의미 없는 일이었다.
단 한 순간.
마구스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한 순간 게토스의 몸은 순식간에 에너지에 관통당해 커다란 구멍이 생겨버렸던 것이다.
커.. 커헉.
단 한 번의 공격에 게토스는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목숨을 걸고 저항을 해볼 사이도 없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에너지가 순식간에 대포알처럼 자신의 몸을 관통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리틀보우 같은 무기로는 베일런서에게 대항할 수 없다.
이것은 플리커들 사이에 퍼져 있는 기본적인 상식이었다.
그러니 기습 공격으로 마구스를 단번에 처리하지 못한 시점에서 이미 승산은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싸우려고 한 것은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사람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였다.
찾고 있던 플리커를 찾아냈으니 이제 사람들을 향한 공격을 끝내고 돌아갈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게토스를 살해한 뒤에도 마구스는 폭주를 멈추지 않았다.
“플리커가 저기 숨어서 나를 공격하지 않았느냐? 그걸 알면서도 제대로 말하지 않았구나?”
주민들이 플리커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플리커의 기습을 도왔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구스는 이 상황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태연하게 자신을 향해 거짓말을 했던 마을 주민 세 명이 눈앞에 들어왔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마구스는 그 세 사람의 몸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무기를 들 필요도 없이 그의 몸에서 나온 사이오네틱 에너지 한 번으로 사람들은 지푸라기처럼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투두둑. 힘없이 떨어진 사람들의 몸뚱이가 붉은 피를 흘리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의 시야는 공포와 두려움에 물들었다.
이것이 베일런서에게 대항한 플리커들의 최후인가?
마구스의 분노는 어디로 불똥이 튈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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