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폭압의 베일런서 마구스(3)
존은 하염없이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진실인가?
그것은 직접 여러 현장들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이 진실일까 아니면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깨달은 뒤에 내리는 결론이 더 진실에 가까울까?
아마 단번에 무엇이 정답이라고 결론내리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서로의 입장에서는 서로가 악이다.
그것만이 진실에 가까울지 몰랐다.
결국 무엇을 선택하던 싸움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누구와 싸울 것인가?
플리커인가 안티플릭인가?
그 사이에서 배회하고 있는 존이었지만 천칭의 기울기는 이미 기울어가고 있는 듯했다.
바디백에 담긴 게토스의 시신.
그것은 이미 주민들을 살해한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안티플릭.
그들은 결코 자신들이 말하던 대로 시민들을 보호하고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살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그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겉으로는 시민들을 보호하며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을 표방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닐까?
마음 한 구석에서 조금씩 의심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안티플릭은 게토스와 주민들을 살해했다.
이유가 뭐였다고 해도 그건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야.
늘 평화와 안정을 이야기해왔던 안티플릭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라도 주민들을 보호했어야지.
그런 생각이 들자 안티플릭에 대한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설령 플리커인 게토스가 난동을 부리고 그걸 안티플릭이 수습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려고 해도 직접 현장을 확인하지 못한다면 그런 추측은 의미가 없었다.
이런저런 의문만을 남긴 채 상황은 마무리되었고 결국에는 게토스와 주민들이 살해당했다는 사실만이 현장에 남겨져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베카모레가 게토스의 시신이 담긴 바디백을 들고 현장을 떠나려 했다.
그때 주민 하나가 베카모레를 향해 소리쳤다.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당신들 때문에 우리 남편이 죽었어! 이제 어쩔 거야?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게토스의 시신을 든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베카모레는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정리해야 함을 깨닫고 바디 백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 뒤 아주머니의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자신 역시 동료가 살해당하고 지금까지 사람들을 보호해주기 위해 열심히 힘써왔을 텐데.
오히려 사람들을 향해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주제넘은 동정심이었을까?
똑같은 플리커의 입장이라면 베카모레의 마음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런 생각에 고개를 돌려 키리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키리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조금 마음이 가라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신을 향해 고개 숙여 사과하는 베카모레의 모습을 보며 아주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셨다.
그것으로 아주머니의 마음이 풀렸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제 시간이 없었다.
병사들의 연락을 받은 마구스가 언제 현장으로 돌아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마구스가 돌아오게 되면 또 다른 희생이 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에 베카모레가 급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돌아가자.”
다시 게토스의 시신이 담긴 바디 백을 짊어지고 베카모레가 차량을 향해 걸어갔다.
마구스.
그를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리버트 안에서 마구스라는 이름의 베일런서는 그리 익숙한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리버트 지역을 담당하는 베일런서는 라이시스와 클록 그리고 라즐 정도의 인물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마구스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최근 플리커의 베일런서 습격 사건.
그 사건을 계기로 잠시 리버트 지역의 경계를 강화하며 임시 파견을 나와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잠시 파견을 나와 있는 헤일론 담당 베일런서를 공격하게 된다면 여러 가지로 일이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괜히 그와 마주쳐 쓸데없이 시선을 끌 필요가 없었다.
그냥 조용히 떠난다면 어차피 마구스는 곧 다시 헤일론으로 떠날 테니까.
조금이라도 오래 살아남아 플리커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쓸데없는 싸움을 피해야 했다.
싸움을 즐기면서는 결코 오래 살아남을 수가 없다.
한 번 싸움이 일어나면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한다면 그게 늘 상대방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런 상황 속에서 늘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플리커와 안티플릭의 대치도 이렇게까지 길게 늘어지지는 않았겠지.
대략 20년 가까이 지속되어 온 플리커와 안티플릭간의 싸움은 언제쯤 마무리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시간이 갈수록 플리커에게는 점점 상황이 불리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클라스크 공장을 세우고 계속해서 클라스크를 생산하고 있는 안티플릭.
그에 비해서 플리커들은 베일런서를 노려 클라스크를 빼앗지 않으면 더 이상 전력을 늘릴 방법조차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쪽만 계속해서 세력을 불려나가는 구도.
이런 상황 속에서 플리커들이 안티플릭에게 붙잡혀 클라스크를 빼앗기기라도 한다면 전력은 말할 것도 없이 붕괴되어갈 게 분명했다.
그런 상황만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클라스크는 양측의 전력을 유지하는 가장 핵심적인 무기.
결국 클라스크를 많이 확보하고 더 강한 능력자를 더 많이 활용하고 보유하는 쪽이 승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존은 아직 제대로 된 능력 각성자라고 보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쓸데없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아직은 별거 아닌 능력자이긴 하지만 시간을 들여 능력에 익숙해지고 난 다음에는 얼마나 더 강해질지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희망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 피어나기도 하는 법.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결코 포기하고 멈춰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게토스의 시신을 차량에 싣고 존과 키리를 데리고 현장을 떠나려 하는 찰나였다.
멀리서 날아온 사이오네틱 에너지를 느낀 베카모레가 급히 차량에서 몸을 피했다.
콰아앙! 커다란 소리와 함께 차량이 찌그러져 날아가고 멀리서부터 마구스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든지 눈앞에 있는 플리커들을 전멸시킬 자신이 있다는 듯 기세등등한 모습이었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바퀴벌레 같은 플리커놈들이 모습을 드러냈구나.”
상당히 도발적인 말투를 사용하는 마구스였지만 베카모레는 이에 넘어가지 않았다.
전투는 신중의 신중을 거듭해야 하는 일.
마구스가 가진 능력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섣부른 대응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게 그가 가지고 있는 전투방식이었다.
상대의 능력과 약점을 파악해 단번에 승부를 결정 낸다.
느리긴 하지만 자신에겐 익숙한 방식이었다.
그에 비해 마구스의 전투 방식은 아직 겪어보진 않았지만 그의 말투나 행동 방식을 보면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의 힘을 믿고 오만하게 구는 타입.
분명 싸움에서도 빈틈을 보일 게 틀림없었다.
그 허점을 이용할 목적으로 베카모레가 마구스를 도발했다.
“바퀴벌레처럼 도망친 건 네놈이었잖나.”
“뭐가 어째?”
도발에 넘어간 마구스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생각처럼 단순하진 않았는지 마구스가 그 자리에서 홀로그램 장치를 이용해 베카모레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그동안 안티플릭의 정보망에 모인 플리커들에 대한 데이터망이었다.
데이터망에서 어렵지 않게 베카모레의 능력과 전투 스타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마구스가 유리한 위치에서 전투를 이끌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물질을 분해시키는 특수한 에너지 능력인가.”
단번에 적의 능력을 파악할 수 있었던 마구스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상대의 능력에 대해 파악하고 있다면 전략의 우위를 가지는 건 기본적인 상식.
상대는 아직 자신의 능력을 모르고 있으니 마구스의 입장에서는 이 이점을 최대한 살려야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이 방심하는 틈을 타 기습 공격을 가하는 것이겠지만 안타깝게도 마구스는 그런 재주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자신의 진짜 힘은 능력을 사용한 뒤에나 발휘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타깝지만 지금은 적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파악한 뒤에 제압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았다.
생각을 마친 마구스가 베카모레의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자신의 사이오네틱 에너지를 사용했다.
피융-! 마구스의 손바닥에서 사이오네틱 에너지가 방출되었고 이에 직격당하지 않기 위해 베카모레가 주먹을 이용해 공격을 쳐냈다.
타앙! 튕겨져 나간 마구스의 에너지가 멀리 날아가 폭발했다.
폭발을 일으킨 곳은 아무것도 없는 머리 위의 텅빈 공간이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폭발을 일으킨다는 건 굉장히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존과 키리는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싸움을 지켜보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충돌.
키리는 그 싸움의 실체를 알 수 없었지만 같은 사이오네틱 능력자인 존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강력한 에너지가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현장.
앞으로는 그것이 자신의 일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싸움을 지켜보며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한 번의 공격을 주고받은 마구스와 베카모레.
둘의 싸움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플리커와 베일런서가 마주친 상황에서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이 되지 않는 것.
그것은 당사자인 마구스와 베카모레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 역시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다시 한 번 둘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이번에 반격을 가한 것은 베카모레였다.
피슈웅-! 베카모레가 평범한 에너지 탄환을 발사했고 마구스는 그와 똑같이 탄환을 쳐 날려 보냈다.
그런데 결과는 전혀 달랐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탄환을 쳐낸 베카모레와 달리 마구스는 마구잡이로 탄환을 날려 보냈다.
때문에 인근 건물 벽으로 날아간 탄환이 폭발을 일으키며 건물에 큰 손상을 남겼다.
퍼어엉! 건물 벽이 일부 폭발하며 큰 진동을 만들어냈다.
으아아악-! 그와 동시에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주민들이 겁에 질린 비명을 내질렀다.
“무슨 짓이냐?”
무턱대고 자신을 흉내 내는 마구스의 모습을 보며 베카모레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자칫 싸움에 휘말린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구스가 계속 저렇게 탄환을 튕겨낸다면 더 이상 섣부르게 에너지 탄을 사용할 수 없었다.
민간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마구스를 쓰러뜨리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과 키리 그리고 사람들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마구스를 쓰러뜨려야 한다.
그것이 베카모레에게 주어진 하나의 미션이었다.
한편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존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마구스 때문에 사람들이 다칠 뻔했잖아?
저 자식은 생각머리라는 게 없는 건가?
안티플릭이라면 좀 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 달란 말이야!
늘 플리커를 악으로 몰아가며 자신들을 평화와 안정을 지키는 존재로 이야기해왔던 안티플릭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본 모습들은 그 이야기들과 전혀 달랐다.
오히려 사람들을 향한 공격에 거리낌이 없어 보이는 모습.
그런 모습들은 점점 존의 마음을 바뀌어나가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지 마구스는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