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존과 듀란(2)
생각지 못했던 긍정적인 경험과 누군가가 자신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
존이 그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큰 힘을 얻고 있을 때.
정반대의 대척점에 위치해있던 듀란은 어두운 표정을 하고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땀범벅이 된 옷가지들.
그리고 훈련장 안에 쓰러져 있는 수많은 병사들의 모습이 그가 얼마나 강도 높은 훈련을 했는지 알게 했다.
다수의 병사들을 단신으로 상대해 모조리 쓰러뜨렸다는 것은 그동안 듀란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 수 있게 했다.
이대로라면 추후에 차기 베일런서가 되는 것은 단순한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이제 평범한 사람은 상대조차 되지 않는 상황.
비록 상대가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초심자들이었다고는 해도 클라스크도 없이 단신으로 여러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다는 건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만약 이 상태에서 클라스크까지 가지게 된다면 그 전투력이 얼마나 상승하게 될지 쉽게 가늠되지 않을 정도였다.
괜찮은 능력 하나 정도만 얻는다면 이제 플리커들을 제거하고 세상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는 안티플릭으로서 크게 일조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을 받으며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있던 사이 누군가 듀란을 향해 다가왔다.
작은 크기의 눈사람 같은 모양을 하고 찾아온 남자. 라즐이었다.
일전의 대화를 마치고 찾아온 라즐은 듀란을 통해 존 밀리어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찾아온 상태였다.
“듀란이라는 녀석이 너냐?”
“그렇습니다만?”
듀란을 찾은 듯하자 라즐이 듀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듀란의 성향을 파악하려는 심산이었다.
그 마음을 알지 못했던 듀란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라즐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차마 말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라즐을 쳐다보고 있을 뿐.
서로 간에 안면도 없는 사이에 그런 상황은 불편하게 느껴지기만 할 뿐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라즐이 쳐다보던 것을 멈추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리버트 지역의 베일런서 라즐이다.”
스스로를 소개하는 라즐의 모습에 듀란이 자신의 상관임을 눈치 채고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듀란입니다!”
간단하게 경례를 받은 뒤 라즐이 용건을 이야기했다.
“존 밀리어에 관해 알고 있나? 듣자하니 둘이서 안티플릭에 들어오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플리커인 존 밀리어와 듀란이 어떤 관계인지 알아내기 위한 라즐의 물음.
이는 대답 여하에 따라서 듀란의 입지를 뒤흔들 수 있을 만한 일이었다.
플리커와 내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듀란이 내부에서 배신자로 몰릴 수도 있는 상황.
과연 듀란은 라즐의 물음에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한창 호기심을 느끼며 반응을 지켜보던 라즐은 듀란에게서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크윽! 분한 듯이 양손에 주먹을 쥐고 몸을 떨기 시작한 듀란.
듀란은 존 밀리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큰 분노를 느끼며 살기어린 눈빛을 띄웠다.
질문을 던졌던 라즐 마저 놀랄 정도의 반응.
그 반응에 놀라 당황한 목소리로 라즐이 물었다.
“왜 그러는 거지?”
여전히 분함과 증오심 그리고 절망감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로 듀란이 이야기했다.
“존은 함께 안티플릭이 되기로 약속한 제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입단 시험이 있기 하루 전 플리커들의 손에 살해당했습니다.”
플리커들의 손에 살해당했다고?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물론 라즐은 존 밀리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듀란이 보이는 반응과 내뱉는 이야기가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 달랐기 때문에 조금 놀랐던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듀란이 자신을 속이려는 것인가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납득이 가기도 했다.
설마 이 듀란이라는 아이는 존 밀리어가 플리커들의 손에 살해당했다는 말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건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것은 전혀 새롭게 활용할 수 있는 정보였다.
함께 안티플릭이 되려고 했던 두 소년의 비극적인 운명이라.
조금만 활용한다면 아주 재미있는 볼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라즐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듀란이 내면에 품고 있는 플리커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
그것을 이용해 존과 베카모레에게 커다란 타격을 줄 방법을 떠올린 라즐이 듀란의 아픔에 공감하는 듯 이야기를 흘렸다.
“저런. 그런 괴로운 일이 있었나 보군. 그럼 난 잠시.”
여전히 괴로운 표정을 하고 있는 듀란을 뒤로하고 라즐은 즉시 본부에 연락을 취했다.
“리버트 지역에 차기 베일런서가 될 인물은 정해졌나?”
“아직 미정입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이 지역의 플리커들을 모조리 제거할만한 훌륭한 인물을 찾았다. 상부에 차기 베일런서를 선정할 수 있게 빠른 시일 내에 조치를 취해줄 수 있게 부탁해주겠나?”
“아..알겠습니다.”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네.”
갑자기 듀란을 베일런서로 만들려고 하는 라즐.
과연 그가 가지고 있는 꿍꿍이는 무엇이란 말인가?
존과 듀란은 자신들을 향한 라즐의 음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드는 가운데 존은 부모님이 떠나가고 남은 버닝라이트의 본부 안에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휴식을 취하면서 떠올려본 마구스와의 전투는 결코 쉽지 않았다.
아마 베카모레가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
아직 자신은 숙련된 능력자들을 상대하기에 한참 부족하다.
그렇게 생각되어 지는 순간이었다.
만약 이 상태에서 베카모레가 없이 또 다른 능력자들을 마주치게 된다면 그때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 두려움과 함께 제대로 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안티플릭이 만들어낸 거짓된 평화를 깨고 사람들에게 진정한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도록.
좀 더 강해지지 않으면 안 돼.
그런 생각이 존을 움직이게 만들고 있었다.
지금의 상태로는 적들을 상대로 이길 수 없다면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지는 것.
그것을 깨달은 존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베카모레를 찾아가려 했다.
건물 안에 있는 단장실을 찾아 이동한 존.
노크를 한 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의외의 인물들을 맞이할 수 있었다.
단장실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듯한 세 명의 인물들.
키리, 밀리버, 캐러미아였다.
키리는 이전에도 본 적이 있었지만 밀리버와 캐러미아는 처음으로 마주친 존.
“너는..?”
“존 밀리어입니다.”
서로를 처음으로 마주한 사람들은 잠시 대화를 멈추고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나는 밀리버다. 여기는 키리 그리고 이쪽은 캐러미아씨다.”
“안녕, 존. 실제로 만나는 건 처음이네.”
밀리버와 캐러미아를 처음으로 마주쳤던 존은 두 사람의 얼굴을 익히며 새로운 동료들에 대해 알아갔다.
생각보다 플리커 단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게 느껴졌다.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플리커로서 살아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일 테니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대략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날 때쯤 단장이었던 베카모레가 존을 향해 말했다.
“마침 잘 왔다, 존. 앞으로의 일에 대해 얘기하고 있던 중이었으니까 같이 들어두도록.”
“아, 네.”
짧게 대답하며 존이 일행들의 옆에 서서 베카모레의 이야기를 들었다.
“비록 우리가 마구스를 쓰러뜨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 마구스를 쓰러뜨린 게 오히려 시선을 끌어서 베일런서들이 몰려온다던가 퍼스트 베일런서까지 상대해야 하게 된다면 우린 전멸하게 될지도 몰라.”
전멸까지 생각하게 될 정도로 위급해진 상황.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뭔가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의 판단이 필요했다.
몰려드는 적들을 모두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라거나 또는 그들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을 만한 방법.
그럴 만한 방법을 떠올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정도로 강력한 힘이나 시선을 분산시킬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다만 존이 유일하게 떠올릴 수 있는 거라고는 수련을 통해 적들에게 대항해 싸워 이기는 것밖에는 없었다.
수련을 통해 강해진 다음 안티플릭의 베일런서들을 쓰러뜨리고 평화를 되찾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됐다.
상황을 이해한 존이 베카모레를 향해 말했다.
“그럼 저를 훈련시켜주세요! 제가 가진 능력은 분명 베일런서들을 상대로 유용할 거예요!”
조금 뜬금없는 말이긴 했지만 확실히 일리가 있는 소리였다.
존이 가진 능력은 전격계.
서로 충돌하는 사이오네틱 에너지의 성질을 놓고 보더라도 분명히 유용한 특성을 가진 능력임은 확실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존을 훈련시켜 능력을 것 또한 좋은 대비책이 될 수 있는 일.
물론 그것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강한 능력을 가진 동료 한 명이 생긴다는 건 그만큼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뜻.
베카모레는 존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좋다.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옥상에 가서 대기할 수 있도록.”
“네!”
힘찬 목소리와 함께 존이 밝은 표정으로 단장실을 떠나기 시작했다.
클라스크 능력자인 두 사람이 함께 훈련을 한다니.
이야기를 들은 나머지 인원들도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도 클라스크 능력자들 간의 싸움을 보는 건 어려운 일이었으니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저희도 같이 봐도 되겠습니까?”
밀리버의 물음에 베카모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너희도 곧 전투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으니 봐두는 게 좋겠지. 상관없다.”
베카모레의 말에 밀리버가 흥분하며 말했다.
“좋았어! 이거 완전 재밌겠는데?”
그에 따라 캐러미아와 키리도 각자 떠오르는 생각을 이야기했다.
“단장님이 싸우시는 걸 볼 수 있다니!”
“이러다 누가 다치는 건 아니겠죠?”
조금 걱정이 되는 일이기도 했지만 훈련을 통해서 두 사람이 강해질 수만 있다면 좋다고 생각되는 때였다.
결국 위험한 순간에 자신들을 도와줄 수 있는 건 클라스크를 가진 두 사람 밖에 없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세 사람은 베카모레와 함께 존이 기다리고 있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서 베카모레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존은 세 사람이 함께 올라온 것을 보며 놀란 얼굴로 물었다.
“다들 여기까진 무슨 일이세요?”
물음에 답한 사람은 밀리버였다.
“우리도 클라스크 능력자들의 싸움을 보고 어떻게 상대하면 좋을지 생각해보려는 참이다. 우리도 안티플릭의 베일런서들을 상대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아, 그런가요?”
평범한 사람이 클라스클 능력자를 상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인 일이었지만 어쨌든 베카모레와 훈련을 할 수만 있다면 그런 건 어찌돼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 상태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자신이나 그들이나 큰 차이는 없을지도 모르니까.
잠시 훈련장의 한 가운데에서 천천히 몸을 풀기 시작하던 존이 베카모레를 향해 말했다.
“그럼 시작하시죠!”
의욕이 넘치는 표정으로 활기를 띄며 말하는 존의 모습을 보며 베카모레가 답했다.
“우는 소리 하지 마라!”
드디어 시작하는 것인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며 나머지 일행들이 손에 땀을 쥐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존의 제대로 된 잠재력을 발휘하지는 못한 상황!
과연 두 사람의 싸움은 잠재되어 있던 존의 가능성들을 모두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긴장되는 순간 존과 베카모레가 격돌하며 마침내 두 사람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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